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객원기자 (tongil@tongilnews.com)


본사 김양희 객원기자가, <겨레하나>가 주최한 북측 지원사업장 방문단 일원으로 11일부터 14일까지 3박4일간 평양을 방문한다. <겨레하나>는 북측과 협력해 평양에 빵공장과 국수공장 등을 만들어 지원을 해 왔는데 이번에 이를 둘러보는 것이다. 평양방문 신청부터 소감을 정리한 김양희 객원기자의 평양방문기를 일기식으로 순차적으로 싣는다. / 편집자 주


2006. 11. 13

김책공대를 찾아

▶13일 김책공대를 찾았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영철이의 맞선 소식에 나는 일행의 놀림감이 됐다.

유럽의 여느 도시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보통강변의 늘어진 버드나무길, 이곳은 평양 최고의 데이트코스로 팔장을 끼고 데이트를 하는 청춘남녀들이 자주 목격되곤 했다.
일행들은 버스로 이동 중 창밖을 내다보다 데이트를 하는 남녀들만 나타나면 “또 있다 또 있어. 여기도 저렇게들 연애하는데 김양희 기자는 대체 뭐하는 거야? 버스랑 남자는 떠난 뒤에 기다려봐야 소용없다구...” 휴~평양에 어찌나 연애를 하시는 분들이 많으신지...

잠시 일행을 외면하고 북측 안내원에게 말을 건넨다.
“북측에도 이제는 연애결혼을 많이 하시나 봐요”
“예, 연애도 하고 중매도 하고 부모 간에 정략결혼도 있고 합네다. 요즘엔 연애결혼을 많이들 하고 있습네다. 평양에서는 남성은 28세 정도, 여성은 26세 정도에 많이 하고 30세가 넘으면 노총각, 노처녀입네다. 김양희 선생도 빨리 하셔야지 통일되도 여기서 신랑감 못찾습네다”
헐~내가 평양에서도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영철이 녀석의 맞선 소식이 나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오후 일정의 시작은 북녘의 엘리트들이 모여 있다는 김책공업종합대학 전자도서관이다.
북녘 국가관광국에서 발행한 평양 소개 책자에 따르면.....

김책공업종합대학은 평양국제문화회관 길 건너에 자리 잡고 있다. 유능한 기술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창립된 대학이다. 대학에는 16개 학부에 108개의 강좌가 있으며 1만 200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대학에는 10개의 연구소와 종합실습공장, 출판사, 도서관, 인쇄공장이 있으며 박사원, 연구원이 있다. 대학은 주체37(1948)년 4월에 창립되였다.
대학은 조선의 첫 산업국장이며 조국해방전쟁시기 전선사령관이었던 항일혁명투사 김책동지의 이름을 지니여 김책공업종합대학으로 명명하였다고 소개되어 있다.

▶김책공대 전경. 왼쪽이 전자도서관이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김책공업대학은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는 6년제 공업 종합대학으로 학생수는 1만여명에 달한다. 특히 지난해 10월 건립된 전자도서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2001년 9월 19일 김책공대를 시찰하면서 전자도서관을 새로 지을 것을 지시해 지은 것으로 전자도서관 건물 정면에는 책과 전자기록매체의 도형과 함께 월계수 위에 2001. 9. 19라는 날짜가 새겨져 있고 입구에는 올해 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지지도 했다는 표식이 붙어있다.

특히 예로부터 왕만 청가와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해 북측에서는 중요한 건물 4군데를 청기와로 지었다고 하는데 옥류관, 인민대학습당, 인민문화궁전 등과 함께 이곳이 청기와로 지어졌다고 도서관장은 자랑이다.
지하층과 지상 5층 규모의 전자도서관의 총 건평은 1만 6500여 제곱미터이며 12개의 전자 열람실과 12개의 도서열람실, 4개의 열람홀이 있다.
전자 열람수용능력은 370여명이며 동시에 1650명이 도서를 열람할 수 있고 1000만 건의 원문 자료와 함께 200만부의 장서 능력도 갖추고 있다.

