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태 (통일뉴스 전문기자)

《통일뉴스》는 최근 등장한 뉴라이트에 대해 자세히 조망하는 '<뉴라이트 기획Ⅰ> 뉴라이트 들여다보기'와 <뉴라이트 기획Ⅱ> 내가 본 뉴라이트', '<뉴라이트 기획Ⅲ> 현장취재, 뉴라이트'를 연속해서 싣는다.

아직 뉴라이트 스스로 자기 정립이 덜 되었고, 이 분야에 대한 선행 연구나 취재가 많지 않아 미흡한 점도 없지 않겠지만 현 시점에서 가능한 한도에서 총정리한다는 입장에서 아래와 같이 첫 번째 기획 연재를 먼저 시작한다.

<뉴라이트 기획Ⅰ> 뉴라이트 들여다보기

1. 뉴라이트, 어떻게 볼 것인가?(김치관, 통일뉴스 편집국장)
2. 뉴라이트 등장의 사회역사적 배경(임영태, 통일뉴스 전문기자)
3. 뉴라이트, 그들은 누구인가?(김치관, 통일뉴스 편집국장)
4. 확장일로의 뉴라이트 조직(김치관, 통일뉴스 편집국장)
5. 자유주의의 본질과 역사(이나미, 한신대 강사)
6. 박세일의 공동체자유주의(민경우 통일뉴스 전문기자)
7. 역사바로세우기와 반북(민경우 통일뉴스 전문기자)
8. 아직도 냉전중인 조중동(양문석, EBS 정책위원)
9. 뉴라이트, 인터넷 전쟁중(이창은, 대자보 편집장)
10. 2007년 대선과 뉴라이트(한선범, FTA공대위 조사팀원)


한국에서 뉴라이트(New Right)로 지칭되는 '신우익' 세력이 조직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2004년경이지만, 이들의 뿌리는 훨씬 전에 형성되었다.

뉴라이트의 핵심에는 운동권 출신의 '전향386'과 '시민운동가 출신의 전향 개신교 목사들'이 있다. 이들 뉴라이트들이 자신의 사상을 선회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는 바탕에는 1990년대 이후의 국내외적인 사회정치적 사건들이 위치하고 있다.

소련과 동구권의 현실사회주의 붕괴와 미국 중심으로의 세계 질서 재편, 전지구적 자본주의 확산과 신자유주의 발호, 북한의 식량난과 경제위기 및 대량 탈북 사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화해 정책과 우익세력들의 위기감 등이 그것이다.

이제 이런 문제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신우익 세력이 등장하게 되는 배경을 추적해 보자.
 
현실사회주의의 실패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확산

1989년 11월 유럽에서 동서 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로부터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90년 10월 3일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된 가운데 독일연방공화국이 새롭게 탄생하였다.

그리고 1991년 1월 17일 미국과 이라크 사이에 걸프전이 터졌다. 이라크 군은 전쟁 개시 4일만에 쿠웨이트에서 물러났고, 미국은 완벽하게 승리하였다. 소련이 사라진 조건에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순간이었다.

역사적 격변은 계속되었다. 1991년 12월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소련)의 대통령 고르바초프가 사임하고 소연방이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소련 사회주의의 슬픈 종말이었다.

1990년대 초반, 현실사회주의는 자기모순의 무거운 짐을 견디지 못한 채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미소 중심의 냉전체제가 해체되면서 세계사는 새로운 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개의 체제간 대립이 소멸된 자리에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자리 잡았다.

제도사회주의, 현실사회주의의 실패로 진보운동이 위기를 맞게 되고, 보수화 물결이 세계를 휩쓸기 시작하였다. 사회주의의 견제력이 상실되면서 자본주의의 거침없는 폭주가 시작되었다. 미소 양극의 냉전체제가 사라진 자리를 미국의 일방주의가 차고 앉았고, 자본의 요구가 극대화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미국의 일극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지난 세기 사회주의와의 대결 속에서 자본주의가 이룩한 여러 성과들-교육, 의료, 복지, 노동, 공공서비스 등에서 이룬 건강하고 진보적인 성과들-이 거침없이 공격받았고, 평등.진보.사회주의와 같은 개념들이 역사의 낡은 유물처럼 폄하되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는 끝났다'는 식의 자본주의의 영원성이 찬양되는 가운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환상과 신화가 조직적으로 유포되었다. 미국의 힘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경배도 이어졌다. 이 같은 세계사적인 격변과 충격은 한국 사회에서 뉴라이트라는 신우익 세력이 배태되는 토양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사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민중운동은 여전히 퇴조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지식층을 중심으로 한 운동권에서는 사상적 동요가 적지 않게 일어났다. 운동의 개량화가 진행되고 많은 사람들이 운동에서 이탈하였다.

