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저널리스트 노다 미네오(野田峯雄)씨가 지난 8월 1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상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진실위)의 KAL858기 사건 조사결과 중간발표에 대해 논박하는 글을 썼다. 
KAL858기 사건 관련 '고전적 저서'로 평가받는 『파괴공작』의 저자인 노다 미네오씨는 그의 책이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이후 입국금지 조치를 당했으며, 국정원 진실위가 KAL858기 사건을 우선 조사대상 7대 사건으로 선정하고 조사에 착수했지만 아직도 입국금지 조치는 해제되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 국정원 진실위의 중간발표를 지켜본 노다 미네오씨는 재일 동포 월간지 『통일평론』에 기고했으며, 통일뉴스는 이를 도서출판 『창해』의 번역 도움을 받아 동시 게재한다.
한편 87년 11월 29일 115명의 승객을 태운채 미얀마 인근 상공에서 사라진 KAL858기 사건은 사고 19주기를 앞두고, KAL858기 가족회와 시민대책위원회가 국정원 진실위의 재조사에 기대를 접고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이 사건을 접수하려는 상황이다. - 편집자 주



"국정원 진실위의 KAL858기 사건 중간발표를 반박한다"

노다 미네오(일본 저널리스트, 『파괴공작』저자)


사건의 진상규명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사항은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 서는 것이다. 규명자는 ‘사건의 발생현장’을 무엇보다도 강렬하게 의식하고, 실제로 ‘사건의 발생현장’에 서서 가능한 한 누구나 납득가능한 객관적 데이터(사실)을 수집하고, 이 필사의 작업과정에서 동 데이터를 꿰뚫는 한 줄기 실타래를 냉철한 사고에 의해 풀어나가야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한국의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전 국가안전기획부)에 거점을 둔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상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진실위)의 대한항공(KAL) 858기 사건 재조사 팀이 지난 8월1일부로 발표한 ‘중간보고서’에 무성하게 담긴 내용은 ‘사건의 발생현장’과는 동떨어진 땅에서의, 너무나도 유치하고 허약한 추측과 몽상과 단락(短絡)과 게으름과 비논리가 난무할 뿐이다.

그들(재조사 팀)은 무슨 까닭인지 서둘러가며 가령 이런 ‘결론’을 내린다. 저 김현희는 틀림없이 북한의 공작원이라고. 김현희를 둘러싸고 있는 숱한 의혹을 당사자인 김현희에게 직접 추궁하지 않고, 대단히 서두르는 인상을 계속 드러내며 이러니저러니 떠들어대는 저들의 자세는 너무나도 우스꽝스럽지만, 어쨌든 우선은 남(대한민국)이나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식의 예단을 배제하고 다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다음과 같이 묻고 싶다. 김현희는 북의 공작원이라고 단언한다면, 그 증거(사실)는 무엇인가? 또 가령 김현희가 북의 파괴 공작원이었다 해도, 그렇다면그것과 대한항공기 소실 사건(사건현장 프로세스)는 도대체 어떻게 연결되는가?

그처럼 누구나가 품음직한 의문 등을 언급하기 전에, 꼭 보고해두어야 할 에피소드가 있다. 전술한 중간보고서가 나오기 약 4개월 전. 가랑비가 내리는 4월5일의 일이다. 나는 재조사 팀의 멤버들(이창호 씨, 신동진 씨, 김태형 씨, 한국인 통역)과 도쿄 중심부에서 만났다. 물론 그것은 그들의 요청을 받아서였다. 시티 호텔의 떠들썩한 레스토랑의 한구석에서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씨와 신씨는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꺼냈다.
“진상이 규명되었다. 김현희와 김승일은 북의 공작원이다. 안기부와 사건의 관계는 소문에 불과했다.”(주장의 요지)
그처럼 단정하는 객관적인 사실이 있는가, 당신들은 사건의 현장으로 가보았는가고 나는 물었다. 그들은 모두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보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정보원이나 외교부 등에 있는 방대한 자료를 조사했다.”
국정원 등의 자료 체크도 중요하다, 그러나 왜 사건현장을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는가? 그러자 이씨와 신씨는 반복해서 ‘우리들은 방대한 자료와 씨름해왔다’고 강조했다.

