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욱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정책위원장)

통일뉴스는 한국민권연구소와 공동으로 특별기획『북한의 핵시험 어떻게 볼 것인가?』를 7회에 걸쳐 싣는다. 연재 순서는 다음과 같다. / 편집자 주

①북한 핵시험은 미국의 대북전쟁정책에 대한 자위적 조치이다
②북한 핵실험은 미국과의 최후대결전이다
③북한의 핵능력, 어디까지 왔나?
④북한의 핵시험, 과연 위협인가?
⑤북한의 핵시험 이후 민심은 무엇인가
⑥한반도 전쟁위기, 진보진영은 무엇을 할 것인가
⑦새로운 세계는 가능하다


10월9일 북한의 핵시험 이후 국내외 여론이 들끓고 있다.

북한의 핵시험이 ‘한반도와 동북아 안전의 위협’이며, ‘한반도 주민의 안전을 볼모’한 ‘군사적 모험주의’라는 비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진보진영 내에서조차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작지 않다. 심지어 지난 15일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 '한반도 평화실현을 위한 민주노동당 특별 결의문' 논의과정에서 북한의 핵시험에 대해 어떤 수준의 입장을 표명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일부 중앙위원들이 퇴장하고 욕설이 난무하는 등 웃지 못 할 사태까지 빚어지기도 하였다.

과연 북한의 핵시험은 평화의 위협이며, 비핵화의 원칙을 저버린 것인가? 진보주의자들은 북한 핵문제에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북한의 핵시험을 반대하는 것이 과연 진보적 입장일까?

북한의 핵시험은 평화를 위협(?)

북한의 핵시험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한다. 이것은 북한의 핵시험을 비판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이다. 그렇다면 과연 북한의 핵무장이 과연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할까?

북한의 핵무장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한다면 다음의 세 가지 경우 중 하나일 것이다. 첫째 북한이 핵무기로 주변국들을 공격하거나 위협하는 경우, 둘째 북한의 핵무장을 이유로 주변국들이 북한을 공격하는 경우, 셋째 핵도미노가 발생하여 주변국들로 핵무기가 확산되어 군비경쟁이 촉발되고 긴장이 높아지는 경우 등이다. 이 세 가지 경우를 조목조목 따져 보자.

첫째 북한이 주변국을 공격하거나 위협하는 경우이다.

북한의 주변국들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이다. 미국은 1만기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태평양 지역에 사용할 수 있는 3천기 이상의 핵탄두를 실전배치하고 있다. 1991년도 전술핵무기 철수선언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공식적으로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에도 핵우산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두 나라 역시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 일본은 이미 3천Kg 이상의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어 수개 월 이내에 언제든지 핵무장이 가능하다. 러시아 역시 1만기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도 400여기 이상의 핵탄두를 실전 운용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2005년 2월10일까지 단 한 기의 핵무기도 보유하지 않았었다. 북한은 사실상 동북아의 유일한 비핵국가였다. 반면 수천기의 핵무기로 무장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핵선제공격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것은 2002년 1월이고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 핵선제공격 대상국으로 지정된 것은 2001년 겨울이다. 이 시점에 북한은 핵무기를 전혀 개발하지 않고 있었으며, 북미제네바 합의는 여전히 유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9.11사건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북한에 대한 핵선제공격 방침을 정하였다.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악의 한 축이었던 이라크는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나라가 완전히 망해 버렸다. 미국의 침략적인 대북 정책이 변화하지 않는 한 한반도에서는 핵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의 핵무장 이전에도 한반도에서 핵전쟁 가능성이 존재했고 여전히 감소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만 놓고 보더라도 북한의 핵시험 때문에 한반도에 전쟁 위협이 더 증대했다는 주장은 충분히 납득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과연 북한이 핵무기로 주변국들을 위협할 수 있을까?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를 핵으로 위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핵무기 1만개를 보유한 미국을 북한이 핵무기로 위협한다는 것도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미연례안보회의(SCM)는 매년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제공을 공약하고 있다. 올해 안보회의에서 핵우산 공약은 재차 확인될 것이다. 일본의 핵우산은 한국의 핵우산보다 훨씬 견고하다. 즉 북한이 핵으로 한국과 일본을 공격하는 것은 미국을 핵공격 하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

