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객원기자 (tongil@tongilnews.com)

본사 김양희 객원기자가, <겨레하나>가 주최한 북측 지원사업장 방문단 일원으로 11일부터 14일까지 3박4일간 평양을 방문한다. <겨레하나>는 북측과 협력해 평양에 빵공장과 국수공장 등을 만들어 지원을 해 왔는데 이번에 이를 둘러보는 것이다. 평양방문 신청부터 소감을 정리한 김양희 객원기자의 평양방문기를 일기식으로 순차적으로 싣는다. / 편집자 주


방북 발목 잡는 여권
2006. 10. 23. 월요일. 비

어제 선배 언니의 ‘여권 만드는데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린다’는 말에 회사 근처에 있는 송파구청 여권과에 전화를 해 ‘오늘 신청을 하면 여권이 언제 나오는지’ 물었다. 허거걱, 11월 2일에나 나온댄다. 중국을 경유해 가게 될 경우 3일에 떠나 하루밤 자고 평양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했는데 그렇다면 당일 나오는 급행 중국 비자를 신청하더라도 갈지 말지였다. 설마, 저녁에 가서 잠만 자고 들어가는 거겠지, 그렇다면 중국으로 저녁때나 떠나겠지...

아침에 비자를 받아서라도 가리라. 어떻게든 갈 수 있을꺼야 하면서도 또 모르는 일이었다.
송파구청 말고, 성동구청으로 전화를 했다. 역시나 11월 2일에나 나온댄다. 안되겠다 싶어 막무가내로 졸랐다.

“기자인데 취재 때문에 3일에 꼭 중국을 가야하거든요. 2일에 나오면 급행비자를 받더라도 어려울듯하니 하루나 이틀만 땅겨주시면 안될까요?”

휴~난 분명 기자가 맞지만 기자임을 사칭해 꼭 뭔가를 얻어내려는 것 같아 사람들에게 기자임을 내세우기를 싫어하지만 그런 거고 뭐고 없었다. 난 무조건 하루라도 여권을 땅겨 받아 어떻게든 평양에 들어가야 한다. 겨우 여권이랑 비자가 없어 방북을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도 급하다고 난리를 치니 담당직원이 하루 전날 오후에 찾으러 오라며 딸깍 끊는다.

기자라고 일찍 해주는 것은 절대 아닌 것 같고 원래 전날 오후까지 만들어지면 다음날 아침부터 찾아가도록 하는 것인데 반나절 일찍 찾아가라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1일에만 찾아도 2일에 비자를 받고 3일에 출발하면 된다.

오늘은 사실 밤늦도록 야근을 해야 하는 엄청 바쁜 날이지만 난 어떻게든 여권을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아직 여권 사진조차 없다.

우선 옆자리 친한 후배에게 일생기면 연락 달라 말해놓고 화장실 가는척한 뒤 사진관으로 미친 듯이 뛰었다. 다행히 여권사진은 바로 된단다. 아니 바로를 넘어서 3분이면 된다니...참 세상 참 좋아지긴 했지만 우리 참 너무 숨 가쁘게 살고 있는 건 아닌 지 싶었다.

그래도 오늘은 3분 만에 나오는 사진이 반가웠다. 사진을 찍고 나니 아저씨가 예쁘게 뽀샵처리를 해주신 댄다. 뽀샵처리까지 하는 것도 30분밖에 안 걸린다고.

어차피 나도 근무중이라 바로 여권을 만들러 나갈 수 없어 점심시간에 찾으러 온다고 아저씨께 훌륭한(^^) 뽀샵처리를 부탁하고 나왔다.

사무실에 와서도 쉴 순 없었다. 여권신청서를 써야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총알같이 튀어나가 여권을 신청해야 하니까. 신청하는 사람이 많아 1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말도 있기 때문에 단 일분이라도 더 시간을 줄여야 했다. 여권신청서는 꼭 칼라프린터로 뽑으라는 단서 때문에 다른 부서에서 출력하고 일을 하면서 여권신청서를 썼다.

