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우리당 정창래의원실 등이 'KAL858기 사건'에 관련한 토론
회를 개최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강호 기자]
'KAL858기 사건'과 관련해 사고 조사 책임국인 미얀마의 조사발표에 앞서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먼저 수사보고서를 발표했다는 것이 9일 확인됐다.

 

이날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실, 천주교인권위원회, 'KAL858기사건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상임대표 김병상 몬시뇰)이 주최한 'KAL858기 진상규명 촉구와 언론의 보도행태에 관한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나선 대책위 집행위원장 신성국 신부는 1988년 2월 미얀마 당국이 작성한 '조사보고서'의 표지를 공개했다.

대책위가 지난 해 정보공개 청구로 입수해 이날 공개한 '미얀마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운수체신부 민간항공국의 조사보고서'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의 표지는 1988년 2월 작성돼 있으며, 소제목으로 '1987. 11. 29 미얀마 우르디스와 타보이 구간 안다만해로 추락한 대한항공 B707 HL7406 항공기 사고'라는 제목을 달았다.
 
안기부의 성급한 수사발표, "국제협약 위반"

김현희의 진술을 토대로 안기부가 작성한 수사보고서는 1988년 1월 15일 발표됐다. 미얀마 당국의 발표보다 최소 보름 이상 앞당겨 발표한 것이다. 항공기 사고조사와 관련해 사고 조사권을 가진 나라의 최종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성급하게 안기부가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은 국제협약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편으로 국제협약을 위반하고서라도 성급하게 조사결과를 발표했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된다.

▶사건 당시 언론의 보도행태를 비판하는
신성국 신부.[사진 - 통일뉴스 이강호 기자]
이에 대해 신성국 신부는 "국제민간항공협약(Convention on International Civil Aviation) 26조에 따라 해당 사고 조사권을 갖는 나라의 최종결과 보고서가 나오기도 전에 안기부가 수사발표를 한 행위는 국제협약의 위반이며 사고 조사의 진위성 논란만 가중시키는 부당한 행위이다"고 밝힌 최흥옥 전 건교부 항공조사국 국장의 11월 8일 증언을 전했다.

또 같은 날 "시카고 조약(국제민간항공협약)에 근거하여 사고 조사 책임국의 조사 후에 피해국의 조사발표가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인 건교부 항공조사국 서기관의 증언도 덧붙였다.

조사 책임국은 '해상추락', 안기부는 '공중폭파'

특히, 미얀마 당국이 발표한 조사보고서의 표지는 KAL858기 사고의 성격을 항공기의 '해상 추락'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안기부는 당시 사고를 '공중폭파'로 규정해 상반된 결과를 보이고 있다.

신 신부의 자료에 따르면, 당시 정부 사고조사단의 일원이었던 한재기 교통부 서울항공관리국 검사과장은 "1987년 11월 30일 도착 당일부터 같은 해 12월 10일까지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선인 '산악지역'을 수색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04년 대책위와 'KAL858기 가족회'(이하 가족회, 회장 차옥정)의 질의에 국가정보원(국정원)은 답변서에서 "정부 합동조사단은 태국과 미얀마 정부의 협조를 받아 합동수색 구조본부를 설치하고 항공기, 어선, 지상수색대의 지원을 받아 KAL기 추락 예상지점인 태국, 미얀마 국경의 '산악과 해상지역'에 대한 수색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미얀마 당국과 안기부의 수사보고서의 결과는 '추락'과 '폭파'라는 점에서 서로 상반될 뿐만 아니라, '해상과 산악'을 동시에 수색했다는 국정원의 최근 답변과 당시 한 과장의 진술은 서로 엇갈리고 있다. 이처럼 엇갈리는 진술과 조사결과 발표와 관련해, 안기부의 수사보고서는 신빙성이 떨어질 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KAL858기 사건이 "안기부에 의한 공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신 신부는 안기부가 미얀마보다 수사결과를 먼저 발표한 것에 대해 "안기부의 실책이다"고 비꼬았다.

그는 "세계 항공사상 최단기간 수색기간에다, 조중건 대한항공 사장이 현장에 달려가 무슨 근거로 '테러에 의한 사건이다'고 결론을 내렸는지 모르겠다"면서 "12월 9일 정부수색단  철수 이후 12월 13일 구명보트가 발견됐다. 이를 마치 항공기 테러의 증거물의 전부인양 증거물로 채택했는데 그렇다면 12월 13일 대대적 추가 수색이 따랐어야 하지 않았느냐. 구명보트 하나만 테러의 증거물로 삼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급한 수사발표, 올림픽 단독개최 의도

▶이날 토론회에는 KAL858가족회 회원 등 50여명이 참가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강호 기자]
안기부가 미얀마 당국보다 수사결과를 앞당겨 발표한 이유에 대해 그는 당시 대두되고 있었던 '88 서울올림픽'의 남북 분산(공동) 개최 요구를 무마하기 위한 당국의 의도였다고 주장했다.

KAL858기 사건 이후인 1987년 12월 9일 열린 레이건-고르바쵸프 미소 정상회담 실무회담에서도 올림픽 남북 분산(공동) 개최 문제는 중요한 안건으로 다뤄졌다고 당시 언론은 전하고 있다.

