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옥진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위원)


지난 9일부터 3일간 베이징에서는 5차 6자회담이 진행되었다. 9월 19일,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말 대 말’의 합의를 담은 공동성명이 채택된 이래 다음 단계로의 이행, 즉 ‘행동대 행동’의 이행단계를 담기 위한 참가국들의 사전 외교활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이번 회담에 대한 내외의 관심과 기대는 높았다. 그러나 회담은 의장성명 채택으로 1단계를 마감지어야 했다.

이번 회담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이미 예견되었다. 미국은 이번 회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자국 내 북한의 자산동결을 비롯한 경제제재와 각종 모략극을 벌여왔다. 특히 7일, 재등장한 부시 미대통령의 ‘폭군’ 발언에서 이번 회담의 전망과 분위기를 예측할 수 있었다. 더구나 경수로와 농축우라늄 핵프로그램 계획과 관련하여 북미 간의 의견 불일치가 있었고, 이것을 둘러싼 북미간 정치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된 데서도 회담의 어려움은 예측되었다. 동시행동조치에 걸맞는 무게감 있는 순서를 정하는 것이 그리 녹녹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오히려 다음 회담에서 결실을 맺기 위한 추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가시적인 행동조치가 마련되지는 못했으나 2단계 5차 6자회담에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여건과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에서 전체회의를 비롯한 양자회담을 통해 각국의 입장과 원칙, 방안이 검토되었다. 따라서 향후 이를 조정해 모두가 만족할 만한 행동의 순서를 정하기 위한 정치외교전이 더욱 활발하게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이번 회담을 통해 재확인된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북미관계 정상화 실현의 기본 내용과 원칙, 입장을 살펴보려고 한다.

한반도 비핵화 실현, ‘대북 핵위협 제거’

6자회담의 최종목표는 한반도 비핵화 실현이다.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의 기본 내용을 ‘북한의 모든 핵폐기’라 지칭하며 이를 기정사실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미국은 4차 6자회담이 끝나기 바쁘게 북한의 ‘선핵포기’를 다시 강요했다. 이번 회담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은 “지금이 원자로 가동을 중단할 때”라면서 선핵포기에 대한 미련을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미국의 일방적 주장을 시종일관 일축해왔다. 북한은 “조미관계가 정상화되어 신뢰가 조성되고 우리가 미국의 위협을 느끼지 않게 되면 우리에게는 단 한 개의 핵무기도 필요 없게 될 것”이라며, 자신의 핵포기 입장을 일관하게 견지하는 것은 물론 이에 대해 한 치의 타협도 허용하지 않았다.

나아가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우리의 핵무기 계획 포기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조선반도 비핵화에 책임이 있는 미국과 남조선의 의무사항도 명백히 밝혀져 있다”는 입장을 넘어 이번 회담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북한은 남한내 핵무기 존재여부 검증, 미국의 핵우산 제공 중단, 한반도 핵무기 통과 금지와 한국의 핵활동 중단으로 대북 핵위협을 실천적으로 제거할 것을 요구하였다. 즉 한반도 비핵지대화 실현은 북한만이 아닌 공동의 의무와 실천을 통해 위한 첫발을 내딛을 수 있음을 다시금 명확히 한 것이다.

공동성명 이행의 기본원칙 ‘동시행동’

북한은 공동성명 이행을 위해 자신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았다. 북한은 자신의 행동조치로 핵활동을 동결하고 기존의 핵무기를 폐기하며 검증에 기초한 핵무기 생산 포기와 NPT 복귀와 IAEA의 핵사찰을 재개할 것임을 밝혔다. 물론 북한은 이와 관련해 공동성명 이행방안이 완전히 짜여져야 하며, 핵포기 조건이 성숙되는데 따라 단계별 조치를 취할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는 서로의 신뢰가 마련되지 못한 조건에서 믿음을 쌓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에게 먼저 행동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원칙하에 동시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게 되어야 공동성명 이행단계에서 나설 수 있는 불협화음을 없앨 수 있고 서로의 요구를 원만히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북한의 입장과 요구는 11일 발표된 의장성명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의장성명은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의 원칙’, ‘신뢰구축을 통한 공동성명 이행’, ‘균형된 이익 및 협력을 통한 윈윈의 결과 달성 의지’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동시 행동에 의한 한반도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담고 있다. 특히 “각 부문에서의 모든 공약을 실천”한다는 공동성명의 표현은 북한의 요구를 부정 또는 묵살하려던 미국의 움직임과 주장을 배격한 것으로써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은 공동성명 이행의 기본 의제임을 분명히 하였다.

