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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손자병법으로 본 미 군산복합체와 북한(154매) - 김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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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05.26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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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석 (군사문제 연구가 hiarmy@orgio.net)


손자병법의 손자가 `닉슨`이란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다 본 결론은 "권력은 닉슨에게서 나오지 않는다"였다. 영화를 본 값이 그리 아깝지 않았다.
 
그렇다. 마찬가지로 부시정권을 비롯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뒤에는 그들을 움직이는 검은 손인 군산복합체가 버티고 있다. `그림자 정부` 또는 `죽음의 상인`, `프리 메이슨`으로 불린다. 군산복합체의 원조는 다름 아닌 미국 독립전쟁 때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또 그들은 남북전쟁 때도 무기를 팔았고, 동족인 유대인을 학살하는 히틀러에게 무기를 제공했던 로스차일드-록펠러-모건 재벌이다.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투기꾼이 있지만 이 투기꾼을 뒤에서 조종하는 세계 1%의 검은 재벌, 이들을 모르고서는 복잡한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 세계화된 미국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신토불이의 한반도 조선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먼저 부시 일가를 움직이는 미 군산복합체 칼라일(Carlyle)그룹을 살펴보자. 


`부시에게서 권력이 나오지 않는다`

칼라일 그룹을 알면 부시일가가 보인다. 이 그룹은 백악관 배후에 있는 첩보기관의 군사두뇌집단이다.
 
칼라일 그룹은 지난 1987년 무명의 펀드로 출발해 유명 정치인들을 활용해 현재는 164개 기업의 대주주로 사실상 미 굴지의 군수업체이자 정보통신업계를 주도하며 연평균 34%의 수익률을 자랑하고 있다. 이 그룹은 94년 월가에서 조지 소로스를 영입해 99년 당시 현금 자산만 40억 달러를 운용하는 세계 5위 수준의 투자 전문 금융사로 위장해 있을 뿐이다. 99년 당시에 이 그룹의 간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가 유고전에서 나토군을 지상군에 투입하라고 했을 정도이다.
 
부시 현 대통령 입장에서는 칼라일이 아버지가 고문으로 활동 중인 회사를 넘어 지난 90년 경력쌓기에 몰입했을 때 비행기 기내식 전문 자회사인 `케이터에어`의 이사직을 맡겼던 기업으로 인연을 맺고있다. 그룹의 명예회장은 미 대선 재검표 파동때 공화당 대변인을 한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며 그는 걸프전을 주도하며 이라크 민중에게 무자비한 폭격을 자행한 명령자이다. 또 레이건 행정부의 국방장관 출신으로 칼라일의 성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프랭크 갈루치 그룹회장은 카터 정권에서 CIA 부국장, 레이건 정권에서 국방차관, 장관을 지낸 바 있다. 갈루치는 도널드 럼스펠드 현 미 국방장관과 대학동창이다. 부시 전대통령의 국방장관 출신인 딕 체니 부통령도 부통령이 되자마자 그룹 고문직을 내놓았다. 여기에다 딕 체니는 2000년 9월 부통령후보로 나서기 전에 최고경영자로 있던 석유시추사 `홀리버튼`의 주식을 팔아 2천 60만 달러를 한달 만에 벌어들인 적이 있다. 워싱턴에 사무실이 있는 칼라일 그룹의 대표이사는 루빈스타인이다.
 
이를 보여주듯 지난 2001년 2월, 갈루치 회장이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체니 부통령을 만나 국방문제를 논의했다. 칼라일이 투자를 한 방산업체들의 수 십억 달러 프로젝트를 검토했다.
 
부시일가는 텍사스의 석유를 기반으로 칼라일에서 온 몸을 다 바쳐 꽃을 피우고 있는 잘 나가는 집안이 되었다.
 
부시 할아버지인 프레스코트 부시는 록펠러의 맹우인 철도왕 해리먼가의 `브라운 형제 해리먼` 사의 중역이었으며 부시아버지는 록펠러 모건의 석유회사에 텍사스 이권을 판 석유채굴업자출신이었다. 부시 아버지는 한국에 대해 가히 정력적으로 일을 한다. 한국은 그들에게 맛이 당기는 꿀단지 시장이다. 한국에 대한 칼라일 그룹의 작전은 집요하다. 92년 퇴임 뒤 시티은행 고문 자격으로 자주 한국을 드나들었다. 시티은행은 세계 3대 재벌인 로스차일드-록펠러-모건이 합친 98년 자산으로 세계최대의 금융기관이다.
 
여기에다 99년 5월 28일에는 부시가 자문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 인수합병 전문회사인 파나콤(주1)의 대한생명에 대한 투자문제를 위해 한국에 왔다. 이때는 김종필 총리와 박태준 자민련 총재, 임동원 통일, 조성태 국방,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 이헌재 금감위원장, 이경훈 대우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을 만나고 갔다. 이 날 김종필이 주최한 점심에는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 대사와 존 틸럴리 한미연합사령관이 자리를 함께 했다. 한미간에 군수, 경제 커넥션을 확인하고 이권을 나누는 단결의 장인 셈이다. 이날 부시 전 대통령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행사가 있었다.
 
1999년 5월 28일, 이 날은 칼라일 그룹의 한국사무소를 여는 날이었다. 김병주를 칼라일 코리아 사장으로 앉혔다. 김병주는 칼라일 그룹의 고문인 박태준 전 총리의 사위다. 한국의 군수업체 포항제철의 출신자들과 미국 투기 자본이 연대해 이익을 얻는 곳은 투자은행이다.
 
김병주를 앞세운 칼라일 그룹은 2000년 9월 미 군산복합체의 우두머리인 JP모건과 컨소시엄을 이루 11월 한미은행에 5000억 원을 투자해 은행지분을 확보한 대주주가 되었다. 
 
이어 2000년 12월 부시가 정권을 잡자 아시아본부를 서울로 옮겨 본격적으로 한국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한국지부장 김병주는 아시아지부장으로 승진되었다. 해가 바뀌어 2001년 1월 14일 쌍용정보통신 지분을 인수해 한국 정보통신시장도 서서히 먹어 삼키고 있다. 또 세계적인 한국의 전자업체를 20억 달러에 인수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2001년 4월에는 한미은행 이사회까지 장악해 경영권을 가로채기 직전이고 하나은행과 합병을 모색하고 있다.
 
칼라일 투자의 3분의2가 정부의 지출이나 정책변화에 의해 영향을 받는 국방과 통신분야 기업 등 한 나라의 정치·군사적인 핵심분야에 집중돼 있다는 것은 이 그룹이 군수와 기업을 통해 한 나라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주2) 결국 한국경제와 금융권의 구조조정의 결과는 외세자본과 손잡은 국내 반민족자본만 먹여 살리는 짜고 치는 놀이패다.


한국시장을 접수하는 부시일가

때는 한반도가 남북최고위급회담과 남북공동선언으로 화해와 통일을 위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2000년 6월 21,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안 신라호텔.
 
호텔정문 앞으로 고급 승용차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부시 전 미대통령이 타고 있었다. 이름하여 칼라일 그룹 아시아 고문 및 임원 정례회의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철저한 비공개였다. 참가자는 그룹의 아시아 담당 선임 고문인 부시 전 미대통령을 비롯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파냐라 쿤 전 태국수상, 제임스 베이커 전 미국 국무장관이자 그룹 전무 등 50여명. 솔직히 말하면 아시아는 물론 한국의 국방과 통신, 금융분야 정책변화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였다. 좋은 말로 영향력 행사지 끊임없는 돈벌이를 위해 아시아 정치권과 모의하고 자기들은 엄청난 돈을 챙기고 이익의 찌꺼기를 조금씩 나눠주며 공생하기 위해서다. 그들의 목적은 끊임없는 부의 창출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공동선언을 하고 서울에 돌아온 며칠 뒤였다. 하지만 남북공동선언이든 전쟁이든, 평화든 그들에게 돈벌이가 얼마나 되느냐 안 되느냐가 그들의 잣대이자 관심사이다.(주3)
 
다시 2001년 4월 17일, 부시 일가의 텃밭인 `석유유전지대` 텍사스 A&M 대학 부시행정대학원. 대학 정문 앞으로 고급 승용차가 물밀 듯 미끄러져 들어왔다. 이 행사를 위해 스스로 초청장을 보낸 부시 전 미대통령이 타고 있었다. 이 대학원의 학장이자 부시 전 미 대통령시절 CIA 국장이었던 로버트 게이츠(Robert Gates)가 주최자였다.(주4)
 
이름하여 대북정책을 재검토하는 한반도 학술회의가 공개적으로 열렸다. 참가자는 칼라일 그룹의 고문인 부시 전 미대통령을 비롯, 미 군산복합체의 충실한 대변자로 그룹의 전무에서 명예 회장이 된 제임스 베이커 전 미국 국무장관, 존 매클러런 중앙정보국 부국장, 록펠러의 대변인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주5), 제리 험블 주한 유엔군 부사령관 등이었고 양성철 주미대사 등 한반도 전문가들만 300명이었다. 부시정권이 대북정책을 재검토인 시기여서 세계의 눈을 끌었다. 학술회의 제목은 "오늘의 북한 : 포용인가 대치인가".
 
