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공장기업소, 대학들에 명예인사, 명예학생으로 등록된 남녘의 애국렬사들과 학
생명단.' [자료제공 - 추모연대]
북한의 공장기업소나 대학에 ‘명예인사’, ‘명예학생’으로 등록된 남측 ‘민족민주열사’. 학생 31명의 명단이 최초로 공개됐다.

명단, 추모연대가 북 민화협 통해 입수

북측에 등록된 남측 ‘명예학생’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들은 2002년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숨진 신효순.심미선 학생으로 2003년 3월 북측의 평양모란봉 제1중학교에 명예학생으로 등록됐다가 2005년 3월 명예졸업장을 수여받은 바 있다.

또 ‘민족민주열사’들의 유가족 및 관계자들이 방북시, 북측이 이들에게 명예졸업장 사본을 전달한 사례 등을 통해 북측의 학교기관에 등록된 남측 ‘명예학생’이 간접적으로 드러난 바 있으나 북측이 작성한 서류를 통해 ‘명예인사’ 31명 명단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측의 ‘명예학생’은 우리의 ‘명예학생’ 또는 ‘명예졸업자’와는 달리 대리자 1인이 명예학생의 이름으로 해당학교에 출석해 소정의 과정을 마쳐야만 졸업장을 수여받을 수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통일뉴스>는 ‘북의 공장기업소, 대학들에 명예인사, 명예학생으로 등록된 남녘의 애국렬사들과 학생명단’을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추모연대, 의장 박중기)로부터 입수해 이를 공개한다.

입수경위와 관련해, 추모연대 이형숙 사무처장은 “지난 해 10월말 사회단체원로대표의 ‘아리랑’ 참관행사에 참여한 김택진 추모연대 통일위원장이 북측 민화협에 명단 입수를 구두로 요청한데 대해, 11월말 개성실무 접촉을 위해 방북한 ‘겨레하나’가 북측 민화협으로부터 전달받았다”고 전했다.

추모연대는 겨레하나로부터 11월 25일 명단을 넘겨받았으며, 11월 30일 통일부에 신고 절차를 마쳤다.

명단은 명예인사들의 이름, 성별, ‘직위 및 당시 나이’, ‘투쟁업적’, ‘등록된 (북측) 공장 및 기업소’로 구성돼 있으며, 대부분이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군사정권과 맞서 교내에서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정권에 의해 희생됐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민족민주’ 열사 및 희생자들이다.

80년대말. 90년대초 열사들에 집중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 대학생을 제외한 인사로는 1969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을 당한 김종태 서울시당 책임자와 2002년 신효순.심미선 양 정도다. 또 생존자로는 1987년 평양에서 열린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대협’ 방북대표로 참가했던 임수경 씨가 유일하다.

명단 중 박종철, 이재호, 김세진, 박관현, 박래전, 이철규, 강경대, 박승희, 김귀정, 이내창 ‘열사’ 등 대부분이 우리에게도 낯익은 이름들이다. 이들 중 2명을 제외한 29명은 추모연대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민주노총이 공동으로 발행하는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자료집에 모두 올라가 있다. 또 대부분이 우리 정부가 공식 인정하는 민주화운동 관련자이다.

1987년 ‘6.10항쟁’을 촉발시킨 박종철 열사의 경우, 김일성종합대 조선어문학부 조선어학과 3학년에 1987년 3월 3일 등록됐다가 1989년 8월 10일 졸업했으며, ‘투쟁업적’에는 “대학교 총학생회산하 ‘민주화투쟁위원회’ 조직책으로 반독재민주화투쟁에 참가. 1987. 1. 14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랍치. 고문 끝에 학살. 강제화장 당함”이라고 기술돼 있다.

박종철 열사는 당시 서울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3학년 재학 중으로서, 이 명단으로 미루어 볼 때, 북측은 조선어문학부 조선어학과라는 비슷한 전공에 똑같은 학년으로 박종철 열사를 명예학생으로 등록하려 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재학 기간도 1년으로 졸업학년인 4학년과 일치한다. 또 당시 서울대총학생회는 북한의 김일성종합대학과 자매결연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7년 당시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이한열 열사의 경우, 평양의과대학 의학부 의학과 2학년에 1987년 7월 11일 등록됐다가 1992년 3월 23일에 졸업했다. 투쟁업적으로는 “1987. 6월항쟁에 결연이 뛰여들어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피타게 절규하며 싸우다 경찰의 야만적인 최루탄 공격에 치명상을 입고 1987. 7. 5 희생됨”이라고 적혀 있다.

