최근 일본을 방문해 재일 조선인 동포들에 대한 일본정부의 탄압 실상을 생생히 취재한 김삼석 수원시민신문 대표의 취재기를 수원시민신문과 공동으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김삼석 수원시민신문 대표(tongil@tongilnews.com)


4월29일 일요일 아침. 오사카에서 1시간 30분정도 떨어져 있는 시가현 오쯔시에 있는 시가현 조선학교(교장 윤일화)를 찾아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시가조선학교. 일본정부가 재일조선인에 대해 테러를 방불케 할 정도로 탄압을 가하면서 유일하게 조선인학교를 침탈한 곳.

복잡한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고 서야 시가초급학교가 가까이 있는 오쯔시의 제제역에 내렸다. 일본인 다나카 씨가 길을 안내한다면서 앞장섰다. 그러나 여러 번 학교를 와봤던 다나카 씨조차 헷갈릴 정도로 작은 학교는 찾기 어려웠다. 동네주민들에게 두 차례 물어봐가면서 겨우 학교 가까이 다다랐다. 너무나 평화스럽게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 옆에 다가왔다. 부처님 손바닥 같은 운동장이 우리를 반겼다.

"최근 일본 정부의 조선인 탄압의 목적은 제가 보기에는 재일조선인이 공화국(이북)에 자금제공을 하지 않나 하는 증거를 잡으려는 치졸한 행동이면서, 동시에 조선인 탄압에 어느 정도 저항하는가를 보려는 고도의 술책입니다."

필자가 재일조선인 탄압현장을 방문하면서 제일 궁금했던 것은 일본 정부가 재일조선인 초급학교까지 압수수색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 궁금증은 윤일화 교장선생님을 만나고서야 풀렸다.

일본이 재일 조선인학교까지 침탈한 이유

▲ 4월29일 일요일에는 시가초급학교가 학부모들에게 공개수업을 하고 있었다. 방문자들도 함께 둘러 보았다. 사진은 6학년 일본어 수업시간 모습 .[사진-수원시민신문]
일요일 아침, 윤일화 시가초급학교 교장은 학부모들에게 공개수업을 안내하느라 바쁜 가운데서도 응접실에서 방문자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주었다. 그는 차분하면서도 날카롭게 최근 일본 정부의 조선인 탄압에 대해 증언해주었다. 응접실에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고위급회담을 마친 뒤 만찬장에서 두 손을 함께 쥔 사진이 놓여있었다.

▲시가초급학교 응접실의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고위급회담을 마친 뒤 만찬장에서 두 손을 함께 쥔 사진 . [사진-수원시민신문]
지난 1월 28일.
이 날은 시가초급학교 역사상 제일 치욕의 날이었다. 이 날도 오늘과 같은 일요일이었다. 이남으로 말하면 경찰이 초등학교를 덮친 셈이다. 시가현 오쯔시의 24가구가 사는 조용한 마을의 작은 학교에 오사카 공안부 경찰이 정적을 깬 것이다. 사전예고는 전혀 없었다.

"그날 아침 8시 30분부터 경찰 130명이 6시간 정도 압수수색을 진행하느라 학교 전체가 난리 났었습니다. 제일 무서웠던 것은 이웃 사람들이…, 경찰이 학교와 이웃 사람들을 격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남 언론에 알려지기로는 일본 경찰은 오사카부 외사과로 알려졌으나 윤 교장은 외사과가 아니라 공안부라고 고쳐주었다.

▲공개수업을 친절히 안내해 주고 있는 윤일화 시가초급학교 교장 . [사진-수원시민신문]
일본 역사상 학교에 대한 압수수색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만큼 일본이 공화국(이북)에 적대적인 정책을 갖고 있다는 게 윤 교장의 지적이다. 일본 경찰의 압수수색 명분은 '주차장' 문제.

차고증명서를 낸 뒤 증명서에 신고한 곳에 차를 세워야 하는데, 다른 곳에 세웠다는 것이다. 현행 차고신고 규정상 통상적으로 5Km이내면 세워도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보통 아는 사람이 있으면 차고로 사용하는 일이 적지 않게 있어 이를 어기면 법적으로 교통경찰이 처리한다. 그러나 이번 주차장 문제를 빌미로 한 일본 정부의 '시가초급학교 습격사건'은 윤 교장의 지적대로 교통경찰과 전혀 상관없는 '공안부'가 나섰다. 왜 일까.