먼저 부시 전 대통령이 들어왔다 그는 "대북정책은 오늘날 미국의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 이라면서 한결같이 정책재검토를 말하며 강력한 한미공조를 약속했다. 남한에서 날아간 제리 험블 주한 유엔군 부사령관도 `강력한 대북 억지력이 필요하다는 대북 경계론`을 폈고, 록히드 마틴의 한 군수업체 대표 윌리엄 페리는 "북한과 다룰 안보 문제의 우선 순위는 핵·미사일·생화학·재래식 무기의 순서가 돼야 하고, 주한미군을 감축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혔고, 제임스 릴리와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도 대북 상호주의를 훈수했다.
 
부시 전 대통령이 말한대로 대북정책은 오늘날 미국의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이다. 그러나 최근 대북정책 재검토는 미 군산복합체의 전술차원이다. 잘 보자. 지난 2000년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클린턴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예견되었다. 드디어 북한과 미국이 서로 체제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잘 살자고 약속하기로 잡혀 있었다. 이는 98년 8월 31일 북한의 인공위성 `광명성 1호`의 발사성공으로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지위가 흔들린 결과였다. 미국의 지위가 흔들린다는 것을 눈앞에서 확인한 미 군산복합체는 그들의 재산유지는 물론 돈벌이가 줄어드는 중대한 고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이 때 미국의 정권교체를 틈타 미 군산복합체는 북미사이의 평화공존을 조금이라도 뒤로 미루고 싶었다. 대북정책 재검토 운운하면서 다시 한번 북한의 위협을 핑계로 NMD를 구축하면서 그 틈에 한국 등에 구식무기를 팔아먹기로 했다.
 
정확하게 부시정권이 들어서자마자 2001년 3월, 미국이 김대중의 통일정책을 지지해주는 대신에 100억불 달러(14조 5000억원)의 미국 무기를 사라고 (카린리, 존 페파-미국 친선봉사위원회 동아시아 담당 공동대표-의 기고문 참조) 강요한데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무기공장을 가동시켜야 하는 미 군산복합체의 충실한 영업부 책임자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주6)
 
그 동안 미 국방부는 엔엠디 시험을 5번했다. 그 중 3번의 요격시험에서 2번은 실패했다. 중요한 것은 실패한 엔엠디 시험으로 수 십억 달러의 국가적 손실을 입혔지만 미 군산복합체에게는 그만큼 군사무기를 소비했기 때문에 이익은 남는다는 사실이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부시일가와 미 행정부, 정보기관은 모두 미 군산복합체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부시 일가가 한국 경제를 주무르고 정치군사 전면에 나서는 이유는 역시 앞서 살펴 본대로  끊임없는 돈벌이다.


인류의 모든 악의 근원, `죽음의 상인`

왜 한나라의 대통령이 이럴 수밖에 없는가. 전쟁의 한가운데서  `죽음의 상인` 들이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 대통령을 움직인 그 역사를 살펴보자.
 
미 군산복합체는 자칭 잘 나가는 부호다. 세계의 원자력 발전사업은 물론 무기판매사업, 석유, 식량, 철도, 전기통신, 철강, 컴퓨터, 인터넷, 언론, 금융, 영화, 스포츠, 대학에 이르기까지 깊숙히 개입하여 백악관과 군부, 정부기관을 뒤에서 움직이는 그야말로 인류의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보면 쉽다.     
 
먼저 1~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여러 전쟁도 미 군산복합체의 핵심인 록펠러- 모건 재벌과 관련이 있다. 히틀러의 나치즘, 핵무기 개발과 군비경쟁의 뒤에도 이 재벌이 있었다. 동족인 유태인을 학살하는 히틀러에게까지 무기를 팔아먹은 자들이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은 물론 최근의 걸프전쟁, 유고 전쟁 뒤에도 이들의 검은 그림자가 있다. 이들은 백년이 넘도록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엔 `무기 팔아먹을 자유`만 있는 셈이고 결국 세계 무기시장을 쥐락펴락한 결과 미 군산복합체 록펠러-모건 가문은 20세기 세계최고의 갑부가 되었다.
 
미 군산복합체 록펠러-모건 재벌의 시작인 JP모건 1세는 듀퐁 대령(세계적인 군수탄약, 화학업체 `듀퐁` 창업주)과 결탁해 미국 남북 전쟁 때부터 구식 카빈총을 6배나 비싸게 되파는 방법으로 부를 늘렸으며 이어 1차 세계대전에서는 아들 잭 모건이 중요한 구실을 한다.

잭 모건은 군수업체 `듀퐁`에 지시해 탄약, 화약을 대량생산케 했고, 듀퐁은 화약제조로 남북전쟁에서 떼돈을 벌었다. 잭 모건은 `에디슨` 연구소가 군함용 전화, 대포의 조준과 발사장치등 살인 무기 발명에 몰두케 한다. 그러자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은 이들 무기를 사들이는 데 거금을 조성하기 위해 `채플린` 같은 영화인들을 동원해 당시 미국인들에게 우상과 같은 존재인 `희극왕`들을 좋은 선전요원으로 쓰게 된다. 그 뒤 `영화`는 모건이, 미국 `라디오`는 록펠러가 접수했다. 853만 명의 전쟁희생자의 시체 한편에서 `아메리카 드림`의 꽃을 피워가고 있었다. [유니버셜], [파라마운트]는 모건의 영화사이고 [20세기 폭스사]의 최대주주는 록펠러, [워너 브러더즈]는 모건과 록펠러, 듀퐁이 대주주이다. 허리우드영화 스크린의 초점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한 예로 [20세기 폭스사]가 만든 영화 `타이타닉`을 보자. 실제인물 `로즈 데이비스`를 그린 영화다. 로즈는 미 국제 금융미디어가 지배하는「워싱턴 포스트」지의 소유주 에드워드 맥린의 내연의 처였다.
 
영화의 줄거리는 악질 부자에게서 동양여성의 얼굴을 한 여자를 구한다. 가난한 3등 선객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열연해 얼음바다로 사라져 가는 슬픈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최대주주 록펠러에게서 [20세기 폭스사]를 인수한 미디어 왕 루퍼트 머독과 로즈 극장의 소유주 로런스 티슈(미 CBS 방송 소유주)에게서 중요한 것은 블루 다이아몬드가 로즈 것인지, 로즈가 타이타닉 호에서 사망한 것인지, 1941년까지 살아 있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로지 영화의 줄거리를 `가난한 관객 편`으로 해 가난한 자인 전 세계 대중에게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2차 대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2차 대전의 여러 지휘관은 록펠러- 모건재벌의 고문변호사이자 회장 사장 중역들이다. 예를 들어 스팀슨 육군장관은 모건 상사의 고문 변호사였고 스테티니어스 전시자원국장은 유에스 스틸 회장이다. 그것은 군인에 의한 전쟁이 아니었다. 군수업자들이 앞장서서 스스로 군복을 입고 작전 사령관실을 차려버린 것이다. 작전본부는 증권거래소라고 보면 되었다. 군인은 군수업자를 위한 들러리였다. 전 지구가 2차 세계대전에 쓴 지출액의 7분의 1을 [모건상사]와 록펠러 가의 [체이스 내셔널 뱅크]의 총매출액라고 보면 된다.
 