김책공대 도서관 내부에는 김일성 주석의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학습은 첫째가는 임무이다’ 이것은 항일혁명 투쟁 시기부터 우리가 내세운 구호 입니다’라는 교시가 붙어있다.
학생들은 도서관을 오가며 이런 구호들을 보며 학업 열기를 높인다고.

김책공대는 전자도서관 개관에 앞서 2년여에 걸쳐 도서관에 있던 250만부에 달하는 방대한 과학기술 서적과 자료들을 정리화하고 전산화하는 작업을 추진했단다.
도사관의 모든 서비스 운영체계는 컴퓨터화되어 있어 학생들은 도서검색서비스를 이용해 책을 찾기도 하고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검색하고 있었다.
특히 도서관은 학교에 다닌 후 졸업을 하면 교육을 받을 기회가 떨어지는 것에 대비해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컴퓨터망에 접속해 대학교육은 물론 각종 형태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몇 년에 한 번씩은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도록 해 IT 산업이 계속 발전하더라도 수준이 뒤처지지 않도록 인력들의 재교육에도 주력하고 있다.

전자도서관이지만 일반 도서들도 있다.
한 방에는 김일성 주석의 로작이 빼곡이 차 있다.
김일성 로작은 100여개의 국가에서 689만3200 여부가 출간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방에는 각국에서 기증받은 역사, 문학 등 다양한 책을 보관하고 있는데 중국과 러시아는 많지만 일본은 달랑 한권이 꽂혀 있다. 물론 우리 책은 없고...

나는 컴퓨터를 잘 몰라 아는 분에게 물어보니 이곳 전자도서관 컴퓨터 수준이 우리보다 많이 뒤쳐진다고 했다. 또한 키보드에 한글이 적혀 있지 않아 불편해보였다.
한글윈도우XP를 사용하면 한글 자판을 쓸 수 있는데 비용이 커 그보다 낮은 버전의 윈도우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때문에 따로 일일이 소프트웨어를 깔아 가며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로공사 권우현 차장은 “나도 미국에서 유학시절 한글 프로그램을 쓰려고 했는데 윈도우 95에서는 쓸 수 없어 한글 소프트웨어를 깔고 한쪽에 한글 자판을 띄워 놓고 사용했었다”고 설명한다.
‘조금의 비용(물론 북측에는 큰 비용이겠지만...)이면 더욱 간편하게 공부를 할 수 있을 텐데....’

우리보다 수준이 좀 떨어진다지만 김책공대 학생들의 최고 엘리트라는 자부심과 열정은 대단한 것이었다.
일행들 중의 일부는 김책공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척하며 사진을 찍기도 한다. 에이 평소에 공부를 하셔야 믿지 사진만 찍는다고 믿나요?ㅋㅋ...사실 나도 그리 찍고 싶었으나 빠듯한 일정에 바로 창광유치원으로 이동한다.

창광유치원에서

▶창광유치원 식당으로 향하는 복도.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창광유치원은 5~6세의 어린이 500여명과 탁아300여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의 유치원으로 교직원이 150여명에 이르고 여러 강의실과 놀이방, 음악실, 대형 식당, 수영장, 공연장 등이 갖춰져 있다. 그러나 이 고급시설도 국가 공급체계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곳으로 이용료는 무료이다.

하루 다섯 번 급식을 한다는 창광유치원은 식당을 오가는 길에 노루, 사슴, 곰 등 동물들과 포도덩쿨, 사과나무, 귤나무 등을 가득 전시해놓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외국인들이나 남측인사들이 찾아오면 선보이는 유치원이기 때문에 고위층의 자녀나 입학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냐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이곳은 아이들을 월요일에 맡겼다가 금요일에 찾아가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맞벌이 노동을 하는 여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부모가 바빠 일주일에 한번씩도 부모를 만나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있을 것으로 부모들은 자식을 유치원에 맡겨놓고 출장에 갔지만 사실은 당의 품에 맡겨놓고 간 것이나 다름없다”며 “그러니 우리가 그 어린이들을 잘 보살펴 줘야 한다”고 말했단다.