"학교를 고립시키려고 했다는 게 일본 정부의 의도입니다... 학교를 없애려고 말입니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개인 사생활 정보가 포함된 '학부모 명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명부를 가져가서 학부모에 대한 협박 빌미를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학부모들이)정부가 자신의 신상명세를 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 일본경찰의 끝없는 탄압은 결국 조선인학교를 없애려 할 것인가 .[사진-수원시민신문]

학교를 고립시키려는 게 일본 정부의 의도

1월 28일. 주차장 문제를 빌미로 즉, '전자적공정증서원본불기실기록' 등의 혐의로 차고 신고지를 위반했다 하여 오사까부경 공안부가 시가조선초급학교를 압수수색했고, 동시에 학교에서 200m 정도 떨어져 있는 총련 오쯔지부 회관을 압수수색했다. 학교 정문은 물론 오쯔지부회관에도 경찰들로 둘러 처졌다. 뿐만 아니라 일본 경찰은 오쯔지부위원장 자택, 박신태 시가초급학교 이사회 이사장 자택도 압수 수색했다.

"주차장문제는 벌금내면 끝납니다. 그야말로 (행정처리로) 1시간이면 끝나는 문제입니다. 과거에 이 문제로 조사를 받은 적은 있으나 그 때는 대부분 임의로 부르고 현장에서 교통경찰이 불러서 끝냈습니다."

윤 교장은 강제수색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도 아이들의 신성한 학교가 경찰에 의해 침탈당한 데 대해 분을 참지 못했다.

윤 교장은 "먼저 일본에도 거의 없는 강제수색이었다는 점과 둘째, 이번 교통법상의 경우는 오사카에 사는 사람이 시가학교 주차장을 차고로 이용하였기 때문에 오사카부 경찰이 시가초급학교를 수색하는 것이 아니라, 시가경찰이 차고지를 사용한 오사카 사람에 대해 수색을 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일본 공안부가 들어 올 일이 아니다"

그날의 상황은 더 거슬러 올라갔다. 윤 교장은 또박 또박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오사카 한 동포(조총련 이쿠노 상공회 고문)가 자신이 아는 사람인 시가현에 사는 한 동포한테 차고지를 부탁하는데 부탁받은 사람은 마침 조총련 시가현 오쯔지부의 지부장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게 진상입니다. 원래 같으면 이렇게 크게 될 일도 없고, 강제수색할 일도 없고, 공안부가 들어 올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윤 교장은 "제가 통보를 받은 것은 아침 9시쯤 되었지만 제가 도착한 것은 낮시간이었습니다. 그때까지는 학교에 박신태 이사장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날 경찰의 압수수색은 교육계실을 시작으로 직원실, 교장실, 마당 등으로 집행되었다.
경찰은 처음에는 학교 교육계실을 30분간 압수수색했다. 낡은 전화대장까지 닥치는 대로 압수수색을 했다. 학교 총무부장이 늦게 도착했지만 경찰에게 따졌다. 하지만 경찰은 "거짓말이 있을 수 있다. 우리들은 건물을 수사할 권리가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 교실의 게시판에 아이들이 함께 놀면서 느낀 점을 써놓았다. [사진-수원시민신문]
비밀엄수가 필요한 교육계 명부에는 학부모 주소, 학생 부모의 긴급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있는 명부다. 경찰은 이마저 손을 댔다. 여기에다 명함, 학교 통장 7개 등까지 압수해갔다.

여기까지는 1단계에 불과했다. 일본 공안 경찰은 교원 직원실도 쳐들어갔다.
일본 공안 경찰은 교원들의 사물함도 마구 뒤졌다. 윤 교장이 교원들이 쓰는 컴퓨터는 보지 말라고 했지만 경찰은 수색해야 한다면서 하나하나씩 몇 시간동안 검색했다.