특히 북한의 핵무기가 한국을 위협한다는 주장은 유아적인 정치선동일 뿐이다. 평양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200Km가 채 되지 않는다. 남북한의 주력군은 대부분 휴전선 인근 지역에 얼굴을 마주한 채 밀집되어 있다. 휴전선에서 평양까지의 거리는 100Km 안쪽이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한반도에서 사용한다면 한미연합전력이 밀집되어 있는 휴전선 인근과 수도권이 유력하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의 수도인 평양과 조선인민군 주력이 핵공격 지역에 너무 근접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북한이 만약에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사용하게 된다면 그것은 자신의 머리위에 핵탄두를 떨어뜨리는 것과 똑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더욱이 한국에는 모두 네 곳의 원자력발전소가 존재한다. 만약 북한의 핵공격으로 이 중 한 두 기라도 폭발한다면 한반도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방사능 오염지대가 될 것이다. 즉 한국에 대한 핵공격은 북한의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전쟁은 이기고자 하는 것이지 자해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북한이 자해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는 한 한반도에서 북한의 핵무기가 사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의 핵무장은 오히려 전쟁 가능성을 감소시킨다

두 번째 경우를 보자 동북아에서 북한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들은 미국과 일본, 한국 등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세 나라 중 적어도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있으며, 대북 전쟁계획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도 미국이 새로운 대북 전쟁계획인 ‘작계 5027-03’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북한의 핵시험은 이들에게는 더 할 나위 없는 전쟁의 명분이 될 수 있다. 때문에 북한이 핵공격 의사가 없다고 해더라도 핵시험은 미국과 일본의 군사적 행동을 유발시켜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게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시험으로 과연 전쟁의 명분이 더 커졌을까? 전쟁의 명분은 이전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위조지폐와 인권 등의 문제로 북한을 공격할 수도 있었고 2003년 1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을 때도 공격할 수 있었다. 영변의 5MWe원자로를 가동하고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시작 했을 때도 전쟁의 명분은 충분했다. 적어도 2005년 2월10일 핵보유를 선언했을 때 미국은 북한을 공격했어야 했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북한을 공격하지 않고 있다. 이라크는 북한보다 훨씬 더 경미한 행동을 했지만 미국의 침공을 받고 후세인은 재판장에 서 있다.

이 같은 이율배반적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이라크보다 북한의 행동이 덜 위협적이기 때문일까?

북한 핵무장에 대한 온갖 비난과 억측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무장이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오히려 감소시키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객관적 진실이다.

미 본토에 대한 공격능력은 논외로 하더라도 최소한 북한은 미국의 가장 큰 항공모함(?)인 일본을 핵보복 공격하여 격침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이 핵공격을 당하면 전 세계 미군전력의 40%정도가 순식간에 소멸된다. 미국이 핵무장한 북한을 공격하는 것은 이라크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러한 부담 때문에 미국은 더 진지하고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핵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무장은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오히려 감소시킨다.

전쟁은 명분 때문이 아니라 국가 간 이해관계와 교전국 사이의 전력 불균형에서 발생한다. 이 중 결정적인 요소는 전력 불균형이다. 현대 사회에서 국가 간 이해관계 충돌은 빈번히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전쟁이 터지지 않는 이유는 물리적 충돌이 이해의 손실보다 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에는 거의 반드시 전쟁이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선택된다.

