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봉 (전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의장)

지난 10월9일 북한이 실시한 핵실험은 한반도만이 국제사회에도 큰 파장을 몰고 오고 있습니다. 통일뉴스는 창간 6주년을 맞아 북핵실험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한반도 정세에 미친 영향과 관련해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연재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 편집자 주

① 북핵실험이 갖는 세계적인 측면
② 북핵실험과 동북아 정세
③ 북핵실험 이후 대선 관전법
④ 북핵실험과 FTA



10월의 마지막 날 밤, 북이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다. 핵실험 국면에 하나의 반전이다. 그러나 북이 6자회담에 참가하더라도 핵실험의 여파는 여전할 것이다.

누구나 체감하듯이 북의 핵실험은 여러 방면에 파장을 던졌다. 그 중 국내 정치권을 흔든 파장은 결코 적지 않다. 핵실험의 후폭풍으로 노무현 정부는 걷잡을 수 없는 레임덕으로 빠져들었고, 2007년 12월 대선을 향한 선거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면 북 핵실험이 대선 구도에 어떤 파장을 던졌는지 다음 여섯 가지의 현상에 주목해 보자.

하나 - 김대중 뜨고 노무현 지다

북 핵실험으로 가장 돋보이는 사람은 아무래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핵실험이 있었던 10월 9일부터 23일 사이에 4번의 강연과 4번의 언론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10월 28일 목포 방문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 기간 김 전 대통령이 행한 네 번의 강연은 주로 전남대, 서울대 등 대학생을 대상으로 했고, 네 번의 언론 인터뷰는 모두 외국 언론을 상대로 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강연과 인터뷰 횟수가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을 돋보이게 한 것은 북핵문제의 본질이 남북문제가 아니라 북미문제이며, 핵실험은 햇볕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미국의 대북정책의 실패라는 점을 설파한 대목이다.

그의 강연은 핵실험의 이면에 깔린 본질을 파헤치는데 날카로웠고 이 때문에 국내외의 주목을 끌었다. 그래서 그의 강연장은 청중으로 넘쳐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선일보가 안달이다. 10월 24일자 조선일보 사설은 제목부터가 요란하다. ‘김 전 대통령은 쉬는 게 나라를 돕는 길이다’는 제하의 사설을 실고 있다. 그 중 한 대목을 옮겨 보자.

"이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은 하루가 멀게 국제 공조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고 그 목소리 쪽으로 일부 세력이 가담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말에 일리가 아주 없다는 말이 아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국가 원로인 전 대통령이 자신의 그 일리를 건지기 위해 대한민국을 국제적 고립의 길로 빗나가도록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국가 위기에 나라의 중심에 서야 할 국가 원로인 김 전 대통령은 지금 쉬는 게 나라를 돕는 길이다." - 10월 4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그렇다 치더라도 핵실험은 지난 4년의 재임 시절 동안 노무현 대통령이 보인 무원칙, 무철학, 무소신, 무능력한 통일정책을 단번에 까발려 버렸다.

10월 9일 핵실험이 있었던 그날 저녁, 노무현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친절하게도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한 마디 했다. “북한이 불장난”을 했고, “포용정책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이 장면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활동상을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 대목에서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중달을 쫒는 삼국지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둘 - 열린우리당, 사망선고를 받다

싸늘해지는 농담 하나 하자. 누군가는 그런다. 열린우리당의 비극은 당명에서 비롯되었다고. 왜냐하면 ‘우리’가 ‘열렸’으니 다 나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니까.

농담이지만 현재 열린우리당의 모습을 보면 이 싸늘한 농담이 전혀 싸늘하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무원칙, 무철학, 무소신, 무능력이라는 평가는 그대로 열린우리당에게도 해당된다.

더러는 핵실험 이후 김근태 의장의 햇볕정책 고수와 개성공단 방문을 평가한다. 맞다. 굳이 김근태 의장의 노력을 저평가할 생각은 없다.

다만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열린우리당이 과연 포용정책을 제대로 할 능력과 준비가 있었느냐이다. 설령 능력과 준비는 없었더라도 6.15공동선언의 꽁무니라도 쫓을 자세가 있었느냐를 시비 걸고 싶다.

이라크 파병, 국가보안법 온존, 평택미군지기, 한미 FTA, 작전통제권. 이런 굵직한 현안과 함께 열린우리당은 무능력한 정치집단의 상징처럼 떠오른다.

북 핵실험은 이런 열린우리당을 일거에 날려버렸는지도 모른다. 북 핵실험 이후 10월 25일의 재보궐 선거에서 또 한번 참패하면서 열린우리당은 사망선고를 받았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속사정이야 알바 없고, 알 필요도 없지만 열린우리당의 참담한 패배는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정당의 말로가 어떤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왠지 씁쓸하다.