신 신부에 따르면, 안기부의 수사보고서를 발표한지 이틀 후인 1988년 1월 17일은 서울올림픽 참가국의 최종 신청 마감일이었다. 당초 서울올림픽 참가국의 최종 신청 마감일은 이보다 50일 전에 마감됐어야 했으나, 제3세계 국가들의 참가 신청이 저조한 형편으로 50일을 더 연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북한이 테러를 저질렀다고 발표함으로써 단독 올림픽을 개최하는 명분을 강화하는데 쓰이지 않았느냐고 보여진다"고 밝혔다.

"북, 서울올림픽 방해 책동 사실 아니다"

▶지정 토론자로 김현희의 국선 변호사였던 안동일 변호사와 월간조선 김성동 기자를
섭외했으나 이들로부터 불참의사를 통보받았다고 주최 측이 전했다. 이들 자리가 비어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이강호 기자]
이와 관련해 이날 토론회에서 'KAL858기 실종사건에 대한 한국언론의 보도행태 분석을 위한 시론(試論)'으로 주제를 발표한 여의도통신 정지환 대표기자는 "통일부 남북회담사무국 자료에 따르면, 북한이 서울올림픽을 방해하려고 책동했다는 주장과 달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주재 하에 남북한이 체육회담을 열어 진지한 대화를 계속해 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는 김현희가 북한의 지령을 받고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남조선 괴뢰의 두 개 조선 책동을 막고 적들에게 큰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안기부의 수사발표와는 상반된다.

정 기자는 "실제로 회담자료를 검토한 결과, 당시 북한은 체육회담에서 크게 손해볼 것이 없는 입장에 서서 공동주최 원칙을 주장하면서 IOC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양보를 받아내는 등의 실리를 취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당시 소련과 중국도 서울올림픽에 참가할 의사를 북한에 분명히 밝힘으로써 당시 국제 정세도 북한이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테러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매우 컸다는 정황이 포착됐다"고 강조했다.

정 기자의 자료에 따르면, 1987년 7월 15일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스위스 로잔느에서 같은 달 14-15일 양일간 열린 제4차 남북체육회담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탁구, 양궁(남.여), 여자배구, 축구예선 1개조, 사이클 남자 개인 도로경기 종목의 조직을 북한 NOC(올림픽위원회)에 부여한다며 1986년 6월 12일 기존 중재안의 수정안을 제시했다.

1984년 LA올림픽이 동서냉전으로 '반쪽짜리' 대회가 됐던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IOC 측이 남북 공동개최 노력을 경주했다고 정 기자는 설명했다.

▶정청래 의원을 비롯해 토론회 참가자와 가족회, 임종인 의원이 토론회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강호 기자]
이같은 IOC 측의 수정 중재안에 대해 "KOC 측은 1987년 8월 17일 회신을 보내, 북한 측이 그들의 공동주최 주장을 철회하고 자유왕래를 보장하며 서울 개회식과 폐회식에 무조건 참가할 것을 약속한다면 IOC 측 수정안을 수락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그는 전했다. KOC측은 사실상 북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전제를 내세움으로써 IOC측 수정제안을 거부한 것이다.

정 기자는 이상과 같은 당시 정황을 설명한 뒤 "이제 체제경쟁의 시대는 끝났다"며 "아직도 주적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은 일부 언론과 정치세력 집단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결정적인 역할이 김현희와 KAL858 사건이다. 북한이라는 성역을 벗어나서 있는 그대로의 진상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현우, "모든 정황이 오히려 안기부의 공작임을 보여준다"

토론자로 나선 소설 '배후'의 작가 서현우씨는 KAL858기 사건에 대해 "안기부가 처음부터 결론을 내려놓고 그 방향에서 언론보도를 조종해 나갔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며 "지금까지 모든 정황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안기부의 공작행위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주최 측은 사건 당시 김현희의 국선 변호사였던 안동일 변호사와 월간조선 김성동 기자를 토론자로 섭외했으나 이들로부터 불참의사를 통보받았다고 전했다.

▶정청래 의원.
[사진 - 통일뉴스 이강호 기자]
이에 앞서 정청래 의원은 인사말에서 "마치 짜맞추었듯이 대선을 코 앞에 둔 시점에 김포 공항에 입에 붕대를 감고 있는 묘령의 여인이 내렸다는 것을 보고 뭔가 잘못됐구나라고 직감했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또 "사람들과 국회의원들이 많이 모이지는 않을 것 같다. 이는 아직까지 KAL858기 사건을 공론화하기에 우리가 할 일이 많구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회 차옥정 회장은 "무고한 사람 115명이 없어졌는데 사실은 가족보다 언론에서 모든 것을 파헤쳐야 하는데, 가족들이 보도를 해달라고 해도 보도를 해준 적이 없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정반대만 보도했다. 말하자면 안기부의 공작 그 자체를 언론이 보도했다"고 개탄하면서 "지금에 와서는 국민들 대다수가 이 사건이 안기부의 '공작이다', '조작이다'라는 것을 7-80% 국민들도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오전 10시 30분부터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2시간 가량 진행됐으며, KAL858가족회 회원을 비롯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박순희 대표, 도서출판 창해 전형배 대표 등 50여명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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