미국은 2차 세계 대전 직후부터 중앙아시아 진출의 교두보이자 막대한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중동을 장악하기 위한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부시의 아버지는 소련 붕괴 직후인 1991년에 교묘하게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유발시켜 걸프전을 일으켰다. 당시에도 미국의 마음은 바그다드에 가 있었지만 이란과의 8년 전쟁으로 막강한 전력을 구축한 이라크 공화국수비대와의 전면전은 미국에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미국은 이라크와 휴전하고 10여년에 걸친 장기봉쇄에 들어간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이라크의 전쟁수행능력은 꾸준히 약화되었고 미국은 이라크의 방어능력이 임계점에 도달한 2003년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빌미로 전쟁을 개시하였다. 만약 이라크가 실제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여 이라크 침공의 대가가 컸다면 미국은 쉽게 전쟁을 결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은 반대의 경우이다. 중국은 1964년 원폭, 1967년 수폭 시험에 성공하였고 1972년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에 성공하였다. 모택동의 신민주주의혁명승리 이후 미국은 20여 년간 중국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으며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핵과 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하자 미국의 태도는 돌변하였다. 1974년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여 수교를 합의하였고 1978년 1월 중국과 미국은 정식 수교하였다. 물론 미국은 그 즉시 대만과 단교하였다. 중국의 핵무장은 동북아의 전쟁위기를 초래한 것이 아니라 미국과의 관계 개선, 즉 평화의 가능성을 더욱 증대시켰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우도 비슷하다. 미국은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에는 온갖 비난을 퍼붓고 있지만 이미 핵을 보유한 인도, 파키스탄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인도의 핵개발까지 지원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같은 역사적 사례만보더라도 ‘북한의 핵무장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한다’는 도식적 명제는 수정될 필요가 있다. 지구상에는 제국주의가 엄연히 존재하고 침략과 전쟁은 제국주의의 본성이자 생존방식이다. 소련의 해체 이후 국제 분쟁이 오히려 증대했다는 사실은 제국주의진영에 대한 대항세력의 전력 균형이 세계 평화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핵에 대한 전력 균형은 재래식 무기로 달성될 수 없다. 재래식 무기를 제 아무리 증대시켜도 핵무기와는 대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핵에는 핵으로 밖에 균형을 이룰 수 없다. 북한과 미국의 핵균형은 냉전을 유발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열전은 억제한다. 즉 전쟁의 가능성을 상당 부분 감소시킨다.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지속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미국의 적대적인 대북 정책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미국이 패권적인 한반도 정책을 스스로 수정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때문에 북한은 독자적으로 자국의 안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미국에 대한 전력 균형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핵무장으로 전력 균형을 상당 부분 달성했다. 북한의 핵보유가 한반도 전쟁 억제에 긍정적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동북아 핵확산은 실제가 아닌 허상

마지막으로 북한의 핵시험이 동북아의 핵도미노와 군비경쟁을 유발시킬 것이라는 주장을 검토해 보자.

북한의 핵보유로 이제 동북아에서 비핵보유국은 한국과 일본뿐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을 제공받고 있으며 수천 기에 달하는 미국의 핵무기를 실전 배치하고 있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동북아의 추가적인 핵확산은 실제가 아닌 허상일 뿐이다. 물론 한국과 일본이 독자적인 핵개발을 추진하여 동북아에 긴장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독자적인 핵개발은 미국과의 동맹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게 될 것이며 미국은 핵확산을 막기 위해 이를 강력히 저지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최근 일본을 방문한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확인한 바 있다.

한일 양국의 대미의존도는 북한과는 달리 절대적이다. 미국이 ‘제재와 압력’을 가한다면 이 두 나라는 버티기 어렵다. 때문에 일본과 한국이 미국과의 마찰을 각오하면서까지 독자적인 핵무장을 추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설령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이들이 독자적 핵무장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이완 또는 해체로 귀결돼 오히려 동북아의 냉전적 질서를 해체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일본과 한국의 핵무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설령 이들이 독자적인 핵개발을 추진한다고 해서 반드시 동북아의 긴장이 현재보다 높아진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북한의 핵무장이 군비경쟁을 유발할 것이라는 주장도 검토가 필요하다. 물론 북한의 핵실험이후 일본의 핵무장론이 공공연하게 등장하고 한미일 3국의 군비증강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이 동북아 군비증강 열풍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미국은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북한의 핵실험과 무관하게 한국과 일본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하고 있다. 해외주둔미군재배치(GPR)라는 명목 하에 한국과 일본의 미군전력을 급속히 강화하고 있다. 일본의 재무장은 사실상 완료된 것이나 다름없으며 날이 갈수록 일본은 군사대국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물론 북한의 핵실험 이후 이들의 군비증강 명분이 더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명분은 명분일 뿐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았더라도 미국은 MD개발을 추진했을 것이며, 일본은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진출하려 했을 것이다. 최근 동북아의 군비경쟁 바람은 미, 일 제국주의자들의 팽창 열망과 독점자본의 탐욕이 원인이지 북한의 핵시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한미일 3국의 군비팽창 결과가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원인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모든 책임을 북한의 핵시험에 전가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명백히 공정성을 잃은 것이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조금만 과학적으로 사고하면 달걀이 먼저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 수 있다. 동북아 군비경쟁의 원인은 북한의 핵실험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의 패권적 세계전략이다.