내 왼편에 있던 김씨는 시종일관 말이 없었다. 더욱이 오른쪽의 인물과 관련해선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통역이라고 칭하고는 있었지만, 일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나를 만나려고 했던 것일까. 진의를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그 ‘기묘한 통역’을 중간에 두고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 동안에 확실하게 감이 잡히는 것이 있었다. 그들은 놀랍게도 지금까지 ‘하나의 특정한 결론’에 이끌려 등을 떠밀려와 이른바 재조사(자료수집)을 계속해왔던 것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작성한 8월1일부의 중간보고서를 읽으면, 4월5일에 도쿄에서 어림짐작하게 했던 ‘재조사’는 실로 간판에 불과할 따름으로 ‘사전 결론 존재’라는 삭막하고 씁쓸한 생각이 뭉개뭉개 피어난다.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대한항공 858기 사건에 관한 의혹 사항은 350건에 달하는데, 재조사 팀은 350건을 182건으로 정리하여 검증을 진행시켰다고 한다. 그거야 어찌 되었든 이 사건에서 반드시 규명해야 하는 것은 아래의 4가지 사항이다.
(1)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대한항공기는 언제 어디에서 소실되었는가?
(2)어떠한 방법(프로세스를 포함한다)으로 소실되었는가?
(3)김현희는 진실로 어떤 인물인가?
(4)87년 당시의 한국 군사정권 및 안기부가 사건 발생 전후에 어떻게 관여하였는가?
(북한 관련은 조사 불가능하므로 제외한다)

이들 4가지 카테고리에는 극히 많은 작은 의문점이 존재하며, 저마다 복잡하게 뒤얽혀 있긴 하지만, 현시점에서 범인상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유감스러우나마 이 의문 덩어리들을 누구나가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에 의거해서, 개별적으로 세세히 풀어나가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재조사 팀은 그런 불편한 작업을 수행했던 것일까? 아니다. 틀림없이 작업 착수시 외부로부터 돌출된 갖가지 의혹들을 가능한 한 부정하려는 자세를 취하기 때문인 것이 틀림없는, 중간보고서 여기저기에 ‘지극히 박약한 근거’나 ‘추정’이나 ‘속임수’를 흩뿌려놓고, 이를 곧바로 ‘단정’이나 ‘결론’으로 전환하는 수법을 여보란듯이 과시하면서, 동시에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될 의혹을 천연덕스럽게 누락시켜놓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증거자료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꼭 끌어안고는 공개하려 하지 않는다.

가령 그들은 장문의 조사결과 보고서를 다음과 같은 의혹 한 가지에서 시작한다.
“안기부 요원이 폭발물을 설치하고 외교관 11명과 함께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렸다는 북한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된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진다.
“바그다드?아부다비 승객명부 (아부다비에서 내린 승객)은 안기부가 발표한 15명뿐.”
“(15명 가운데) 두 사람의 김(하치야 마유미 즉 김현희와 하치야 신이치 즉 김승일)의 행적을 사전에 파악하고 그들만을 신속하게 추적한 것이 아니고, 아부다비에서 내린 모든 승객의 신원을 확인했고 두 김의 행적이 특이하므로 의심을 품고 추적했던 것을 (재조사 팀은) 확인했다.”(주는 필자)
이것은 뒷날의 김현희 진술이나 안기부 수사보고, 당시 한국정부의 사건관여에 관계된 극히 중요한 포인트이다.

재조사 팀에 의하면 아부다비 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기에서 내린 승객 15명은 ‘이라크 인 8명, 팔레스타인 인 2명, 미국인 2명, 독일인 1명, 일본인 2명 등’ (원문 그대로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국적별 사람수를 기록한 문장 말미에 그들은 왜 ‘등’을 붙여 놓았을까? 내린 사람들을 일단 15명이라고 '단정‘했다. 그렇지만 실은 15명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덧칠을 해놓은 것일까.

또 재조사 팀은 한국정부(안기부)에 의한 ‘이상할 정도로 재빠른 범인 특정’이라는 의혹에 대해 일체 ‘문제없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판단’을 내리고 ‘확인’을 했다는 것인가. 그들은 (아부다비에서 내린 15명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두 사람의 하치야(두 김)를 제외한 13명을 직접 만나 각각의 진위를 확인했다는 것인가. 아니, 그들은 한국으로부터 거의 나오지 않고, 어처구니없게도 과거 안기부나 외무부가 작성하여 <안기부 수사보고서>의 원 데이터로 삼았다고 생각되는 자료 따위를 보고, 즉 그들 독자의 태만한 방법으로 ‘판단’ 및 ‘확인’을 한 것이었다.

전술한 것처럼 재조사 팀이 다루고 있는 의혹 사항은 다종다양하다. 따라서 여기서는 그 가운데 우선 눈에 띄는 주요한 것을 적시하고, 거기에 보충설명이나 새로운 문제점?의문 등을 첨부하고 싶다(이하의 이중꺽쇠 『』안은 그들의 조사결과=부분발췌나 골자. 검토대상 사항의 열거 순번은 중간보고서를 거의 준거한다. 주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은 경우 모두 필자).

