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우(통일연대 전사무처장)


사람들은 쉽게 자유와 인권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그럴까?

『우리 눈으로 본 세계화와 민족주의 』(2002, 오름)에서 김영명 씨는 자유와 인권이 보편적인 가치라고 쉽게 단정하는 일련의 경향에 대해 비판한다.

먼저, 자유와 인권이외에도 보편적인 가치라고 할만한 것은 많이 있다. 가령 “평등, 정의, 박애” 등이 그러하다. “이들 또한 자유, 인권과 마찬가지로 서양에서 유래한 보편 가치이다.”

그럼에도 자유와 인권을 보편적 가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서양에서 발원한 또 다른 보편 가치인 평등에 대해서는 별다른 강조를 하고 있지 않다. 자유와 평등은 상호 배치되는 경향이 있는 데 자유만을 특정하여 강조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김영명 씨는 “자유와 평등보다 더 ‘보편적으로’ 정치가나 정치사상가들의 머리를 지배해온 보편 가치로 ‘정의’와 ‘덕’, ‘행복’ 등이 있다”고 쓰고 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인권이 보편적인 가치라고 강조되는 이유는 서구 세력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특정한 덕목만을 보편적인 가치라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유럽 근대에서 발원한 보편 가치 중 평등의 문제는 배제되고 자유만이 유독 강조되는 이유 또한 그것이 현 세계사에서 힘과 이데올로기를 장악하고 있는 권력자들의 구미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념과 가치란 인간이 제기하는 것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은 자신의 요구에 맞게 선택적으로 이념과 가치를 취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구 사회가 자신의 이익에 맞게 선택적으로 취한 가치를 우리가 비판적인 태도 없이 무턱대고 받아들이고 있는 점이다.

필자는 위의 김영명 씨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논의를 진행시켜 보겠다.

첫째, 보편적이라고 간주되는 가치에는 고유의 사회역사적 맥락이 있다. 보편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치에서 그것이 출현한 사회역사적 맥락을 빼버리면 보편적이라기보다는 ‘공허’한 것이 되고 만다.

가령 서유럽 근대에서 자유는 재력과 교양을 갖춘 부르조아의 사유재산에 대한 자유가 핵심이다. 진보와 보수, 혁명과 반동을 거듭했던 프랑스 혁명을 일관하게 관통했던 주제가 바로 부르조아의 사유재산권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현재 강조하고 있는 인권의 핵심은 자유선거이다. 미국은 인권을 주로 시민적ㆍ정치적 권리에 한정할 뿐 이를 사회경제적 권리 또는 민족자결권 따위로 확장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동서양을 통틀어 제기된 여러 보편 가치들에게도 공히 적용된다.

플라톤이 강조하는 이성의 주체는 철인(哲人) 또는 현인(賢者)이다. 플라톤에게 있어 노예는 이성의 주체가 아니며 그리스의 대중적 민주주의는 배격의 대상이었다. 공자가 주창했던 인(仁)의 주체 또한 모든 백성이 아니라 당시 통치계급이었던 군자(君子)이다(이와 대립하는 것이 묵자의 겸애 사상이다). 예수나 석가가 제창했던 사랑과 자비 등에도 고대 노예들의 사무친 원한에 대한 밑으로부터의 요구와 함께 이를 토지에 결박된 순종하는 농민으로 개조하려는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둘째, 그렇게 해서 출현한 보편적인 가치들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함께 발전한다.

자유주의는 부르조아의 이익과 사유재산권에 대한 자유를 뛰어 넘어 모든 인민들과 정치적 자유로 확장되었다. 특히 서유럽에서 자유가 민주주의와 결합되어 일정 연령 이상의 성인 모두에게 선거권이 주어지고 자유에 사회적 책임과 국가 개입이 결합되어 공황과 전쟁과 같은 사태를 견제하려는 노력은 인상적이다.

인권의 경우에도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는 권한을 뛰어 넘어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 사회경제적인 여건을 존중하는 문제, 특정한 민족ㆍ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사회가 요구하는 문화와 언어, 자결권 따위를 보장받는 권리로까지 확장되는 과정 또한 중요하다. 이것이 역사의 발전이고 진보의 흐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자유와 인권을 보편적이라고 간주하는 일련의 발상 속에는 자유와 인권이 시대와 함께 발전해 온 과정과 그것이 여타의 가치들과 결합되어 풍부화되는 일련의 과정이 누락되어 있다.

신자유주의나 부시 행정부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 정책 따위가 파괴적이고 반동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200~300년 전쯤의 자유주의 사상을 시대를 거슬러 막무가내로 내려 먹이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이른바 보편적 가치 또한 누가 제기하고,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가의 문제가 중요하다. 즉 무엇을 중요한 가치로 선택하고 이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우리 자신’의 선택과 판단의 문제인 것이다.

IMF 이후 정치적 민주주의가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을 보면 자유가 확장되고 민주주의가 발전한다고 해서 사회가 나아진다고 볼 수 없는 것 같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주요하게 검토해야 하는 가치는 오히려 자유보다는 평등의 문제이다. 자유를 확산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자유가 중요할 수 있지만 사회적 불평등에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 사회의 입장에서는 평등에 대한 깊은 고민이 절실하다.

IMF 이후 세계화 국면의 확장에 따라 두 가지 차원으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하나는 수출민간대기업ㆍ자산계층과 여기서 소외된 비정규직을 비롯한 노동자ㆍ농민ㆍ영세상공인 등이고 다른 하나는 외자와 세계화에 편입된 부분과 국내 부문이다. 전자는 계급의 문제이고 후자는 민족 또는 국민경제의 문제이다. 객관 현실은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자발적인 선택과 의지보다는 그가 어떤 민족, 계급, 국민의 구성인인가가 중요한 시점에 접어들었다.

평등과 집단의 문제가 더 깊이 탐구되고 논의되어야 할 시점에 자유와 개인이 중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또한 그러한 의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가치는 구체적인 사회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 이른바 보편적 가치로 선택되는 것도 정치적 힘 관계의 반영이다. 그런 면에서 자유와 개인을 중시하는 일련의 경향에는 미국의 이해관계가 짙게 반영되어 있다.

위의 문제와 함께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사물을 보는 관점과 태도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머리로, 자신이 발딛고 선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관점에 서기보다는 서구에서 회자되는 의제를 그대로 도입하려는 사대(事大)적 관점과 태도가 너무 많다.

자유와 인권은 근대 서유럽에서 태동한 가치 체계로 인류 역사에서 선양할만한 모범이다. 그러나 여러 진보적인 가치 중에서 무엇을 중심으로 사고하며 그것을 시대에 맞게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인권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빈도를 살펴보면 정작 우리 자신이 처한 상황과 연관없이 과잉(過剩) 의제화되었다. 그 과잉분만큼 우리는 쓸데없는 남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것을 업으로 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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