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욱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정책위원장)

북한의 10.9 핵실험 이후 변화된 정세와 6자회담 재개를 앞두고 북한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점에 천착해 통일뉴스는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와 공동기획해 <북한의 핵무장과 새로운 세계>를 연재합니다. 연재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 편집자 주

① 북한의 핵무장과 국가발전전망(한국민권연구소 전영호 상임연구위원)
② 핵보유국의 국제권력 독점 : 핵독점과 권력정치(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최한욱 정책위원장)
③ 신흥핵강국의 등장과 세계 질서의 지각변동(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최한욱 정책위원장)
④ 교전중인 핵보유국, 북한과 미국 : 6자 회담의 새로운 전망(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문경환 정책위원)
⑤ 핵독점의 붕괴와 미국의 세계 패권의 몰락(한국민권연구소 전영호 상임연구위원)


1945년 8월6일 오전 8시15분 경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 꼬마소년)가 일본의 히로시마에 떨어졌다. 각막이 찢길 듯한 섬광과 함께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잠시 뒤 16만 여 명의 일본인들이 지구에서 사라졌다.

1945년 8월 이후 인류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핵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핵의 시대는 공포의 시대이다. 핵의 공포는 세계 최초의 핵보유국인 미국에게 무제한적인 권력을 안겨주었다. 미국은 핵의 공포로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핵의 공포는 매우 효율적인 세계 통제 수단이 되었다. 가장 먼저 핵의 시대에 도달한 미국은 인류의 운명을 손아귀에 움켜쥐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핵독점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미국이 최초로 핵폭발에 성공한 때로부터 3년 뒤인 1949년 8월23일 소련도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이제 본격적인 핵경쟁의 시대가 시작 되었다.

냉전과 공포의 균형, 그리고 미소 권력독점

자기파괴적인 핵경쟁의 시대를 지탱해온 것은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었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핵전략은 해당 시기의 전략적 상황이나 정치, 외교적 목적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억지전략’(Deterrence Strategy)에 기초하고 있다. ‘억지전략’은 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으면 상대방은 보복을 두려워해서 싸움을 걸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논리에서 출발한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핵전략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핵공격 할 경우 핵무기가 자국에 도달하기 전 또는 도달 후 생존해 있는 보복력을 이용해 상대방도 절멸(絶滅)시키는 ‘핵억지전략’이었다. 미소 양국은 “우리를 공격하면 너희들도 완전히 멸종시켜 버리겠다”는 공갈, 협박으로 상대방의 핵공격을 억제해 왔다. 상호전멸의 공포 때문에 미국과 소련은 냉전 시기 수 만기의 핵무기를 제조하였지만 공갈, 협박의 수단이었을 뿐 실제 전장에서는 전혀 활용되지 못했다.

확증파괴전략은 군사시설뿐만 아니라 상대국의 국민 전체, 도시 전체를 공격의 대상으로 하기에 조금이라도 이성이 있는 지도자라면 자멸을 뜻하는 핵보유국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쟁의 시대에 핵무기는 ‘사용하기 위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기 위해 생산’하는 ‘억제 무기’일 뿐이었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군사력은 경쟁적인 핵개발로 대체적인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2차 대전 직후부터 두 진영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처럼 보였지만 1990년대 초 소련이 스스로 붕괴하기 전까지 미소 간 직접적인 무력충돌은 거의 없었다. 모두가 전멸할 수 있다는 공포는 역설적으로 미소 간의 충돌을 억제하였고 극단적인 대결의 시대에 오히려 상대적인 평화를 가져왔다. 믿기 힘들지만 냉전시대는 20세기 전 역사 중에 전쟁이 적었던 짧은 시기였다.

핵경쟁의 시대에 인류는 소수의 광적인 지도자들과 사소한 기술적 결함 때문에 언제든지 핵전쟁이 발생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인류가 전멸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공포로는 오히려 전쟁에 집착하는 서방의 광적인 지도자들을 매우 신중하게 만들었다.

