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만에 서울을 찾아 개인전을 여는 재일 오병학 화백(82).
[사진 - 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제가 그린 그림을 보면 '아, 코리아가 매력있다'는 감흥을 보는 사람에게 주고 싶습니다."

오직 그림을 그리겠다는 일념으로 편도선을 끊어 도일 했다가 65년만에 서울에서 개인전(9.6-19, 인사동 학고재)을 여는 재일조선인 오병학 화백(82)은 자신의 예술관을 이같이 압축, 표현했다.

4일 저녁 6시30분 서울 종로구 인사동 크라운 호텔 로비에서 만난 오 화백은 "기초적인 공부를 한 다음에는 '자기 민족이 가진 주제를 협소한 로컬 칼라가 아니라, 민족적인 주제를 아주 보편적인 스케일과 레벨에서 조형적으로 작품화하자', 이것이 그림공부를 시작한 이후 제가 쭉 가진 생각"이라고 밝혔다.

오 화백에게 있어
▶그는 우리민족의 매력을 세계인들에게
납득할 수 있게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민족적 주제'와 관련해 중요한 점은 "주로 탈이나 탈춤, 우리나라의 고전무용, 그것을 조형적으로 화면에 정착시키는 것"이다. 다만 "'탈밖에 못그린다' 그러면 화가의 스케일이 없어진다. 어떤 주제로도 보편적인 스케일까지 끌어올리려는 묘사력과 표현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편적 레벨'과 관련해서는 "민족적인 테마라는 것이 잘못하면 협소한 로컬칼라에 지나지 않을 수가 있다. 내가 잘못 그리면 오히려 우리 민족에 똥칠할 수가 있다"면서 "제 그림이 그러한 수준까지 갔는지 안갔는지 모르지만 세계적 수준에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야 우리나라의 예술이라는 것이 매력있다. 코리안 매력있다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는 것이다.

오 화백의 생각은 개별 작품에 면면히 녹아 있다. 오 화백의 20대를 대표하는 '짚신짜는 사람(1950년)'의 경우, "일본의 농가를 찾아 직접 사생화로 그린 것"이다. 그는 "'실제보다 낫다'고 자기평가하고 있다"며 "이런 광경은 지금은 보기 힘들다"고 애틋해 했다.

1965년작 '탈'에 대한 오 화백의 설명이다. "제 친구가 서울에서 탈을 많이 가져 왔다. 그래서 나름대로 조형화했다. 탈을 잘못 그리면 상품처럼 된다. 완전히 하나의 존재감이 나와야 한다. 탈은 만화적이지만 우리나라 탈이 가진 인간미를 존재감있게, 조형적으로 그린 것이다. 탈 자체보다도 내 그림이 더 존재감이 있게 하자는 생각으로 그린 것이다."

▶오병학 화백의 조선백자와 인체 누드. 오 화백은 "우리나라 도자기는 특별하게
생명감이 들어서 있어 사람의 몸이 가진 온도감이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후반의 '누드'와 '도자기' 그림에서 그의 민족적 감성은 더욱 깊어진다. 오 화백은 '누드'를 동양식으로 '인체'라 한다면서 "화가의 실력이라는 것은 누드 하나 그리면 대개 알 수 있다. 사람의 인체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완전히 그려넣으면 아무거나 대개 다 그릴 수 있다"고 했다. 합석했던 오 화백의 조카는 "큰아버지는 인체를 항아리 같은 도자기에 비유하신다"고 전했다.

오 화백은 "백자나 특히 고려청자 같은 우리나라 도자기는 특별하게 생명감이 들어서 있어 사람의 몸이 가진 온도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인체를 그리는 이미지로 (도자기를) 그린다. 그냥 공예품이 아니고 생명력을 가진 이미지로 그린다. 인체를 그릴때는 오히려 도자기를 그리는 이미지로 그린다. 양자의 이미지를 서로 교환시켜 그린다"면서 "도자기를 만지면 딱 사람의 몸 같다"고 말했다.

"우리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4일 저녁 인사동 한 호텔 로비에서 오 화백을 만났다. [사진 - 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작업의 주제가 민족이라는 것을 넘어 실제로 그에게서는 강한 민족적 자부심이 묻어나온다. 오 화백은 "파리에서 만나는 일본인 관광객은 조용조용 시선을 깔고 다니지만 우리 노인들은 큰 소리로 떠들며 다닌다. 어디가도 우리 민족은 활기가 있고 무서운 것이 없다"고 평하면서 "이상하게도 이렇게 활기있는 민족이 왜 일본놈들한테 먹혔나? 다 관료들이 썩어서 그런 것"이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민족예찬은 이어진다. "우리 민족이 우랄산맥에서 나서 시베리아, 만주를 건너와서 최종적으로 조선반도에 정착했는데 러시아, 중국과 때로 싸우고 타협하면서도 이들한테 결코 먹히지 않았다. 소위 유라시아 대륙에서 러시아나 중국에 먹히지 않은 민족은 없다. 우리만 남아 있다. 일본이야 바다 건너 있으니 전혀 다른 것이고. 그래서 우리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그는 이러한 '민족적 자부심'을 고수하기 위해 그림에 대한 일본인의 영향도 거부, 잠시 다니던 동경예술대학을 중퇴하고 세잔느 등 구라파 거장들의 원전그림을 보면서 독학으로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대개 화가는 학교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자기 나름대로 하는 것이 공부"라는 '지론'을 확립하기도 했다.

요컨대 그에게 있어 "민족은 인간의 뿌리"다. "우리가 정신적, 지적 퍼스펙트(시각)를 가진다 하더라도 자기 뿌리를 단단히 가꿔야 인간미가 나올 수 있고 우리 민족이 가진 매력이 나올 수 있다 생각한다. 최후적으로는 보편적인 세계에 가야 하겠지만 그것도 자기 뿌리를 가져야 할 수 있지 않겠나. 그것이 저의 제일 신념이다."

▶그는 82살 나이답지 않게 정정하고 특히
목소리가 맑았다.
[사진 - 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평양에서 북쪽으로 1시간쯤 거리에 있는 순천군 태생인 오 화백은 "일본에서 태어난 2세, 3세는 몰라도 이북이나 이남이나 어느쪽에 있다 하더라도 민족감성이랄까, 민족에 대한 애정이라할까 이것은 똑같다"고 강조했다. "남북이 불행히도 갈려 있지만 그건 정권 측이 그렇지 우리 민족 자체는 하나라고 본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개인 전람회도 자기 나름으로서 조그마한 통일의 한발짝으로 저는 본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꼭 한번 개인전을 갖고 싶었다"는 평생 소원을 이룬 오 화백은 "서울에 있는 우리 한국 미술가들도 (내 작품을)좀 봤으면 좋겠고. 일반 관객들도 좀 봐주셨으면 좋겠다"며 "'일본에 살고 있지만 민족의 넋이 뚜렷이 나오고 있구나' 하는 인상을 가져주셨으면 자기 행복으로 느낄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우리 민족 감성, 민족적 매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이고자 하는 그런 마음으로 그렸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작품이 어느 수준에서 나왔는지는 보는 사람이 판단해달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회화는 침묵의 예술'이라고 했다. 화가는 입으로 씨부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림을 보고 평가해달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오병학 개인전』은 오는 6일부터 19일까지 인사동 학고재에서 열린다. 오 화백이 일생에 걸쳐 그린 작품 중 65점이 전시된다. 6일 오후 5시에는 오프닝 행사도 예정돼 있다. 문의 02-739-4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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