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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지 체험 없으면 이런 화폭 나올 수 없다”<민족21 방북취재>2·16경축 제1차 전국소묘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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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3.27  1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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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수 기자 subbu@minjog21.com

3월 7∼11일 방북취재 기간 동안 《민족21》 방북취재단은 폐막을 하루 앞둔 ‘2·16경축 제1차 전국소묘축전’을 참관할 수 있었다. 소학교 학생부터 전문미술인까지 다양한 계층과 연령에서 출품해 뽑힌 그림들은 북의 사실주의 화법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소묘 바람’이 부는 평양 국제문화회관 전시장으로 가보자.

전시일 ‘연장’된 이유
 

▶‘2·16경축 제1차 전국소묘축전’ 표지판이 붙은 평양국제문화회관
정문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다. [사진 - 민족21 유수 기자]

방북 사흘째인 3월 9일 오후 평양 중구역 영광거리 중심부. 맞은편의 김책공업종합대학 정문보다 먼저 눈에 띈 것은 평양국제문화회관 정문에 붙은 ‘2·16경축 제1차 전국소묘축전’ 표지판이다.

시내에서 양각도국제호텔로 가는 길이라 수 차례 스쳐 지나가며 봤던 붉은색 선명한 글자들이었다. 그때마다 평양국제문화회관 앞은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경사스런 2월의 명절을 맞아 개막된 전국소묘축전에 오신 선생님들을 환영합니다. 원래 28일까지 끝나게 되어 있었는데, 10일까지 연장을 하게 됐습니다. 선생들께서는 이런 전람회를 참관하는 행운을 지니셨습니다.”

 

▶소묘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북측 안내원. [사진 - 민족21 유수 기자]

해설강사 태지애 선생이 일행을 맞았다. 마침 축전이 꼭 하루 남은 날, 운이 좋은 것일까? 평양국제문화회관에는 미술전람관이 따로 있어 부문전람회, 개인미술전람회 등이 자주 열리지만 개최기간이 연장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 했다. 3월, 축전조직위원회는 축전 연기를 희망하는 전화로 들썩였다고 했다.

“전국소묘축전은 아주 뜻이 깊은 전람회장입니다.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직접 발기하시고 이 전람회를 만들도록 한 데에는 우리 인민들을 예술의 향유자, 창조자로 키우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소묘축전의 시작은 지난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민군부대 시찰에 나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선인민군 황철진 군인의 연필화첩을 보게 된 것이 계기였다. 총을 든 군인들의 환한 웃음, 음식거리를 들고 건설 ‘전투’를 고무하는 군관 아내들의 모습 등 군인의 평범한 생활을 담은 것이었다. 그림은 《병사수첩》이라는 화첩으로 출판되었고 지난 9월 문화성은 올해 2월 전국소묘축전을 진행할 것을 결정했다.

전국 각지에서 쏟아진 소묘작품을 모아 최종적으로 축전장에 선보인 작품은 모두 830여 점. 정문에 들어서서 오른편으로 눈을 돌리자 어른키 두 배 높이의 전시판에는 작품들이 빽빽하게 걸려 있었다. 전시회장을 덮은 것은 온통 회색 빛깔이다. 한 발짝 다가가니 소묘그림은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아이들의 볼과 할아버지 할머니의 주름진 손, 창밖에 비친 풍경까지 흑백 명암만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1층에는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전람회는 6살 어린이부터 고령의 인민예술가, 공훈예술가, 전문가, 비전문가, 중학교, 대학교 학생들이 전부 다 참가했습니다. 로동자 농민, 병사들도 아마추어로 참여해 작품을 내 놓았습니다.”

"단위별로 조직해 축전에 내 보낸 것입니까?"

“각자 개인들이 출품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 출판 보도물을 통해서 언제까지, 어느 장소에 작품을 갖다놓도록 공시를 떨굽니다. 거기에 따라서 개인이 작품을 들고 오면 축전조직위에서 축전을 준비하게 됩니다. 출전한 작품 심사는 인민예술가 선생들을 비롯해서 유능한, 국가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따로 무어져 있습니다.”

북녘 인민들 마음에 담긴 것
 

▶리지현, 만수대창작사 '사색형의 실천가 김책 동지' [사진 - 민족21 유수 기자]

작품 주제를 정하고 제목을 붙이는 것 역시 개인의 몫. 평양미술대학, 김형직사범대학, 청진·원산·함흥·신의주예술전문학교, 원주원흥소학교, 염주군 신성소학교, 신의주시 본부유치원… 끝없이 이어지는 그림 행렬 속에서 정성옥·김광옥·계순희 선수 등 북의 유명 체육인사를 몇 차례씩 만났다.