이탈자 대부분은 생업전선으로 돌아갔고, 그 중 일부는 신자유주의자로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하였다. 그뒤 이들은 진보운동에 대한 거침없는 독설과 증오를 드러냈다. 이들 1차 전향는 PD(민중민주주의)계열이 대부분이었는데 뉴라이트의 중심 인물 가운데도 일부가 활동하고 있다.

김영삼 정권의 등장과 함께 자유주의 개혁이 진행되면서 민중진영의 운동력과 주도력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동시에 사회 전반에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확산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었다.

김영삼 정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자유주의 시장경제 이데올로기의 확산, 경제권력(삼성으로 대표되는 국내 거대자본과 국제자본)의 영향력 확대에 크게 기여하였다. 물론 자유기업원과 전경련, 삼성경제연구소 등의 활약상도 컸다.

현재 뉴라이트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공동체자유주의'의 대변자 박세일은 김영삼 정부에서 정책 수석을 지내면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뉴라이트의 사상적 토대가 되는 자유주의(자유주의, 신자유주의, 공동체자유주의 등)가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유포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무차별적 수용의 귀결점은 IMF였다. 그리고 IMF는 다시 미국식 경제 시스템의 확산과 영향력 확대라는 악순환을 낳았다.

북한의 경제위기와 대량 탈북자 사태

사회주의권 붕괴는 세계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그것이 한국 사회운동에 미친 영향은 당장에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것은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전개되는 한국 사회운동의 특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충격이 가해졌다. 북한의 식량난과 경제위기, 그리고 대량 탈북자의 발생이었다. 이와 함께 '북한 붕괴론'이 기정사실처럼 유포되고,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게 확산되었다.

한편에서는 '곤경에 처한 북을 도와야 한다'는 민족적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하였지만, 북에 대한 이미지는 '가난과 굶주림'으로 고착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은 진보운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연결되었고, 사회적으로 보수화의 기반으로 작용하였다.

사회주의(북)에 대한 자본주의(남)의 승리이데올로기가 널리 유포되었으며, 그것은 다시 시장만능주의와 극단적 (신)자유주의가 확대될 수 있는 조건으로 작용하였다. 무비판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수용한 결과 IMF라는 폭탄을 맞았지만, 한국은 다시 미국(IMF)의 요구대로 '신자유주의 개혁'을 무조건 수용함으로써 시장주의이데올로기는 더욱 확산되었다.

소련의 붕괴가 PD계열에 타격을 주었다면, 북한의 경제위기와 대량 탈북자 사태는 NL(민족해방)계열에 타격을 주었다. 이 과정에서 '주사파 출신의 전향386'이 탄생하는데,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출신의 내부 분화 과정에서 전향한 인물들이 주축을 이룬다. 이들의 전향은 그야말로 극에서 극으로의 전환이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 '강철 김영환'이 민혁당의 해체 과정에서 한 다음과 같은 말이 그런 상황을 극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인민의 편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인민의 반대편에 있다. 우리는 혁명가이므로 인민의 편에 서서 싸워야 한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북한 혁명이다. 인민을 굶주리게 하고 억압하는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려 한다."(우태영, 『82들의 혁명놀음』, 219쪽.)

이들의 전환을 쉽게 폄하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변환에서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가진 생명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음은 사실이다. 이들 '주사파에서 전향한 386그룹'은 '푸른사람들'이란 조직을 만들고, '시대정신'이란 기관지를 내면서 반북 이념을 전파하는 한편, 북한민주화와 탈북자 지원 활동을 전개한다.