유일한 생존자는 ‘통일의 꽃 임수경’

유일한 생존자인 임수경 씨는 “민족의 장한 딸, 통일의 꽃”이라고 기술돼 있으며, 김형직사범대학, 김일성종합대, 김책공업대학, 원산경제대학, 김종태사범대학, 평양연극영화대학, 평양외국어대학, 원산농업대학 등 명예학생으로 등록된 대학만도 8곳에 이르는 ‘영예’를 안았다.

이형숙 사무처장은 북측의 명예인사 등록 기준에 관련해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면서도 “1987~89년 학생열사들이 집중적으로 등록된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당시 북측이 학교간 교류사업을 벌였던 대학의 학생이 중요한 선발 기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는 남측 인사들의 출신 학교 및 전공과 명예인사로 등록된 북측 학교기관과의 연관 관계에 대해 “교류협력 관계에 있는 대학의 경우 해당 학교에 배치했으며, 그 이외의 열사 및 희생자들의 경우 정확하지는 않지만 생전의 전공을 최대한 맞추려고 한 북측의 노력이 엿보인다”고 평가했다.

북측에 등록된 명예인사들의 현재 지위와 관련해서는 “대부분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아 국가로부터 제도적 명예회복을 받으신 분들”이며 “일부 의문사의 경우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31명의 명예인사는 남북한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인사들인 셈이다.

명예인사로 등록된 추가 명단에 대해서 그는 “당초 100여명이 북측에 명예학생으로 등록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1980년대 말 이후 연도별 날짜별로 명단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으로 봐서 31명이 최종 명단일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향후 남북교류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추가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추모연대, 해당학교.기업소 방문 ‘희망’

특히, ‘명예인사’ 명단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 그는 지난 해 추모연대가 백두산 피치지원 사업을 벌인 것을 거론하면서 “회원단체들이 북측에 대한 지원사업 외에 통일사업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북측과 사업을 벌이기 위한 공식적인 대화창구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민족민주 열사 및 희생자 추모사업을 주로 벌이는 추모연대가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벌이기 위한 북측 해당 기관을 찾기가 쉽지않은 것은 사실. 그는 “심지어 북측의 ‘혁명열사릉’, ‘애국열사릉을 관리하는 기관도 찾아보려 했다”고도 말했다.

이어 이 처장은 올해 통일사업으로서 민족민주열사 및 희생자 유가족들과 함께 △해당 학교 및 공장방문 △졸업장 원본 수여식 행사 추진 △관련 북측 ‘명예학생’ 초청 △매년 열사 기일 등을 기념해 토론회.운동회 개최 등 해당 학교와 지속적인 교류사업 등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북의 공장기업소, 대학들에 등록된 남녘 열사.학생명단, 추모연대 제공> 

 

 

NO.

이름

성별

직위 및 당시나이

투쟁업적

등록한 공장, 대학

등록날자

졸업날자

1

김종태

남자

통일혁명당시울시위원장

조국통일성업에 나섰다가 1969.7.10 파쑈교형리들에 의해 체포되어 학살당함.

평양전기기관차공장을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으로 개칭.

해주사법대학을 김종태사범대학으로 개칭.

1969.7.12

 

2

박종철

남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3학년(22세)

1984년에 입학한후 <민민투>에 가입. 대학교 총학생회산하<민주화투쟁위원회>조직책으로반독재민주화투쟁에 참가. 1987.1.14<치안본부>대공분실에서 랍치 고문끝에 학살. 강제화장당함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조선어학과 3학년

1987.3.3

1989.8.10

3

김태훈

남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 4학년(22세)

1978년에 입학한 후 운동권에서 활동. 1981.5.27 광주인민봉기1돐 기념집회와 롱성투쟁에 참가. 학우들을 애국투쟁에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대학도서관 5층 옥상에 올라가 <미제반대, 전두환역도타도>를 외치며 장렬하게 희생.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 4학년

1987.3.3

1988.6.4

4

박혜정

녀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4학년(22세)

1983년 입학한 후 대학의 여러 운동단체에 망라되어 군사파쑈통치를 반대하는 의식화투쟁을 전개. 파쑈교형리들의 탄압만행으로 1986.5.21 투쟁현장에서 희생.