주권존중, 평화공존은 ‘기본의 기본’

미국은 항상 앞에서는 주권존중과 불가침을 이야기해 왔지만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으로 뒤에서는 끊임없는 전쟁책동을 일삼아왔다. 더구나 이번 회담을 앞두고 미국은 북한 기업에 대한 자산동결조치를 비롯해 인권, 위조달러 공모, 마약거래, 돈세탁 등을 조작하여 경제제재와 봉쇄를 시도하였다.

북한은 이러한 미국의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꼬집으며 미국의 이행의지에 대해 의구심을 표명하였고, “공동성명을 무효화하는 데로 떠밀고 있다”면서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이번 회담에서 단단히 따지고 계산할 것을 밝혀 왔다. 게다가 부시의 ‘폭군’ 발언은 기름에 불을 붙는 격이 되어 “미국측 대표도 신뢰할 수 없다”,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완전히 짓밟았다”면서 미국에 대한 북한의 불신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미국의 언행불일치 사례를 조목조목 들면서 회담의 기초는 물론 북미관계정상화의 실현의 기본정신인 ‘주권존중, 평화공존’을 바로 세울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이는 회담에 임하는 미국의 불손한 행동에 쐐기를 박는 동시에 회담분위기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데 필요한 미국의 자세와 태도 전환은 물론 입장을 바로 세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결국 미국은 앞으로 양자회담을 통해 금융제재를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격’이 되고 말았고, 회담참가국들은 회담의 기본이 어디에 있는지를 재각인하게 되었다.

회담의 주도권, ‘북한의 정치외교전’

한반도 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북한의 일관된 입장과 원칙은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회담 참가국들로부터 지지와 공감을 받아왔고, 이번 회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입장과 원칙이 아무리 공명정대한들 그대로 실현되지 않는다. 더구나 미국은 세계지배야망에 들떠 북한을 선제공격하고 점령하려는 전쟁계획들을 끊임없이 수정, 보충하고 있고, 갖은 사건을 조작하여 북한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치열한 힘의 대결, 즉 정치외교전을 동반하게 되고, 이 과정을 통해 마련된 힘의 우위는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도 미국과의 치열한 정치외교전을 통해 마련된 힘을 바탕으로 대화의 주도권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회담의 기초와 원칙을 바로 세워 미국의 일방적 강요와 요구를 제압하였다.

회담에 앞서 북한은 선군과 조선노동당 창건 60돌을 통해 더욱 강화된 ‘일삼단결’로 대미 총결산의 의지를 더욱 높여왔다. 북한은 이러한 자체의 힘을 바탕으로 미국의 선핵포기 요구와 군사적 책동에는 핵억제력 강화방침으로 맞섰고, 미국의 대북경제제재 움직임에는 ‘대조선제재는 선전포고’로 미국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또한 평양을 방문한 리처드슨 뉴멕시코지사를 통해 영변핵시설 참관을 통해 핵무기 전용 의혹은 물론 농축우라늄 핵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음을 명확히 함으로써 미국의 우려를 해소시켜주는 유연함도 보여주었다. 또한 후진타오 주석의 북한 방문과 알렉세에프 러시아측 수석대표의 방북, 그리고 베이징 동반은 중국과 러시아와의 전통적인 친선협조만이 아니라 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무대에서의 지지, 협력강화로 이어져 미국을 압박하였다. 게다가 일본의 관계개선 의지를 통해 마련된 북일간의 양자회담과 지속적인 남북협력은 한미일 삼각공조에 지속적인 균열을 가져오게 하였다.

이처럼 북한은 자체가 가진 힘만이 아니라 정치외교전을 통해 마련된 회담참가국들과의 지지, 협력으로 시종일관 회담의 주동성을 가지게 되었고, 미국을 고립, 포위하는 대미압박공세를 강화함으로써 미국이 자신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내세울 수 없게 만들었다.

다음 2단계 5차 6자회담에서 고도의 경각성 가져야

회담 시작에 앞서 김계관 부상은 “이 등대가 우리한테서 너무 멀리 있는데다 바다 위에는 안개까지 자욱이 피어오르는 바람에 등대가 흐려져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고 말한 것처럼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한 길은 그리 평탄한 길은 아니다. 더구나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이말 그대로의 의미만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6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의 냉전을 허물고 ‘우리민족 대 미국’과의 대결을 실천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며, 세기의 숙원인 민족의 자주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마지막 대결전인 만큼 한 치의 양보 없는 힘의 대결이 이번 회담을 통해 그대로 드러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전개되고 있다. 북한의 대미 총결산의 의지가 분명하고 민족공조의 힘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으며, 국제관계도 우리 민족에게 유리하게 펼쳐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우리 민족이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행동 대 행동의 이행단계를 마련할 2단계 5차 6자회담, 이 길에 다시 안개가 끼는 일이 없도록 고도의 경각성을 가지고 예의주시함으로서 공동성명에 어긋나는 미국의 움직임을 제때 폭로, 분쇄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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