흠~ 남편성이랑 이름도 쓰네, 이거 나중에 여권에 수정할 것이 있으면 5000원인가 내고 따로 신청해야하던데 결혼하면 돈 들겠군... 뭐 그런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뭐 한 것도 없는데 12시가 다 되간다. 마감 때는 점심도 너무 늦게 먹으면 안 되는데...
12시 15분전 그냥 화장실 가는척하고 서류를 가지고 냅다 송파구청 여권과로 향했다. 12시가 되니 한 후배 녀석이 “선배 어디예요? 점심 안 먹어요?” 한다.

“응 나 짐 화장실이야, 난 이따 1시쯤 손님 오신다니까 그냥 먼저들 가서 먹어.”
알리바이를 만들고 1시쯤 점심식사를 하겠다고 했으니 그래도 2시까지는 시간을 번 셈이었다. 이젠 빨리 접수를 하고 돌아와야 하는 것만이 남았다.
송파구청에 가니 왜 여권을 만드는 데 10일이나 걸리는 지에 대해 큰 안내문이 내걸려있다.

「현재 발급하고 있는 사진 전사 방식의 새로운 여권은 국제 민간항공기구(ICAO) 규격을 충족하고 각종 첨단 보안요소를 갖춘 국제적 수준의 여권입니다. 그러나 신여권은 기계를 이용해 접수하므로 발급신청서 스케닝, 전산수정, 신원조회 입력에만 수일이 소요되어 종전의 구여권에 비해 2~3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며 발급기간도 대략 10일 이상 소요 됩니다」

젠장, 기계는 또 이런 단점이 있구나. 바쁜 내 마음 몰라주고 인간미란 하나 없이 따박따박 정해진 시간대로 일하는 무미건조한 녀석. 인생 참 재미 없을꺼야. 휴~

여권은 5년짜리, 10년짜리를 신청할 수 있다. 가뜩이나 꼼꼼하지 못하고 또 이번 여권도 만기가 지나버려 다시하게 된 것이니 10년짜리 여권을 만들기로 했다.

번호표를 받고 그제서야 긴장이 풀려 화장실도 다녀오고 또 출출함도 달랠겸 자동판매기에서 율무차를 하나 뽑아 마시며 10년 후의 나를 한 번 떠올려본다.

미리 준비를 해 간 터라 그리 기다리지 않고 신청을 끝냈다. 2일에 찾으러 오기만하면 된다.

사무실에 들어와 한참 일을 하는데 겨레하나측에서 연락이 왔다.
일정이 늦어져 8일에 떠나게 됐다는 소식과 함께 중국 비자발급 시 주의할 점 등을 일러주려는 것이었다. 8일이라면 한결 느긋해진다.

그러나 일정이 늦어지는 것은 이번 한번 뿐이어야지 가뜩이나 분위가가 안 좋아 일정이 바뀌는데 더 늦어지거나 취소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방북신청서도 다시 써야한다. 중국 경유로 인해 여러 사람들에게 참 많은 비용과 시간을 쓰게 하는구나 싶었다. 그 여력과 자금을 좀 더 좋은 곳에 썼음 좋잖아.

그래도 오늘 평양에 가기 위한 준비 한 가지를 끝냈다. 사진도 한 장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누구나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고 했다. 통일도 우리국민 모두가 간절히 바라며 천천히 준비해야하는 거겠지.

평양, 라식수술 뒤 만나는 세상 같아
2006. 10. 24. 화요일. 맑음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다. 평양은 얼마나 추울까? 지난해 이맘때쯤 저녁으론 무척 추웠다. 안내원‘동무’들은 내복까지 입었을 정도니까. 다음달 평양에 갈 땐 칭칭 감고가야겠다. 비가 온 뒤라 평양만큼 세상이 참 깨끗하구나 싶다.

시골에 가면 공기가 좋다, 맑다 하지만 아직은 이렇다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평양에 가서 화들짝 놀랬다. 라식수술을 하고 난 후 세상이 갑자기 선명해진 느낌이라고 할까?