1945년 7월, 세계 최초로 핵실험에 성공한 미국은 사소한(?) 정치적 혹은 기술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수롭지 않게 핵무기의 사용을 결정했다. 그러나 핵경쟁의 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수 만기의 핵무기를 제조하였지만 이를 단 한 발도 사용하지 못했다. 핵무기는 언제나 그들을 유혹했지만 그것은 실존하는 신기루에 불과하였다. 이것은 ‘핵억지력’의 논리가 일정한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확증파괴’, ‘공포의 균형’은 냉전 시기 세계적 규모의 대규모 전쟁을 억제하는 일정한 기능을 하기도 하였지만 그 불가피한 결과로써 핵무기의 초과잉 생산을 초래하였다.

이 시기에 미소 두 나라가 보유한 핵무기는 전략핵탄두만 하더라도 각각 1만여 발에 달했다. 이 폭발의 위력은 히로시마급 원폭으로 환산할 경우 60만 발에 이르는 8천 메가톤 정도이다. 적어도 인류를 20번 이상 전멸시킬 수 있는 엄청난 양의 폭발력이다. 핵무기의 제조와 개발이 인류의 멸종을 위한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가정을 하더라도 적어도 20배 이상의 초과잉 생산이 이뤄진 셈이다. 확증파괴의 논리에 따라 상대국의 전멸을 전제로 생산한 것이라면 미국과 소련은 실제 수요보다 수 백 배에 많은 핵무기를 제조하였고 스스로 과잉생산의 늪에 빠져 버렸다.

그렇다면 미소 양국은 왜 필요 이상의 핵무기 생산에 집착하였을까?

그것은 핵무기가 군사적 수단일 뿐만 아니라 ‘권력정치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과 소련이 국제 정치권력을 독점하려는 패권적인 의도를 갖지 않았다면 그들은 적국을 궤멸시킬 수 있는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 더 이상의 핵무기 개발을 중단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1960년 초 세계 어느 곳의 적이든지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기에 충분한 양의 핵무기를 보유하고도 경쟁적으로 핵무기를 제조하였다. 이것은 핵이 무기, 억제력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핵경쟁의 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막강한 핵전력을 바탕으로 국제 사회에서 압도적인 발언권을 행사했다. 미국과 소련이 양 진영을 대표하는 강대국으로서 각 진영 내에서 패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핵무기의 독점과 과잉생산 덕분이었다. 그들은 핵공격의 공포로 적국뿐만 아니라 그들의 동맹국들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핵경쟁의 시대에 핵무기는 군사적 힘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인 힘으로 전화했다.

당시 핵무기는 국제 권력의 가장 강력한 구매수단이었다. 핵은 권력을 무한정 구매할 수 있는 백지수표나 다름이 없었다. 때문에 혹자들은 핵무기를 ‘권력정치의 국제통화’(International currency of power politics)라고까지 지칭하였다. 핵독점은 곧 국제 권력의 독점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상대방에 대해서 비이성적인 확증파괴전략을 추구하지만 극단적인 대결의 와중에서도 세계 권력을 공유하기 위해 핵무기의 확산을 가능한 한 억제하고 오직 두 나라만이 압도적인 핵전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전적으로 이해관계가 일치하였다.

과거 미소 양국은 상대방의 핵공격 위협을 비난하면서도 핵무기의 완전 철폐를 의제로 교섭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두 나라의 정치교섭은 언제나 미소 핵전력의 대등성을 확인하고 양국이 국제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서로의 패권적 이익을 묵인, 양해함으로써 두 핵강대국에 의한 세계 분할을 제도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미소 정치교섭의 목적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군사적 핵우위’가 아닌 ‘정치적 핵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경쟁하였다. 그들은 상대방의 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제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핵무기를 생산하였다. 더 많은 핵무기가 더 많은 권력을 가져온다는 이들의 패권적 사고방식은 편집증적인 핵과열경쟁으로 이어졌다. ‘전쟁억지력’으로써의 핵무기는 이미 초과잉 상태였지만 ‘권력으로써의 핵무기’는 언제나 상대적인 빈곤상태에 놓여 있었다. 미국과 소련은 상대방보다 더 많은 권력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조금 더 많은 핵무기가 필요하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국제 권력에 대한 미소 양국의 집착과 야심이 핵무기의 초과잉 생산을 초래한 것이다.