북한의 핵정책은 결코 비이성적이지 않다

일부 사람들은 북한의 핵무장이 ‘한반도 주민을 볼모’로 한 ‘군사적 모험주의’라고 질타지만 북한의 행동에 대해 냉정하게 따져 볼 필요는 있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북한의 핵정책은 결코 비이성적이지 않다’고 보도한 바 있다. 북한은 아무런 타산 없이 무모하게 긴장을 유발시키고 ‘군사적 모험’을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행동은 매우 이성적이며 어떤 면에서는 현명하다고 볼 수도 있다.

부시 정권의 출범이후 국제사회는 대화와 타협이 사라지고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부시는 세계를 둘로 나눴다. 미국의 이익을 기준으로 선과 악의 이분법적 세계를 만들어 놓다. 미국에 굴복하는 세계는 선이고 저항하는 세계는 악이다. 과연 미국에 이익에 반하는 행동은 모두 악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이것은 상식적인 문제이다. 북한이 자신의 체제를 포기하면서까지 미국의 이익을 따라야할 이유는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국에게 ‘악마하고도 대화’해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북한이야말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악마’라고 지칭한 바로 그 자와 끝까지 대화하려고 노력하였다. 북한은 막무가내로 핵시험을 한 것이 아니다. 부시 정권 출범 이후 지난 5년여 동안 대화를 위한 북한의 노력은 무시하고 핵시험이라는 결과만을 놓고 질타하는 것은 누가보아도 공정한 태도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의 핵시험을 비난하지만 그들은 문제해결의 뚜렷한 방법론은 단 하나도 내놓지 못한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미국과 국제사회의 선의를 기대하라는 것이다. 그 선의라는 것이 무엇인가? 이라크처럼 침공당할 날만 기다리고 있으라는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정권을 포기하고 소련처럼 자본주의 진영에 무조건 투항하라는 것인가?

비이성적인 것은 북한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을 바라보는 서구적 태도이다. 진보주의자들은 북한을 보는 자신들의 시각이 서구 사회의 온실 속에서 배양된 또 다른 형태의 서구 중심적 사고가 아닌지 진지하게 검토해보야 한다.

북한의 핵보유가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한다

일부 진보주의자들은 북한 핵시험이 진보주의자들의 비핵화원칙을 배신한 것이라면 격렬히 비난한다.