그곳은 참 맑고 환했다. 또 탁 트인 맑은 공기는 술조차도 취하지 않을 정도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나갔다가 놀란 것은 또 어떻구, 양각도 호텔 곁을 흐르는 대동강은 어찌나 맑은 지 바닥이 투명하게 다 비쳐 조그만 돌은 물론 모래알 하나까지 다 보인다. 또 태양이 떠오르는데 워낙 맑다보니 물에 비친 태양도 똑같이 환하게 비쳐 태양이 2개가 떠오르는 듯한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조금 있으면 그 멋진 장관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 킥킥킥~

출근길 무료로 배포하는 신문에 평양주민들의 평균연령이 세계적으로도 낮은 수준이라는 기사가 조그맣게 났다. 영양이 충분치 못해 발육부진 등 환경적 요인 때문이란다. 한쪽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만도 한해 15조, 또 다른 한쪽에선 영양부족 이게 말이 되는 건지. 미리 저축하는 것처럼 통일비용을 조금씩 줄여나간다고 생각하면 될 것을 왜 콩 한쪽 나눠먹기가 그리 어려운겐지. 평양에 간다고 하니 누군가 평양을 얘기하면 귀를 쫑긋 세우고 이제는 무슨 일이든 평양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퇴근 후, 집에 전북통일연대에서 소식지가 와있다. 어떤 기사들이 실려 있을까?

반갑게도 평양에 방문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북통일연대는 지난 7월 북측의 미사일 발사 이후에도 ‘교과서 종이 보내기’ 등의 지원 사업을 펼쳐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의 보답으로 북측 민화협이 초청을 해와 이번 방북이 성립되었다는 것이다.

베이징을 경유해 평양으로 들어가 학교를 돌아보며 학생들을 만나보았다는 그 기사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모란봉중학교에 효순이와 미선이의 자리가 있다는 것.

보도 사진에 의하면 단순히 자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책상위에 아이들의 사진과 몇 가지 소지품이 함께 놓여 있었다. 북녘에선 효선이 미순이 뿐만 아니라 남측 열사들의 이름으로 북의 학생이 대신 학교를 다니며 졸업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추모연대 측에서는 남측 열사 이름으로 대신 학교를 다닌 학생들을 초청하는 등의 교류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도 하루 빨리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번에 평양을 가게 되면 나는 어떤 기사를 쓸 수 있을까? 하나도 빠짐없이 꼼꼼하게 잘 쓸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주변우려, 내가 아무 일 없음 증명할 터
2006. 10. 27. 금요일. 맑음

아침부터 엄만 평양에 가는 게 안전하냐고 물으신다. 요즘 장 아무개씨와 민주노동당 인사가 구속됐다는 뉴스를 보시고 그러시는 것 일게다.

“아 북쪽에서 초청장 받고 통일부에서 허가 받고 가는데 도대체 무슨 문제가 돼. 엄마 걱정마.”

가볍게 말은 했지만 혹시나 평양방문이 취소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로 요즘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을 느낀다. 그래도 설마...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고 평양 지원사업장을 방문하러 간다는데 민간차원에서 교류하는 것까지 막을까?

지난해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또 주변에서 걱정과 만류를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

주변의 친구들은 200여 만 원이나 되는 비용을 들여서 왜 꼭 그곳을 가려고 하는 지에 대해 의아해 했다. 그것도 요즘처럼 뒤숭숭한 시기에...

비용이 늘은 것은 중국을 경유하기 때문이다. 직항로일 경우보다 50여 만 원 가량이 비싸졌다. 지난해 아리랑 축전 때 갔을 때보다 1박이 늘었는데도 비용이 같으니 오히려 훨씬 싼 셈이다. 아리랑 축전 공연비용이 빠지더라도 북측에서 체류 비용을 받았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최소의 비용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친구들은 “그 돈이면 유럽여행을 간다.” “너 가서 억류라도 되면 어쩔려고 거길 가냐?” 한다.

그렇지만 내가 직접 가서 억류되지도 않으며 그리 뒤숭숭하지도 않고 그래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또 평양에 가서 음식관련 자료 등을 보고 직접 먹어도 보며 나의 꿈을 하루라도 빨리 이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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