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개성공단 문제를 해결한 방식은 미국 입장에서 볼 때 현 상태의 개성공단 사업에 대해 그동안 제기해온 문제 의식은 유지하면서 동시에 미국이 반(反)통일 세력이 아니라 남북통일을 지지, 지원한다는 입장을 한국민에게 천명한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또한 2.13 핵 합의에서 대북 상응조치가 북한의 행동에 따른 '보너스' 지급 방식인 것처럼 북한에 대해서도 북한의 행동에 따라 마약이나 위조상품으로 버는 수입보다 훨씬 더 큰 수입이 생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한다는 전략도 엿보인다.

한미 FTA에서 개성공단 쟁점의 이러한 절충식 해결 방식은 미국이 개성공단 문제를 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정치적 관점에서 접근했음을 보여준다.

작년 2월 한미 양국이 FTA 협상 개시를 선언한 당시 부터 미국의 협상 채널에선 개성공단은 한미 FTA의 대상이 아니라는 부정적 입장으로 일관했지만 다른 미 행정부와 의회, 전문가 사회에선 이번에 합의된 '오픈(open)' 조항식 해법이 제기돼 왔고 또 FTA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 길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당시 미 의회조사국(CRS)의 마크 매년 연구원은 '한미경제관계' 보고서에서 "정말 미국은 개성공단이 성공해 입주한 한국 기업들이 수익을 내고 북한이 개성공단으로부터 배우기를 원한다..개성공단에 관한 협상 자체가 이에 관한 미국의 관점을 설명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한 주한 미국 대사관 관계자의 말을 개성공단 문제에 관해 협상 여지가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했었다.

FTA 협상에 깊숙이 관여한 한 한국의 통상외교 관계자도 개성공단 문제가 핵심 쟁점의 하나가 되겠지만 "결국은 해결될 것"이라고 장담하면서 특히 북한 핵 문제 상황과 개성공단 문제가 맞물릴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2.13 합의'가 있었고 또 2.13 합의를 할 만큼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접근 방식의 변화가 선행됐기에 이러한 방식의 개성공단 문제의 해결이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정부 안팎에선 한국 내 여론조사에서 미국이 반통일 세력으로 인식되는 것을 억울해 하는 반응이 많았고 그에 따라 전문가 집단에선 개성공단 문제에 대해 이러한 인식을 불식시키는 방향의 제언들을 해왔다.

지난해 6월 국제경제연구소(IIE)가 한미 FTA 협상에 관한 보고서에서 개성공단 제품을 당장 FTA에 포함시킬 수는 없다면서도 "현재는 이 사업의 경제적 함의가 미미할지라도, 북한에 대한 건설적인 개입 정책"이라는 한국의 관점에 대한 이해를 표시하면서 "(미국이) 한국의 통일 비전을 지원하는 게 맞다"며 오픈 조항식 해법을 제시한 게 대표적인 경우다.

지난해 12월엔 IIE의 몽고메리 그레이엄 선임연구원이 주미 한국 홍보원 강연에서 역시 오픈 조항식 해법을 주장하면서 "부시 행정부 내에서도 (처음엔) 개성공단의 FTA 포함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이후 이런 목소리는 줄어들고 강경 목소리가 커졌다"고 미국의 가변적인 입장을 전했었다.

그는 중국과 베트남 등의 경제특구가 이들 나라의 경제개혁과 사회개방을 가져온 파급효과를 설명하면서 개성공단이 성공하면 북한이 최소한 "덜 무책임한" 나라로 바뀔 가능성이 있고 "북한의 경제개혁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할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이와 관련, 지난해 북한의 핵실험 후 미 행정부 안팎에서 한국의 개성공단 사업과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회의와 반대론이 무성할 때 특히 금강산 사업을 공개 비판했던 한 국무부 고위관계자는 방한 기회에 한국 정부 관계자에게 "개성공단을 살리기 위해 금강산 사업을 비판했다"고 설명했었다고 이 한국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미 행정부 내에서도 개성공단 사업에 대해선 북한을 개혁.개방시키는 전략적 가치가 있다고 기본적으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견해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협상 채널에서는 카란 바티아 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지난해 9월 조선일보와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공동주최 세미나에서 개성공단을 FTA에 포함시킬 수 없다면서도 이집트 내 이스라엘 공단을 이스라엘과 FTA에 포함시킨 것에 대해선 "그 경우는 (이집트의) 정치개혁에 대한 분명한 약속과 개혁방향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고 말해 개성공단의 정치학을 처음으로 시사했었다.

'2.13 합의' 뒤인 2월22일 윌리엄 페리 전(前) 국방장관이 스티븐 보스워스 전 주한 대사 등과 함께 개성공단을 방문한 뒤 "개성공단 프로젝트는 한반도의 미래"라고 말한 것은, 이 방문단이 의회 장악에 성공한 민주당계라는 점에서 개성공단 문제가 절충식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전망을 낳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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