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환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정책위원)

북한의 10.9 핵실험 이후 변화된 정세와 6자회담 재개를 앞두고 북한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점에 천착해 통일뉴스는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와 공동기획해 <북한의 핵무장과 새로운 세계>를 연재합니다. 연재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 편집자 주

① 북한의 핵무장과 국가전망(한국민권연구소 전영호 상임연구위원)
② 핵보유국의 국제권력 독점 : 핵독점과 권력정치(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최한욱 정책위원장)
③ 신흥핵강국의 등장과 세계 질서의 지각변동(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최한욱 정책위원장)
④ 교전중인 핵보유국, 북한과 미국 : 6자 회담의 새로운 전망(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문경환 정책위원)
⑤ 핵독점의 붕괴와 미국의 세계 패권의 몰락(한국민권연구소 전영호 상임연구위원)


지난 11월28, 29일 중국 베이징에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북미 대화가 진행되면서 6자회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여기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알려진 바는 없지만 주로 북한이 미국의 여러 제안을 들어보는 형태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2003년부터 시작된 6자회담의 양상은 북한이 여러 제안을 하고 미국이 거부하는 식이었으나 이번 북미 대화는 미국이 적극적으로 입장을 설명하고 북한은 이를 경청하는 분위기여서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미국의 대북 제안은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입을 통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에게 전달됐지만 사실상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향해 직접 이야기한 것이나 다름없어 각별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마디로 ‘부시의 패키지’가 북한에 전달된 것이다. 이제 전 세계 여론은 북한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에 쏠려있다.

1. 안달이 난 부시

지난 11월1일, 북미 간 접촉을 통해 6자회담 재개가 합의되자 미국과 한국의 언론들은 대북제재와 국제적 고립이 효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이런 분석이 사실이라면 이번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북미 간 접촉에서 미국은 매우 고압적인 자세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런 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6자회담 재개도 미국이 체면을 구겨가며 요구하였고 6자회담에서 다룰 내용도 북한은 가만히 있는데 미국만 이것저것 큼직한 제안들을 하고 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던 발언들이 부시 행정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이 말할 정도다. 미국의 자세가 변한 것일까?

미국의 태도가 구체적으로 달라진 징후는 11월18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부시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언급하면서부터 나타났다. 종전선언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고 북미간 관계정상화가 이뤄지는 출발이 된다는 점에서 큰 논란을 불러왔다. 대부분의 언론은 미국의 의도를 분석하지 못했지만 사실 단순한 논리에서 출발한다. ‘핵보유국 사이엔 적대관계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부시 발언 전인 10월 31일,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 소장, 즈그프리드 헤커 전 미국립핵연구소 소장, 로버트 칼린 스탠퍼드대 교수 등 북핵문제의 최고 권위자들이 북한을 방문했다. 이들은 방북 후 보고서에서 북한이 제재의 영향을 받기는커녕 어느 때보다 좋은 경제 상황이며, 소형핵무기를 이미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인정하였다.

그 동안엔 미국이 핵으로 북한을 위협하고 북한이 이에 맞서 방어태세를 갖추는 형국이었다. 북한은 핵공격에 대비하여 군수산업 설비를 자강도, 양강도의 깊은 산속 지하에 건설하였고 평양의 지하철을 지하 100m 깊이로 만들었다. 또한 국토 전체에 빈틈없는 방공망을 구축하였다. 그리하여 핵전쟁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총으로 위협하는 강도에 맞서 방탄복을 입은 것이다.