김형직사범대학 어문학부 국어국문학과 4학년

1987.3.6

1988.8.17

5

리재호

남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학과 3학년(22세)

대학<반전박핵평화옹호투쟁위원회>위원장으로 활약. 1986.4.28 대학생들의 전방입소훈련반대투쟁을 벌리다가 파쑈교형리들의 탄압만행에 항거하여 서울 관악구 신림 4거리의 한 3층건물옥상에서 <반전반핵,양키고홈,미제의 용병교육, 전방입소결사반대>를 외치고 분신자결.

김형직사범대학 김일성동지혁명력사학부, 김일성동지혁명력사학과 3학년

1987.3.6

1989.8.17

6

한영현

남자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기계학과 3학년(25세)

1981년에 입학한후 대학에 여러 운동단체에 망라되여 민족자주의식화활동과 민주화운동에 참가. 1983.1 경찰에 련행되여 군대에 강제징집되였으며 강제적인 군대징집에 항거하다가 1983.7.2 총창에 찔리워 학살당함

김책공업종합대학 기계제작학부 공작기계학과 3학년

1987.3.7

1990.11.19

7

김세진

남자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미생물학과 4학년(21세)

대학학생회장으로 활동. 1986.4.28 대학생들의 전방입소훈련반대투쟁을 주도하다가 서울관악구 신림4거리 3층건물옥상에 올라가 <반전반핵,양키고홈,미제의 용병교육, 전방입소결사반대한다>의 구호를 외치면서 폭압에 항거하며 분신자살.

평양의학대학 기초의학부 기초의학과 4학년

1987.3.13

1989.12.24

8

최온순

남자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학과 2학년

입학첫날부터 반미자주화 반파쑈민주화운동에 참가. 1983. 소시위 예비음모죄로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 군대에 끌려가서 1983.4.30 학살.

김종태사범대학(현 김종태대학) 물리수학부 수학과 2학년

1987.3.13

1989.3.5

9

황정하

남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토목학과 4학년(23세)

1980. 입학한 후 자주민주통일을 위해 선봉에서 용감하게 투쟁. 1983.11.8 미국대통령 레간의 행각을 반대하여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민주화투쟁선언>이라는 유인물을 뿌리고 반미반독재구호를 외치면서 대학도서관 5층에서 뛰어내려 장렬하게 최후를 마침.

건성건재대학 건축공학부 건축공학과 4학년

1987.3.14

1989.4.10

10

박관현

남자

전남대학교 경영대학 행정학과 4학년(28세)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광주인민봉기와 광주청년학생들의 홰불시위 등 반미반파쑈투쟁의 능숙한 조직자, 지휘자의 한사람으로 활약. 1982.4 부산미국문화원방화사건의 <배후조종자>로 체포되어 5년의 징역형을 언도받고 복역중 1982.10.12 교형리들의 악착한 고문과 장기간의 단식투쟁의 영향으로 감옥에서 희생

경공업대학(현 한덕수경공업대학) 경공업경영학부 방직경영학과 4학년

1987.3.17

1989.8.30

11

진성일

남자

부산산업대학교 행정학과 3학년(23세)

1986.11.5 서울에서 대학생들의 반정부투쟁에 호응하여 문과대학 5층옥상에서 <민족분단영구화하는 미제와 군사독재 물러가라!>, <건대롱성사건진상 규명하라!>의 구호를 부르며 학우들을 성스러운 애국투쟁에 떨쳐나서도록 호소하면서 장렬하게 분신자살

상업대학(현 장철구상업대학) 경리학부 상업경영학과 3학년

1987.3.20

1990.12.8

12

리동수

남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원예학과 1학년

대학재학중 군대에 징집, 제대하여 복역한후 1986년 광주인민봉기 5돐에 즈음한 <5월제>개막행사에 참가, 경찰의 학원침입에 항거하는 표시로 <미제국주의를 축출하자!>, <경찰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학학생회관 4층옥상에서 불타는 몸으로 떨어져 자결함.

원산농업대학과 과수학부 과수학과 1학년

1987.3.21

1991.3.7

13

김두황

남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경제학과 3학년(23세)

1980년에 입학, 대학경제학회 책임자로서 민족경제의 자주적발전과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적극 투쟁, 1983.3.8, 4.19기념행사준비에서 주도적으로 활약하던중 체포되어 군에 징집, 100여일간의 가혹한 고문끝에 1983.6.13 무참히 학살됨.

원산경제대학( 현 정준택원산경제대학) 계획경제학부 경제계획과 3학년

1987.3.24

1991.5.10

14

김성수

남자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지리학과 1학년(18세)

총학생회산하 연극부원으로서 반미반파쑈민주화운동에 헌신하던중 1986.6.4 경찰이 체포하여 학살하고 각이한 크기의 세멘트덩이 3개를 서로 다른 끈으로 허리에 매달아서 부산서구 바다속에 처넣음.