이들은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과도 손을 잡았고, 한동안 '진정한 주체사상', '공동체주의'를 표방하기도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자유주의'로 자신들의 사상을 정리한다. 전향 386그룹은 결국 '북한 민주화론'에서 더 나아가 사고의 패러다임 전체를 완전히 뒤바꾸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과거 자신들의 주장과 한국사회의 진보적 담론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자유주의 사상으로의 귀착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 미국의 일극적 세계 질서와 이라크 침략, 한미동맹 강화, 영어공용화론, 흡수통일 등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게 된다.

그들의 사고 방식과 사상은 미국의 패권적 세계관을 완벽하게 수용한 것으로써 한국의 기존 우익들의 세계관과 완전한 합일의 경지게 이르게 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대북 화해협력 정책과 우익 세력의 위기의식

1998년 김대중 정부의 탄생으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형식적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완성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탄생이 갖는 더 큰 중요성은 남북 사이에 대결의 시대를 끝내고 화해협력과 통일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 등 민간의 노력이 결합되어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6.15 공동선언이 발표됨으로써 한반도는 새로운 시대, 통일시대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6.15선언과 통일시대의 개막은 그동안 오직 반공에 목매고 있던 수구 기득권 세력에게는 엄청난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대한민국은 '피로 물든 반공 투쟁을 통해' 탄생했으며, 반세기 동안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는' '반공국가'로 기능해왔다. 그런데 6.15선언은 이 같은 '반공국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전환을 의미하였다.

더 이상 국가권력 자체가 반공의 도구로 작동하는 시대는 끝났으며, 따라서 '반공국가'의 해체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제 한국은 냉전시대의 비정상적인 '반공국가'에서 남북화해 협력 시대에 걸맞는, 사상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시민적(또는 사회적)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6.15정상회담으로 남북관계, 나아가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의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자 수구 기득권 세력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한국내 수구세력의 반발은 2001년 미국에서 부시 정부의 등장과 밀접하게 맞물려 돌아갔으며,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계기로 조직화되는 양상을 나타냈다.

부시 정권의 등장으로 북미관계가 냉각되고 2차 북핵위기로 남북관계에 제동이 걸리자 국내 수구 세력의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되었다. 이들의 행보는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조.중.동 등의 반발과 맞물리면서 한나라당을 필두로 장외집회를 개최하는 등 조직화 양상을 띠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2002년 대선과 맞물려 김대중 정부의 화해협력 정책에 대한 보수 세력의 전방위적인 압박과 공격이 전개되었다. 특히 미 의회조사국이 진원지가 된 정상회담의 비밀자금 제공설이 유포되면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등 수구세력의 총공세가 벌어졌으며, 결국 이 문제는 노무현 정부에서 대북특검으로 귀착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건에서도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이 당선되는 이변이 연출되었다. 그것은 두 중학생(효선.미선)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불기 시작한 반미.탈미 정서의 대중적 확산과 촛불 시위, 새로운 감각의 젊은층의 등장과 인터넷의 활약, 2002년 월드컵 열기와 한국인의 자부심, 역동적인 문화 정서의 결합 등이 어우러져 가능했다. 결국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수구 세력은 다시 뼈아픈 패배를 맛보아야 했다.

김대중 정부의 화해협력 정책과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다시 노무현 정부의 등장으로 보수세력의 위기감은 크게 확산되었다.

수구기득권.극우반공.반공보수 세력을 망라한 보수세력은 두 번의 정권교체로 권력으로부터의 소외감이 매우 커졌으며, 반세기 동안 지속되어온 '반공국가'가 해체되기 시작했다는 데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 때문에 보수세력은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무리하게 의회쿠데타(대통령 탄핵)를 감행하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아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보수우익세력의 위기의식은 대중 동원 방식의 극단적인 행동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2003년 보수우익세력은 '반핵 반김 국민행동본부'의 주도 아래 대규모 군중을 동원하여 '3.1절 국민대회', '6.25 반핵반김 한미동맹 강화 6.25국민대회', '건국 55주년 8.15 국민대회' 등을 감행한다. 여기에는 기존의 극우세력과 더불어 한국 보수.우익 세력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보수 기독교 세력이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조직 동원력으로 결합한다.