◆하치야 마유미와 하치야 신이치의 추적 개시
『외무부 자료(국정원 보관) 등에 의해 (한국정부가) 두 김(하치야)의 추적을 시작한 시점은 사고 당일(1987년11월29일)의 늦은 오후(아부다비 시간)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한국측의 행동은 대체로 나의 현지취재 결과와도 합치하는 것 같다(졸저 『파괴공작-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의 진상-』을 참조). 그러나 문제의 뿌리는 보다 깊은 것이 아닐까. 동 추적개시 시점의 기술 뒤에 『안기부 쿠웨이트 파견관은 사건 전에 “북한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유럽과 중동을 맴돌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두 김’을 좇았다고 말하지만, 당시 김현희 일행은 ‘HACHIA'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즉 ’일본인인 HACHIA'를 어떻게 해서 ‘사전 정보의 북한인’으로 간주했다는 것인가. 중간보고서는 그러한 의문을 외면했고, 게다가 사전정보 입수와는 완전히 거꾸로인 『(안기부는) 두 김의 행적을 사전에 알고 그들만을 신속하게 추적했던 것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만족스러운듯 규명의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두 하치야’의 체포
『당일(87년12월1일) 아침 7시 바레인 당국에 협력을 요청한 후 공항에서 두 김을 체포했다』
라고, 중간보고서는 자신있게 적어놓았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히 허위이다. 두 하치야 체포의 현장에 한국 관계자의 모습도 바레인 당국자(경찰)의 모습도 없었다. 두 하치야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일본대사관원이며, 체포한 것은 공항경비관이었다. 왜 재조사 팀은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그들은 베오그라드 호텔에 관해서도 살짝 거짓말을 해놓았다.
『(두 하치야가) 오스트리아 항공회사를 통해 메트로폴 호텔을 예약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항공권 판매점도 메트로폴도 ‘예약’을 분명하게 부정한다.
그같은 거짓말과 함께 관심을 끄는 것은 동 보고서가 체포 전야(11월30일)의 “두 하치야가 숙박했던 바레인의 리젠시 인터콘티넨탈에서의 사건”을 누락시켰다는 점이다. 그날 밤 바레인 주재 한국대사관의 김정기 대리대사가 호텔을 찾아가 ‘하치야 신이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즉 일부러 일본인을 만나러 갔던 것인데, 그 목적은 무엇인가. 혹시 상대가 정말 테러리스트라면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동 보고서는 김 대리대사의 기묘한 행적(사실)에는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중간보고서가 무슨 까닭인지 누락시키고 있는 중요 사항이 그밖에도 몇 가지나 있다. 가령 베오그라드에서의 폭발물 수수, 폭발물을 집어넣었다는 라디오의 상세한 데이터(파나소닉 RF082/FM-AM쿼츠시계 라디오)를 김현희가 “정확하게”기억하고 있는 기묘함, 김현희 일행이 북의 공작원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로 간주된 암호 전화번호, 나아가 두 김이 일본의 패스포트를 입수한 경위 등이다. 또한 재조사 팀은 빈과 베오그라드에서의 두 하치야의 기묘한 사진과 ‘세 남자’의 증거도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런데 김현희는 어떤 인물인가. 중간보고서는 다시금 강렬하게 그런 생각을 품게 만든다. 김현희는 어떤 인물인가. 정말로 북의 공작원인가? 이 의혹에 재조사 팀(중간보고서)은 한층 힘을 돋군듯한 느낌으로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들이 발딛고 있는 곳은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

◆김현희가 북의 공작원이라고 단정하는 이유
『김현희의 안기부 진술내용과 72년에 촬영된 꽃다발 바치는 소녀 사진의 진위분석 등을 통해 김현희는 북한출신 공작원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72년11월에 평양에서 남북조절위원회가 개최되었다. 그때의 사진에 남측 대표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역할의 소녀들(화동)이 찍혀 있었다. 동 사진은 일본의 하기와라 료 씨(일본공산당 신문인 아카하타의 전 평양 특파원)이 제공했다는 것이다. 재조사 팀은 이것을 내밀며 대단히 뻐기며 떠든다. 『화동 가운데 김현희가 있는 미공개 사진을 확보』했다는 등의 언급을 하며 자신있어 하는 투로 김현희=북의 공작원임을 강하게 인상지우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그 사진은 ‘미공개’가 아니다. 89년10월에 간행된 하기와라 료 저서 『서울과 평양』에 게재되어 있는 것이다.