김책·안길·최춘국·오진우 등 북의 ‘항일혁명열사’를 형상화한 작품, 현영라·리웅찬·신포향 등 선군시대의 영웅을 형상화한 작품, 〈꼬마작곡가〉 〈설날아침〉 〈숙제〉 등 학생들의 일상을 담은 작품, 정치·사상적 색채가 강한 작품부터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세계까지 정말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을 만났다. 지난해 사망한 연형묵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활동을 묘사한 그림도 있었다.

그런데, 기자는 익숙한 얼굴을 여기에서 만났다. 〈통일 옥동녀〉(김광혁, 평양미술대학 4학년). 강사 선생의 말도 부쩍 활기를 띄었다.

 

▶김광혁, 평양미술대학 4년 '통일옥동녀'(좌).  '실제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인  북송
비전향장기수 이재룡 선생과 딸 축복이.  [사진 - 민족21 유수 기자]

“평양산원에 경사가 났습니다. 황선 대표가 아리랑 구경을 왔다가, 예정일을 아마 잘못 잡은 것 같습니다. 정말 뜻밖에도 우리 공화국에서 축복받은 남녘의 어린이가 태어난 것을 형상하고 있습니다.”

황선 대표, 비전향장기수 김선명 선생, 이재룡 선생과 축복이는 실제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사진은 현실을 ‘기록’하되 그림은 현실을 ‘반영’한다 했던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연재그림이 전시돼 있었다. 삽화 형식의 그림에는 글도 가득하다. 뒤에 보니 북녘의 관람객은 글을 읽느라 그림 앞을 오래도록 떠나지 못했다.

“당창건 60돌 횃불행진 과정을 담았습니다. 고도의 균일성을 보장하는 작품에서 시간관념 문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어머니는 ‘조금만 더 있으면 밥이 되는데’라지만 아이는 ‘그래도 일 없어요’ 라고 달려나가게 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당창건 60돌 횃불행진 연습을 이렇게 해서 기쁨을 드린 것입니다. 이를 생활적으로 형상했습니다.”

2층은 만수대창작사, 중앙예술창작사 들의 공훈예술가, 인민예술가의 작품.

“아마 이 분들도 몇 십년 만에 다시 소묘를 그리게 되었을 것”이라는 귀뜸이다. 북에서도 ‘소묘’는 기초 이상의 의미가 없었지만, 축전을 계기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한다.

“각국의 문화참사 등 외국인 100여 명이 왔었는데, 이 세상에 없는 소묘축전이라고 말하군 했습니다. 중국에 있는 주조대표단이 말하길 조선의 미래가 여기서 다 자라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장 속으로”
 

▶제1차 전국소묘축전을 찾은 북의 학생들. [사진 - 민족21 유수 기자]

그러나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미술애호가’ 들의 작품이었다. 조선인민군경비대 6033대대 홍걸, 평양 인쇄공업대학 2학년 박광전,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 김민수, 김책시 원성철, 백두산선구청년발전소 건설전투원 리해성, 조명관, 최명길 등 ‘미술’과는 도무지 관련 없어 보이는 이들은 휴식하면서도 총을 손에 든 조선인민군 군인을, 제강소의 새해 첫 출강을, 건설전투장을 그림에 담았다.

강사 선생은 “자기가 실지 생활에서 체험하지 않으면 이런 화폭이 나올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전시회를 둘러 본 만수대창작사의 공훈예술가는 세부묘사측면에서는 비전문가들이 더 낫다며 “애호가들의 작품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말했다고 한다.

리동찬 평양구두공장 지배인은 공장의 모습을 ‘현지습작’으로 그렸다. 공장의 공원·목욕탕 건설에 나서고 농촌, 도로건설장, 주택건설장 지원에 나선 노동계급의 생활이 A4용지에 펜으로 빼곡이 가득찼다.

《조선신보》 보도는 리동찬 지배인이 공장의 노동자를 고무하기 위해 ‘속보’를 1970년대부터 만들어 오고 있다고 전했다. “종업원들의 사상감정을 발동시키는 ‘불씨’를 멋지게 준비하는 수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북에서 미술은 생산현장의 ‘무기’이기도 했다.

“하루 무려 700∼800명씩 명절날에는 무려 1600여 명까지 이곳을 찾았습니다. 모두가 2차 축전에는 훌륭한 작품을 들고 찾아오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차에 참가하지 못했던 동무들이 다음 번에 참가하겠다고 얼마나 좋은 의견을 내는지 모릅니다. 2차가 더 기대되고 있습니다.”

소묘축전을 계기로 오랫동안 그림을 놓았던 이들이 연필을 다시 잡았고, 미술을 배우는 학생들은 창작실의 석고를 내려놓고 연필과 종이를 들고 생산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했다.

 

이 기사는 ‘월간 민족21’ 이번 달인 4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민족21과 통일뉴스와의 제휴 방침에 따라 이 기사를 통일뉴스에도 전재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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