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3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 통화를 갖고 과거 일본군의 군대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해 사죄한 고노(河野)담화 계승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종군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는 없다"는 억지 주장을 펼친데 대해 한국, 일본은 물론 미국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는 등 생각보다 강한 비난여론에 한발 물러난 모양새다.

물론 아베 총리와 부시 대통령과의 구체적인 대화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취지의 발언을 했는지는 쉽게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 회담이란 공식적인 자리에서 고노담화 계승이란 입장을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하다.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가 없다는 그의 종전 주장은 사실상 고노담화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강제성과 관련, 넓은 의미의 강제성은 인정하지만 좁은 의미의 강제성, 즉 군인이나 관청이 직접 위안부를 강제로 끌고갔다는 자료는 없다는 억지 논리를 펼쳤다. 이는 곧 아베 총리가 고노 담화를 부정하는 것으로 국내외에서 해석됐고, 바로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아베 총리는 외국의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위안부 문제를 건드린 것은 이달 치러지는 지방선거와 7월의 참의원 선거를 겨냥해 보수층 결집을 노린 측면이 있었지만 최근 각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는 오히려 국내의 지지율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 하원에 제출돼 있는 위안부 비난 결의안 저지 로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일본 언론도 이 결의안의 하원 통과를 기정사실화하고 통과 시기만이 문제라고 보는 상황이다.

이에 아베 총리는 지난 26일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총리로서 여기에서 (답변을 통해) 사죄한다"고 한발 물러섰했다.

물론 당시에도 강제동원을 인정한 것은 아니며 군대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에 대한 사죄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종전보다는 다소 진전됐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미국 국무부와 언론은 "범죄의 중대성을 인정하는 책임있는 태도로 대처해야 한다"며 아베 총리의 자세 전환을 촉구했다.

물론 아베 총리는 이번 통화에서도 강제성을 인정하지는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반발이 거세지자 아베 총리측은 과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사과하되 강제성 부분은 언급을 피하는 전략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또 이번 고노담화 인정 발언도 이달 26일 예정된 자신의 방미를 앞두고 분위기 조성용의 성격도 있는 만큼 아베 총리의 발언의 진정성도 의심의 여지가 있다. 역사 문제 등 민감한 쟁점에 대해서는 주변 상황에 따라 말을 바꿔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베 총리가 부시 대통령에게 고노담화 계승 입장을 밝힌 것은 발언의 비중이 그동안의 것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평가다. 전화통화 형식이지만 미국 정상과의 대화에서 역사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만큼 쉽게 번복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번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한 한국, 중국, 미국 등 국제사회의 반응이다. 미국 국무부나 언론이 여전히 아베 총리의 '해명'이 미흡하다고 보고 강도 높은 사과를 요구할 경우 아베 총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강제성 여부에 대한 언급 뿐이다.

따라서 이 경우 아베 총리는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국내 보수파와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 사이에서 고민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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