냉전시대는 핵경쟁의 시대이면서 한편으로 미소 권력분점의 시대였다. 미소 핵경쟁은 제3차 세계대전을 억제하였지만 그 결과 세계는 양분되었다. 핵경쟁과 냉전의 그늘 아래서 인류는 미국과 소련이 허용하는 상대적 평화와 제한된 자유만을 누릴 수 있었다. 여전히 세계 권력은 강대국들의 몫이었고 핵무기는 그 권력의 가장 확실한 안전장치였다.

핵의 독점, 권력의 독점

미소 양국의 핵분점의 시대도 오래가지 않았다. 1960년대 미국의 대통령 케네디(J.F Kennedy)는 70년대가 되기 전에 핵보유국은 20-30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것은 핵무기 개발이 생각만큼 어려운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네디의 예측은 빗나갔다. 핵무기의 확산을 억제하는 기술적 장벽은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정치적 장벽은 매우 높았기 때문이었다.

핵무기의 독점을 위한 미국과 소련의 필사적인 노력 덕분에 1970년대 전에 핵실험에 성공한 나라들은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중국이 전부였다. 70년대까지 핵보유국은 20-30개가 아니라 4-5 개에 불과하였다.

그렇다면 8개의 핵독점국들-북한을 제외한-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까?

철저한 비밀주의의 장막 속에 가려있어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 이들이 제조한 핵무기는 적어도 2-3만여 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전체 핵무기의 95%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은 1만여 기 내외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역시 냉전기 무모한 핵경쟁 덕분에 1만 기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여전히 세계 권력을 분점할 만한 압도적인 핵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 뒤를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1964년 핵실험에 성공한 중국은 현재 400여 기의 핵탄두를 실전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세 나라들은 핵보유국들 중에서도 특수한 지위를 갖는다. 이들은 지구 어느 곳이든 핵탄두를 실어 나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은 모두 사거리 1만Km이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미니트맨3(MinutemanⅢ) 550기, 피스키퍼(Peacekeeper) 50기 등 600여 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총 2,000여 기의 핵탄두를 장착하고 있다. 러시아는 SS-18 186기, SS-19 150기, SS-24기, SS-27 10기 등 660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에 3,153기의 핵탄두를 운용하고 있으며, 중국은 DF-5 동풍(東風)을 10-20기 정도 실전배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나라들의 지도자들은 핵단추만 누르면 지구상에 있는 어떤 나라든 수 시간 안에 핵공격을 할 수 있고, 60억 인류 전체를 언제든지 전멸시키고 지구를 깨버릴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즉 인류 전체의 생사존망이 이 세 나라 지도자들의 손가락에 달려 있는 셈이다. 이들은 핵과 탄도미사일을 독점함으로써 인류의 생존을 담보로 국제 권력을 장악하였다.

나머지 핵보유국들은 프랑스가 360, 영국이 180, 이스라엘이 200, 인도 60, 파키스탄 20-40여 기 정도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핵탄두의 보유 양 면에서도 나머지 핵보유국들은 핵3강에 미치지 못하지만 이 국가들은 핵탄두의 운반능력 즉 미사일 기술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전 지구적 패권을 갖지 못한다. 이들은 국제사회에서 비핵보유국들보다는 높은 대우를 받고 있지만 핵3강에 필적할 만한 전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핵3강들과 수평적인 세계 권력 분할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핵확산금지조약이 체결된 1968년 이전에 핵보유국이 된 5개 나라-국제사회가 공인하는 핵보유국-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두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유엔 안보리는 현재 5개의 상임이사국과 10개의 비상임이사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5개국이다. 비상임이사국은 총회에서 국제 사회와 유엔에 대한 공헌도와 형평성, 지리적 안배 등을 고려하여 선출된다. 비상임이사국의 임기는 2년이고, 임기만료 직후에는 재선될 수 없으며 매년 1/2이 교체된다. 비상임이사국은 매년 교체되기 때문에 안보리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기 힘들다.