진주만 공격 직후 월트 디즈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피터 팬` 기획을 포기하고 군용필름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했고, 미국 군인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방영된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군수업자를 위해 종을 울리는` 전의를 북돋우는 영화에 불과했다.

`진주만 공격`이라는 영화가 2001년 6월 4일 가난한 관객들을 상대로 또 상영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도 미국인들의 사기진작과 전쟁분위기 고조에는 예외가 없다. 
 
미국의 군대는 대통령의 명령보다 군수업자인 록펠러-모건 재벌의 지시를 받아 운영되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체이스 맨해턴 은행은 은행이 아니라 군대다`라는 말이 나온다.(주7)
 
존슨 미국 제 36대 대통령은 베트남전쟁을 크게 확대한 책임자이며 록펠러의 도움을 받아 대통령이 된 닉슨도 베트남전 당시 북폭을 강화했고, 체이스 맨해턴 은행의 고문회의 의장이 다름아닌 헨리 키신저로 그는 데이빗 록펠러의 비서와 결혼했으며 베트남전쟁의 필요성을 이론적으로 증명한 베트남 전쟁의 1급 전범이다. 그들에게는 전쟁은 비즈니스였다.  베트남 전에서 미국은 졌지만 록펠러-모건 재벌은 막대한 치부를 했다. 부시 전 대통령도 록펠러-모건 재벌의 은행인 시티뱅크 고문으로, 전 미 국무부장관인 조지 슐츠는 세계적인 원자력 발전업체인 벡텔의 사장으로 일본을 대상으로 원전장사하기 바쁘다, 그 와중에서도 그는 몇년전 한국의 서울 평화상 추진위원회가 준 `서울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짜고 치는 화투다. 원자력 발전업과 무기판매업이 세계에서 제일 짭짤한 장사 중의 장사라는 것은 두루 아는 사실이다.
 
덜레스, 러스크, 키신저, 번즈, 머스키 등 6대에 걸쳐 미국 내각의 우두머리인 국무장관을 록펠러-모건 재벌의 수뇌가 차지한 것은 우연인가. 40년이 넘도록 말이다. 조지 슐츠, 올브라이트 전 장관, 파월 현 장관도 마찬가지다. 파월이 중동평화협상과 한반도 평화협상에 바쁜 것 같지만 철저하게 미국의 국익을 위해 아니 구체적으로는 록펠러-모건 재벌의 이익을 위해 뛰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파월은 록펠러계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늘 앞세운 것은 세계와 아시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다는 것이었다. 그럴싸하다. 전쟁물자를 끊임없이 토해내야 하는 모건과 록펠러, 듀퐁이 가장 혐오하는 대상은 진보적 민족주의자라는 걸 숨기면서 말이다.
 
학문의 전당이어야 할 미국 대학은 또 어떤가. 미국서부의 `펜타곤`(국방부)`이라 불리는 스탠포드 대학을 창립한 것도 모건 집안이다. 예일대학도 모건 집안의 조상이 세웠으며 하버드 대학은 `록펠러 대학` 이고 시카고 대학은 록펠러집안의 사재로 이루어졌다. 미국의 원자폭탄사업의 `독점`을 인정하는 유엔 원자력위원회 위원장에 록펠러 재단의 이사장이 앉은 뒤 록펠러 2세가 뉴욕 유엔 빌딩이 세워질 땅을 기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01년 2월 22일, 록펠러계인 세계 제1의 군산복합체인 록히드-마틴의 코리아 김용호 지사장은 우주항공분야 발전을 위한 록히드-마틴과 세종대학교 간 산학협력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장학금 3만 달러(약 3천 8백만원)을 전달해 한국대학생들에게 당근까지 던져주는 이미지를 쌓아나가고 있다.(주8)


록펠러-모건 재벌과 한국전쟁

전쟁의 늘 한가운데에 미국이 있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4일 전에 `시카고 데일리 트리뷴`지에는 1면 톱으로 `루즈벨트의 전쟁계획`이 특종으로 보도되었는데, 여기엔 루즈벨트 대통령이 얼마나 전쟁을 고대하고 있는가가 잘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결국 미국의 함정에 빠지듯이 기습을 감행했다.
 
한국전쟁을 보자.  4백만 명 이상의 한국민이 전쟁 때 죽었고, 그 3/4은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었다. 충복 영동군의 노근리를 비롯해서 말이다.
 
98년 한국전쟁 48주년 때 `38선도 6·25도 미국의 작품이다`라는 책을 썬 전 극동지역 CIA고위책임자 하리 마오 박(한국이름 박승억)은 99년 6월호 월간 `말`지와의 인터뷰에서 "6·25 5개월 전 `6월 25일 새벽 4시 남침`정보를 입수해 보고했는데 워싱턴 당국은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이 애초 예상과는 달리 2차 세계대전이 2년이나 빨리 끝나 버리자 산더미같이 쌓인 남은 무기, 전쟁물자, 농산물들 때문에 미국경제는 공황으로 치달았다. 아사지경에 빠진 미국 거대 군수산업은 줄곧 트루먼 행정부를 괴롭혔다. 결국 워싱턴 당국은 한국전쟁을 유도해 38선 언저리에서 정전을 하고, 국토재건에 미국의 잉여물자를 쏟아 붓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미국정부의 전쟁계획이 파놓은 함정이듯 한국전쟁도 미국 군수산업의 전략적인 함정 속에 빠진 것에 다름 아니다.  
 
그는 또 "50년 당시 미국의 GNP는 전 세계의 50%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대국이 아무리 전후 공황이 와서 실업자들이 아우성을 친다 하더라도 이제 겨우 독립해서 살겠다고 버둥대는 한국에서 무자비하고 처참한 전쟁판을 벌여서야 되겠는가" 라고 토해냈다.
 
한국전쟁 최후 점검으로 당시 국무장관 덜레스를 파견하여 50년 6월 19일 38선 일대를 비밀리에 시찰까지 마친 뒤 북한을 유인한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비로소 충북 영동의 노근리를 비롯한 한민족에 대한 양민학살이 록펠러-모건 재벌의 록히드사 전투기의 기총사격에서 이루어 졌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체적으로 한국전쟁 당시의 딘 애치슨 미 국무부 장관의 직함을 벗겨내면 그는 유엔 원자력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탄약제조업체 [듀퐁]의 고문변호사였고. 로버트 로베트 국방장관은 록펠러 투자은행인 [브라운 형제 해리먼]의 중역이었고, 한국전쟁당시 전쟁정책과 전략을 수립한 리지웨이 장군은 록펠러 동지인 멜런가의 [멜런 공업 연구소]의 사장이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듬해 미국본토 네바다 주에서 대기권 핵실험이 30여 차례 있었다. 50년 `영화연맹`의 회장인 존 웨인은 전쟁과 핵실험을 앞장서 주장하게 된다. 영화연맹은 모건이 나치즘을 지원하기 위해 부동산업자를 시켜 설립하였다. 존 웨인과 일행은 네바다 주에서 가까운 사막에서 촬영을 끝내고 돌아오지만 다수가 암에 걸린다. 결국 그는 79년 6월 암으로 사망하고 죽기 전까지 록펠러의 석유와 얽히고 설킨 조무래기 투기꾼 인생을 마감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신문기자들이 영화배우들의 신변잡기, 주변기사만 쫓아다니다 보니까 진짜 역사는 모르게 된다.
 
한국전쟁에 이어 베트남 전쟁이 비밀리에 준비되고 있었다.
 