화동 사진에 관해서는 김현희 스스로 과거에 두 번씩이나 사기꾼 비슷한 행각을 드러냈다. 첫 번째는 88년1월. 안기부가 사건의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앞서의 화동 사진 가운데 한 장을 내밀며 ‘이것이야말로 김현희=북의 공작원이라는 증거다’라고 강조했다. 물론 김현희가 ‘이게 나다’라고 구체적으로 화동 가운데 한사람을 지목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귀 모양 등을 통해 거짓으로 판명되고 말았다. 두 번째는 88년3월이다. 이번에는 일본공산당 발간잡지 『그라프 곤니치와』가 하기와라 료 씨가 촬영한, 안기부 발표와는 다른 화동 사진을 게재했다(한 소녀에게 화살표를 붙여 ‘김현희 같다’라고 설명). 그러자 김현희가 ‘이게 나다’라고 맞장구를 쳤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사실과 다르다고 판명되었다. 기묘하게도 김현희는 소녀시절의 자기 얼굴 모습을 잊어버렸든지, 아니면 무언가 내막이 있어 헛소리에 헛소리를 거듭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재조사 팀(중간보고서)은 하기와라 료 씨에게서 제공받은 화동 사진(촬영=요미우리 신문 사진부 미쓰이시 히데아키 씨) 속의, 앞의 두 번째와는 다른 소녀를 지적하며 ‘실은 이게 김현희다’라고 말한다(김현희는 침묵). 그러나 그 사진을 아무리 살펴봐도 원래가 윤곽이 불분명하다는 것에 더해 이 소녀의 얼굴이 성장하여 김현희의 얼굴로 되리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면 제공자인 하기와라 료 씨는 동 소녀를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그는 98년11월에 저서 『북조선으로 사라진 친구와 나의 이야기』를 출판했다. 전작 『서울과 평양』의 “화동(화동소녀)의 사진”을 다시 게재했다. 또한 거기에 미쓰이시 씨로부터 사진제공을 받은 경위를 보충했지만, 가령 ‘이 소녀가 김현희 같다’는 따위의 코멘트(설명)를 신중하게 삭제하고 있다.

즉 지금 우리들의 눈앞에 있는 것은 재조사 팀만 묘하게 흥분하고 있는, 웃을래야 웃을 수 없는 광경인 것이다. 화동 사진 건은 관련 방증이 나오지 않는 한 ‘저 소녀는 김현희를 닮았다, 닮지 않았다’라는 무의미한 말싸움에 빠지고 만다. 기껏해야 “과거 안기부가 태연하게 전개한 허구”의 덧칠효과밖에 내지 못할 것이다. 바꿔말하자면 재조사 팀은 용두사미가 되어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말 험로를 의도적으로 설정했다고 보지 못할 사항이 아니다.

그런 화동 사진을 둘러싼 독선적인 억지 주장 따위는 차치하고, 보다 강력하게 직시하고자 하는 것은 ‘폭발물’과 관련된 건이다. 중간보고서는 이것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들(재조사 팀)은 어떤 성과를 얻었는가. 이렇게 바꿔 물을 수도 있겠다. 김현희 일행은 정말로 파괴공작에 관여했던 것인가?

◆김현희와 ‘폭발’의 관계
『김현희는 폭약의 종류와 명칭조차 알지 못했다. 안기부의 수사과정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진술하지 않았다. 콤포지션 C4.350g과 PLX(Picatiny Liquid Explosive) 700cc라는 폭탄의 이름과 양은 안기부가 김현희 진술에 토대하여 임의로 추정한 것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재조사 팀은 ‘(폭발물에 대해) 김현희가 진술하지 않았다’고 단언하면서, 그러나 서둘러 ‘김현희의 진술에 토대하여 추정’했다고 보충설명을 달았다. 즉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멋대로 주장을 펼쳐대는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이런 식으로 말한다.
『C4 폭약을 라디오에 소량 집어넣는 것은 가능하지만, 특수한 포장이 없는 한 전기회로에 영향을 미치므로 장시간 방치는 곤란하다』(김현희 일행이 베오그라드에서 폭발물을 받고나서 폭발까지 약 35시간 가량이나 경과했다!).
요컨대 그들은 ‘안기부가 C4나 PLX의 존재를 날조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에서 반전의 태도를 보이며 『C4는 X선(공항의 경비 검사장치)으로는 검색 불가능』이라든가 『(C4를 집어넣었다고 되어 있는) 라디오와 배터리의 기내 반입 사실은 당시의 전문으로 확인되었다』, 『PLX는 보통의 기계적인 충격으로는 기폭하지 않는 안전한 폭약』, 『PLX 400cc는 다이너마이트 500g보다 큰 폭발력으로 폭발, 테러에 사용가능하다고 판단된다』 따위를 더욱 열띠게 주장하여, 어떻게든 C4.PLX.라디오의 3점 세트에 의한 폭발을 인상지우려고 시도한다.

