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경희총민주동문회 회장)


《통일뉴스》는 최근 등장한 뉴라이트에 대해 자세히 조망하는 '<뉴라이트 기획Ⅰ> 뉴라이트 들여다보기'에 이어 '<뉴라이트 기획Ⅱ> 내가 본 뉴라이트'를 연재한다.

아직 뉴라이트 스스로 자기 정립이 덜 되었고, 이 분야에 대한 선행 연구나 취재가 많지 않아 미흡한 점도 없지 않겠지만 현 시점에서 각계에서 보는 뉴라이트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뉴라이트 기획Ⅱ> 내가 본 뉴라이트'의 연재를 진행한다.

'자유주의 학생운동'을 비판한다
<기획Ⅱ>① 학생운동 전문가가 본 뉴라이트 - 이민희

김진홍.서경석이 이끄는 기독교계 뉴라이트
<기획Ⅱ>② 개신교 목사가 본 뉴라이트 - 김성윤

무늬만 새로운 전향자들의 예속형 파시즘
<기획Ⅱ>③ 민주화운동 세대가 본 뉴라이트 - 정해랑



1. 우리 현대사에서 ‘전향’이 의미하는 것

험난했던 우리 현대사에서 ‘전향’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물론 ‘전향’이란 것이 절대악은 아니다. 이제까지 지니고 있던 사상, 신념, 주장 따위를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을 전향이라고 한다. 따라서 자기가 갖고 있던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전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현대사에서 ‘전향’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순전히 자신의 뜻에 따라 전향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타의에 의해서 혹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전향한 사람들이 많았다.

우선 자신이 전향하고 싶지 않은데도 강요 때문에 할 수 없이 전향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나머지 인생을 자괴감에 괴로워하며 살 수 밖에 없었다.

다음으로는 타의에 의해 전향을 한 뒤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원래 자신이 추구하지도 않았던 신념을 과장해서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맞지도 않은 것을 주장하고 다니다 보니 좌충우돌하게 되고,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한다. 우스꽝스러운 그 모습을 보면 연민의 정마저 느끼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전향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최대한 확보하려고 하는 자들이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고비마다 이러한 사람들이 있어 왔다. 이른바 해방공간이라고 하는 때는 물론이려니와 4.19와 5.16 이후, 3선 개헌 및 유신 이후 그리고 80년 이후 등 정치적 격변기마다 자신이 이전에 갖고 있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전향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진정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서 전향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 생각을 내세우다 저 생각으로 배를 갈아탄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1990년대가 시작될 무렵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되자 많은 사람들이 이념적 혼란을 겪었고, 그런 가운데 ‘전향’하였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이전의 ‘전향’과는 다른 듯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전향’이 이전의 것들과 어떤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 힘들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전향’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향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어야 한다.

첫째, 전향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자신이 이전에 갖고 있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전향하는 과정의 진지함이 있어야 한다. 전향하는 과정의 고뇌가 보여야 하며, 이전 신념에 따른 행동을 충분히 참회해야 한다. 더욱이 이전에 갖고 있던 신념으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 사람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품고 자신의 뼈를 깎는 성찰의 기간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원칙이 결여된 ‘전향’은 그야말로 ‘전향’이 아니라, ‘변절’일 뿐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술수’를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향’이란 화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이른바 뉴라이트라고 하는 사람들이 사회주의이념에서 혹은 이른바 주체사상파(주사파)에서 전향했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들은 무엇에서 무엇으로 전향한 것일까? 또 이들이 전향해야 할 진정한 이유가 있었을까? 있었다면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들의 이후 행로는 어떻게 되리라고 추정할 수 있을까?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이런 점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2.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커다란 착각

전향이란 점에서 접근해 볼 때 이른바 뉴라이트라고 하는 사람들은 전향을 해야 할 뚜렷한 이유도 발견하기 어렵고, 그들이 대중에게 미쳤던 영향을 고려할 때 전향하는 과정에 대한 진지한 고뇌도 발견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보다는 기성 정치인들을 뺨치는 현란한 언론 플레이와 자신들의 상품적 가치를 높이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사업가적 재질만이 돋보일 뿐이다.

과연 그들은 무엇에서 무엇으로 전향한 것일까? 사회주의이념이 낡은 이념이라고 한다. 물론 동의할 수 없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묻겠다. 그들은 과연 사회주의자였는가? 우리 사회에 사회주의자는 얼마나 있었는가?