록펠러 가의 축복을 받으며 재클린과 결혼한 케네디가 61년 록펠러-모건 재벌의 이익을 위해 베트남에 비밀부대를 파견하기 시작하면서 전쟁은 시작되었고, 14년에 걸친 살상극이 펼쳐진다. 한편 한국전쟁 당시의 딘 애치슨은 베트남전쟁에서도 유감없이 실력을 드러낸다. 이미 딘 애치슨은 트루먼 대통령당시 때부터 프랑스의 베트남개입을 지원할 것을 권고한 탄약제조업체 [듀퐁]의 고문변호사였다. 전쟁 제일보를 내딛은 미국은 비밀부대 파견 뒤 늘어나는 미군전사자를 핑계로 본격적으로 개입을 해 미국전체가 전쟁에 돌입했다.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딘 러스크 국무장관, 윌리엄 로저스 장관(닉슨때 국무장관)등은 케네디의 막후에서 베트남 전을 확산시킨 록펠러-모건 재벌의 관계자들이다. 록펠러-모건 재벌은 쉬는 날이 없었다.
 
또 베트남 전쟁의 종식을 위한 파리 평화협정이 체결된 지 불과 반년만에 록펠러-모건 재벌은 오일쇼크의 발단이 된 제 4차 중동전쟁을 일으킨다. 이 전쟁은 유태인재벌을 미국 내에서 조종해 아랍민중을 벼랑 끝까지 내몰아 폭발시킨 인공전쟁이었다.
 
1984년 논픽션 `죽음의 상인`을 쓴 조셉 그루덴은 "이 지구상에는 불가사의한 집단이 존재한다. 세계최대의 군대와 은행을 장악하고 그 은행에 금화를 그득 채우기 위해 상당한 정도의 전쟁을 일으킬 수 있지만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무기공장을 완전 가동시켜야 하는 집단이다."라고 할 정도이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끝까지 무기를 팔아먹을 뿐이다."

노병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걸프전은 또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냉전이 끝나면서 국방예산이 줄어들자 국방관련 조직과 군수산업체에는 마치 마약중독자에게 마약 투입을 중단할 때 나타나는 일종의 금단현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국방예산 감축에  따른 금단현상이 가장 심한 곳은 아무래도 군수산업체였다. 국방예산 가운데서 군수산업체  몫으로 들어가는 빵의 전체크기(군복에서부터 항공모함에 이르기까지)가 87년에는 무려  2천60억 달러였는데,92년에는 1천6백10억 달러로 22%나 줄어들었다.약 3백만 명의 노동자 가운데 10%가 넘는 31만 명의 군수공장 노동자들이 해고당했다. `적절한 위기’인 바로 전쟁이 필요했다.
 
걸프전쟁의 위기가 크게 고조될 당시의 한겨레신문 94년 2월 2일자 외신 면을 살짝 보자. 

미 중앙정보국(CIA) 전 요원이었던 필립 에이지는 "군산복합체를 근간으로 하는 미국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위기’가 필요하며, 걸프전쟁은 바로 미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군사적 케인스 주의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 했다.

또 지칠 줄 모르는 록펠러-모건 재벌의 007 무기 가방은 유고로 향했다..
 
미국과 나토의 유고에 대한 침략전쟁행위는 미국 군산복합체들의 이윤추구에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유고전쟁에서 군산복합체들이 신이 났다.
 
미국의 유고침략전쟁이 시작되면서 군산복합체들의 월스트리트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었다. 미국의 침략전쟁행위가 두 달이 채 되기 전 미국하원은 99년 5월 18일 120억 달러의 전쟁 지원금을 통과시켰다. 상원통과는 물어 볼 필요도 없다.
 
4월 17일 `워싱턴 포스트`지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비교적 자세하게 무기제조업체들의 이윤과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상하원의 뒷이야기 기사를 다루었다. 물론 뉴욕 타임즈를 비롯한 굴지의 신문 방송들도 발칸전쟁 발발 이후 월스트리트의 군산복합체 주가들이 횡재 만난듯 껑충 뛰었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미 공군이 세계 제1의 군산복합체인 록히드 마틴사(Lockheed Martin Corp.)에게 "21세기형 순항미사일"(21st-century cruise missile) 제조를 주문하는데 30억 달러를 지불했다고 밝혔다. 역시 같은 기사는 미 해군 또한 새로운 형태의 미사일개발을 위해 굴지의 미사일제조업체인 레이시온사 (Raytheon Corp.)와 8억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전했다. 그들은 또한 현재 소유하고 있는 624개의 구식 순항미사일을 배 모양 형태의 미사일로 바꾸는데 긴급예산에서 4억 2천만 달러를 지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폭격이 두 달 가까워 오면서 역시 굴지의 미국 군산복합체 중의 하나인 보잉(Boeing)과 그 계열사들은 그들의 이해를 성실히 대변하는 공화당의원들을 동원하여 미 국방장관 윌리엄 코언에게 압력을 넣었다. 이 모든 무기장사꾼들의 활기 띤 거래는 워싱턴 포스트지를 비롯한 미국 주요신문들에 유고폭격에 동원되고 있는 전함과 폭격기들이 사용하고 있는 미사일의 재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기사가 나온 직후의 이야기들이다.
 
미국의 건국이 원주민 대량학살로 이루어졌다면, 건국 이후의 역사는 해외침략과 전쟁, 다른 나라에 대한 내정간섭으로 이루어진 역사다. 19세기 이후 2백년 동안 미국의 해외침략사와 전쟁사, 내정간섭의 역사는 끝이 없다.

트리폴리 전쟁 (1801∼1805), 모로코와 전쟁 (1801∼1805), 스페인과 전쟁 (1803∼1806), 캐나다와 플로리다를 빼앗긴 위해 영국에 선전포고 (1812∼1815).... 중국 상해, 광동 침공 (1854∼1856)...조선 침공 (1867∼1872)....하와이 제도 병탄 (1898)...조선 상륙 (1904), ...니카라과 침공 (1926∼1933)...코리아 전쟁 (1950∼1953)...통킹만 무력도발 (1964), 베트남 전쟁 (1964∼1972)...칠레 아옌데 정권 전복 (1973)...이란에 대한 군사행동 (1979∼1981), 카스트로 암살 기도 (1960∼1981), 카다피 암살계획 (1981)...인디라 간디에 대한 음모 (1981)...그레나다 침공 (1983), 걸프전 (1990-1991), 소말리아 무력개입 (1992-1995), 수단, 아프가니스탄 미사일 공격, 이라크 공격 (1998), 유고연방 침공 (1999), 이라크 공격 (2000),이라크 공습 (20001 2월).

지난 200년 동안 세계 민중이 겪어온 역사적 경험은 미 군산복합체는 제3세계에 대한 지배와 약탈을 강요하는 전쟁을 일으키는 데서 미 민주당 세력이나 공화당 세력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록펠러- 모건재벌과 노벨 평화상

다만 전쟁사 그 어디에도 록펠러나 모건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꼭꼭 숨어있을 뿐이다.

위에 살펴 본 해외침략, 내정간섭, 해외비밀공작, 전쟁에 대해서도 미국은 자국에게 유리하게 거짓말을 늘어놓거나, 아니면 세상사람들이 모르게 덮어두었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거짓말하는 버릇은 적어도 2백년이 넘는 기나긴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 이제는 거의 체질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년간의 전쟁에 깊숙히 개입한 루즈벨트, 루트, 우드로 윌슨, 찰스 도즈, 조지 마샬 등의 자랑스러운(?) 노벨 평화상 수상자 6명은 군산복합체 록펠러나 모건 연합의 대표들이다. 또 헨리 키신저도 수상자였다. 오른손으로 평화를 내세우며 왼손으로 전쟁을 수행한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면모를 보여준다. 노벨 평화상은 전쟁수행을 위한 `케인즈의 경제학상`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스웨덴의 다이너마이트 제조업자 노벨은 그의 군수공장 `보펄즈`의 미국지점인 [듀퐁]탄약제조업체를 탄생케 하고 모건 상사와 1~2차 세계대전을 치룬 병기업자였기 때문에 노벨상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짜고 치는 수상잔치인 것이다.
 
