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간 합의에 따라 9월 2일 북으로 송환될 비전향 장기수들의 하루하루는 매우 분주하다.

짧게는 15년 길게는 43년까지 복역한 후 출소한 이들은 남한에 가족이 있어 개별적으로 거주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울 봉천동, 갈현동과 대전의 `만남의 집` 과천 `한백의 집` 광주 `통일의 집`등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북송을 사흘 앞둔 30일 오후 봉천동 만남의 집에서는 장기수들이 짐을 싸느라 어수선했다.
자신이 입었던 옷과 소지품 등이 대부분인 짐꾸러미는 1인당 3∼5개 정도로 매우 간단했다. 그 짐 속에는 출소하고 만난 사람들과의 편지와 사진 등이 제일 소중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류운형(77)씨는 흐트러져 있던 사진들을 앨범에 끼워 놓으며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을 위해 애썼어. 참 고마운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의 마음을 꼭 담아 북에 돌아가고 싶어"라고 말하며 민가협 가족들과 찍은 사진을 쓰다듬었다.

거동이 불편한 한백렬(80)씨도 손수 사진을 정리하며 "남한에서의 내 삶이야" 라고 빙그레 웃으며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이미 짐을 다 챙기고 외출 준비를 하던 신광수(72)씨도 감옥에서의 생활을 회고했다. 그는 "물리적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의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의리를 지킨 사실만으로 주변에서 높게 평가해 주어서 부끄럽고 고맙다. 너무나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다"라고 마음을 전했다.

장기수들의 짐 속에는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지난 8월 14일 `장기수 환송대회`에서 민가협과 송환대책위로부터 받은 남한의 흙 항아리였다. 단일기에 싸여 있는 흙을 만지작거리며 홍경선(76)씨는 "이 흙을 지금은 가져가지만 곧 다시 밟을 수 있을 거다"라고 말했다.

김선명(75)씨 등은 그 동안 친분을 나눴던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고 집에는 없었다.

갈현동 만남의 집에서도 역시 남쪽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박완규(71)씨는 여동생에게 "몸 건강하게 잘 지내라. 그리고 꼭 다시 만나자"라는 편지를 쓰고 그 속에 자신의 사진을 동봉했다. 또한 박씨는 남쪽 사회에 대해 "민족적 형식에 내용은 사회주의적 사회"였으면 하는 바램을 말했다.


우용각(71)씨는 "한국 사회에서는 통일이 제일 중요하다. 자주적 노력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해 남북이 많이 노력하자"고 말했다.

한편 이 곳에서는 전향서를 썼던 장기수들도 만날 수 있었다.
강담씨는 "내 비록 고문과 옥살이에 못 이겨 전향서를 썼지만 북으로 꼭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며 북송되는 장기수를 한번씩 꼭 안았다.

김익진(70)씨는 북에 살고 있는 가족을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비전향 장기수들은 1일 평창동 북악파크넬에 모여 방북절차를 밟은 다음 2일 북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아직 교통편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으나 판문점을 통한 육로를 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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