남포사범대학(현 삼광대학)력사지리학부 지리학과 1학년

1987.3.27

1990.8.18

15

리한렬

남자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2학년(21세)

1987.6월항쟁에 결연이
뛰어들어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피타게 절규하며 싸우다가 경찰의 야만적인 최류탄공격에 치명상을 입고 1987.7.5에 희생됨

평양의학대학 의학부 의학과 2학년

1987.7.11

1992.3.23

16

조성만

남자

서울대학교 화학과 4학년(25세)

재학도중 1985년에 군대에 징집, 제대후 명동성당청년단체련합회 관계자로서 6월항쟁을 비롯한 반미반파쑈민주화운동 전개, 1988.5.15 명동성당에서 <광주민중항쟁계승 5월제>가 열렸을때 교육관 4층옥상에 올라가 몸에 신나를 뿌린 다음 <구속인사 가둬놓고 민주화가 웬말이냐!>, <올림픽공동개최하여 조국통일 앞당기자!>를 외치면서 몸에 불을 단 다음 칼로 배를 찌르고 분신자살

김일성종합대학 화학학부 화학과 4학년

1988.5.21

1990.12.7

17

최덕수

남자

단국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2학년(20세)

1986.5.18 대학에서 광주사태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을때 대학학생회관옥상에 올라가 <광주민중항쟁성명서>를 읽은 다음 분신자살함으로써 광주학살주범인 미제와 남측당국을 규탄하는 투쟁에로 학우들을 불러일으킴.

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법학과

1989.6.2

1991.10.3

18

박래전

남자

숭실대학교 인문대학 국문학과 3학년(25세)

인문대학 학생회장으로서 1988.6.4 자주,민중,통일을 위한 청년학생들의 지향과 남북학생회담을 가로막아나선 미제와 남측당국에 대한 단호한 항거의 표시로 대학학생회관 5층옥상에서 <광주는 살아있다! 끝까지 투쟁하자! 우리는 승리한다!>를 외치며 학우들을 투쟁에로 불러일으키며 분신자살

김형직사법대학 어문학부 국어국문학과 3학년

1988.6.15

1990.8.17

19

남태현

남자

서울교육대학 륜리교육학과 4학년(24세)

입학후 여러차례 반미반파쑈운동에 적극 참가하였으며, 당국의 파쑈폭압과 반통일행위에 항거하여 1989.4.7 <조국의 자주화와 민주화 그리고 통일의 그날을 위해 교대인들이여! 깨여나라!>고 외치며 대학강의동 건물 3층에서 분신자살

김형직사법대학 교육학부 교육학과 4학년

1989.

4.22

1990.8.9

20

리철규

남자

조선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 4학년(24세)

1984년에 입학한 후 반미반정부운동에 적극 참가, 수배, 체포된 후 2년간 감옥생활, 출옥, 복학한 후 폐간된 대학교지 <민주조선>특간을 위해 적극 활약, 편집위원으로서 북의 현실을 소개선전하며 학우들을 의식화하고 자주,민주,통일에로 불러일으킴. 파쑈교형리들이 <보안법>에 걸어 체포하고 잔인하고 고문학살. 1989.5.10 광주제4수원지에서 변사체로 발견됨.

김책공업종합대학 전자공학부 공업전자공학과 4학년

1989.11.9

1992.10.31

21

림수경

녀자

한국외국어대학교 룡인 분교 프랑스 어학과 4학년

대학총학생회 총무부차장, 성남룡인지역 평양축전준비위원회 정책실장, 전대협 평양축전참가준비위원회 정책기회실 차장, 파쑈분자들의 폭압을 뚫고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대협대표로 참가하였으며 위협을 무릅쓰고 기어이 판문점을 통해 돌아감. 체포된 후 교형리들의 고문과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애국적지조를 지켜 싸운 민족의 장한 딸, 통일의 꽃.