이제는 총까지 만들었다. 서로 총을 겨눈 상태에서 방탄복까지 입은 북한은 본토 핵공격에 대한 아무런 대비가 없는 미국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다. 동등한 핵보유국(동시에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국)이 아니라 공격과 방어를 완벽히 갖춘 조건으로 북한은 미국과 맞서게 되었다. 미국 입장에선 북한과 뭔가 대화를 하지 않으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태도가 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달라진 미국의 태도를 살펴보면 그리 기대할 게 없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건 선핵폐기 요구가 계속된다는 점이다. 즉, 과거에 비해 ‘당근’은 커지고 다양해지고 많아졌지만 결국 ‘선핵폐기’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대북정책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고 6자회담의 전망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북한 입장에선 미국의 다양한 안전보장 조치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가 훨씬 믿음직스러울 것이다. 미국이 먼저 안전보장을 해줘도 핵무기를 버리지 않는 게 정상인데, 핵무기를 먼저 버려야 안전보장을 해준다면 어느 바보가 핵무기를 버리겠는가.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22일 베이징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핵을 어떻게 포기합니까. 포기하려고 핵을 만들어 놓았나요’라고 말했다. 또, 김계관 부상도 30일 한국 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 본부장과 회동한 뒤 기자들에게 ‘9.19 공동성명에 여러 공약들이 있는데 현 단계에서 일방적인 (핵)포기는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즉, 미국의 선핵폐기 요구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 11월 18일 : 부시, 종전선언 발언
▶ 11월 28일 : 북미 대화 시작
▶ 11월 29일 : 부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종전 선언 문서에 공동 서명할 용의 있다
▶ 12월 2일 : 2008년까지 중순까지 북한의 핵폐기와 북·미간 수교

언론 보도를 통해 다음과 같이 유추해 볼 수 있다. 미국이 핵폐기에 대한 대가로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고 제의하자 북한은 미국의 약속을 어떻게 믿는가 반문한다. 이에 미국이 부시 대통령이 직접 서명하겠다고 하자 북한은 구체적 시한까지 밝히라고 요구했을 것이다. 결국 미국은 2008년까지 마무리짓겠다고 답변한다. 이는 1994년 제네바합의 당시 경수로 건설을 2003년까지 완료한다는 시한 설정과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즉, 미국은 1994년의 굴욕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건 ‘핵폐기’의 정확한 뜻이 뭐냐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미국이 ‘선핵폐기’를 요구했다고 하지만 구체적 내용에 들어가면 ‘핵무기 폐기’는 나오지 않는다. 12월 2일자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는 미국이 ‘▲영변의 흑연감속로 등 핵관련 시설의 가동중단,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의 핵실험장 폐쇄,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요원 수용, ▲핵관련 모든 시설과 계획의 신고, ▲핵포기를 확약한 2005년 9월 6자회담 공동성명 이행’을 요구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핵무기 폐기’라는 말이 없다. 다만 마지막 항목에서 ‘핵포기’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를 ‘핵무기 폐기’와 동일하게 해석할지는 미지수다.

9.19 공동성명에도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계획들을 포기’한다고 나온다. 왜 핵무기를 ‘폐기’한다고 하지 않고 ‘포기(abandon)’한다고 했을까? 이는 상황에 따라서 해석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은 북한에 ‘핵무기 폐기’를 정확히 요구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지 않을 것임을 미국도 알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제안에 대해 북한은 어떤 답변을 했을까? 12월1일 미 국무부가 공개한 힐 차관보의 일본내 발언록에 따르면 ‘유감스럽게도, 김 부상은 새로운 것을 내놓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1월31일자 한겨레 기사에는 김 부상이 미국 측의 제안에 대한 회답을 언제 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미 답변했어요’라고 말한 것으로 되어있다. 대부분의 보도와 달리 북한은 이미 북미 양자접촉에서 자신들의 답을 내놓았으며 오히려 미국이 반응을 보여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그럼 북한의 답변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핵보유국임을 인정하라’는 게 아니었을까?

2. ‘핵을 어떻게 포기합니까’와 ‘비핵화 유훈’은 모순(?)

북한은 6자회담의 전 과정에서 시종일관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핵보유국이 된 지금 북한은 전 세계 비핵화로 목표를 확대했다. 이는 핵실험 계획을 발표한 10월3일 외무성 성명에서 드러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세계적인 핵군축과 종국적인 핵무기 철폐를 추동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할 것이다.’ (10월 3일 외무성 성명)

설사 기존의 6자회담이 타결되어 북미간 평화협정을 맺는다 하여도 지금껏 끊임없이 약속을 어겨온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때문에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였고 미국의 핵폐기를 요구한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종국적인 핵무기 철폐를 추동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수립했을까. 먼저 지금까지 미국에 대립한 핵보유국인 소련과 중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전 세계 패권을 쥐기 위하여 미국은 일본에 두 발의 핵폭탄을 떨어뜨린다. 당시 전 세계를 핵무기의 공포에 몰아넣은 미국에 대항할 나라는 없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9년 소련은 핵실험에 성공하였다. 이때부터 두 나라는 핵무기 경쟁을 시작하여 각각 수천 발의 핵탄두를 제작하였다.