이야기하는 중에 무심코 진실이 드러난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재조사 팀은 안기부(국정원)의 손바닥 위에서 춤추는 작은 원숭이 같다. 그렇기 때문에 폭발물 문제는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녕 백지상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김현희 일행은 “폭발”에 관여했던 것일까? 폭발의 원점을 이루는 파나소닉 라디오 RF092를 기내로 반입했던 것일까?

◆라디오와 배터리의 수수께끼
『87년12월28일의 전문(국정원 자료)에 의하면, (김현희 일행은 라디오와) 배터리 4개를 분리소지, (바그다드의 공항 경비관이) 그 중 배터리 4개를 압수했지만, 일본인들의 강력한 항의에 의해 배터리를 라디오에 삽입했더니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김현희는 서울에 이송되고 얼마 안 돼 ‘바그다드 공항에서 대한항공기로의 탑승를 기다리는 동안 김선생이 라디오에 배터리를 넣었다’(주지)고 진술하고, 안기부가 수사보고서에서 그 진술을 재확인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중간보고서에 의하면 김현희 진술과 동 시기에 송신되어 안기부가 수사보고서를 만들 때 참고자료 가운데 하나였을 전문에서는 라디오와 배터리를 분리소지했었다고 한다. 도대체 어느 증언이 옳은 것인가? 물론 재조사 팀은 ‘전문 쪽이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 혼란(모순)애 김현희가 “파나소닉 RF082”를 기억하고 있던 이상한 정황 등(김현희의 라디오 데이터 기억을 재조사 팀은 부정하지 않는다)을 겹쳐보면, 실은 라디오와 배터리는 김현희 일행이 폭파범인이라고 강조하기 위한 소도구일 뿐이고, 파나소닉 RF082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재조사 팀은 중간보고서에 ‘새로운 사항’ 세 가지를 제시해놓았다.
하나는 전술한 화동 사진이다. 또한 그들은 『안기부등 10개 정부기관이 Task Force를 운영하며 대통령 선거의 여당 후보(노태우 씨)를 지원하기 위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판단했다』고 지적하고, 『(사건발생 직후의) 87년 12월2일부터 사건이 북한의 공작이라는 것을 폭로.홍보하는 “무지개 공작”을 추진했다』고 보고했다.

나아가 미얀마 바다의 해저(안다만 해=양곤의 동남방 약 300킬로미터에 위치한 Heinze Bok 제도 근방)에서 ‘인공조형물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했다고 하며 이렇게 이어나갔다.
『9월~10월 경에 실시하는 정밀검사에서 인공조형물로 추정되는 물체가 대한항공 858편의 동체라고 확인될 경우, 사건의 진상을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약속하고 중간보고를 끝마쳤다.
『잔해 및 유체, 유품이 매몰되어 있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유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희생자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유체와 유품 따위는 물론 동체의 인양작업에 착수한다』

기체의 잔해 등의 인양은 획기적인 것이다. 사건발생으로부터 19년째. 겨우 한 가닥 서광이 비친다.
그러나 잔해 등의 인양이 중간보고서가 말하는 것처럼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의문에 잇따라서 ‘왜 19년 동안이나 “오늘”을 기다려야만 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또아리를 튼다. 한줄기 빛은, 사건의 발생현장에 서기를 싫어하며 극히 박약한 근거.추측.단락.허위?속임수 따위로 조립된 중간보고서의 결론 가운데 한 가지, 가령 『군사정권과 안기부에 의한 사건의 기획 날조설과 사전 인지설은 사실이 아닌 것이라고 판단된다』를 위해, 너무나도 무력하게 사라져버릴 것 같지는 않은가.

가령 기체의 잔해 등이 인양되었다고 해도, 물론 이것을 사건 진상규명의 유력한 단서로 삼아갈 방책을 강구해야 하겠지만, 그것에 의해 사건의 전모가 명확하게 될 리는 결코 없다. 왜냐하면 필시 내일도 똑같이, 교묘하게 재조사 팀이 중간보고서를 사용해 제시한 ‘확실한 검증 없는 군사정권.안기부의 무죄방면설’이 드러내고 있는 것 같은, 어쨌든 “과거”를 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밀어넣어버리려는 강력한 힘이 작동되고 있음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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