김형직사법대학 외국어학부 영어학과 4학년

1989.7.10

1990.8.17

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 프랑스어문학과 4학년

1989.11.28

1990.10.12

김책공업종합대학선박공학부 선박건조학과 4학년

1989.11.30

1992.10.31

원산경제대학(현 정준택원산경제대학)계획경제학부 경제계획과 4학년

1989.11.30

1991.5.10

김종태사범대학(현 김종태대학)외국어학부 영어학과 4학년

1989.12.5

1990.8.20

평양연극영화대학 문학리론학부 영화리론학과 4학년

1989.12.5

1990.8.30

평양외국어대학 3학부 프랑스어학과 4학년

1989.12.12

1989.8.30

원산농업대학 원림 및 경제식물학부 원림학과 4학년

1989.12.12

1991.5.10

22

강경대

남자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1학년(19세)

1991.4.26 총학생회장 등 구속학우들의 석방요구와 학비인상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려다가 대학에 침입한 백골단들이 휘두른 쇠몽둥이에 의해 타살당함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재정경제학과 1학년

1991.6.1

1995.6

23

박승희

녀자

전남대학교 자연대학 식품영양학과 2학년(20세)

고등학교때부터 학생운동에 참가, 대학교지 편집위원으로서 학우들의 의식화를 위해 활약. 1991.4.29 강경대학생학살만행규탄집회때 대학교 중앙도서관 5.18광장에서 <로태우정권타도하고 미국을 몰아내자!>고 절규하면서 분신자살.

정공업대학 식토가공학부 2학년

1991.6.3

1995.3.13

24

김영균

남자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2학년

대학교지 편집위원. 과학교육 부총학생회장. 1991.5.1 대학학생회관앞 연주광장에서 진행된 <고 강경대렬사추모 및 공안정치분쇄를 위한 범안동연대회때 <로태우정권타도>구호를 외치며 분신자살

김철중사범대학 력사지리학부 력사과 2학년

1991.6.4

1993.8.30

25

천세용

남자

경원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계산기학과 2학년 (20세)

1991.5.3 강경대치사규탄집회때 공대건물 2층에서 신나를 끼얹은 몸에 불을 단 다음 <6천경원인 단결하여 살인정권 타도하자>는 마지막 구호와 함께 6m아래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장렬하게 분신자살.

갬책공업종합대학 전자계산기학부 전자계산기학과 2학년

1991.8.5

1995.10

26

남태혁

남자

동국대학교 철학과 2학년(27세)

1991.5.4 백골단해체를 위한 범국민궐기대회에 참가하였다가 납치, 학살됨. 1991.5.12 한강동작대교 부근 물속에서 발견

김형직사범대학 철학부 철학과 2학년

1991.8.6

1994.8.3

27

안성모

남자

동국대학교 철학과 2학년(26세)

1991.5.4 백골단해체를 요구하는 범국민궐기대회에 참가하였다가 납치.학살됨. 1991.5.12 서울 동작대교부근 물속에서 남(26번학생) 학생과 함께 익사체로 발견

김형직 사범대학 철학부 철학과 2학년

1991. 6.6

1994.8.3

28

김귀정

녀자

성균관대학교 프랑스문학과 3학년(25세)

대학교 총학생회산하 조국통일학생추진위원회 성원으로 활동. 1991.5.25공안통치분쇄를 위한 제 3차 국민대회에 참가하고 시위투쟁에도 앞장섰다가 최루탄을 마구 쏘아대고 쇠파이프를 휘둘러대던 폭압경찰에 포위되여 뭇매를 맞고 무참히 학살됨

평양외국어대학 3학부 프랑스어학과 3학년

1991.6.7

1993.9.2

29

리래창

남자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조소학과 3학년(27세)

1986년에 입학하여 반미반파쇼운동에 참가, 대학미술운동서클인 <한솔회> 핵심으로 활약, 대학안에 <민족미술연구회>를 조직하여 민족미술선전사업전개. 1988년 여름에 <서울지역 미술대학 애국한마당> 행사를 조직하여 학생들을 반미자주화투쟁에로 불러일으켰고 <서울지역미술대학련합전선>결성을 위해 활동. 1989년 중앙대 걸게그림사건에도 관여. 1989.8.15 <안기부>가 전남 거문도로 유인, 랍치하여 야수적으로 고문학살하고 바다에 버림.

평양미술대학 조각학부 조각학과 3학년

1992.5.24

1995.8

30

신효순

녀자

경기도 양주군 조양중학교 학생(14세)

2002.6.19 동무인 심미선과 함께 길을 가던 중 미제침략군의 탱크무한궤도에 의해 무참히 학살

평양모란봉 제 1중학교 4학년

2003.3

2005.3.24

31

심미선

녀자

경기도 양주군 조양중학교 학생(14세)

2002.6.19 동무인 신효순과 함께 길을 가던 중 미제침략군의 탱크무한궤도에 의해 무참히 학살

평양모란봉 제 1중학교 4학년

2003.3

2005.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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