우리 사회는 80년대 후반까지 극악한 군사독재의 탄압 하에 있었다. 이 사회를 사회주의 사회로 변혁하고 조직하려는 어떠한 기도도 탄압받을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사회주의 관련 서적을 읽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감옥에 가고 고문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노동운동을 하든 민주화운동을 하든 사회주의와 관련해서는 기껏해야 조악한 수준의 번역서나 팜플렛 정도를 돌려읽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을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러한 탄압이 오히려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무기를 지니면 군사독재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주사파였다가 전향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군사독재는 주체사상을 정통 사회주의사상이라고 일컬어지는 마르크스 레닌주의보다 훨씬 더 위험시하였다. 따라서 주사파라는 말, 주체사상이라는 말은 군사독재에 의해, 또 군사독재의 앵무새 노릇을 하던 언론들에 의해 무수히 떠돌았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있어도 사회주의사상과 마찬가지로 조악한 수준의 복사본, 또 그것을 흉내 낸 팜플렛 등을 돌려 읽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주체사상이란 것이 많은 젊은이들을 흥분시켰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것은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 속에서 그때 막 생기기 시작하던 반미의식과 통일염원을 어쩌면 해결해 줄 새로운 무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사상이든 주체사상이든 실제로 당시의 운동을 움직이는 유력한 이념은 전혀 아니었다. 단언컨대 당시의 대중들은 민주주의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군사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면 어떠한 사상이라도 무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 정도였다. 그리고 광주민중항쟁에서 깨달은 바에 따라 그리고 우리 현실의 모순에 대한 자각에 따라 군사독재의 뒤에는 미국이 있다는 어렴풋한 생각을 갖기 시작한 정도였다.

다시 말해서 대중들은 민주주의를 열망했고, 그것을 위한 투쟁이 자주화를 위한 투쟁과 통일운동으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므로 대중보다 조금 앞서 나가던 사람들의 관념적인 사회주의, 관념적인 주체사상만 있었을 뿐, 실제로 그 사상을 현실에서 실천해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적어도 90년대 초까지 우리 사회의 현실은 그러하였다.

그럼에도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자였고, 주체사상 신봉자였다고 규정하고, 자신들은 그러한 잘못된 사상에서 전향하였고, 아직도 그렇지 못하고 낡은 사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엄청난 착각일 뿐이다.

이른바 뉴라이트들의 생각은 이렇게 정정되어야 한다. 이전에 그들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어느 정도 했다. 그때 사회주의사상과 주체사상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좀 했고, 대중들에게 그 내용을 약간 선전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사상들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우익사상을 갖고 사회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맞지 않을까?

3. ‘과거’를 내세우며 ‘과거’를 짓밟는 자가당착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 때문에 전향한 것일까? 뉴라이트라고 하는 사람들의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로 묶어서 말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그것을 통해서 유추하는 것은 가능하리라고 본다.

먼저 이들을 떠올릴 때 누구나 이들이 과거에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들 역시 그러한 점을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은근히 과시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의 경력은 자신들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아주 유력한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내세우는 만큼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 자체를 문제삼는 것 같지는 않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는 따위의 ‘전향’을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과거’는 옳았으나 그것이 좌파 세력 혹은 좌파적 이념 때문에 훼손 변질되고 있다고 본다. 그 점에서는 세부적인 면에서 약간씩의 차이가 있는지 몰라도 크게 보아서 뉴라이트가 갖고 있는 공통적인 생각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그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서 좌파세력과 싸워야 하고, 좌파세력들의 좌파이념을 무력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까지야 사상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볼 때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문제는 이들이 과연 과거의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의 연장선에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들은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토대로 산업화세력과 손을 잡아서 우파의 이념으로 나라를 이끌어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산업화 세력에 장점이 있다면 흡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산업화에 기여했던 기업인, 엔지니어, 관료 등이 김대중 정부든 노무현 정부든 배제된 적은 없었다. 이들이 말하는 이른바 산업화세력은 사실은 군사독재 하에서 각종 횡포를 부리던 자들이고, 부패와 탐욕에 찌든 자들이다. 그러한 자들을 역사의 전면에 다시 나서게 하자는 주장을 이들은 버젓이 하는 것이다.

또 이들은 북한을 민주화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때마침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는 미국 부시 정부의 방침에 발맞춰서 북한 인권을 유난히 부르짖는다. 이른바 북한 인권 문제라는 것이 미국의 비열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그리고 미국이 인권 문제를 제기할 만한 자격이 없는 나라라는 점은 일단 논외로 하면, 이들이 민주화운동을 했던 경력으로 볼 때 인권 문제를 주장하는 것은 탓할 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은 놀랍게도 이 땅의 ‘민주주의’에는 무관심하다. 이들은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에 걸맞게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 한다거나, 각종 국가의 억압기구를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법도 하건만 그런 주장은 전혀 하지 않는다. 또 이들은 미군 철수를 주장할 수 있는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가 중지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적도 없고, 오히려 그런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정부를 향해 더욱 강한 억압을 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들이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탓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 비판의 방향이 문제이다. 자신들이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을 했다고 ‘과거’를 내세우면서도 이들은 노무현 정부의 비민주적인 점, 노동자를 억압하는 점,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노동자, 농민이 고통받는 점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보다 더 비민주적이었고, 노동자를 억압하였고, 농민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과거’의 적과는 버젓이 손을 잡은 채.