또 재미있는 사실은 `데이비스 컵` 테니스 대회의 데이비스는 `모건 상사`와 손잡고 나치스에 융자한 [전쟁금융회사] 중역이었으며, 록펠러가 투자한 콜럼비아 대학에 저널리즘학과가 생기면서 퓰리처상이 탄생했고, 그래미상의 비밀 투표용지는 `디트로이트 하킨즈 세일즈 회계사무소`에 보관되는데 이 사무소는 록펠러 가의 군수산업에서 중추적 지위를 차지하며 악명높은 월스리트 가의 8대 사무소의 하나다. 퓰리처상, 그래미상,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환상에서 언제까지 헤맬 것인가. 김대중 대통령이 이런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엔엠디는 미 군산복합체의 여론조작
 
다시 손자는 미 군산복합체의 여론에 휘둘리는 우리들에게 중심을 잡으라고 한 말씀한다.
 
`평화`로 위장된 노벨 평화상은 오늘 우리 집 앞에 배달되는 신문의 국제면까지 누가 평화를 사랑하고 누가 평화를 헤치는 지 구분도 못하게 여론조작을 한다. 북미관계나 국제정세를 부시정권을 조종하는 미 군산복합체들이 `없는 긴장도 만들어 긴장을 격화시키는` 군사주의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줏대를 가지고 세상을 보아야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 수 있다.
 
손자는 신문에서 국가미사일 방위체제(엔엠디)구축이라는 굵은 글자체만을 보지 않는다. 굵은 글자체로 뒤에 숨은 미 군산복합체를 본다. 사실 엔엠디는 미 본토를 공격하는 상대방 미사일을 땅 위에서 다른 미사일을 쏘아 맞춘다는 것인데 이는 `총알을 총알로 맞춘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어거지 군비확산 정책이다. 그럼으로 `총알을 총알로 맞추는` 공상소설 같은 세계적인 여론조작은 `별들의 전쟁`처럼 북한의 정치군사력에 의해 파탄날 날이 머지 않았다.  
 
손자병법의 가르침은 아기들의 티없는 눈동자처럼 참 맑다.
 
첫 번째, 손자병법은 `사실을 제대로 보라`고 가르친다.

사실, 미국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 생산하고 있으면서 다른 나라들을 위협하고 있다. 소국인 북한의 핵이 어떻고 미사일 위협이 어떻다고 퍼뜨리는 것은 사실을 가려 거짓을 키우는 대표적인 여론조작이다. 미 군산복합체가 세계의 여론조작에 통신사, 신문, 방송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뒤집어보면 북한의 미사일이 위협적인 것이 아니라 미국 미사일이 위협적인 것이 맞는 말이다. 그래서 초강대국 미국의 미사일 따위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해서 스스로 국방력을 튼튼히 다지는 것은 북한의 경우에 더욱 절실한 문제로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두 번째, 손자병법은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법`을 가르친다.

이 병법은 98년 8월 31일,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1만 2천 킬로미터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능력을 과시한 북한이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시킴으로써 세계적인 정치·군사적인 판도를 바꿔 놓은 병법이었다. 엔엠디가 미국의 21세기 제국경영을 위한 핵심적인 군사전략의 실체라는 것은 손자가 보기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또한 엔엠디가 미 군산복합체를 앞으로 10년 이상 안정적인 돈벌이를 할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미 군산복합체의 일방적인 바램일 뿐이다. `광명성 2호`는 엔엠디와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법을 보여줄 것이다.

세 번째, 손자병법은 `유비무환`을 가르친다.

미국은 엔엠디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먼저 부시정권은 엔엠디 구상에 내재한 기술적 문제와 높은 비용, 그리고 아직 공사를 시작할 준비조차 돼 있지 않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무비유환`인 셈이다. 손자가 보기에도 코웃음이 절로 나온다. 1998년 북한의 금창리 지하의 구멍과 불법 군사시설을 분간하지 못하는 미국의 정보력이었다. 그에 비해 북한은 엔엠디에 대한 대비는 물론 엔엠디를 파탄낼 수 있는 수순까지 가지고 있다. `유비무환`인 셈이다. 이것은 그 동안의 북한과 미 군산복합체의 사활을 건 싸움을 보면 쉽게 내다 볼 수 있다.
 
미국의 대통령과 세계를 움직이는 록펠러-모건 재벌과 제3세계를 이끄는 줏대 있는 북한과의 보이지 않는 전쟁은 오랫동안 펼쳐져 왔다. 그래서 북미의 정치·군사적인 대립은 세계체제를 놓고 북한과 미 군산복합체의 목숨을 건 전쟁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전쟁 때마다 북한의 승리로 이어졌다. 그래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군수전쟁경제체제가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면서 `북한과 평화 공존`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엔엠디가 어떻게 끝날지 미리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 군산복합체가 각종 군비확산 정책으로 오랫동안 세계 여론을 조작하며 북한과 긴장된 분위기를 조장해왔다. 손자병법으로 잘 살펴보자.


북한과 미 군산복합체 관계를 푸는 다섯 고개

첫째 고개, 94년 북한의 핵문제는 `세계최대의 핵무기 장사`인 미 군산복합체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세계의 핵시장을 뒤흔들어 놓을 북한의 핵 산업을 미 군산복합체의 의도대로 손보고자 영변을 공습하려 했다. 하지만 미 군산복합체의 의도는 보기좋게 꺽이고 2003년까지 경수로 발전소 2기를 지어 주기로 한, 굴욕적인 제네바 협정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주9)
 
최근 부시 정권이 제네바 협정을 어떻게라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그들의 다급함을 보여준다.
 
둘째, 북미의 관계개선을 원하지 않는 미 군산복합체는 99년 6월 연평도 해전에서 저강도 분쟁을 일으켰다.(한호석 선생 논문, 전국연합기관지 99년 7월호) 북한과 남한의 젊은 병사들만 미 군산복합체의 희생양이 되었다. 하지만 국지전으로 번지지 않은 것은 북한의 황해도 해변의 대규모 방사포가 불을 뿜어 전선을 확대하게되면 미 군산복합체의 전쟁놀음에 말려들게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더 이상 대응하지 않은 것이었다. 미 군산복합체의 작전 계획은 끝이 났다. 다음은 미 군산복합체가 당할 차례였다.

셋째, 99년 7월 미 군산복합체가 `페리보고서`를 통해 백기를 든 사건이었다. `록히드 마틴`의 대리인인 윌리엄 페리 전 한반도 대북정책조정관조차 99년 9월 12일 베를린에서 진행되던 북-미 고위급회담이 타결되었을 때 "미 정부가 눈에 띄게 더 빠른 속도로 북한과 관계정상화를 추구하도록 권고한다"며 이미 백기를 들었다.
 
이것은 98년 8월 31일, 북한이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시킨 결과였다. 이 결과로 미사일기술 통제체제(MTCR)로 일컬어지는 미국주도의 전지구적인 군사지배권은 큰 구멍이 났다. 미 군산복합체의 씻을 수 없는 패배였다. 오만한 자에게는 패배가 이어지는 법. 

넷째, 북한은 2000년 7월,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새로운 해법으로 인공위성을 미국 또는 제 3국에서의 대체 발사를 제안했다. 이는 록펠러 재벌과 모건 재벌의 핵심이자, 위성 발사기술을 가진 세계 제 1의 군수업체 록히드 마틴과 미국 정권에게는 뜨거운 감자인 셈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미 군산복합체는 궁지에 몰려 있다. 

다섯째, 1992년 1월 22일 북한은 김용순 서기의 미국방문 이후 8년만의 획기적인 결과물로 지난 2000년 10월 12일 북한의 조명록 인민군 차수의 워싱턴 방문 때 북미공동선언을 이끌어 냈다. 이는 북미간에 `공고한 평화체계`를 이루기 전까지 새로운 평화체계를 가져가기로 한 내용이다. 이로써 `반평화적인 전쟁광` 미 군산 복합체의 무기시장이 줄어들어 밥그릇이 작아지게 되었다. 막다른 골목에 와있는 그들은 치욕적인 다섯 고개를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아 한다. 미국의 딴지가 시작되었다. 딴지는 최후의 몸부림이다. 


북한에 대한 미 군산복합체의 딴지 걸기

미국은 흔들리는 지위를 지키고 싶어 미국판 `벼랑끝 전술`을 쓰고 있다. 상황이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미 군산복합체의 상대인 북한이 힘으로 제압할 수 없는 강대한 세력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이 이렇게 바뀐 것은 미 군산복합체에 맞선 북한의 힘에 의해 가능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미 군산복합체는 잇따른 굴욕과 작아지는 밥그릇을 채우고자 북한에 대해 딴지를 걸며 자기 실속만 챙기기 시작했다. 부시 정권교체를 핑계로 클린턴 당시의 대북정책을 뒤집어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고픈 것이다.

