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중  선(통일뉴스 논설위원)

지난 해 6.15남북공동선언과 동시적으로 남북당국간에는 분야별 남북대화가 진행되었고, 또한 민간차원에서도 여러 형태의 대화와 교류가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고, 한·미·일 공조체제가 지속되는가하면, 무기구입비가 증액되는 것과 같은 냉전시대적 구조가 타파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남북간의 대화나 교류가 양적으로 팽창되었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민족화해나 남북간의 관계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갈망하는 민족구성원 모두는 우선 대화나 교류만이라도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그 과정을 통해 민족화해나 통일을 향한 본질적인 문제들에 접근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각종 형태의 대화와 교류들을 반기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그 동안 북·미간 제네바 합의문과 뉴욕 공동성명을 통해 관계를 정상화해 나가기로 합의했으면서도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대북 강경기조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 직간접적으로 민감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한·미간의 종속적 구조로 말미암아 6.15공동선언 이후 활기를 띠었던 남북당국간의 대화들은 모두 중단되었고, 여러 형태의 교류들도 소강상태에 머물게 되었다.

지금 남과 북의 양 당국은 6.15공동선언의 성실한 이행을 위해 어느 정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을 향해 북·미관계 개선을 종용하고 있는 것이라든지, 김정일 위원장이 미사일 발사를 2003년까지 유예할 것이라는 것들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끼리 화해하고 통일하려는 약속과 의지가 외세의 간섭에 의해 억제 당해야 하고 그 결과로 남북대화가 중단되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는 앞으로 미국이 북·미관계를 개선할 것인가의 여부에 따라 남북관계는 과거와 같은 적대적 냉전상태로 회귀할 수도 있고, 민족화해의 시대로 발전해 갈 수도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민족 자주`의 문제가 통일문제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간절한 소망이고, 통일을 추진해 가는 과정에서 `자주`의 문제는 민족이 사느냐 죽느냐의 관건으로 된다. 왜냐하면 `민족 자주`의 문제를 풀지 않고는 통일을 추진해 갈 수가 없고 결과적으로 통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일은 단순한 국토의 통합이 아니다. 통일은 19세기 말 개항이래 외세들에 번갈아 침탈 당하고 있는 민족자주권을 되찾아내는 민족적, 역사적 과제를 실현해 내는 일이다. 말하자면 빼앗긴 민족자주권을 되찾는 것이 통일의 내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운동의 내용도 자주성의 확보문제와 직결되어야 한다. 자주성의 문제를 내용으로 하지 않은 채 민족화해운동이니, 남북교류운동이니, 민족돕기운동이니 하는 것들은 다 통일운동의 본질적 내용으로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민족 자주`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 궁극적으로 `민족 자주`는 통일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민족의 통일 없이 민족의 자주를 지켜내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민족 자주 없이 통일은 불가능하고, 통일만이 민족 자주를 확실하게 담보해 낼 수 있다.

외세에 의한 예속적 구조로 분단된 현시점에서 `민족 자주`를 확보해 내는 길은 `민족 공조`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리고 6.15공동선언의 첫 항에서도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선언하였다. 6.15공동선언을 성의 있고 책임 있게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민족공조는 반드시 실천되어져야 하고, 어차피 평화적 통일은 양 당사자의 합의와 협조를 통한 공동의 노력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북·미관계가 북·미간 제네바 합의와 뉴욕 공동성명을 토대로 하여 지속적으로 더 발전해가지 않는 한, 그리고 남과 북이 `민족공조`를 실천하지 않는 한 남북대화나 남북관계의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다. 설혹 정세의 흐름에 따라 양 당국간의 어떤 필요에 의해 남북대화가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평화적 공존`이라는 이름의 분단 지속을 위한 대화는 될 수 있을지언정 참으로 민족의 자주권이 확보된 통일을 향한 진전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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