2003년 11월 1일 열린우리당 창당 때, 백년 가는 정당을 만들 것이라던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이명(耳鳴)처럼 맴돈다.

셋 - 박근혜 지고 이명박 뜨다

핵실험의 여파가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대표의 명암을 엇갈리게 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주가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는 지방선거 유세 도중 피습사건 직후이다. 이 때를 정점으로 박근혜의 주가는 떨어지기 시작했고, 7월에 이르면 지지율에서 이명박과 보합세를 이뤘다. 그 이후로 점차 이명박 전시장이 앞서기 시작해 추석 전 약 5%포인트 앞섰다고 한다.

그런데 두 사람의 지지율 변화를 주목해 보아야 할 시점은 핵실험 직후의 여론 조사다. 10월 14~15일 한길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이 전시장은 32.1%, 박 대표는 19.5%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지지율 차이가 12.6%포인트다.

이런 지지율 격차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은 참고해 볼만하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북한 핵실험도 ‘이념’보다는 안보와 경제가 결합된 ‘위기관리’ 문제로 인식되면서 이 전 시장에 유리한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민기획 박성민 대표는 “이 전시장은 박 전 대표에 비해 중도성향이고, 그만큼 여권 지지층을 끌어안을 여지도 많다”고 분석한다.(한겨레, 10월 18일자 8면에서 인용)

넷 - 고건은 위태롭고 한화갑은 위험하다

고건 전 총리는 유력 대선 주자이다. 그런데 최근의 지지율을 보면 유력이 아니라 군소 주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10월을 경과하면서 그의 지지율은 20%포인트 안팎에서 10%포인트 초반으로 뚝 떨어졌다.

그가 핵실험 직후 보인 행보는 눈여겨 볼만하다. 핵실험 직후 그는 “온정적 대북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논의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런 발언 직후 그의 지지도는 바닥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위태롭기는 한화갑 민주당 대표도 마찬가지이다. 한화갑 대표의 민주당이야 말로 열린우리당이 죽을 쑤는 사이, 그 반사 이익으로 기사회생한 정당이다. 7.26 보궐선거에서 조순형 후보가 당선 될 때만 해도 한화갑 대표는 기세등등했다.

그랬던 그가, 핵실험 이후 포용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10월 19일 한화갑 대표는 "북한은 민족적 차원에서 다룰 상대가 아니라는 게 증명되었다"며 "우리는 동맹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민주당의 당론인 햇볕정책 계승과는 정반대의 발언이다.

이날 발언의 파문이 확산되자, 한 대표는 수습에 나서 민주당의 당론은 햇볕정책의 계승에 있다고 강변했다. 그랬던 그가 그 후 한국 정부의 PSI 참여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10.25 재보궐선거에서 그의 출신지역구(전라남도 신안) 주민들은 민주당 대신 무소속 후보를 선출하는 것으로 화답하였다.

다섯 - 민주노동당, 핵실험에 핵반응 일으키다

"이게 진보정당이야? 이 개××들아!" 선정적인 이 문구는 10월 15일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를 취재한 오마이뉴스 기사 제목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정이지만, 민노당 내부의 정파 갈등은 오랜 세월을 두고 잠복해 왔다. 핵실험은 예외 없이 민노당에게 파장을 던져 잠복된 정파 갈등을 촉발시켰다.

민노당에서 핵심 논란은 핵 보유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과 ‘자위권 측면에서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 엇갈리면서 나타났다. 이것 말고도 핵실험 직후 민노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 장상환 소장은 남북 민중을 볼모로 하는 북의 핵실험을 규탄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 글에서 민노당 내부의 엇갈리는 견해에 대해 옳다 그르다는 편 가르기를 할 생각은 없다. 다만 핵 보유를 인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보다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하고, 미국이 회담장에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여론화하기 위한 실천투쟁이 없거나 부족했다는 사실만은 지적해 두고 싶다.

여섯 - 핵실험, 2007년 대선의 시대담론을 일깨우다

북 핵실험 이후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본격화되면서 대선구도가 요동치고 있다. 또한 핵실험 이후 경제문제에 가려 잠복되어 있던 통일문제가 전면에 떠오르고 있다.

통일문제가 전면에 부각되면서 ‘평화와 자주통일을 실현하려는 세력’과 ‘친미와 대북대결을 유지하려는 세력’으로 전선이 형성되었다. 다시 말하면 6.15공동선언 이행세력과 저지세력으로 대선 정국의 전선이 형성된 것이다.

전선이 ‘6.15 대 반(反)6.15’로 형성된 의미는 노무현 정권 하에서 애써 유린되었던 자주통일의 시대담론이 새로이 깨어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핵실험은 이렇게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2007년 대선에서 한 발짝 나아가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미 이루어 놓은 6.15공동선언이라는 역사의 성과물은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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