첫 번째, 제네바협정의 북미 기본합의문을 지킬 수 없다고 생떼 쓰면서 문제삼았다. 그래서 북한에 경수로 2개를 건설해야 할 2003년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제네바협정을 고치려고 안달이다. 경수로 2기의 주된 제공자의 하나인 미 군산복합체 제너럴 일렉트릭(GE)사는 이미 이 기간 안에 도저히 못 지어준다고 두 손들기 직전이다. 여기에다 어떻게 경수로 1기라도 화력발전소로 바꿔 보려고 안달이다.

두 번째, 미국이 북한과의 재래식 군축문제 운운하는 점이다.(주10) 최근 부시 정권이 엔엠디카드 이외에 북미간의 또 다른 카드로 북미간의 재래식 군축문제를 제기하면서 북한의 휴전선 전진배치무력의 후방배치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똥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꼴이다. 덩달아 4월 17일 미 텍사스에서 열린 `한반도 학술회의`에서 제리 험블 유엔군 부사령관조차 "북한은 휴전선 인근의 군사력이 과거 65%에서 70%로 늘어나는 등 전진배치를 하고 있다."며 대북 억지력을 널리 퍼뜨리고 있다.
 
과연 미국의 주장대로 북한의 휴전선 전진배치무력이 위협적인가. 아니다. 세계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국과 남한의 무장력의 90%가 휴전선에 몰려 있는 반면에   북한은 67%가 전진 배치되어 있다(월간 신동아 96년 6월 참조). 이 같은 사실을 미국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누가 위협적인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진정 미국이 휴전선의 전방배치 병력을 문제삼으려면 그들이 먼저 휴전선에 배치된 90%무력을 스스로 북한 수준으로 떨어뜨려 놓아야 앞뒤가 맞지 않을까.

세 번째, 미 군산복합체는 엔엠디를 핑계로 실속 챙기기에 바쁘다. 한국에 미 구식무기를 팔아먹으려 공갈협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 군산복합체의 첨병 부시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지난 2001년 3월, 자국이 김대중의 통일정책을 지지해 주는 대신에 미국의 100억 불(13조 5000억 원) 어치의 무기를 사들이라고 (카린 리, 죤 페파-미국친선봉사위원회 동아시아담당 공동대표-의 기고문 참고)종용했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무기공장을 완전 가동시켜야 하는 집단인 미 군산복합체의 영업부 책임자다운 모습이다. 그 동안 미 군산복합체의 충실한 고객인 한국 국방부는 1971년부터 99년까지 국방비로 151조 3천 5백 60억 원을 먹어 삼켰다. 또 지난 2000년부터 2004년까지 5년 동안 국방예산 81조5000여 억 원을 편성해놓았다.

이른바 `국방 5개년 중기계획`이었다. 이 중에서 26조 7000여 억 원어치는 5년 간 방위력개선 사업비로 하겠다고 했다. 가히 군사력의 포화 상태가 아닌가. 여기에다 작년 2000년 국방비 중 5조3천437억 원을 무기 사는 데 썼다. 한-미 공동작전 때문에 그 80%인 4조2천749억 원어치를 미국에서 샀다. 이 중 대부분이 록펠러-모건 재벌의 손에 넘어갔다. 민족이 하나되고 우리가 살기 위해 미 군산복합체의 음모를 저지시켜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네 번째, 미국은 북한에 대한 불법적인 정찰로 대표적인 이중성을 보여왔다. 미국은 지금 이 시각에도 한 달에 160회 정도 한반도 상공을 고성능 정찰기로 불법적인 대북 군사 정찰을 하고 있다.(주11)  미국이 북한 상공에서 정보수집활동을 시작한 것은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발생 이튿날인 68년 1월 24일부터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 달 50회에서 최근에는 150~180회 이루어지고 있다.(주12) `왕비늘`(Giant Scale) 계획이라는 명칭 아래 전략정찰기 SR-71을 이용한 정찰비행이었다.
 
눈여겨볼 것은 4월 1일 중국 F-8 전투기와 충돌해 중국의 하이난다오에 불시착한 미국 해군 소속 EP-3E 에어리스(Aries) Ⅱ 정찰기(주13)와 같은 기종인 EP-3전자정찰기가 2001년 1월 22일과 26일, 2월 8일에 북한의 최전선과 서해안 일대 상공을 따라 비행하면서 군사분계선 북한측 지역 중요 대상물에 대한 정찰했다는 것은 총성없는 치열한 정보전을 실감케 한다. 
 
2000년 10월 12일, 북미가 서로 평화롭게 살자고 노력하기로 약속한 북미공동성명발표가 있었던 달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북미관계가 정상화되지 않는 한 중국과 미국의 전투기, 정찰기 충돌사건은 한반도 상공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의 정찰기는 북한,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를 정찰 사정권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양성철 주미대사조차 4월 17일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한반도 학술회의에서 `4월 1일의 미-중의 정찰기 전투기 충돌사고와 비슷한 사고가 한반도에서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고 했다.
 
그 동안 북한보다는 미국이 한 손에는 총을 들고 또 한 손으로 대화를 해왔다. 바로 4월 20일부터 26일까지 `한미연합전시증원 훈련(RSOI)`(주14)이라는 제2의 팀스피리트 대북 전쟁연습이 실전처럼 한반도 전역에서 실시되었다. 이렇듯 기본적으로 대화를 잘 하기 위해서는 총을 놓고서 해야되지만 미국이 북한을 향한 `총`과 `군사 정찰`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칼을 들고 춤을 춘 셈이다. 두 나라가 앞으로 싸우지 않고 이웃집처럼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의 불법적인 대북 정찰과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이다.


미 군산복합체에 대한 북한의 채찍과 당근

딴지에는 북한의 채찍과 당근이 최고다.

미 군산복합체를 상대하며 손자병법을 휘두르는 북한의 채찍과 당근은 여러 가지가 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채찍과 당근이 아니라, 북한이 미국에 대한 채찍과 당근이 될 수 있는 것은 손자병법에서만이 가능하다.
 
북한에 번번이 패배한 미 군산복합체의 마지막 카드는 엔엠디였다. 록히드 마틴의 선전구호는 `북한의 미사일을 우주공간에서 격추한다`였다. 그러나 미 엔엠디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미 엔엠디에 대한 북한의 채찍은 `광명성 2호` 발사 실험이다. `광명성 2호` 발사 실험은 단번에 `준비가 안된` 미 엔엠디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미 군산복합체의 엔엠디 구상은 `북미의 평화공존`이라는 결과 앞에 머지 않아 종이조각으로 끝날 것이다.    
 
그럼 채찍이외에 부시정권에 대한 북한의 당근은 무엇일까. 석유채굴업자인 부시 일가와 칼라일 그룹에게는 석유만 보이는 법. 그 이유는 북한 남포의 30억 배럴의 석유매장량이 미 군산복합체를 북미관계정상화에 앞장서도록 하는 촉매제가 된다. 또 여기에다 석유뿐 아니라 텅스텐도 있다.
 
미 국방부는 걸프전 증후군의 열화우라늄탄 때문에 반대 여론에 놓여 있다. 미군은 91년 걸프전에서 이라크 군에 대해 다량 사용한 뒤 걸프전증후군 논란에 휘말렸고 그 뒤 유고 공습 때 사용한 열화우라늄탄 때문에 발칸증후군 논란에 봉착해 있다. 그래서 이 탄의 탄심을 텅스텐으로 바꾸기로 내부방침을 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텅스텐 최대 산출국은 중국(세계 전체 산출량의 75%)이며 북한도 텅스텐 주요 수출국의 하나다. 미군이 열화우라늄탄을 텅스텐탄으로 교체할 경우 특정 군사부분을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해야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미군은 텅스텐 수입처를 다변화해 부담을 분산하려 하고 있고 새로운 유력 수입처로 북한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는 희소금속인 양질의 텅스텐이 많이 묻혀있다. 록펠러-모건 재벌의 대북 관심사중 주요항목이 늘어났다. 실제로 북미관계 개선 움직임 속에서 가장 구체적인 진전을 보이고 있는 부분도 북한 광산에 대한 합작개발 사업이다. 특히 94년 이후 록펠러는 공화당 국회의원들의 평양방문단을 조직하는 등 평양과의 접촉 폭을 늘리면서 이들 희소금속 개발이권에 눈독을 들여왔다. 이것이 미 군산복합체가 `북한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이유 중에 하나다.
 

