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헌 (양심수후원회 회장)

사상.양심의 자유침해 등 위헌성으로 사회안전법이 폐기되면서 감호처분으로부터 풀려났던 비전향 장기수들이 감옥 문을 나와 20년이 다 되고 있지만 또 다른 사회안전법인 보호관찰법에 묶여 감시와 통제 등 창살 없는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

비전향 장기수 김영승 노인(73세)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쟁 시기 빨치산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전쟁포로로서의 정당한 대우를 받기는커녕 무기형을 선고받아 형을 살아야했다.

1960년 4.19혁명의 영향으로 20년으로 감형되었으나 복역 중 반공법으로 또 다시 2년 추가 형을 받게 되었다. 1976년 5월 3일 만기출소하게 되었지만 1975년에 제정된 사회안전법의 적용을 받아-사상전향을 하지 않았다 하여- 형무소 문을 한발자국도 나서지 못한 채 청주감호소로 이감되었고, 모두 36년의 옥고를 치르고서야 위에서 말한 사회안전법이 폐지된 해인 1989년 9월 5일 세상 속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그러나 감호소에서 나온 것으로 자유의 몸이 된 것은 아니었다. 사회안전법의 대체 입법이었던 보호관찰법의 사슬이 기다리고 있었다. 출감과 동시에 주거제한을 당해야 했고 1990년 4월 28일 보호관찰법상의 보안관찰처분 1차 기간 갱신결정을 받게 되었다. 그 뒤 매 2년마다 8차례나 기간 갱신처분을 받아 오늘까지 자연인으로, 시민으로, 공인으로서의 헌법이 보장한 신체의 자유, 사상․양심의 자유, 거주지 이전의 자유, 통신의 자유, 행복추구권 등을 짓밟히고 있다.

2006년 3월 7일 법무부장관은 김영승 노인에 대한 보호관찰 기간 갱신 이유로 제출된 인천지방검찰청의 청구원인 사실을 인정 또 다시 2008년까지의 보안관찰처분을 했다. 기간 갱신 이유로는 ① 전향을 거부하고 ② 특정단체(범민련)의 고문으로 위촉되어 재야 단체 각종 집회 및 행사 참여 ③ 2004년 4월 1일 빨치산 출신 장기 출소자 정순덕 장례식에 참여 애도를 표시 ④ 2004년 12월 26일 국가보안법 폐지 관련 여의도 단식 농성장 방문 등을 들었다.

이처럼 경찰과 검찰의 감시와 통제를 받고, 수많은 신고 등의 의무사항을 이행해야 하며, 생각과 행동의 자유를 포기 당해야 하는 보안관찰 처분의 기간 갱신 당사자는 김영승 노인뿐이 아니었다. 1989년 사회안전법이 폐지되면서 청주 감호소에서 풀려난 모든 비전향장기수들이 같은 보안관찰처분과 기간 갱신처분을 받고 있다. 2000년 9월 2일 북녘 고향으로 송환되었거나 그 뒤 세상을 떠나신 분들 외는 대부분 같은 처분을 당하고 있다.

물론 보호관찰처분을 받고 있는 사람은 비전향장기수에 그치지 않는다. 이른바 보안관찰 해당 범죄로 복역하고 출소한 전향하지 않고 있는 많은 통일인사와 청년 학생들이 같은 처지에 있다.

가장 최근의 일로 창원에서 있었던 ‘5.1절 남북노동자 통일대회’의 일환으로 진행된 남북노동자 축구대회를 참관하려던 부산 거주 비전향장기수 안학섭 노인에게 보안관찰 담당 경찰관이 출발 전부터 언제 떠나느냐며 계속 전화를 했고, 축구 경기장, 숙소, 심지어 차를 마시는 장소까지 따라다녔으며 다른 일행이 이에 항의하자 “사상전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전향을 하면 이런 일 없을 것이다”라고 한 일이 있었다.

오늘의 보안관찰법은 위에서 말했듯이 사회안전법이 폐기되면서 1989년 6월 16일 법률 제 4132호로 대체입법된 사상탄압법이다. 국가보안법이 일제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치안유지법(1925년 5월 12일 시행, 1928년 6월 2일 개정)에 뿌리를 두었다면 사회안전법 또한 일제의 조선민중에 대한 황국신민화와 사상통제수단으로 만들어진 조선사상범 보호관찰령(1936년 12월 시행) 조선사상범 예비구금령(1941년 2월 시행) 등에 근거하여 1975년 7월 16일 법률 2769호로 만들어진 일제의 식민지 지배 수단의 유제이다. 이러한 사회안전법은 유신헌법 체제에서 제정된 원천적 무효 말고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성 때문에 폐기되었다.