1960년대 말, 두 나라의 핵전력이 동등해지면서 두 나라는 핵군비 경쟁에서 오는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섰다. 그래서 1969년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 핵무기 동결)을 시작하였고 1982년 6월에는 제네바에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 핵무기 감축)을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91년 7월 미국과 소련은 장거리 핵무기를 7년에 걸쳐 각각 30%와 38%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1993년 1월에는 2단계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 II)이 타결, 2003년까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500기 정도로 줄이고, 잠수함 발사 미사일도 1750기 수준으로 제한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2000년 4월 미국과 러시아는 3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III)을 시작했다.

이처럼 미국과 소련은 핵전쟁이 일어나면 맞게 될 파국을 미리 막기 위해 핵군축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핵무기 동결 협상인 전략무기제한협정부터 시작하여 40여 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미국과 러시아에는 수천, 수만 발의 핵무기가 존재한다. 그나마 2002년 6월 탄도요격미사일(ABM) 협정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탈퇴하면서 양국은 다탄두 핵미사일 등 첨단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온갖 종류의 핵무기가 넘쳐나는 실정이다.

소련의 예에서 보듯 미국은 핵무기를 가진 나라와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양보하는 협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핵군축의 길은 그리 쉽지 않다. 이는 북미간 핵대결이 양국의 핵군축으로 전환된다 하더라도 그 체제는 꽤 오래 지속되리라는 점을 암시한다.

중국의 경우는 어떨까? 1955년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확대회의는 핵개발을 결정했다. 그 후 9년만인 1964년 10월, 중국은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고 3년 뒤인 67년에는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한다. 그리하여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에 이어 5번째 핵보유국이 되었다. 거기다 1972년에는 대륙간 탄도미사일까지 개발하였다. 미국과 소련이 양분하던 세계 질서가 3등분되는 순간이었다.

중국이 핵개발에 성공하자 위험을 느낀 미국은 1971년 4월 탁구팀을 중국에 보내고 대중 무역규제를 완화하는 등 이른바 ‘핑퐁외교’를 시작했다. 그리고 1971년 7월, 헨리 키신저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이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 저우언라이(주은래) 중국 총리와 회담하고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의 방중 계획에 합의하였다. 이듬해 2월 닉슨 대통령은 중국에 방문에 사실상 중국을 승인했다(당시까지 미국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을 인정하지 않고 대만을 인정했다). 1979년 1월 지미 카터 정권은 중국과 정식으로 수교를 맺었다.

중국의 핵무장은 미국과 관계정상화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두 나라 사이에는 핵군축 등 핵무기에 관한 협정은 없다. 중국의 핵무기 숫자가 미국에 비하면 너무 작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무기는 많다고 위협적이고 적다고 안전한 게 아니다. 중국의 핵무기는 미국에 비할 바 못되지만 미국은 결코 중국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아무튼 중국의 사례를 볼 때 북미간 관계정상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임을 알 수 있다.

이제 북한은 가만히 있어도 미국이 다가와 관계정상화를 요구할 것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북한이 굳이 관계정상화를 위해 핵무기를 폐기할 리는 없다. 이제 미국이 북한의 핵폐기를 원한다면 관계정상화 이상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북한은 핵폐기의 대가로 ‘종국적인 핵무기’의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3. 6자회담은 전 세계의 핵군축으로 간다

종국적인 핵무기 철폐의 첫 단추는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도는 6자회담에 들어있다.

재개될 6자회담은 지난 시기 진행된 6자회담의 성과물인 9.19 공동성명 이행 방법을 주로 논의할 것이다. 여기서 미국은 북한의 핵프로그램 동결을 초기 이행조치로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동결한다 해도 이를 확인하기 위한 사찰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누가 사찰을 할 것인가. 원래 핵프로그램 사찰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핵사찰 대행기구인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맡는다. 그런데 현재 북한은 NPT를 탈퇴한 상태다. 따라서 핵사찰을 위해서는 북한이 NPT에 재가입해야 한다.

문제는 NPT에 가입하려면 핵무기가 없음을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NPT는 이 조약이 발효된 1970년 이전의 핵무기 보유만 인정하기 때문에 이후 핵보유국인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남아프리카공화국(나중에 핵무기를 폐기하고 NPT에 가입하였다) 등은 이 조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와 중국도 이 조약이 미국, 소련 주도의 세계질서를 반영한다며 가입하지 않았다.