북한과 미 군산복합체의 올바른 관계를 위하여

이제 엔엠디로 미국의 추종국가를 추스르기엔 경수로 발전소 2기를 지어 주어야하는 94년 제네바협정의 만기인 2003년이 너무나 빨리 다가오고 있다. 미 군산복합체의 구멍난 핵 주도와 미사일기술 통제체제(MTCR)지배전략은 이제는 우주공간으로 넓힌 인공위성 발사기술마저 북한과 나누지 않으면 안될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북한에 대한 경수로건설약속이행과 함께 석유개발과 텅스텐개발을 위해 또다시 무릎을 꿇어야 하는 미 군산복합체의 치욕은 엔엠디로 겉포장을 더욱 요란하게 할 수밖에 없다. 
 
부시 행정부는 정확하게 군사주의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군사주의자는 강한 자 앞에서 한없이 약하다.  북한이 2001년 8월,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두 번째 발사실험을 한다면 그 날로 엔엠디와 미사일기술 통제체제는 완전히 구멍이 날 수밖에 없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미 군사주의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들의 판단은 오히려 단순하다. 북한과 맞서는 데 무비유환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 2차 발사를 막으려면 미국은 94년 제네바 협정을 제대로 지키겠다고 무릎꿇고 약속해야 한다.
 
아울러 북한의 전진배치된 탱크와 대포를 후방으로 돌리도록 하려면 미국은 한국에 배치된 아파치 공격헬기와 전투용 항공기 철수와 주한미군의 조속한 철수 일정을 밝혀야 한다. 또 미국의 불법적인 대북 정찰과 군사훈련 포기와 북한에 대한 경제적 혜택을 병행해야 하는 것이 대화분위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대북 경제, 군사 제재조처를 완전히 풀고 대규모 식량지원을 계속하는 것 외에 북한을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하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둬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의 대북 지원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한 정치·군사적인 대화로 95년 강석주 북한 외무성 부상이 제안한 바 있는 남북한과 미군 장성으로 구성된 `상호안보위원회`를 구성해 적대관계의 상징이 돼 있는 미군사령부와 군사정전위를 단계적으로 대체하면서 3자가 긴장완화와 군축 조처들을 협상하기 위한 새로운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남한군이 군사주권이 없는 한 참관자격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재래식 병력배치와 핵, 미사일 등과 관련한 북-미 협상이 성공하려면 북-미 관계 정상화가 우선돼야 한다. 이것은 엔엠디의 전면적인 포기이다. 엔엠디 구축으로 추종국가들에 구식무기를 처분하고자 했던 검은 야욕의 포기를 뜻한다. 이어 보잉사, 록히드-마틴, 레이시온, 티알더블유, 휴즈 등 미 군산복합체는 좌절된 엔엠디 탓에 재정적자에 허덕이며 파산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것은 200년 이상 전쟁없이는 버텨오지 못한 미 군수경제의 구조조정의 시작이다. 다만 북미 미사일 타결로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서 미 본토가 안전을 보장받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제 미 군산복합체가 남한은 물론 다른 나라에 대한 정치·군사적인 간섭을 접어야 함은 물론 무기 강매도 줄이지 않을 수 없다.
 

손자병법의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법`
 
이제 미국은 지금까지의 대북정책 재검토 운운하거나 제네바협정 개정, 대북 정찰 강행, 북한 전방배치 병력의 후방배치라는 얼토당토 않는 주장을 스스로 접어야 한다. 그래야만 2001년 8월 북한이 `광명성 2호`를 발사하기 전에 북미 정상회담을 가지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이루어질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과 제2차 남북 최고위급회담은 북미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져 북미 관계정상화의 길을 활짝 열어 놓는다. 북미 관계정상화가 되고 이와 함께 군축 협상이 진전돼 남북한 긴장이 완화되고 남북연방 (United Korea)움직임이 활발해지면 미국은 비핵화 구상을 밝히고 한반도에서 스스로 보따리를 싸야 한다. 한반도는 완전히 중립화하는 데 미국이 더 이상 훼방을 놓아서는 안 된다.
 
남한에 대해 미국과 미군의 정치·군사적인 간섭이 줄어든다는 것은 세계적인 훼방꾼이자 전쟁광인 미 군산복합체가 제일 염려하는 미국의 지위가 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이 뿌려 놓은 결과를 눈앞에서 직접 보고 있는 꼴이다. 이제 추락하는 미국의 지위에 날개를 달자는 아무도 없다. 비로소 한국전쟁과 2차 세계대전, 이라크, 유고전, 중동전, 한반도에서 배를 불린 전쟁광 미 군산복합체와 주한미군이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천추에 씻지 못할 대죄인 양민학살의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또 남한에 대해 미국과 미군의 정치·군사적인 간섭이 줄어든다는 것은 남한 군대의 북한에 대한 `주적’규정의 철폐와 국가보안법의 실질적인‘안녕`을 뜻한다. 또 2차 남북최고위급회담 뒤에 제일 먼저 구조조정 되어야 하는 분야가 한국군과 국방비이다. 남한군의 정치적 병역거부는 인정되고, 징병제가 지원병제로 바꾸기 위해서도 미국이 남한과 맺은 상호안보조약은 전면 개폐되고 남한에 군사주권을 돌려주어야 한다.
 
전쟁의 재앙에서 다음 세대를 구하는 것이 세계 진보적 평화애호 민중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국제 폭격훈련장 매향리를 폐쇄함은 물론, 파주 스토리 사격장 폐쇄 등 이 땅에서 미군 뒤에 숨은 록히드 간판을 떼고 북미 평화협정으로 가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이 손자병법의 핵심인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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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부시정권에 불법 선거자금을 댄 재미교포 사업가 데이비드 장은 파나콤의 부사장이었다. 데이비드 장은 98년9월, 96년에 역시 불법선거자금을 제공한바 있는 토리 첼리 미 민주당 상원의원을 통해 파나콤이 대한생명을 인수하는 데 도와달라고 김대중에게 서한을 전하는 등 로비를 한 바 있다. (동아일보 2001. 4. 23일 2면 참조)

(2) 칼라일 그룹 서울 사무소를 연 99년 5월 28일. 1년 전 98년 5월부터 진행된 한-미 투자협정 정부 비밀 문서에는 이 협상이 한국의 전기, 통신, 광업, 가스, 금융, 철강, 담배, 인삼 등 한국의 기간산업을 망라한 공기업의 사기업화와 외국인 투자자 대한 차별없는 개방 압력의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 있다. 협상이 진행될수록 김대중은 거의 모든 것을 양보한다.(한겨레 2001. 4.23일  2면 참조) 한-미 투자협정이 마무리되던 99년 5월, 정확하게 칼라일 그룹 서울 사무소를 열게 된다.

(3)  2001년 4월 1일 일어난 미-중의 정찰기 전투기 충돌사건에서 중국의 전투기에는 이스라엘제 고성능 미사일이 장착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은 로스차일드 가의 유대인계다.

(4) 부시 전 대통령 재임 당시인 91년부터 93년까지 CIA 국장을 지낸 그는 부시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물. CIA에서 27년 근무하며 공산권 문제 전문가로 꼽힌다.

