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우(독도찾기 운동본부 집행위원장)


고이즈미 준이찌로 일본 총리 정권은 새로운 일본역사를 만들 책무를 지고 출범한 정권이다. 그 새로운 역사란 일본이 주장하는 보통국가이다. 일본은 아시아 침략전쟁에 패전한 후 더 이상 군사침략을 할 수 없도록 헌법에 군대보유를 금지 당하였다. 그러나 일본인 특유의 치밀함을 통해 세계 2위의 군사대국으로 등장하였다.

고이즈미 총리의 간택은 우익 인사들의 합작품

일본의 군사력은 수적인 면에서는 많다고 할 수 없지만 질에서는 세계 최고이며 즉시 수백만으로 확대 증편될 수 있도록 모든 군사력을 간부요원으로 키워 왔다. 일본이 말하는 보통국가란 군사력을 보유하고 군사력을 실제로 행사할 수 있도록 헌법을 뜯어고쳐 미국처럼 무력을, 국가이익을 관철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국가가 되겠다는 뜻이다.

이런 작업을 위해 일본은 지금 여러 가지 규제조항을 없애고 과거와 같은 군사강국으로 복귀하는데 방해가 되는 사회적, 문화적 제도와 장치들을 해체해 가고 있는 중이다. 교과서 개정도 그런 작업 중의 하나이다. 교과서를 통해 과거의 침략사관을 국가의 표준 이념으로 만들고 전 사회를 다시 조직하겠다는 뜻이다.

일본의 이런 노력에 현실적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로 간택된 사람이 바로 현 총리 고이즈미이다. 일본의 정치인 치고 극우적 침략사관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사회의 흐름에 맞고 가장 강력한 돌파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지는 고이즈미가 그야말로 반역사적인 책무를 지고 등단한 것이다.

이런 고이즈미를 총리로 만드는데 앞장선 사람들이 나까소네 전 총리와 극우 세력의 대표주자로 있는 이시하라 신따로 동경도지사와 직전 총리 모리 등이다. 1985년 전후 일본 총결산을 주창하여 세계의 비웃음을 사면서도 패전이후 형성된 평화지향적 흐름을 바꾸어, 오늘의 완전한 우익 침략사관이 판을 치게 만든 장본인인 나까소네가 각 파벌을 조정하여 고이즈미가 총리가 되도록 적극 공작했다고 한다.
 
고이즈미는 총리가 되기 전에 여러 가지 약속을 했는데 그 첫 번째가 총리가 되고 나면 총리 자격으로 야스꾸니 신사를 참배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야스꾸니 신사는 대외침략전쟁에 나가 희생된 영혼들을 모신 사당인데 일본 침략전쟁과 팽창주의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곳이다. 이곳에는 2차대전에 끌려나가 희생된 한국인도 약 2만 가까이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데 하루 빨리 찾아와야 할 것이다.

앞에 언급한 침략 해군 장교이던 나까소네가 총리 신사 참배의 전통을 열어 그 이후 역대 총리들이 이를 따랐다. 지금까지도 총리 자격이 아니라 민간인 자격이라는 아주 말이 안 되는 억지 소리로 참배를 계속하는데 고이즈미는 이런 위장포를 벗고 총리 자격으로 참배를 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그러나 내외의 여건이 쉽지 않아 올해 바로 참배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야스꾸니 신사를 총리 자격으로 참배한다는 것은 지난날의 침략 전쟁을 국가차원에서 숭배하고 침략적 팽창주의를 국가전략으로 정식으로 추구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내외에 선언한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또한 교과서 왜곡과 관련하여 고이즈미는 대동아전쟁이라는 용어에 대한 긍정론을 펼쳤다. 이는 어찌 보면 용어문제인 듯 하지만 대동아전쟁 자체에 대한 긍정을 결과적으로 유도하는 표현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우리는 대동아전쟁의 극단적 희생자이다. 단순히 전쟁기지를 제공한 정도의 희생이 아니라 모든 자원과 인력과 정신세계를 총체적으로 약탈당한 것이다.