따라서 북한이 조약에 다시 가입하려면 핵무기를 폐기하거나 아니면 핵보유국 자격으로 가입해야 한다. 북한이 핵실험까지 한 마당에 스스로 핵무기를 폐기할 리는 없으므로 결국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며 가입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NPT는 핵보유국에 대해서는 핵사찰을 하지 않는다. 미국이나 러시아가 한 번도 핵사찰을 받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즉, 북한이 핵보유국 자격으로 NPT에 복귀하면 핵사찰을 받을 필요가 없어진다.

이를 막으려면 미국이 직접 핵사찰을 해야 하는데 미국은 지금껏 북핵 문제가 북미 양자간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에 명분이 없다. 게다가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을 사찰하겠다고 하면 북한도 미국에 대한 핵사찰을 요구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은 ‘동등한 핵보유국’이기 때문이다. 9.19 공동성명에도 ‘미국은 한반도에 자기의 핵무기가 없으며 핵 또는 상용무기로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언’하였기 때문에 북한의 핵사찰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

결국 미국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핵보유국 자격으로 NPT에 복귀시킬 것이다. 북한은 이미 NPT 복귀를 염두에 두고 있다. 지난 10월 4일 핵실험을 예고한 북한 외무성 성명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절대로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핵무기를 통한 위협과 핵이전을 철저히 불허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책임있는 핵보유국으로서 핵전파방지 분야에서 국제사회 앞에 지닌 자기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이다’고 하였다. 이는 NPT 제1조 ‘핵무기보유 조약당사국은 어떠한 핵무기, 기타 핵폭발장치에 대한 관리를 직, 간접적으로 어떠한 수령자에 대하여도 양도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는 것과 동일하다.

한편 북한이 핵보유국 자격으로 NPT에 가입한다면 기존의 세계질서는 핵무기와 대륙간탄도탄을 보유한 미국, 러시아, 중국, 북한을 중심으로 재편된다(핵무기와 대륙간탄도탄이 세계질서에서 갖는 의미는 지난 연재글 참조). 그런데 이들 4개국이 참여하는 국제기구는 없다. 세계질서를 관리하는 국제기구인 유엔 안보리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2차 세계대전 전승국으로 구성됐는데 이미 50년이 지난 지금의 실정과 맞지 않는다. 따라서 4대 핵강국이 모여 세계질서를 관리할 새로운 기구가 필요하게 된다. 이 기구는 6자회담이 재편되는 방식으로 구성될 것이다.

6자회담은 이미 이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9.19 공동성명에서 ‘6자는 동북아시아에서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할 것을 공약하였다.... 6자는 동북아시아에서 안보와 협조를 도모하기 위한 방도와 수단들을 탐구할 것을 합의하였다’고 한 것은 6자회담이 동북아의 안보기구로 발전해야 한다는 방향을 밝힌 것이다.

또한 2005년 3월15일 크리스토퍼 힐 미국무부 차관보도 유럽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있듯 아시아에도 그런 기구가 있어야 하는데 6자회담이 향후 그런 조직의 모체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는 힐의 전임인 케리 전 차관보도 같은 의견을 보였다. 미국은 6자회담에 현 참가국 이외 관심있는 주변국의 참가도 검토한 적이 있다.

게다가 유럽연합(EU)도 6자회담 참가를 희망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6자회담이 개최될 때부터 비공식 대화 통로를 통해 6자회담 참여에 대한 북한의 생각을 물어왔다. 사실 유럽연합의 6자회담 참여는 북한, 한국, 중국, 러시아 등이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한국의 윤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2003년 11월 프랑스 외무장관과 회담에서 ‘유럽연합의 6자회담 참여를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적도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6자회담 참가는 미국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만약 유럽연합이 6자회담에 참가한다면 6자회담은 명실상부한 세계 핵 안보를 다루는 최고 권위의 기구가 될 것이다.

북한은 벌써부터 6자회담을 4대 핵강국 중심의 비핵군축 회담으로 재편하려 하고 있다. 그러자면 일본과 한국의 참여가 문제된다.