아이들의 학적부까지 뒤진 일본 경찰

"컴퓨터 다운로드는 도저히 양이 많아서 몇 가지만 다운로드하고 교장실마저 압수수색했습니다. 제가 집에서 미리 교장실의 열쇠를 놓고 나와서 열쇠가 없다고 하면서 압수수색을 거부했으나 경찰은 교육계에서 찾아와 '열어라'고 명령해 어쩔 수 없이 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경찰은 '우리말을 공부하는' 시가초급학교를 침탈했다. [사진-수원시민신문]
학적부는 초급1학년에서 중급3학년까지 초급학교 유치원부터 초급학교를 다닌 학생들의 부모, 가족구성, 사는 집, 일터, 직업, 전화번호, 성적, 그 아이가 교원한테서 어떻게 평가를 받고 있는 지에 대한 교원들의 소견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윤 교장은 온몸으로 막아섰다. "이건 안 된다. 사생활이다", "학적부를 보지마라"라고 여러 번 항의했지만, 경찰들은 "여기 뭔가 끼워놓고 감출 수 있다"며 보려고 했다.

윤 교장은 경찰 책임자한테 "이거 볼 필요 없다"고 재차 항의했다. 그러자 다른 경찰은 "거기는 되었다"고 했지만 부하 경찰은 계속 보고 있었다. 이때쯤 연락을 받고 달려 온 재일 조선인들은 학교 앞과 오쯔지부 회관 앞에서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윤 교장은 경찰들한테 "차고위반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학교 현장과 관계가 없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학교는 아이들의 순수한 교육장소이다"

자신이 책임자로 있는 학교가 경찰에 유린당한 교장선생님.
"누가 뭐라 해도 초급학교는 아이들의 순수한 교육 장소입니다. 학교 마당은 아이들을 키우는 신성한 마당입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학교 마당은 아이들을 키우는 신성한 마당입니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윤일화 교장.  
윤 교장은 "제가 말렸지만 말리면 더 했습니다. 또 학교마당은 다니지 마라 했지만 안 통했습니다. 이 날은 교원들이 도쿄에서 모임이 있어 마침 학교가 쉬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너무나 배려가 부족했습니다. 특히 일본 언론에서 학교와 주차장이 방송화면에 나왔지만 경찰이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은 보도조차 안 했습니다"라고 밝혔다.

결국 이날 경찰은 오쯔지부 위원장과 오사카 상공회 고문을 체포하였다. 경찰의 압수수색은 전국지에도 1면 기사로 다뤄졌다. 그러나 경찰이 수색하는 정당한 모습만 방영되었다. 압수수색이 들어 온 날 저녁 윤 교장을 비롯해 학부모들은 긴급 모임을 가졌다. 학부모들의 동요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압수수색의 부당성을 알리는 선전물을 일주일 정도 아침 저녁으로 만들어 뿌리고, 재일 조선인들 400명이 모여 긴급집회도 열었다.

▲교직원과 학부모들은 일본 경찰의 압수수색하는 과정을 고발하는 구호판을 들고 선전전을 벌였다. [사진-수원시민신문]
학부모 모임에서 다음 날부터 학생안전보장문제 등을 논의했다. "아이를 혼자 보내지 말고, 교원이 동행하자", "4-6학년은 역까지 마중을 나가자", "저학년은 버스에 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고학년도 같이 태우자. 아이들이 경찰을 두려워하는 문제, 공포심을 없애주자. 아이의 교양에 대한 문제, 우리들이 지켜주면 괜찮다"는 내용이 논의되었다고 했다. 학교가 제일 신경을 쓴 것은 이웃 사람들이 이번 일로 지역공동체로서의 초급학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그래서 학교는 직원들이 집집마다 인근 집을 방문해 오해를 풀어주었다.

이어 오사카 이쿠노 경찰서에 윤 교장과 학부모들 6명이 항의방문을 갔다. 압수물품은 2월 14일경에야 일부 되돌려 받을 수 있었다. 1월 28일 체포된 2명 중 오쯔지부 위원장은 14일 뒤 50만엔을 내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오사카 상공회 고문은 처음에 임의동행식으로 후송되면서 체포가 되어 버렸다. 그 뒤 이 고문은 기소유예로 4월 초순경 풀려났다. 윤 교장의 증언은 이어졌다.

"일본 경찰들은 그렇게 꾸며 놓고 있었다"

"이미 경찰들은 그렇게 꾸며 놓고 있었습니다. 공적인 관계로 빌린 게 아니라 사적인 일로 차고를 빌린 것인데..."