▶전교조 선생님들이 콩우유 기계 앞에서 한 장.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창광유치원의 급식실에는 남측에서 지원한 콩우유 기계가 두 대 있었다.
콩우유는 실제 작동 시 어떤 불편함은 없는 지 살펴보고, 남녘어린이들이 먹는 것을 똑같이 북녘어린이들에게 지원한다는 의미에서 3개월 동안 남녘의 작은세상어린이집에서 가동을 했던 것이란다.
아이들은 그 기계로 하루 한잔의 콩우유를 먹는데 기계가 작아 800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콩우유를 만들어주기 위해 몇 번이고 가동을 해야 한다. 그나마도 한 대는 고장이라 녹천주방의 주대원 대표와 직원이 살펴본다.


▶범민련 김영옥 선생님도 콩우유 기게 앞에서 '찰칵'.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창광유치원과 남신유치원에 콩우유 기계를 지원한 전교조 선생님들과 범민련의 김영옥 선생님이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전교조는 학용품 지원에 이어 이번에 영양이 부족한 북녘 어린이들을 위해 창광유치원과 문수유치원 등에 콩우유 기계를 지원하기로 했다.
겨레하나 측은 현재 창광유치원 등 평양 곳곳의 어린이를 위한 시설에 총 55대의 콩우유 기계가 전달되었다고 밝혔다.

한 강의실에서는 음악 수업이 한창이었다.
절대음감테스트 방식인데 선생님이 오르간으로 도레미파솔라시도를 한번 들려주고 한 음을 치면 아이들이 맞추는 것이다.
“무엇일까요? 누가 맞춰보갔어요?”
일제히 손드는 아이들 중 한 아이를 지목하는 선생님.
“레입니다”
“그럼 이건 무엇일까요?”
“솔 입니다”
아이들이 똘똘하게도 잘 맞춘다.
이번엔 전체가 다 돌아가며 맞추기를 시작한다.
“끝부터 한사람씩 맞추는 거야죠”
“파” “미” “솔”.....
한참을 돌던 중 한아이가 틀렸다. 어린아이가 틀릴 수도 있어 모두들 그저 지켜보는데 난 순간 웃었다. 아이는 순간 당황해서 일순 긴장한다.
“다시 잘 들어보시라요”
“....파” 간신히 통과를 했다.
그 때 왜 웃었는지 변명을 하자면 너무 완벽하게 똘똘한 아이들 속에서 만난 인간적인 모습이 반가워서라고 해두자. 아무튼 그때 미안. 상처받은 건 아니지? 나 조그맣게 웃었잖아. 봐줘~
아이들은 절대음감 테스트를 마치고 무용을 곁들인 노래를 우리에게 선보였다.
작은 고사리 손이 꼬물꼬물 하는 것이 참 귀여워 일행들은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안내원들이 이동할 것을 권유하자 아이들은 “안녕히 가시라요! 다음에도 또 뵙갔습니다”를 외치며 손을 흔든다.
참관을 마친 일행들이 “하 고놈들 정말 똘똘하네” “너무 귀여워 죽겠어” 등을 연발하며 저만치 가고 있는데 갑자기 “휴~”하며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뭔가 큰일을 하나 끝냈다는 안도의 한숨과 즐거움이리라.

