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한 해를 마감하면서 통일뉴스가 ‘2006년 10대 한반도뉴스’를 선정.발표합니다. 이제까지 통일뉴스는 ‘10대 통일뉴스’와 ‘5대 반통일뉴스’를 선정해 왔으나 올해는 사건 중심으로 해서 ‘한반도 뉴스’로 합니다. / 편집자 주

1. 북한 핵실험(10.9) 및 미사일 발사(7.5)

북한은 10월9일 ‘자위적 국방력 강화훈련’이라면서 핵실험을 실시해 국제사회를 경악시켰다. 이미 7월5일 ‘대포동 2호’를 포함해 미사일 7발을 발사한 터라 북한의 다단계 대미 압박은 핵실험으로 극점에 달했다. 미국과 유엔은 대북 제재결의로 맞섰으나 북한은 이를 즉각 거부했다. 핵실험 후 북한은 평양시내에 ‘핵보유국이 된 5천년 민족사의 역사적 사변을 길이 빛내이자’는 구호를 나붙여 ‘강성대국의 휘황한 여명’을 알렸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북미관계는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2. 제5차 2단계 6자회담 개최(베이징, 12.18-22)

13개월 만에 재개된 6자회담은 10.9 북핵실험으로 인해 ‘달라진 환경’에서 시작되었다. 북한은 ‘달라진 환경’을 적극 활용하려 했고 미국은 기존 상황을 고수하려고 했다. 북미는 처음부터 ‘6자회담과 BDA 연계’ 대 ‘6자회담과 BDA 분리’로 맞섰다. 시간이 흐를수록 6자회담은 ‘북한 핵회담’이 아니라 ‘미국 BDA회담’으로 전환되었다. 이번 6자회담을 통해 북한과 미국과의 역학관계에서 사상 최초로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핵을 보유한 미국이 역시 핵을 보유한 북한을 예전처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었다.

3. 한미FTA 협상 개시(워싱턴, 2.2)

한국과 미국은 워싱턴에서 2월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정부는 미국과의 FTA를 통해 “세계 최고와 당당히 겨루어 일류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시도”라고 밝혔고, 반대론자들은 한미FTA가 단순한 경제협정이라기보다는 중국 겨냥, 전략적 유연성과 PSI 등 정치.군사 영역까지를 포괄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지금까지 모두 다섯 차례 본협상이 진행됐는데 미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승리와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의 완강한 저항으로 그 전도가 불투명해졌다.

4. 6.15민족통일대축전(광주, 6.14-17)

2006년 6.15민족통일대축전이 ‘광주’에서 열리자 장소가 장소인 만큼 남북 대표단은 모두가 5.18광주정신을 통일과 연결시키며 ‘광주’의 의의를 찾았다. 특히 본대회 대표연설에서는 남측 백낙청 상임대표가 6.15선언과 통일방안을, 북측 안경호 위원장이 현정세와 남북관계의 수준을 심도 깊게 밝혀 주목을 끌었다. 대회는 광주 월드컵경기장에서 개막식, 광주 조선대와 목포 유달경기장에서의 문화공연을 통해 제2 6.15시대의 통일열기를 남도 끝자락까지 울려 퍼지게 했다. 이번에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남북의 당국대표단도 함께 참여해 축전의 의미를 더욱 빛냈다.

5. 김정일 국방위원장 중국 방문 및 북중정상회담(베이징, 1.10-18)

2006년 새해 벽두부터 세계 여론의 주목을 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은 처음에는 방문 목적은커녕 행적조차 파악하지 못해 숱한 혼선을 빚었다. 결국 막판에 가서 김 위원장의 행적이 남순(南巡) 방문과 후진타오 주석과의 정상회담임이 밝혀졌다. 특히 정상회담에서 쌍방은 당시 BDA문제로 표류하던 6자회담과 관련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과 6자회담 과정을 계속 추진할 것에 동의했다’고 발표해 북중 우호친선관계를 한층 뽐냈다.

6.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 결렬(부산, 7.11-13)

북한의 7.5 미사일 발사 직후 열린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측은 미사일 발사 유감표시와 6자회담 복귀를 촉구했고 북측은 참관지 제한 철폐와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해 회담은 아무런 접점을 찾지 못한 채 결렬됐다. 이 파장은 남측이 인도적 문제인 쌀과 비료의 대북 지원을 유보하자 북측도 인도적 문제인 이산가족 상봉 중단과 금강산 면회소 건설 중단으로까지 퍼졌다. 6자회담 표류로 북미관계가 가뜩이나 경색된 판에 남북관계도 단절되는 순간이었다.

7. 한미 ‘전략적 유연성’ 합의(워싱턴, 1.19)

반기문 외교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2006년 1월19일 장관급 전략대화를 갖고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력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존중키로 합의했다”는 요지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주한미군이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돼 자칫 한국을 역내의 주요 분쟁에 연루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미국은 곧바로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작업을 마무리해 이 우려를 현실화시켰다.

8. 김영남 모자 상봉(금강산, 6.28)

고교 1학년 때인 1978년 ‘납북’됐던 김영남씨가 28년 만에 어머니, 누나와 금강산에서 상봉했다. 이 상봉은 이른바 ‘김영남-메구미 문제’와 관련 두 가지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남북간 ‘납북자 문제’와 북일간 ‘납치 문제’였다. 김씨는 자신의 입북을 ‘돌발입북’이라고 밝혔고 일본인 처 ‘메구미가 자살했다’고 말했다. 김영남 모자(母子) 상봉을 계기로 북한은 이른바 ‘전쟁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상봉 문제 해결에 전향적으로 나섰고 ‘납치 문제’ 해결에 정면돌파를 택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9. 남북 언론인토론회 개최(금강산, 11.29)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와 북측위원회 언론분과위원회가 11월29일 금강산에서 ‘6.15공동선언 실천과 남북 언론인들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토론회 후 남북 언론인들은 공동성명에서 “6.15시대 대변자로서 남북 언론인들은 민족문제에 대한 간섭과 전쟁위협을 단호히 반대 배격한다”고 천명했다. 이 토론회는 1945년 10월 전조선기자대회 이후 열린 첫 토론회이자 10.9 북핵실험 이후 남북 민간차원의 교류마저 거의 끊어진 상태에서 대규모로 열려 그나마 남북관계의 숨통을 터주는데 일조했다.

10. 북한 ‘큰물 피해’로 아리랑 공연 및 8.15축전 취소

북한지역에 7월14-16일에 걸쳐 내린 폭우로 ‘549명의 사망자와 295명의 행방불명자, 3,043명의 부상자’라는 피해를 입었다. 이 큰물 피해로 인해 북측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공연과 8.15민족공동행사 취소를 남측에 공식 통보했다. 남측 당국이 미사일 발사와 쌀.비료 등 인도적 지원을 연계하면서 남북 당국간 대화가 사실상 끊긴데 이어 남북을 덮친 수마로 인해 그나마 남아있던 민간교류 행사마저 끊어져 버렸다. ‘아리랑’은 내년 4월경 공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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