안건의 표결은 각 이사국들이 각 각 1개의 투표권을 갖지만 상임이사국들은 거부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임이사국의 동의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거부권은 유엔헌장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헌장을 개정하지 않는 한 상임이사국의 절대적인 권력을 제한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유엔헌장 개정에도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상임이사국들 중 한 나라만 반대해도 헌장을 개정할 수 없다.

상임이사국들이 스스로 권력의 상징인 거부권을 포기할 리 없기 때문에 상임이사국들의 권한 제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유엔은 상임이사국들이 동의하지 않는 한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상임이사국의 침략행위, 불법행동은 유엔이 전혀 통제할 수 없다. 유엔은 5개 핵보유국의 세계 권력독점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유엔은 한마디로 핵보유국의, 핵보유국에 의한, 핵보유국을 위한 권력기구일 뿐이다.

유엔헌장에 따르면 안전보장이사회는 분쟁을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권고할 수 있으며, 그 권고가 효력이 없을 때에는 강제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을 할 수 있다. 또한 평화에 대한 위협·파괴 또는 침략행위가 있을 때에 평화의 유지·회복을 위해 잠정적 조치, 또는 군사력 사용을 포함한 강제조치의 결정을 할 수 있다. 안전보장이사회의 강제조치의 결정은 법적 구속력을 지닌다. 2006년10월 17일 채택된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 1718호는 법적 구속력을 갖는 강제조치이다. 5개 상임이사국들만 동의한다면 유엔의 이름으로 어느 나라든 공격할 수 있다. 핵보유국들은 합법적인 ‘살인면허’, ‘전쟁면허’를 갖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유엔 안보리는 총회를 능가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비상임이사국들은 유엔의 불공정성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을 무마하기 위한 들러리일 뿐 사실상 상임이사국들이 유엔을 제멋대로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명단은 ‘공식 핵클럽’(Nuclear club)의 명단과 정확히 일치한다. 물론 핵무기의 보유 여부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공식적인 자격 기준은 아니다. 하지만 핵과 국제 권력의 상관관계를 고려할 때 핵무기의 보유가 유엔의 질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분명하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특히 미국, 러시아, 중국 등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국들은 국제 정치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며 세계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초대국들이다.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도 핵독점국들의 국제권력 독점체제는 조금도 변화하지 않다. 핵보유국들은 자신들은 필요 이상의 과도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국가들의 핵보유는 철저히 통제하여 핵을 중심으로 한 수직적인 세계 질서를 구축하였다. 이들은 핵무기의 독점을 통해 국제권력을 장악하고 세계를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며 지구의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질서는 한마디로 핵의 질서였다.

핵의 독점은 권력의 독점을 낳았고 그 결과 핵보유국 중심의 패권적 세계 질서가 구축되었다. 핵무기와 국제 권력은 정확히 비례한다. 핵무기는 세계 권력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소위 선진국들은 핵의 세계에 먼저 도달함으로써 20세기를 자신들의 세기로 만들었다.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은 강대국 중심의 세계 질서 하에서 기아와 빈곤, 저발전의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핵의 독점. 그것은 곧 권력의 독점이며 강대국 중심의 불평등한 세계 질서를 지탱하는 원동력이었다.

핵독점의 방어체제

미국의 핵독점은 채 5년도 지속되지 못했다.

소련은 순식간에 미국의 핵기술을 추격하였고 1950년대 후반에는 오히려 미국을 추월하였다. 1950년대 초까지 반봉건(半封建) 국가나 다름없었던 중국은 건국 이후 불과 10여 년 만에 핵보유국이 되었다. 중국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핵개발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어느 정도 산업화 단계에 이른 국가는 얼마든지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독립해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이제 핵기술의 확산은 불가피해지고 있었다. 핵의 확산은 핵독점의 붕괴이며, 권력독점의 붕괴이다. 따라서 국제 권력의 독점을 추구하는 핵보유국들은 어떻게든 핵의 확산을 막아야 했다. 핵개발의 기술적 장벽들은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미국은 소련이 핵무장에 성공한 시점부터 핵확산을 막기 위해 강력한 정치적 장벽을 쌓아야 했다.

