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발전위, 위원장 오충일)’는 지난 8월 1일 KAL858기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 중간발표에 이어 24일 KAL858기 동체 잔해 수중탐사가 실패로 끝났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국정원발전위는 KAL858기 사건의 주범으로 알려진 김현희에 대한 직접 조사결과 발표를 제외한 모든 조사활동의 결과를 발표했으며, 사실상 조사활동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 KAL858기 사건이 지난해 2월 3일 국정원발전위의 1차 조사대상 사건으로 선정된지 1년 9개월여 만이다.

그러나 이번 KAL858기 동체 잔해 수중탐사 실패는 그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어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내용적으로 사실상 종결된 국정원발전위의 KAL858기 조사활동 결과 역시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진 것을 제외하면 사건 의혹 해결에는 매우 미흡하다는 평가에 직면할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KAL858기 가족회와 시민대책위는 조사 결과에 반발하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정할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부풀려진 ‘동체 잔해 가능성’

먼저 KAL858기 동체 잔해 탐사를 살펴보면 결과가 말해주듯 지난 8월 1일 중간발표 당시의 국정원발전위의 발표는 매우 무책임한 것이었다.

국정원은 당시 “2006.5.10-12간 목격 지역 탐사를 통해 1987.11.29 실종된 KAL858기 동체로 추정되는 매몰 인공 조형물을 발견”했다며 “인공 조형물의 크기나 모양이 동체가 3부분으로 동강난 모습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중간보고서, 87쪽)

뿐만 아니라 “이후 동 인공조형물이 KAL858기 동체로 판명될 경우, 블랙박스와 유골 등의 인양도 가능할 수 있다고 판단돼...”라고 한껏 기대를 부풀렸다.(중간발표문, 10쪽)

그러나 지난 5월 현지 탐사에 동행했던 민간인 전문가 박요섭 UST21 이사는 “안정적인 상황속에서 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동체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인조조형물로 추정되는 물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정밀조사가 필요하며, 그때까지 1차조사의 결과를 동체와 연관지어 외부에 발표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라고 발전위 귀국보고회에서 말했다”고 통일뉴스에 밝힌 바 있다. [관련기사 보기]

당시 수중장비를 이용한 영상 조사 등으로 만은 ‘인공 조형물’이 KAL858기 잔해일 가능성을 외부에 발표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발전위는 영상사진까지 첨부해 이를 중간조사 발표의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포함시켜 대대적인 언론의 조명을 받았으나 이번 10월 재조사에서 결국 KAL858기와 관련이 없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전문가의 견해조차 반영하지 않은 국정원발전위의 이 같은 신중치 못한 일처리는 지나친 성과주의이거나 과도한 언론플레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상임대표 김병삼) 김덕진 사무국장은 “중간발표 시 왜 이렇게 서둘러서 발표하는지 이해 못했는데 아무래도 성과주의였던 것 같다”며 “정확한 조사과정을 거치지 않은 졸속발표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KAL858기 가족회’(이하 가족회) 차옥정 회장은 “중간발표 전에 (국정원발전위)조사관들을 만난 자리에서 80%이상 KAL858기 기체라고 분명히 들었고 시신이 있을지 모른다고도 이야기했다”며 “미얀마 현지조사 때 가족회 두 사람이 같이 간다 했는데 말 한마디 없이 갔다”고 말하고 “가족들에게 어떻게 이렇게 대하는지, 최대의 인권유린을 당했다. 이렇게 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국정원의 '국정원발전위 따돌리기'

KAL858기 사건에 대한 국정원발전위의 중간발표 시점을 두고 여러 가지 논란이 많았지만 김현희를 직접 대면 조사하지 못한 점과 미얀마 안다만 해역에서의 KAL858기 동체 수색이 마무리되지 못한 점이 가장 중요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특히 동체 수색과 관련해서 국정원이 국정원발전위를 따돌리고 독자적인 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통일뉴스를 통해 문제가 제기됐다. [관련기사 보기]

국정원이 독자적으로 KAL858기 잔해로 추정되는 ‘인공 조형물’이 발견된 지점에 대한 조사를 이미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이 민간과 합동으로 구성한 국정원발전위에는 이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가 뒤늦게 미얀마 현지에서 이를 인지한 국정원발전위의 항의를 받고서야 관련 내용을 넘겨줬다는 것이다.

이같은 국정원의 '이중 플레이'의 내막은 국정원발전위의 중간보고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확인할 수 있다.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국정원은 2004.8.1-5간 미얀마 출장시 KAL동체 관련 제보를 입수했고, 2004.12.15-30간, 이어 2005.1.30-2.5간 두 차례 현지인 출장을 통해 탐사에 나섰으나 잔해 확인에 실패하고 2005년 3월 29일 채증.수색활동을 종료했다는 것이다.