하지만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성조기를 휘날리며 인공기를 불태우는 이들의 생경하고 광적인 행동에 국민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되고, 그 때문에 '8.15 국민대회'를 계기로 우익 내부에서도 행동 패턴을 두고 분화가 일어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익 내부에서는 '자기반성'(?)과 전술상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그것을 대변한다는 취지 아래 뉴라이트가 등장한다.

더 이상 과거 수구 우익과 같은 방식으로는 대중적인 호응을 얻을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김영환, 신지호, 홍진표 등의 '전향386'과 서경석, 김진홍 등의 '시민운동에서 돌아선 개신교 목사들'과 식민지반봉건론.포스트모던에서 '중진자본주의론'.'문명사관'으로 전향한 이영훈 등의 교수들이 결합되어 속속 조직이 결성된다.

이들 조직은 2004년부터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자유주의연대(2004.11.23), 뉴라이트 네트워크(2005.10.18), 뉴라이트 전국연합(2005.11.7)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미국의 세계 전략과 국제적 연대 또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

뉴라이트란 이름표를 달고 나온 신우익은 그 출발점과 존재 양상, 활동 방식 등에서 차이가 있는 등 일률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그들 사이의 이념적 공통점은 분명하게 발견된다.

그 주된 이념적 카테고리는 '반북+신자유주의'이며 궁극적 지향점은 '선진(문명)화된 조국 건설'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정권 교체 및 민주화, 남한에 의한 자유주의 방식의 흡수통합, 한미동맹 강화(그 주장의 근거가 주로 과거에는 북한위협론이었다면 현재는 중국위협론이라는 차이가 있음), 작은 정부 큰 시장,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의 절대화, 민중운동 등 대중과 사회에 대한 엄격한 법치주의 적용, 극단적 경쟁논리와 대외 경제 개방 논리, 반노동 친자본에 선 시장주의, 민중주의를 배격한 엘리트주의와 자유주의 등등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들의 주장은 미국의 일극적 패권에 기초한 세계 질서 및 신자유주의 세계화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이것은 힘과 강자에 대한 숭배이며, 힘에 의한 질서에 대한 일방적 추종으로 미국의 하위동맹자로서의 행동 패턴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향 386그룹', '시민운동 출신의 우파 개신교 목사들', 관료출신의 신자유주의자가 결합한 신우익이 등장하는 바탕에는 국내 정세뿐만 아니라 네오콘이 장악한 부시 정권의 등장이라는 국제정치 상황이 존재하고 있다.

간단히 도식화 한다면 촛불 시위로 대변되는 반미정서의 대중화, 남북 화해협력 정책과 탈미 지향성을 내포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등장은 미국에게 새로운 '민간 파트너'의 존재를 필요케 하였고, 여기에 호응하여 탄생한 것이 뉴라이트라고 볼 수 있다.

이들 뉴라이트는 등장 배경 뿐만 아니라 활동 배경에도 미국이 존재하고 있다. 뉴라이트는 NED(민주주의를 위한 전국재단)의 자금지원을 받아 북한 인권대회를 개최하였으며, 나아가 미국, 일본의 반북.보수우익 단체들과 연대하여 북한을 압박하거나 한국 정부에 압력을 가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미국의 일극적 패권주의를 옹호하는 다양한 논리를 거침없이 설파하는가 하면, 자유기업원, 전경련, 삼성경제연구소 등 재계 일각의 신자유주의 경제논리를 그대로 전파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뉴라이트로 지칭되는 신우익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반공국가'에 종속된 하수인으로서 활동하던 기존의 기회주의적 수구 우익과는 달리, 운동적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해가는 '소신 우익', '이념 우익'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 뉴라이트가 주창하고 있는 논리나 주장은 본질적으로 '흘러간 레파토리'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이들의 활동은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전술 구사 또한 상당히 세련되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이들 뉴라이트의 단기적 목표는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수구 언론-전통반공세력-기타 다양한 반개혁.반진보 세력과 연대하여 정권을 탈취하는 것이 될 것이지만, 보다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이념적 지향과 목표대로 한국 사회를 개조해 가고자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뉴라이트를 미국과 일본의 네오콘(또는 신우익)과 대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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