먼저, 북한은 6자회담에서 일본을 배제하고 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1월 4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6자회담에 미국이 참가하는 조건에서 미국의 한 개 주나 다름없는 일본이 구태여 지방대표로 회담에 참가할 필요는 없으며 미국으로부터 회담결과나 얻어들으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참가인원이 적어지는 것은 회담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결코 나쁘지 않다’고 밝혔다.

김계관 외무성 부상도 11월 30일 베이징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본은 6자회담에 참가할 자격이 없으며, 만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28일 북미 회담장에 일본 측 수석대표인 사사에 겐이치로 외무성 아시아, 대양주국장이 나타나자 북한의 한 당국자가 중국 측에 ‘저 자는 왜 온 것인가?’라고 지적하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그동안 일본은 6자회담에서 회담 주제와 관계없는 자신들의 문제를 자꾸 제기하여 다른 참가국들의 불만을 사왔다. 미국이 마음을 돌린다면 일본은 언제든 회담에서 밀려날 수 있다.

다음으로 한국 문제가 있다. 그런데 북한은 북미 관계가 정상화된다면 남북한 통일은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에 한국 문제를 크게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6자회담이 4대 핵강국의 비핵군축회담으로 재편되면 이 기구는 세계 평화를 위한 핵군축을 주되게 논의할 것이다. 벌써부터 이런 요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독일의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노르웨이의 요나스 가르 스퇴레 외무장관은 11월11일 공동기고문을 통해 미국과 러시아는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핵비확산체제 붕괴를 막기 위한 핵폐기 협상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미국과 러시아 등의 핵무기 보유국들은 전략핵무기 폐기를 위한 추가협상을 선언함으로써 소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전 세계 핵무기의 대부분을 소유한 미국과 러시아는 이미 40여년 가까이 핵군축을 한다고 하면서도 변변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또한 3위의 핵보유국인 중국은 핵군축에 대한 협상도 해본 적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재편된 6자회담에서 핵무기 폐기를 실질적으로 논의한다면 세계적인 지지와 환영을 받을 것이다.

북한은 이런 구도를 실현하기 위해 러시아, 중국의 지지를 유도하고 있다. 사실 북한의 핵보유만으로도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북한에 구애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지난 11월10일자 매일경제 기사에는 ‘러시아가 북한을 거쳐 남한에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이 협의 중’이라고 하였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도 전력을 공급할 수 있으며, 단지 전력선이 거쳐가는 것만으로 북한은 통과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지난 29일에 러시아 외무부는 북한에 대한 대폭적인 채무탕감 방안을 준비하고 있으며 수 주 내에 북한과 채무상환 협상을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르게이 스토르착 러시아 재무차관은 ‘러시아는 상당한 채무탕감안에 대해 얘기할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또한 12,285톤의 식량을 제공했으며 중국 역시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월만 해도 북한에 21,987톤의 식량을 수출하고 원유 58,685톤을 공급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증가한 양이다. 또한 두만강 하류 일대의 도로와 철도의 건설 및 개량 사업을 러시아, 북한과 공동으로 속속 추진하고 있다. 이는 북한의 나진항, 중국의 훈춘, 러시아의 하산을 잇는 3국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위한 것이다.

6자회담이 타결되고 9.19 공동성명이 이행되면 동북아 평화가 찾아온다. 이는 러시아와 중국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못한 일을 북한이 해내려 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와 중국은 6자회담에서 북한의 입장을 적극 지지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4. 핵보유국 사이의 ‘등가교환’ 원리

북한과 미국은 아직 법적으로 교전중이다. 그리고 양국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핵무기를 가진 양국이 교전한다면 무엇을 할까? 러시아와 미국이, 중국과 미국이 교전중이라면 무엇을 하겠는가.

가장 먼저 서로 핵무기를 사용하지 말자는 합의를 하려고 할 것이다. 이게 되지 않으면 양국 국민은 핵폭격의 공포로 인해 하룻밤도 편히 잘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북한은 이미 50년간 미국의 핵위협에 단련되어왔다. 이에 비해 미국은 본토에 대한 핵공격에 아무런 대비가 없다. 북한이 우위에 서서 협상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다. 그리고 6자회담은 새로운 세계를 상징하는 회담이 될 것이다. 6자회담이 타결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결국 북한은 핵을 폐기할 것이다. 그러나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미국의 핵폐기이다.

이것이 핵보유국 사이의 ‘등가교환’ 원리에 맞는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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