국정원발전위는 이미 2004년 11월 2일 발족해 공식활동에 들어간 상태였으며, 특히 2005년 2월 3일부터는 KAL858기 사건을 7대 우선조사대상 중의 하나로 선정한 뒤 본격 조사에 돌입한 상황임을 고려하면 이같은 국정원의 단독 조사와 단족 조사종결 조치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국정원발전위의 국정원측 간사위원을 맡고 있는 안강복 국정원 기조실장은 ‘국정원발전위가 발족하기 이전에 또는 발족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측에서 발전위를 제쳐놓고 독자적으로 조사한 사례가 KAL858기 사건 외에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조사한 적이 없다”고 분명히 답했다. [관련기사 보기]

특히 중간보고서는 “2006.4.3-7간 진실위는 KAL858기 사건 관련 의혹 해소를 위한 미얀마 출장을 통해 상기 1, 2차 채증 활동 사실을 확인, Taung-Pa-La 섬 앞 바다의 매몰 목격담에 대한 확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현지 탐사를 실시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중간보고서, 86쪽)

즉 국정원발전위는 국정원 측으로부터 아무런 조사내용도 넘겨받지 못한 상태에서 올해 4월 미얀마 현지 출장을 통해 국정원의 ‘1, 2차 채증 활동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국정원발전위가 엄연히 활동중임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이 자체 조사에 나선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국정원이 조사한 내용을 국정원발전위에 전달조차 하지 않은 점이 명백히 드러난 것이다.

중간발표 직후 KAL858기 가족회와 대책위는 “이와 같은 일들은 국정원 진실위의 출범 정신을 훼손한 것은 물론, 지난 20년간 실종된 가족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려온 우리 가족들의 가슴에 다시한번 못질을 한 것이며, 국민을 기만한 용서 받지 못할 잘못이다”고 규탄하고 “국정원은 왜 한지붕 아래 있는 국정원 진실위에 조차 모든 것을 알리지 않고 조사를 했는지, 동체 추정 물체를 발견하고도 왜 1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인양작업을 하고 있지 못한지 국민이 납득할만한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고 촉구했다.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국정원발전위는 국정원 측에 강력히 항의하기 보다는 이같은 내용을 폭로한 통일뉴스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고 오히려 통일뉴스 기자에게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의혹 못푼 조사결과, 진상규명은 과거사위로

국정원발전위가 한껏 기대감을 부풀렸던 동체 잔해 수색 결과가 허무한 끝을 보게 됨으로써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도 난관에 봉착했다.

이제 남은 것은 김현희 직접 대면 조사 뿐이지만 지금까지 국정원발전위의 조사 경과나 능력으로 볼 때 이것도 특별한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김현희 화동사진 1매 추가 확보와 이 사건을 대선국면에 활용한 ‘무지개공작’의 실재 확인 정도가 중요한 성과 축에 들고 기타 몇 가지 추가 확인 사항들이 국정원발전위 조사의 성과에 보태진 정도이다.

특히 “김현희는 안기부 수사 과정에서 폭탄의 양과 종류에 대해서 진술한 바 없음을 확인”했고 “‘콤포지션C4 350g’과 액체 폭약 ‘PLX(Picatiny Liquid Explosive)700cc’ 라는 폭탄의 이름과 양은 안기부가 김현희의 진술에 의존하여 임의로 추정한 것”이었다는 발표는 과거 안기부의 발표가 허구였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국정원발전위는 중간발표에서 “KAL858기가 실종된 원인을 ‘폭탄 테러에 의한 추락’으로 추정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는 판단”이라며 “KAL858기의 실종 원인을 ‘폭탄 테러에 의한 추락’으로 추정할 경우... 김현희, 김승일이 KAL858기의 폭파범이라는 심증을 갖는 것은 무리가 없다는 판단”이라고 밝혀 주변을 놀라게 했다.

서현우 대책위 조사팀장은 중간발표에 대해 “심각한 유감과 더불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이번의 조사보고서는 그야말로 ‘추정’과 ‘추정을 통한 판단’, 또 ‘심증’이란 어휘를 너절하게 늘어놓으며, 기존의 구 안기부가 내린 결론으로 일관하고 있다. 마치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그것에 억지로 끼어 맞추려는 듯이 말이다”라고 비판했다.

이번 KAL858기 잔해 탐사가 ‘태산명동 서일필’에도 못미치는 결과로 끝남으로써 사실상 국정원발전위의 조사는 종결됐으며 사건의 진상규명은 실패로 돌아갔다.

KAL858기 가족회와 대책위는 11월 중순경 이 사건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정할 예정이다. 이제 KAL858기 사건의 진상규명은 국정원의 손을 떠나 과거사위로 넘겨지게 된 셈이다.

그러나 87년 11월 29일 115명의 승객을 태운 채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사라진 KAL858기 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드러나게 될 때까지 피해 가족들은 더 많은 인고의 시간을 겪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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