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베이징에서는 6자회담 3일째 일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회담을 상징하는 개념어를 꼽으라면 ‘되돌릴 수 없는(irreversible)'이 될 듯 합니다. 이 용어는 원래 ‘자연상태에서 변화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는 열역학 제2법칙과 관련 있습니다.

되돌리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에너지 투입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용어를 사회현상에 가져오면, 문자 그대로 되돌리는 과정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되돌리는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서 ‘되돌릴 실익이 없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베이징에서 북.미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되돌릴 수 없는' 변화입니다. 단, 북은 미국에게 정책에서의 변화를 바란다면, 미국은 북에게 핵시설에서의 물리적 변화를 바란다는 점이 차이점입니다.

북한은 현재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단계 조치에서 영변 핵시설 등의 ‘폐쇄’에 동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재일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5일과 9일 밝힌 ‘폐기를 전제로 한 가동중지’가 그 증거입니다.

제네바 기본합의의 초기조치인 ‘동결(가동중지)’과 이번에 거론되는 ‘폐쇄’는 비유하자면, 99℃의 물과 100℃의 수증기 만큼의 차이입니다. ‘동결’이 가동으로 향하는 조치라면 ‘폐쇄’는 폐기로 향하는 조치입니다. 양적 차이는 1이지만 그보다 현격한 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문제는 미국 등 5개국이 북에 줘야 하는 ‘상응조치’입니다. 북한의 셈법에 따르면, ‘상응조치’ = ‘폐기 전제 상응조치’ + ‘가동중지 상응조치’일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가동중지’에 대한 보상으로서 대체 에너지 지원이 큰 문제입니다. 제네바 기본합의의 전례가 있지만 분담을 둘러싼 5개국 간 복잡한 협의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당장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납득할 수 있는 문안으로 구체화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폐기전제’에 따른 ‘상응조치’도 관심사입니다. 북한은 ‘되돌릴 수 없는 적대시정책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미국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공을 넘겼습니다.

6자회담의 임무가 9.19공동성명의 이행이라는 점, 현존 핵프로그램과 핵무기를 구분해 단계별로 접근하자는 북한의 입장을 고려하면, 5일자 <조선신보>가 지적했듯 ‘현존 핵프로그램 폐기 전제=경수로 전제’라는 등식이 나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조선신보> 기사에서 명시적으로 반복되는 '관여정책'이라는 표현과 관련됩니다. '관여정책'은 '봉쇄정책'의 반대편에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2단계회의에도 나왔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합니다. 

최근 상황변화와 관련된 사안들이 거론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10.9 핵실험’에 대한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 해제가 그 하나이고, 베를린회동 등을 통해 북에 전달된 것으로 보이는 '남.북.미 정상의 한국전 종전선언'이라는 이벤트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를 오가는 6자회담 당사국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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