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개선 이후 주한미군의 장래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이를 인정하였다는 사실이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확인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30일 <워싱턴포스트>와 가진 회견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이 "바람직하다"고 말했으며, 몇 년전에는 이같은 입장을 "고위 특사"를 통해 미국에 전하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지는 30일 이같은 사실을 보도하면서 남북한간의 관계개선에도 일본, 중국,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이 필요하다는데 김 위원장이 동의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이 신문은 또 김 위원장의 이런 발언은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있었다고 전하면서 그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놀랐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김 대통령은 이에 대해 "이것은 나를 대단히 안도하게 했으며, 나는 이것이 정상회담이 거둔 가장 중요한 성과의 하나라고 믿는다"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전하였다.

김 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후 서울에서 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주한미군의 주둔 필요성을 갖는 남한의 입장에 "이해하였다"고 말한 바 있지만, 이같이 김정일 위원장의 입장을 깊이있게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그동안 주한미군의 주둔 이후 계속해서 "점령군"으로 규정하면서 철수를 주장하여 왔기 때문에 김 대통령이 확인한 김정일 위원장의 주한미군 인정 발언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

이는 북한당국이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현실주의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 관련, 북한은 그동안 주한미군 철수를 공식 주장해오면서도 80년대 후반 이후 북한 고위인사들의 개인 발언 형식으로 주한미군 문제를 유연하게 대하는 입장을 간헐적으로 보여온 바 있다.

이 신문은 정상회담 당시 김 대통령이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한반도는 세력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있고 설명하자, 김정일 위원장은 "나도 남한신문과 그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읽었다"고 하면서 "김 대통령의 의견이 어쩌면 나와 같은가 하고 생각했다"고 전하였다.

이 신문은 또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김 위원장의 이같은 입장을 몇 년전 "고위 특사"를 미국에 파견해 미국측에 전달하였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이 신문은 이에 대한 미국측의 반응에 대해서는 김 대통령이 말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김 대통령은 "그때를 정확히 기억은 못하겠지만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기 직전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이같은 보도에 대해 미 국무부의 즉각적인 논평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신문은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김 위원장(당시 인민군 총사령관)의 의견을 전할 북한 특사의 미군 방문에 대해 언급하면서 당시 미국과 북한간의 비공식 접촉이 드물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런 가운데서 지난 92년 1월 22일 당시 아놀드 캔터(Arnold Kantor) 국무부 차관과 북한의 김용순 대남담당 비서가 북한 핵사찰 문제로 만난 적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때가 김일성 주석 사망 2년 전이었다.

이 신문은 캔터 전차관과의 전화 인터뷰를 시도하였으며, 캔터는 당시 김용순 비서가 주한미군 철수가 남북통일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고 한다. 북한의 이런 발언에 대해 캔터는 "흥미로왔다"고 회상하였다. 그러나 그는 북한측이 주한미군 문제를 협의할 구체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았다고 하면서 당시 발언은 남한을 배제한 상태에서 미국과 대화채널을 유지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관계 개선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장래문제는 앞으로 더욱 큰 논란이 예상된다. 한국에서는 주한미군 범죄와 환경오염 등의 문제나 북한위협의 쇠퇴를 근거로 철수를 주장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현재 미국은 주한미군 문제는 한-미 양국간의 문제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은 <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에서 김 대통령이 거듭 확인한 것처럼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지지하고 있다.

김 대통령의 설명처럼 주한미군의 주둔을 이해하고 이를 미국과 협의할 수 있다는 북한의 입장은 실용적 현실주의로 규정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의 정책결정자가 주한미군을 힘으로 철수시킬 수 없는 상태에서 이를 현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은 이런 입장을 김 대통령이라는 간접적이면서도 비중있는 채널을 통해 공개하면서 남한의 대북 불신 및 안보 위협을 누그러뜨리고 미국과의 협상을 더욱 강화하려는 다목적 의도로 분석할 수 있다. 이는 대선이라는 유동적인 정국으로 진입한 미국정치의 향배에 대비한다는 의미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북한은 체제위협으로 인식하던 주한미군문제를 이제 체제안보 및 경제재건의 출구로 활용하는 인식 및 전략상의 전환을 보여주기 시작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김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의 이같은 입장을 환영하며 이를 남북공존 및 평화정착의 계기로 삼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김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에서 단계적 점진적 통일을 강조하며 "내가 추구하는 것은 (남북) 평화체제와 협력증진을 위한 토대를 공고히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