보안관찰법은 이른바 ‘특정 범죄를 범한 자에 대하여 재범의 위험성을 예방하고 건전한 사회를 촉진하기 위하여 보안관찰을 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사회 안녕을 유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이 법의 해당 범죄로는 형법상의 내란죄.외환죄의 일부조항, 군형법상의 반란, 이적죄 등 일부조항, 국가보안법상의 목적수행, 자진지원, 금품수수, 잠입.탈출, 편의 제공 범죄의 일부항목 등이고, 보안관찰법 부칙에서 규정하고 있는 관련법, 바로 옛 국가보안법, 반공법, 국방경비법, 비상사태 하의 특별조치령 등 해당 항목이 포함되고 있으며 이러한 해당 범죄 또는 이와 경합된 범죄로 금고 이상의 선고를 받고 그 형기 합계가 3년 이상인 자로써 형의 전부 또는 일부집행을 받은 사실이 있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보안관찰법은 사회안전법에서의 주거제한, 보호감호 처분이 없어진 대신 보호관찰처분이 강화된 것이 특징이다. 법관이 아닌 행정부의 결정으로 처분되고 한 번 처벌받은 일로 다시 처분 당하는 점 등 죄형법정주의와 일사부재리 원칙에 어긋나고 있으며 신체의 자유, 사상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행복추구권 등이 침해당하고 있는 것도 사회안전법과 다르지 않다.

보안관찰처분을 당하면 3개월마다 중요 활동과 집을 떠날 때마다 떠나는 일을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고 보안관찰 대상자와 회합 통신을 해서는 안 되며 집회 시위 현장에 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검사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조건 없이 따라야 한다. 그런가 하면 검사와 사법 경찰 관리는 “피보안 관찰자의 재범을 방지한다”는 미명으로 보안관찰처분 당사자와 긴밀한 접촉과 항상 그 행동 및 환경을 관찰하며 신고사항을 이행함에 적절한 지시를 하기로 한다.

처벌(벌칙)도 매우 엄격하다. 보안관찰처분 대상자 또는 처분자가 보안관찰처분 또는 보안관찰을 면탈할 목적으로 은신 또는 도주했을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규정된 신고를 하지 않았을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리고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거소제공의 요청이 있을 때 이를 거부하면 6개월 이하의 징역이나 5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러한 처벌은 보안관찰처분을 받은 사람뿐 아니라 보안관찰처분 대상자까지 포함되고 있다.

이제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규정된 신고를 하지 않았다 하여 고발당하고 심지어 구속되어 재판까지 받은 바 있다.(서준식씨 예) 보이지 않는 눈이 언제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이처럼 보안관찰법은 인간 내면의 양심마저 허용하지 않고 급박하게 변화발전하고 있는 주변환경에도 적용할 수 없는 식물인간으로 살도록 강제하는 반인권 반인륜 악법이다.

위에서 사례로 든 김영승 노인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보안관찰기간 갱신 이유가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바로 이 악법이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먼저 아직도 사상전향을 강요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모독하고 있다. 사상과 양심은 통제와 탄압의 대상이 아니다. 인간 본성과 사회적 환경의 반영으로 형성되는 인식체계이다. 이것을 강제로 바꾸게 한다는 것은 삶 자체를 포기케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음으로 통일운동단체에서 위촉한 고문 역할이나 양심에 따라 선호하는 집회나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범죄시하는 당국이야말로 헌법이 보장하고 국제 인권 규약이 규정한 인간의 기본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박제된 수구냉전의 맹목적인 노예근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옥중동지가 세상을 떠나 마지막 가는 의식에 함께 하고 애도하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으로 너무나 당연한 인륜의 문제이다. 비록 살아서는 원수지간이었다 하더라도 고인에 대한 장례의식을 다하는 것은 오랫동안 인류가 지켜오고 있는 의식이었다. 이를 부정하는 행위는 반문명적이고 야만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농성장에 간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당국이 정상적인 이성적 판단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누구든지 어떤 일에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국가보안법은 6.15 공동선언 시대 존립명분을 잃고 있지 않은가! 법무부 장관을 임명한 대통령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보안관찰법은 반인권 반인륜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처분되었거나 처분대상자가 국가보안법으로 처벌 받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6.15 공동선언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에서 반통일 악법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주장한다. 보안관찰법은 즉각 폐기되어야 하고 보안관찰법의 실질적 배경이 되고 있는 국가보안법 또한 당장 철폐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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