그렇지. 나도 어린 시절 학교에 장학사 선생님이 시찰 나오는 게 제일 싫었다.
장학사 선생님이 뭔지도 모르면서 하여튼 일 년에 몇 번씩 그분만 떳다하면 며칠 전부터 낡은 수건을 꿰매 손에 끼워 닦을 수 있는 걸레를 만들어가 교실이고 복도고 할 것 없이 닦아댔다. 장학사 선생님이 오시기 전날에는 수업도 안 듣고 하루 종일 연신 닦는다. 2학년 때인가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구역을 정해 닦는 대결을 시키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뭐 대단한 영광을 얻겠다고 그리 열심히 닦았는지...무릎 꿇고 닦기를 몇 시간이고 했다. 그랬지만 결국 왁스 한통을 다 써가며 미친 듯이 닦아댄(그 아이는 그 때 정말 온 힘을 다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탈진할 것처럼 온몸을 다해 닦아댔다) 다른 친구가 우승을 차지했을 땐 실망도 컸다. 우승 상품으로 받은 연필 한자루가 어찌나 대단해보이던지...
수업시간은 또 어떤가?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몰라도 무조건 다 손을 번쩍번쩍 들라하고 대답을 할 아이를 정해놓았다. 연습도 몇 번씩 했고 아무리 손을 들어도 선생님은 날 시키지 않을 것이 분명함에도 그래도 장학사 선생님이 오시면 어찌나 떨리던지...
누가 보지 않는데도 공책에 필기를 하는 것도 손가락에 힘을 줘가며 온 정성을 다한다.
그렇게 긴장하던 순간이 장학사 선생님의 수업 시찰이 끝나면 끝이다. 어찌나 시원한지...선생님도 우리도 완전해방이었다.
창광유치원 아이들의 시원한 웃음 속에서 나의 어린 시절을 발견했다.
아무리 평소 수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는 하나 우린 로동신문에도 나온 남측에서 온 손님들이다. 남측 손님들이 오신다니 아이들도 나름 준비를 했을 것이다. 얼마나 긴장했었을까? 휴~하는 한숨소리가 더욱 정겹게 들린다.

▶대형장난감 기차 안에서 남측 손님들을 내다보는 아이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넓직한 놀이를 할 수 있는 강의실 참관을 위해 이동하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우루루 뛰어나와 남측 손님들을 하나씩 잡아끈다.
음악이 나오자 영문을 모르는 남측 손님들의 손을 잡고 아이들은 함께 무용을 하기 시작한다. 남측 손님들은 어색한 몸짓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춤을 춘다.
무용이 끝나자 재빨리 아이들은 두 대열로 나뉘어 남측 손님들과 함께 이어달리기를 시작한다.
“이겨라” “이겨라” “우리편 이겨라”
응원이 계속될수록 긴장감은 고조되고 반환점을 도는 북녘아이와 남녘의 어른이 잡은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평소 걷는 것 싫어하고 뛰기는 더더욱 싫어하는 우리 남쪽 어른들도 이 순간만큼은 있는 힘껏 달린다.
“야~~~”
근소한 차이로 한 팀이 승리를 했지만 진 쪽도 환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서로 하나인데 누가 이기면 어떻고 진들 또 어떤가?
아이들과 한바탕의 격전(?)을 치룬 김영옥 선생님은 “몇 십 년은 젊어진 느낌이다”고 하신다. 나 역시 빠듯한 일정에 지친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이들의 공연이 있었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다음으론 창광유치원 아이들이 준비한 공연을 지켜봤다.
그 나이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아이들의 연주 솜씨에 맞춰 반갑습니다, 고향의 봄 등의 노래를 부른다. 한복을 똑같이 맞춰 입고 펼치는 아이들의 재롱이 어찌나 귀엽고 예쁘던지....누군가 “우리 애도 좀 저리 똘똘하면 얼마나 좋아”하자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설혹 이것이 영화 트루먼쇼처럼 가식적인 세트 안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더라도 저 아이들의 웃음이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남과 북 사이에 어떠한 위기 상황이 생기더라도 그저 탁자에서 서로의 이익을 따지기보다 어린이들의 웃음을 떠올리면 최악의 상황까지 가진 않겠지.

빠듯한 일정에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해야 한다. 일행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히 떼고 있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