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김양희 객원기자가, <겨레하나>가 주최한 북측 협력사업장 방문단 일원으로 5월4일부터 7일까지 3박4일간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지난해 11월달 이후 두 번째다. 평양방문 신청부터 소감을 정리한 김양희 객원기자의 평양방문기를 일기식으로 순차적으로 싣는다. 제목을 편의상 지난해와 구분하기 위해 <김양희 기자의 평양일기 Ⅱ>로 한다. / 편집자 주

‘반갑다 철남아!’
2007년 4월25일


지인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왔다.

그는 지난 3월에 금강산에 갔는데 만물상에서 내가 동생을 삼기로 한 박철남 구급봉사대원을 우연히 만났다는 것이다. 박철남 대원에게 안부를 전하니 “아 통일뉴스 김양희 선생”하며 아는 체를 하더란다. 그러면서 그 전에도 누군가 그에게 통일뉴스에서 봤다고 인사를 했나보다 한다.

“아~철남아 잘 있었니? 진짜 반갑다.”

사실 난 너를 비롯, 북녘의 사람들이 내 기사로 인해 다치지는(?) 않는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친구랑 선배 등 내 주위의 금강산에 가는 사람들마다 철남이와 남송이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었는데 아무도 너희를 만났다는 사람이 없었거든.

그런데 3월에 너를 봤다는, 그것도 아주 건강히 잘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모두가 다 잘 있을 것만 같구나. 정말 반갑다.

분명 철남이도 나의 안부를 듣고 반가웠으리라.

이리도 좋은 것을, 이 얼마나 반가우냐? 하다가 갑자기 이산가족들이 떠오른다.

잠시 만나 동생을 삼기로 한 철남이도 ‘잘 있을까? 혹시 나의 기사로 피해를 입진 않았을까’하며 애타는데, 몇 십 년을 생사도 모르고 지내는 이산가족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남북관계가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반짝 상봉행사를 진행하지만 오히려 한번 만나고 난 가족들의 고통은 더욱 크다고 한다. 모르고 지냈을 때는 그런가보다 하지만 만나고 난 뒤에는 언제 만날지 모르는 것은 물론 또 다시 생사도 모르는 연락두절이 계속되기 때문에 더 걱정되고 보고 싶어 이산가족들은 오히려 “안보는 게 낫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내 동생 철남이가 꽃 같은 색시를 만나 장가는 갔는지, 또 후배 구급봉사대원을 받고 고참으로 올라갔는지 등은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이산가족들의 연락체계 구축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송연, 현순이와의 만남’
2007년 4월30일


밤이 깊었지만 지난해 가을에 산 대니얼 고든의 ‘어떤 나라’를 꺼내본다.

몇 번을 본 DVD지만 이번에 평양일정 중 아리랑 공연 참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에 공부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본다.

영국의 촉망받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프로듀서인 대니얼 고든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 ‘어떤 나라’에서 매스게임에 참여하는 두 소녀, 현순이와 송연이를 통해 북녘 사회의 솔직 담백한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2003년 2월 영화제작 당시 현순이는 모란봉 1중학교 4학년, 송연이는 모란봉 1중학교 2학년이었다.

13살 박현순은 4년 연속 집단체조에 출전을 했고 11살 송연이는 두 번 참가를 했다.

현순이는 “집단체조에 출전한 학생들은 방학 내내 매일 2시간 이상을 할애해 연습에 몰두해야 하며 영하 20도에도 나와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그해 7월에 있을 ‘조국해방전쟁’ 50돌 기념행사에 맞춰 연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이는 북녘에서 1946년에 처음 집단체조가 시작된 이래 120번 째 실시되는 행사라고 한다.

영화에서 김종호 집단체조 조직위원은 “집단체조의 요소는 3가지로 체조, 음악, 배경대, 그 중에서도 기본은 체조다”며 “체조에는 최대 8만 여명이 한 사람의 작은 실수라도 전체 공연에서는 크게 작용 한다”고 말했다.

카드섹션의 총 지휘는 맞은편에 있는 지휘자의 몫으로 1만2000명의 학생들이 매일 같이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움직인다.

배경대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그림으로 북녘의 업적과 혁명사가 펼쳐진다.

2002년에 선보인 아리랑은 준비와 공연에만 큰 시간과 비용이 소요돼 4개월에 걸친 90번의 공연을 400만 명이 관람했다고.

북녘에서 집단체조는 집단주의의 자랑스러움을 보이는 것이며 집단의 필요가 개인의 욕구에 우선한다는 북한의 이데올로기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감독은 설명하고 있다.

각 단위는 집단의식 고취라는 동일한 목적 하에 훈련에 임한다.