4. 수구세력 혹은 그 들러리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

이들이 이러한 자가당착을 하면서까지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이들의 목표는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른바 선진 통일한국 시대를 열어 나가자는 데에는 대체로 일치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는 선진한국이다. 이들이 말하는 ‘선진’이라는 것은, 아마도 자유주의적 발전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다시 말해서 자유주의국가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그러한 나라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선진 조국의 건설. 어디서 많이 듣던 말 아닌가? 박정희가, 전두환이 이야기하던 것이다. 결국 이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는 박정희, 전두환이 추구하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를 위해 무한경쟁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는 그러한 나라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그러한 목표가 달성되려면 이른바 선진 제국 특히 미국 및 일본과도 무한경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미국의 부당한 요구에도 침묵하고 있고, 미국의 군사 기지에 ‘반대할 자유’마저 ‘반대’하고 있으며, 일본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우호적인 견해를 표방하려고 한다.

미국과 일본의 지배와 간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선진조국’이라는 말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지배와 간섭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요즈음 아마도 이들의 주장은 금세 허황된 것으로 드러나고 말 것이다. 최소한의 ‘자주적 권리’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슨 ‘선진’인가?

우리를 더욱 황당하게 만드는 것은 이들이 목표에 이르기 위해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단기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들이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이나 뉴라이트네트워크나 모두 이른바 선진조국을 만들기 위해 좌파정권을 우파정권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본다. 이들이 말하는 좌파정권은 노무현정권이다. 조금이라도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노무현정권은 전혀 좌파정권이 아니다. 하지만 뉴라이트에게는 그들의 목표를 위해서도 노무현정권은 좌파정권이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이들의 대립점에 지지세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파정권의 현실적 가능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한나라당의 재집권이다. 결국 한나라당과 연대해서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단기적인 목표이다. 이 점을 이들은 부인하지 않고 너무도 분명하게,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물론 한나라당을 밀어 줘서 정권을 창출한다는 단기적 목표에서도 세밀하게 볼 때 차이는 있다. 일부에서는 한나라당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한나라당은 부패한 정당이라는 시각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한나라당을 밀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이 노무현 정권 정도도 좌파 정권으로 규정하는 한, 우파 정권은 한나라당 이외에는 현재로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부패 척결이나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사회의 건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이른바 좌파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좀더 적나라하게 이야기해 본다면 자신들에게 정권의 한몫을 나눠줄 수 있는 세력을 이들은 원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좌파 정권 교체라고 하는 단기적인 목표를 위해서 불충분하더라도 현실적인 대안인 한나라당을 밀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대등한 관계에서 연대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주관적인 희망’일 뿐이다.

지금까지 이 땅의 우익을 좌지우지해 온 미국은 ‘친미 반북’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세력을 원해 왔다. 그리고 그 세력의 근간은 지금까지의 우리 현대사를 볼 때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 그것은 기존 세력을 토대로 해서 새로운 세력을 일부 흡수하는 데 그쳐 왔다. 해방 이후가 그랬고, 5. 16 이후가 그랬다. 80년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그 까닭은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기본적인 모순이 변하지 않고 온존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뉴라이트는 어쩌면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대열에서 ‘전향’해서 반대편에서 열심히 그 대열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충실히 보장받기 위해. 그래서 그들은 ‘친미 반북’에 이전의 수구세력 못지않게 열을 올린다.

과연 이들이 기존의 수구세력과 무엇이 다를까? 다른 점이 있다면 기존의 수구세력과는 달리 젊은 날에 민주화운동을 하고, 노동운동을 했다는 사실 그것 하나뿐일 것이다. 그리고 그때 익혔던 대중운동의 감각을 민주화운동과 민족운동, 노동운동을 비난하고 훼방하는 데 쓰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결국 이들은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하는 수구세력이 정권을 탈환하는 데 일조하는 것으로 단기적 목표를 성취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 5. 31 지방 선거를 통해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단기적인 목표를 이룬 다음 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들은 과거의 사회주의사상과 주체사상을 극단적으로 과장하는 착각을 범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과거’를 내세우면서도 ‘과거’를 짓밟은 자들과 손잡고 있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 이러한 그들의 착각과 자가당착은 점점 그 정도를 더해 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들의 선배인 박정희가 걸어온 길이다. 결국 이들은 수구세력의 하나로 흡수되거나 아니면 그 들러리에 그치고 말 운명이 되고 말 것이다.

뉴라이트, 그것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일체의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을 적으로 만드는, 무늬만 새로운 예속형 파시즘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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