1953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유엔 총회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주장하면서 유엔의 후원 하에 핵물질의 저장과 보호, 평화적 사용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기구를 창설하자고 제안하였다. 평화적 목적의 핵개발은 서로 협력하고 추가적인 핵무기 개발은 막자는 것이 미국의 의도였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무기를 실제 사용한 바 있고 가장 많은 핵을 보유했던 미국의 대통령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제안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이젠하워의 연설은 참으로 뻔뻔스러운 짓이었다. 미국 대통령은 얼굴이 웬만큼 두껍지 않으면 견뎌내기 어려운 직업이다. 아무튼 미국의 제의에 따라 1957년 국제원자력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 IAEA)가 설립되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국제연합 총회 아래 설치된 준독립기구로 원자력 발전의 경제성 및 안전성 제고를 위한 국제적 협력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전력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원자력개발은 지원하며, 핵분열물질이 군사적 목적에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국제원자력기구의 기본활동이다.

미국은 ‘원자력기술의 이전’을 미끼로 개발도상국들을 유혹하였다. 핵에너지를 보장해 줄테니 핵무기는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은 역설적이게도 핵기술의 독점을 포기함으로써 핵무기의 독점을 지속하고자 했다.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제3세계의 많은 국가들은 1950년대부터 앞 다투어 산업화를 추진하였다. 산업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즉 석유가 있어야 산업화를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석유는 일부 지역에 집중적으로 매장되어 있고 서방 국가들이 석유 이권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어 에너지 확보는 산업화를 추진하는 제3세계 국가들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때문에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다소 위험부담은 있지만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하고 수급이 안정적인 원자력발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원자력 발전을 통해 생성되는 핵분열물질-플루토늄(Plutonium)-이 핵무기의 원료가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원자력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핵무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소련이 의외로 빨리 핵실험에 성공하자 미국은 핵기술의 영구적인 독점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대로 놔두면 머지않은 장래 핵보유국 숫자는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될 것이며, 미국의 권력독점도 위협받게 될 것이다.

미국이 아무리 애를 써도 핵기술은 어차피 확산될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불가피한 것이며, 에너지 확보라는 국가 전략적 목표를 위해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원자력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핵개발에 성공하지 못한 국가들은 핵개발이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모른다. 무지는 환상은 낳고 환상을 어리석은 행동을 유발시킨다. 미국은 이 점을 이용했다.

미국은 어느 나라나 ‘자력갱생’(自力更生)으로 몇 년 만 고생하면 얻을 수 있는 대단치도 않은 기술들을 양보하는 대신 제3세계 국가들이 핵무기를 갖지 않도록 묶어놓으려고 하였다. 여전히 ‘핵기술신비주의’에 빠져 있는 개발도상국들은 미국의 선의(?)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개발도상국들은 신비의 장막 속에 감춰진 첨단과학의 세계로 가기 위해 다소 굴욕적인 대접을 받는 것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국제원자력기구 출범 10여 년 뒤인 1968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체결되었다.

핵확산금지조약의 골자는 군사적 목적의 핵무기 생산은 억제하고 평화적 목적의 핵활동은 장려한다는 것이다. 핵보유국들은 비핵보유국들의 평화적 핵개발을 지원하고 핵무기로 이들을 위협하지 않는 대신 비핵보유국들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핵무기의 비확산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들의 핵무기 생산을 중지해야 한다. 그러나 핵확산금지조약은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실험을 완료한 국가들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따라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기존의 ‘핵기득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고 핵무기를 추가적으로 생산하는데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게 되었다. 핵확산금지조약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들의 국제 권력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강대국들의 영구적인 핵무기의 독점이 핵확산금지조약 탄생의 정치적 배경이었다. 한마디로 NPT는 ‘핵확산금지조약’이 아니라 ‘핵독점보호조약’이었다.