3,4일 뒤 학교 측과 재일 조선인들은 기자회견을 했다. 회견장인 시가현 현경 기자실에서 10명의 기자가 왔지만 전국방송은 보도조차 하지 않았고, 지역방송에서 약간 다루어졌을 뿐이다. 며칠 뒤 교토지역의 학교 측 변호사들이 압수물품을 열람한 결과 결정적으로 일본의 본색이 드러났다.

"명부를 열람해보니 해외송금자료 운운하였다. 무엇을 노리고 하는지 그게 항목이 다 적혀 있었습니다."

▲6학년 박귀례 학생은 탁구반 소조와 무용반 소조활동을 하고 있었다. [사진-수원시민신문]
"일본 사람들의 후원도 이어졌습니다. 100만엔 정도, 또 이 일을 계기로 초급학교를 강화하기로 하고, 동포사회도 더 강하게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특히 염려스러운 것은 일본의 민주주의 사회가 약화되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일본 의원들에게도 이 문제를 얘기하고 해야 되는 데..., 즉 (일본)자기들의 민주주의가 짓밟혔습니다. 언젠가는 자기들에게 돌아옵니다. 그들이 자기문제로 보고 있어야 합니다."

학교는 그들(일본)이 이것을 자기문제로 보게 하고, 학교를 생각하는 사람들을 묶고,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서명에 일본인과 재일조선인 1만 3천 3백여명이 동참했다.

"탄원 서명명부를 오사카 부경 경찰에 제출했지만 그들은 보지도 않았습니다.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정치탄압이 사실입니다. 학교현장에 쳐들어 온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학교현장은 아이들의 미래가 걸려있는 신성한 마당입니다. 첫째, 어릴 때 어떤 정신적인 타격을 받은, 압수수색 등을 겪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둘째, 학교는 개인의 사생활이 너무나 많이 걸려 있는 곳입니다. (학교에) 쳐들어와야 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일본학교라면 이 정도로 끝났겠습니까?"
▲ 학교 응접실 벽에 걸려있는 표어 . [사진-수원시민신문]


"너희들은 조선반도의 핏줄을 잇는 사람"

"한국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한국 국회가 적극 알리고 일본에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일본은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강합니다. 일본은 정보를 규제합니다. 특히 조선사람이나 한국사람에 대한 내용을 규제합니다."

"외국에 있는 사람이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윤 교장은 남북해외와 외국에 이 문제가 널리 알려지기를 바랬다. 이어 자신의 학교 아이들에게 할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민족의 넋을 가지고 일본에서 유능한 인재로 자라야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일본사회를 위해서도, 국제사회를 위해서도 너희들은 조선반도의 핏줄을 잇는 사람이란 걸 잊지 말라며 당부합니다."

"학교현장에 들어 온 그들의 의도는 학교를 건드려보고 어느 정도 힘이 있나를 보았을 것입니다. 일본의 민주인사들과 조선인들이 얼마나 힘이 있고, 어느 단체가 움직이는가를 보고 있습니다. 계획적으로 짜여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시가초급학교의 살아있는 역사가 교실 벽에 붙어져 있다. [사진-수원시민신문]
윤 교장은 올해 52세다. 시가초급학교는 1960년에 생겼다. 학교는 윤 교장의 모교다. 1978년부터 89년까지 시가초급학교 교원을 하고 2002년까지 교토 제3초급학교에서 교장으로 근무한 뒤 2003년부터 시가초급학교 교장을 시작하여 5년째 맡고 있다. 지난 4월 24일 47주년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 노래패 <우리나라>도 4월 21일 경 다녀갔다. 교장과 선생님들은 <우리나라>에 대한 감동을 잊지 못했다.

▲ 아이들이 공개수업을 마치고 부모들이 보는 가운데서 발야구를 하고 있다. [사진-수원시민신문]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이 공개수업을 마치고 부모들이 보는 가운데서 발야구를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쯤 방문자들이 일어나려고 하자 윤 교장은 직접 학교 승합차로 제제역까지 운전을 해주었고, 우리들을 점심을 먹기 편한 장소로 친절하게 안내까지 해주었다. 방문자들이 점심을 먹는 동안 아이들이 발야구를 하면서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돌았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