공연 참가자에게는 강한 집단의식이 요구되며 공연을 보는 사람에게는 집단의식의 가치와 지도자에 대한 경의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서구는 북을 독재국가라 비난을 하지만 정작 북녘은 ‘위협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 믿고 있으며 따라서 외부의 위협을 막기 위해 집단의식을 고취시키며 강고한 사상체계를 확립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집단체조인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집단체조는 어린 학생들이 훌륭한 공산주의자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며 “집단체조에 참가하는 인민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과 뛰어난 실력을 겸비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고든 감독은 “멋진 행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처음 봤을 때 감동이었다, 북한 사람이나 그곳 체제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이해하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다.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에 종종 왜곡되는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알리고 이해하고 싶었다. 현순이와 송연이가 하루에 10시간씩 공들여 연습 한 것을 알기에 공연이 무사히 잘 이뤄지길 바랬다. 마치 자식의 공연을 지켜보는 부모처럼”이라고 밝혔다.

나는 지난해 11월11일 평양 방문 당시 김일성광장을 비롯, 평양시내 곳곳에서 이번 아리랑 공연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수많은 현순이와 송연이를 만났다.

비록 영화를 통해서이지만 얼마나 열심히 준비를 했는지, 또 집단체조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있으니, 이번에 방북중 아리랑 공연을 참관할 수 있게 된다면 10만 여명의 현순이와 송연이를 만날 수 있게끔 개개인을 들여다보도록 노력하겠다.

현순아 그리고 송연아 보고 싶다. 열심히 응원할게~

‘어서 오시라요~평양!’
2007년 5월3일


지하철 곳곳에 ‘어서 오이소 2007 경북-2007년은 경북 방문의 해’라는 홍보문구가 걸려 있다. 지자체가 되면서 관광은 중요한 지역의 수입원으로 특산물을 발굴하고 축제 등을 진행하며 홍보에 열을 올린다. 일부 특색이 있는 곳을 제외하면 그 축제가 그 축제라고 할 정도. 홍보물을 보며 언제쯤이면 ‘어서 오시라요! 평양-평양 방문의 해’라는 홍보물이 지하철 곳곳에 나붙을까, 또 언제쯤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평양을 갈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지난해 현충일이던가? 주말과 겹쳐 며칠 연휴가 된 적이 있었다. 그때 일주일 전쯤 아빠 친구 분이 “야! 다음 주 연휴던데 우리 금강산이나 갈까?” 하신다. 그러자 아빤 “세상 물정 모르는 놈, 그거 한 달 전에는 신청해야 가지, 그냥 갈 수 있는데 인 줄 아냐? 거기도 방북증명서랑 다 있어야 해!”라고 설명하셨다.

한참을 웃었는데, 훗날 일주일 전에라도 평양이고 금강산이고 마음대로 갈 수 있을 때가 되면 “우리가 그때 그랬지” 하시면서 또 한바탕 웃으실 것이다.

회사에 공식적으로 밝힌 이번 나의 휴가는 ‘아빠 생신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홍콩을 방문하기 위한 것’이다.(아! 제가 한 번도 제 직장에 대해 밝힌 적이 없나요? 저는 식품전문 주간지 기자로 일하면서 통일뉴스에는 짬나는 대로 객원기자로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해 이미 평양, 개성, 금강산 등 북녘을 자주 다녀왔던 터라 가뜩이나 사람들로부터 ‘간첩 아니냐?’ ‘자주 가는 것은 보고를 하러 가는 것이다’ ‘너 지금 우리 포섭하러 온 거지’ 등등 애교 섞인 농담을 많이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야 뭐 어차피 농담이니 그냥 듣고 넘기지만 쓸데없는 오해를 사고 싶지는 않았고 또 5월은 내 직장 신문이 창간기념일을 맞아 한 달 내내 특집을 하기 때문에 가장 바쁜 때라 도저히 빠질 수가 없어 그렇게 핑계를 댄 것이다.

속 모르는 직원들은 ‘눈으로라도 보게 사진 많이 찍어오라’ ‘다녀와서 얘기 많이 해줘’ 한다.

이에 나름대로 치밀하게 준비를 한다고 직원들 선물로 미리 홍콩 과자를 주문해 놓기도 하고 또 지난해 홍콩을 다녀온 동생에게 어디가 제일 좋더냐고 묻기도 하는 등 공부도 약간 했다. 원래 ‘서울 안 가본 놈이 가본 놈보다 더 잘 안다’고 하질 않던가.

그런데 우리 직원 중 하나가 “흠~평양에서 오라는데 홍콩 간다고 핑계 대는 거 아냐? 나중에 TV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 옆에 있는 거 아니냐구” 한다.

직원들은 “맞아 맞아~”하며 까르르 웃지만 헐~ 내 가슴은 두 근반, 세 근반 쿵쾅쿵쾅~거짓말은 아무나 못하나보다.

언제쯤이면 진짜 평양 가는 것을 조심스럽지 않게, 또 농담이라도 간첩이라는 의심을 받지 않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홍콩을 가듯 다녀올 수 있을까?

새벽 1시30분,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 약 6시간 후면 집을 떠나 평양으로 향한다.

저녁때만 해도 ‘내일은 평양에 가있겠구나, 대동강을 볼 수 있겠어’ 했는데 긴장이 돼 많이 피곤한데도 도통 잠이 오질 않는다.

소풍 전날이면 기분이 들떠 잠이 오질 않던 때와는 또 다른 맘이다.

이번엔 어떤 기사로 사람들에게 평양의 모습을 보여줄까?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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