2000년 현재 핵확산금지조약 가입국은 185개이다.

핵개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핵확산금지조약 체제에 묶여 있다. 재미있는 점은 1967년 이전에 핵실험에 성공한 중국, 프랑스가 불평등조약이라는 이유로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철저하게 핵보유국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약인 핵확산금지조약을 핵보유국들조차 외면하고 있는 현실은 이것이 얼마나 불평등한 조약인가를 반증하고 있다.

핵보유국들의 권력 독점을 위한 또 하나의 방어체제는 미사일기술통제협정(Missile Technology Control Regime : MTCR)이다. 핵전력은 핵폭발능력과 함께 원거리 운반능력을 갖춰야 비로소 완성된다. 핵무기가 아무리 많아도 이를 원거리로 실어 나를 수 있는 기술이 없다면 그림의 떡일 뿐이다. 따라서 핵독점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핵기술뿐만 아니라 미사일 기술의 강력한 통제체제를 필요로 한다.

미사일통제협정은 '국제조약'이 아니라, 미사일 관련 기술을 보유한 선진국들 사이에서의 ‘신사협정’이다. 1987년 소위 서방7개국, ‘G7 회원국들’ 등을 중심으로 발족하였으며, 그 대상은 ‘핵무기 운반 가능 미사일’이었다. 1993년 1월7일에는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운반가능 미사일’ 등으로 그 범위를 확대하였다.

미사일기술통제협정에 가입한 국가들은 이와 관련한 국내법을 마련하여, 미사일 관련 본체, 기술, 그리고 부품 등을 수출하지 않겠다고 명시해야 하며 현재 한국을 포함한 33개 국가들이 가입하고 있다. 이 협정의 통제대상은 ‘대량파괴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 WMD)의 운반이 가능한, 300㎞ 이상의 사정거리와 500㎏ 이상의 탄두중량을 지닌 미사일과 무인항공체’와 ‘그 관련 부품들과 기술’ 등이다.

핵확산금지조약은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을 통제대상으로 하는 반면 미사일기술통제협정에는 미사일기술을 일정하게 보유하고 있는 서방의 선진국들만이 참여하고 있다. 미사일기술통제협정의 가입국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는 핵기술에 비해 미사일기술에 대한 접근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핵기술의 확산은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탄도미사일기술 특히 장거리미사일의 세계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과학의 영역이 아니었다. 인류가 처음으로 대기권 밖에 진출한 때로부터 5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극소수의 국가들만이 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미사일 기술 확보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때문에 핵기술의 통제는 이미 1950년대부터 논의 되었지만 미사일기술의 통제는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추진되었다. 핵과 마찬가지로 미사일 역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핵이 에네지원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처럼 탄도미사일 기술 역시 평화적 목적의 필요를 가지고 있다. 우주개발이 그것이다.

미국은 1950년대 핵의 평화적 이용을 주장하면서 핵기술의 공유를 제창하였다. 그러나 미사일 기술의 평화적 이용과 기술 협력은 단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다. 미사일의 기술적 장벽이 높기 때문에 미국은 굳이 정치적 장벽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이것은 아이젠하워가 주장했던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구호가 얼마나 위선적인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핵과 미사일 확산의 통제라는 논리는 핵보유국 중심의 세계 질서, 즉 강대국 중심의 패권질서를 유지, 관리하기 위한 독점의 방어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비확산체제는 오직 미국의 패권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핵독점의 방어체제’일 뿐이다. 핵과 미사일의 독점국들은 핵중심의 세계질서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핵확산금지조약과 미사일기술통제협정을 고안하였다.

비확산의 논리는 평화의 논리가 아니다. 그것은 전쟁으로 점철된 약육강식의 세계 질서를 지속하기 위한 침략의 논리, 패권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핵무기의 확산은 분명 위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핵무기의 독점, 국제 권력의 독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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