(5) 미 군산복합체 `록히드 마틴`의 대리인인 그는 미국이 자랑하는 록히드 마틴의 최첨단 F-117A 스텔스 전폭기를 개발한 `스텔스의 아버지’로 불린다. 군수업체인 ‘기술전략연합사(Technical Strategies & Alliance)’회장으로서 거대한 사재를 쌓았다. 이라크 군사분쟁과 아시아의 긴장, 그리고 NATO의 유고 공격으로 엄청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6) 주한미군 철수 이후의 군사력 공백을 메워야한다는 구실을 내세우면서 자기들에게 별로 쓸모가 없게 된 구식 군사장비들을 남(한국)에게 마구 팔아 넘기는 것이다. 구식 군사장비를 강제로 떠넘기려는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미국 연방하원의 민주당 원내총무인 리처드 게파트(Richard A. Gephardt), 연방상원의원들인 크리스토퍼 본드(Christopher S. Bond)와 진 카내헌(Jean Carnahan), 그리고 국방차관 지명자인 폴 월포위츠(Paul D. Wolfowitz)는 에프(F)-15 전투기를 만들고 있는 맥도넬 더글러스(McDonnell Douglas)사의 이익추구를 대변하여 김대중 정부에게 그 전투기 40-50 대를 사들이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 전투기는 30년 전인 1970년대에 나왔던 구식 기종이어서 지금 미국 공군은 도입을 중단하였고 이미 보유하고 있는 것도 2015년까지 모두 폐기처분하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더욱이 그 전투기의 부품을 생산해오던 대부분의 부품업체들이 부품 생산을 중단했고, 그 항공기를 조립하는 공장마저 남(한국)에 판매가 무산되면 즉시 가동을 중단하려 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자기들이 폐기처분한 항공기를 남(한국)에게 팔아먹으려고 압력을 가하고 있고, 무력한 김대중 정부는 그 압력에 굴복하여 2008년까지 그 구식 항공기를 사들일 수밖에 없는 실정에 있다.

(7) 한편 2000년 9월 12일, 미국 2위 은행인 체이스맨해턴이 5위인 JP모건을 3백60억달러에 주식교환방식으로 인수키로 해 미국 3위의 종합금융그룹이 생겨났다. 합병회사의 이름은 `JP모건 체이스`로 잠정 결정됐다.

(8) 한국경제신문 2001년 2월 23일

(9) 칼라일 그룹이 94년 북한 핵 협상당시 어떤 움직임을 취했는가를 보면 흥미롭다. 이 그룹은 노드롭(Northrop)사가 미사일 분야에서 큰 이권을 차지하도록 도와주었고, 노드롭사의 부사장인 토고 웨스트(Togo West)가 1993년 9월 클린턴 정권에서 육군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칼라일 그룹이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라는 인위적인 긴장을 이용해 이권을 얻으려 한 것이 분명하다. 칼라일 그룹이 1994년 한반도에서의 전쟁에 대비하여 일본 군수재벌(미쓰이 물산)과 제휴하고 군수 산업계(노드롭)와의 연대를 서둘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걸프전의 배후조종자인 제임스 베이커를 영입하고 헤지펀드(조지 소로스)를 끌어들인 점이 눈에 띤다. 이는 한반도에서 제2의 걸프전을 일으키려했던 군·산·정 복합체의 음모를 독파한 소행으로 보인다. 토고 웨스트 미 육군장관이 칼라일-그루먼 커넥션의 이익을 위해 ‘북한 영변 지역의 융단폭격을 통한 제2의 한국전쟁 특수’를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른다.‘록펠러 재벌-랜드 코포레이션-칼루치-칼라일 그룹`으로 이어지는 연계망이 1994년의 북한 핵개발 소동·한반도 전쟁 위기 때 움직였듯이, 위의 커넥션 또는 유사한 커넥션들이‘NMD를 통한 한반도 분쟁 격화’작업에 뛰어들 개연성이 있다.

(10) 현 부시 정권의 국무성 장관 파월은 록펠러계로 걸프전 당시 합참의장으로 군·산 복합체의 이익을 직접 반영하는 사령탑을 담당했다. 아미티지 국무성 부장관은‘아미티지 보고서’를 통해‘북한 미사일 개발 저지·북한의 재래식 무기 감축’카드를 제시했다. 그는 한국에 전투기를 판 제네랄 다이내믹(GD) 전자시스템사의 이사로 일한 적이 있다. 아미티지가 `북한의 재래식 무기 감축’카드를 제시했다지만 이 또한 군·산 복합체의 의 지령이다.

(11) 인터넷 한겨레 2001년 3월 일자는 연합뉴스를 인용보도하면서 미국이 2월중 160여 차례 대북 정찰했다고 보도한다.
"북한 평양방송은 미군이 2월중에 각종 전략 및 전술정찰기를 동원해 160여 차례에 걸쳐 북한 지역을 공중정찰했다고 2일 주장했다. 이 방송은 이날 군사소식통을 인용, "미제가 1월에 이어 2월에도 각이한 전략 및 전술정찰기들을 동원해 우리 공화국(북한)에 대한 주야 공중 정탐행위를 계속 감행했다"며 "2월 한달 동안 전략정찰기 U-2, RC-135에 의한 정탐 횟수는 40여 차례나 된다"고 밝혔다. 방송은 또 지난달 8일부터 26일까지 남한지역 상공에 출동한 E8-C 지휘기가 군사분계선 일대 상공에서 "전쟁연습에 동원된 전투기들을 지휘하는 동시에 우리(북한지역)에 대한 공중정탐 행위를 했다"고 전했다. 이어 "2001년  2월 6일과 26일에는 EH-60 전자전 직승기(헬리콥터)가, 2월 8일에는 EP-3전자정찰기가 최전연(최전선)과 서해안 일대 상공을 따라 비행하면서 군사분계선 우리(북한)측 지역 중요 대상물에 대한 정탐에 광분했다"고 말했다. 방송은 이와 함께 2월 들어 RC-12, RC-7B 전술정찰기들에 의한 정탐횟수는 110여회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12) 연합뉴스 99년 12월 26일자 심규석기자.  미국이 정찰기를 통해 북한 상공에서 정보수집활동을 시작한 것은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발생 이튿날인 68년 1월 24일부터였으며, 그 이후 정찰활동이 계속돼왔다. 미 국무부 동아시아과에서 지난 72년 작성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자세」라는 제목의 대(對) 북한 현안 보고서 초안에 따르면, 미국 정찰기의 북한영토 상공비행은 68년 1월 24일 `검은 방패`(Black Shield) 작전의 일환으로 시작됐으며 그 이후 `왕비늘`(Giant Scale) 계획이라는 명칭 아래 전략정찰기 SR-71을 이용한 정찰비행이 실시됐다. 북한은 지난 71년 3월 군사정전위원회에서 공개성명을 발표해 북한상공에서 16차례의 정찰비행이 실시됐다며 미국의 공중정찰을 처음으로 비난했다고 이 보고서는 전했다. 정찰 횟수가 가장 많았던 지난 99년 3월은 북.미 양측이 평안북도 대관군 금창리 지하시설의 현지방문 조사 문제를 논의 끝에 타결지었던 시기여서 눈길을 끈다.

(13) 이 기종은 거대한 정찰기의 `공중 진공청소기`로 불린다. 위성교신 기기와 감청장비 등을 탑재한 채 한번에 12시간, 5천500㎞ 이상을 비행하면서 가상 적군의 군사활동은 물론 공중에 떠다니는 무선 정보를 모조리 빨아들일 수 있는 고도의 전자전 수행능력을 지니고 있다. 

(14) 연합뉴스 2001년 4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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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석 약력>

지리산 옆 함양에서 태어남. 수원에 삼
한국외국어 대학교 러시아어과 졸
92년 최초로 한국군을 전면 해부한 `청년과 군대`를 동료들과 같이 씀
92년 11월 이 책이 일본어판으로 출판
92년 반핵평화운동연합 정책위원
93년 남매간첩조작사건으로 4년 복역, 97년 출소
98년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보안관찰법` 담당 실무
99년 2월 사면
99년 사회정의연구소 연구원, 보안관찰법철폐모임 대표간사
2000년 1월 보안관찰처분 취소 행정소송에서 대법원 승소 판결
 
현재 회사원생활을 하며 군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정책위원, `한국 민권연구소` 연구위원, 인터넷 대학뉴스 `유뉴스` 칼럼니스트로 군사문제, 군 인권 관련 글을 쓰고 강연을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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