고이즈미의 행보는 단순히 교과서 왜곡 수준이 아닌 평화헌법을 뜯어고치자는 것

고이즈미의 행보는 단순히 교과서 왜곡이나 신사참배 정도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며 결국에는 헌법개정과 군사력 증강, 핵무장, 군사력 행사 등으로 이어지는 길을 닦고 걸어가게 될 것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일제 침략의 최대 희생자 한국 정부는 이런 일본의 반역사적 침략적 흐름을 오래 전부터 항상 지지해 왔다. 이것은 미국의 전략 체계에 편입되어 있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 행위라는 변명만으로 면책이 될 수 있는 사안들이 아니다.

최근 일본 교과서 왜곡 문제 대응은 지난날과 비교해 다소 나아지기는 했지만 이런 개선조차 국민의 비판과 언론 보도를 의식한 대응이 아닌가 생각된다. 본심이 아니라 마지못해 대응하는 이런 자세로는 역사의 흐름을 바르게 바꿀 수 없고 결국은 과거의 불행을 다시 불러오게 될 것이다. 이런 한국의 반역사적 흐름을 입증하는 증거자료로서 나는 권희로씨 문제를 떠올린다.

권희로씨는 김희로로 널리 알려진 재일동포였다. 일본 폭력배의 민족차별에 항의하여 일본폭력배를 살상하고 저항하다 체포되어 감옥에서 35년간을 갇혀 있었던 인물이다. 사건 당시는 그의 문제로 전 한국이 들끓기도 했었다. 일본으로서는 이런 반일본적 인사를 계속 가두어 두고 있다는 자체가 일본의 이미지를 나쁘게 하는 것이라 하여 한국으로 추방하기로 결정하였다. 권희로씨는 어머니 유언 때문에 석방과 한국귀국 안을 수용하였다. 

권희로씨의 석방을 언론은 처음에는 관심있게 다루었다. 그러나 이런 언론의 흐름을 정면에서 차단한 것은 당시 권력의 최정점 인물이었다. TV생중계를 중단시키고 국민의 반일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일본의 민족차별 행위와 야만적 처사들을 보도 자제하도록 만들었다는 기사가 당시 언론에 조그맣게 실렸었다.

권희로씨는 지금 교도소보다 훨씬 엄혹한 정신병사에 수용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이는 보도를 추정한 것이다.) 그는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했고 35년이라는 청춘 전체를 교도소에서 보내고 말았다. 이미 비정상에 평생을 보낸 사람이 말이 고국이지 완전히 산설고 물선 한국사회에 쉽게 적응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그는 어디 마음붙이고 있을 곳이 없었다.

이 사회의 문화와 예절을 잘 모르고 언어 소통마저 쉽지 않은 그가 이런저런 실수나 잘못을 저지를 여지는 얼마든지 있었고, 그래서 그에 대한 상당한 배려가 필요했었지만 데려온 사람이나 정부나 자치단체나 사회단체나 모두 이런 문제를 외면하였다. 결국에는 교도소 수감으로 그리고 이 수감이 어색하니 다시 체면이 덜 구겨지는 정신병원 수용으로 문제를 마감하였다.

권희로씨 문제는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일제 침략의 가늠자

권희로씨는 수십년간 반일 민족의식의 상징처럼 있었다. 그가 고국에서 받은 대우란 결국 `비인격자이니 당연히 가두어 둔다. 무슨 민족의식 때문이 아니다`라는 일본의 교도소 수용처사를 정당화 시켜주는 그것이 전부였다.

일제 침략의 최대 피해자이며 지금도 민족분단과 대외 예속으로 그 피해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 민족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일제의 침략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그 내적 가늠자를 권희로씨 문제로 짚어 보았다.

지금은 자위대의 한국상륙 환영 따위의 정부 논평이나 내고 있을 한가로운 시대가 아니다. 일본 문제를 반역사적 입장에서 대한다는 것은 민족 통일을 방해하는 것이다. 남북화해를 추구한다면서 한편으로는 적극적인 통일 방해집단을 비호하는 이중처신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제발 정신 좀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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