비핵화는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온 인류의 한결 같은 소망이다. 진보주의자라면 비핵화를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비핵화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이다. 낭만적 반핵주의자들은 북한의 핵실험을 맹렬히 비난하지만 북한의 안보불안과 실질적인 세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항의하고 촉구하고 집회하고 시위한다고 1만여 기에 달하는 핵무기를 미국이 스스로 철폐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레이건의 선의를 기대하면서 일방적인 핵군축을 시도했지만 미국은 단 한 기의 핵무기도 실질적으로 감축하지 않았다. 미소군축협상이 시작된 것도 미국의 선의 때문이 아니라 당시 소련이 보유한 강력한 핵억제력 때문이었다. 고르바초프는 미국에 환상을 가지고 선의를 기대하면서 일방적 핵감축으로 핵 없는 세계, 평화공존의 세계를 꿈꿨다. 그러나 그 꿈은 몽상일 뿐이었다. 고르바초프의 몽상 때문에 소련만 붕괴되었고 오히려 미국의 핵독점체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소련의 붕괴 이후 세계는 전쟁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전쟁의 시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몽상정책이 과연 진보의 길, 비핵화의 길일까? 고르바초프의 일방적 핵감축이 세계 평화에 기여한 것은 조금도 없다. 이 같은 역사적 경험은 제국주의에 대한 일방적 핵감축이 세계 평화와 비핵화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는 북한을 포함하여 9개 나라이다. 비핵화의 관건은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 핵강국들이 핵무기 감축 또는 철폐할 의사를 가지고 있는가이다. 북한의 핵시험 이전에 누구도 이 국가들의 비핵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원하지 않는다면 미국도 최소한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핵무기를 감축 또는 폐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실험 이후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며, 전략적 목표’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혹자들은 북한이 핵시험을 하면서 비핵화를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현실을 냉정히 보면 북한의 주장은 결코 모순이 아니다. 미국은 스스로 핵무기를 폐기할 의사가 없다. 1980년대 소련이 미국과 군축협상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 상응한 억제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58년부터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하고 있다. 북한은 줄곧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해 왔지만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불거지기 이전에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불거지자 미국의 태도는 변화하였다. 1990년 대 초 미국의 전술핵무기 철수선언과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발표된 것도 당시 김일성 주석이 동시사찰론을 제기하고 한반도에 배치된 미국의 핵무기를 문제 삼자 미국이 자구책으로 내놓은 것일 뿐이다.

다소 역설적이지만 북한의 핵개발이 오히려 한반도 비핵화 논의를 촉발시켰다. 북한의 핵무장과 한반도 비핵화가 모순이라는 주장은 국제 정치의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미국이 핵선제공격 전략과 핵무기는 상수로 보고 북한의 핵폐기와 한반도 비핵화를 동일시하는 일방주의적 사고일 뿐이다. 북한의 핵보유로 오히려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일정에 오르게 될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를 용납할 수 없다. 북한의 핵보유를 저지하기 위한 방법은 전쟁과 협상 두 가지뿐이다. 만약 미국이 전쟁을 선택한다면 미 본토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참화를 입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협상을 한다면 미국은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요구를 들어 줄 수밖에 없다. 결국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전쟁 사이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보다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한반도 비핵화의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북한의 핵보유와 한반도 비핵화는 대립한다’는 명제는 북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때문이지 결코 객관적인 진실이 아니다. 북한의 주장대로 한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며, 김일성 주석의 유훈은 북한 정치의 준거점이다.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유훈임을 강조하면서까지 비핵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그들의 진심에 귀를 기울여 달라는 절박한 호소이다. 진보주의자들이 이러한 절박한 호소에 귀를 닫아버릴 이유는 없다.

한반도 비핵화는 원칙, 그러나 문제는 현실

핵으로 핵을 다스릴 수밖에 없다. 큰 불은 불로 끄듯이 한반도에서 미국의 핵무기를 제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에 상응한 억제력을 갖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핵시험 이전에서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 공약을 이행하였다면 사태가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의 관심사는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의 일방적인 핵폐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추구하는 수밖에 없다. 핵으로 핵을 제거하는 것이 현재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비핵화의 현실적 방법론이다.

진보주의자는 이상주의자이면서 동시에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현실을 떠난 이상은 몽상일 뿐이다. 현실감각을 잃어버린 낭만적 비핵화 원칙만 들이대면서 북한의 핵시험에 일방적으로 비난만 퍼붓는 것은 결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진보주의자들의 진지한 태도가 아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국제 정치의 냉혹한 현실-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질서-을 무시하고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이상적인 행동만을 강요하는 것은 명백히 진보적 관점이 아니다.

우리는 북한의 행동을 보다 진지하고 사려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친미주의자, 보수주의자라면 그런 진지한 태도는 필요 없을 것이다. 북한 핵시험 이후 한반도 정세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진영이 불필요한 내부논란으로 자중지란에 빠져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역사와 민중 앞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이제 맹목적이고 교조적인 정파적 관념을 벗어 던지고 무엇이 민중에게 유익한 것인가를 진보진영이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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