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위원)


11월 7일은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된 날이다. 1978년도에 창설되었으니 벌써 27년째를 맞고 있다. 한미연합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 유엔군사령관 등을 겸직하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됨으로써 그 전까지 유엔군사령관에게 쥐어져 있던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령관에게 넘어가게 된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했던가?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했던가? 유엔군사령관에서 한미연합사령관이라는, 어차피 동일인물로의 작전통제권 이양은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작전통제권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다만 당시의 변화된 정세속에서 미국의 한반도 군사정책의 변화에 따른 산물이었을 뿐이다.

한미연합사의 창설은 미국 군사정책 변화의 산물

1970년을 전후해서 미국의 군사정책은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베트남전에서의 패배가 확실시되고 미국 내와 국제적인 반전 여론이 고조되었던 1969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닉슨독트린’을 발표하여 ‘베트남 문제의 베트남화’, ‘아시아 문제의 아시아화’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이의 연장에서 미국은 아시아지역에서 미군 철수계획을 수립하였으며, 주한미군 또한 1971년 3월 주한 미 제7사단을 철수시켰다. 그러나 미국은 주한미군의 일부 철수로 생기는 전력공백을 메운다는 명분으로 1971년 7월 1일 한미 제1군단을 창설하는 등 기존의 한미 연합지휘체제의 변화를 꾀했다.

또한 1972년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던 유엔회원국 중 마지막 남은 태국군이 철수함에 따라 유엔군은 이제 주한미군만이 남게 되었고, 한국 전쟁 당시 유엔의 적대국인 중국이 유엔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 됨으로써 더 이상 유엔군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객관적 상황이 마련되었다. 더구나 1975년 제30차 유엔총회에서 유엔군사령부 해체와 유엔의 깃발 아래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외국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되기도 하였으며, 미국은 스스로 유엔사의 자진 해체 의사를 밝히기도 하였다.

1976년 9월 30일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키신저는 유엔총회에서 “미국은 한국의 평화를 유지시키는 유일한 법적 장치인 정전협정이 계속 유지되거나 혹은 다른 조치로 대체되는 것을 전제로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할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라고 연설을 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의 유엔사 자진해체 의사 발표에는 유엔이 더 이상 한국 문제를 책임질 수 없고 유엔사가 한국의 방위를 담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엔사령부는 휴전관리와 마땅한 대안이 나올 때까지 정전 수행자로서 정전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정전업무만 전담하고, ‘한국방위’는 별도의 기구를 만들어 담당케 하자는 내막이 숨어 있었다. 여기서 ‘한국방위’는 명분일 뿐이었고, ‘한국에 대한 군사적 지배’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별도의 기구를 모색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미국은 1974년 4월 28일 유엔사를 대체하여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주한미군 선임장교 지휘 하에 한미연합사에 이양할 것을 제의하게 된다. 즉 작전통제권을 유엔군사령부에서 주한미군사령부로 이전시키고 한미연합사가 유엔사령부를 대신하여 한국 방위를 책임지는 체제 개편을 시도한 것이다.

1975년 5월 28일 미국 정부는 연합사 구성에 대한 기본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첫째, 상당 수준의 미군이 주둔하는 한 연합군 사령관에 미군 대장을 임명한다. 둘째, 유엔사의 작전 통제 하에 있는 한국군은 연합사령관이 계속 작전 통제한다. 셋째, 미군의 한미상호 방위조약에 따라 적의 무력 공격 시 전투부대를 제공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미연합사는 1977년 7월 26일 제10차 한미안보연례협의회의에서 합의한 군사위원회 및 한미연합사 권한 위임사항과 1978년에 군사위원회회의에서 하달한 전략지시 제1호에 근거를 두고 같은 해 11월 7일에 창설되었다.

‘한미연합사 권한 위임사항’(이하 권한 위임사항)은 유엔사와 연합사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즉 유엔사는 정전협정 준수 및 관리에 대한 책임을 맡고, 한미연합사는 한국 방어의 책임을 지는 것으로 된다. 따라서 작전통제권은 한미합의의사록에서 명시된 유엔사에서 한미연합사로 넘어가게 된다. 작전통제권은 한미연합사령관인 주한미군사령관이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요약하면 유엔사의 존재 근거가 상실된 1970년대 미국은 새로운 한미연합지휘체제에 대한 재편을 시도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한미연합사가 창설되고, 유엔사에 있던 한국군에 있던 작전통제권은 한미연합사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최고 책임자는 유엔군사령관을 겸임하고 있던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까지 겸임하게 되면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장본인의 변경은 동반되지 않았다. 따라서 유엔사에서 한미연합사로 작전통제권이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주한미군사령관이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본질적 내용에 있어서는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2014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의 함정

최근 노무현 정부가 작전통제권을 늦어도 2014년까지는 환수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으며, 지난 10월에 개최되었던 한미 연례안보회의(SCM)에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논의를 적절히 가속화하기로 원론적으로 합의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가 2014년까지 설정한 근거는 무엇일까?

“그러나 지난 55년간 미군 장성이 맡아온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이 갑자기 되돌려 받기는 어렵다”는 것이 국방부의 설명이다. “그만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첩보위성, 고공정찰기 U-2 등 각종 첩보 수집수단이 미비하여 대북 군사 정보의 대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공중조기경보통제가 4대가 도입되는 2012년 이후로 잡은 것이다.

물론 노무현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냉전수구세력들이 한미관계의 강화만을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일정 긍정적인 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너무 ‘소극적인 접근’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 시점을 ‘대북위협론’(본질상 ‘북한주적론’)에 근거하여 한국군의 독자적인 대북 첩보능력이 완비되는 시점으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작전통제권의 문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된 문제이다. 한미동맹 자체가 정전협정에 근거해서 마련되었으며,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한미동맹은 변화될 수밖에 없는 종속적 변수일 뿐이다. 평화체제가 구축된다면 ‘북한위협론’ 역시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한편 노무현 정부의 ‘소극적 접근’은 변화된 정세 하에서 새로운 한미동맹 관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미국에 의해 악용될 소지도 존재한다. 현재 미국은 한국에 대한 군사적 지배권 유지라는 본질적 측면에 대한 변화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 미군기지의 재배치, 주한미군의 활동 범위 확대, 작전통제권의 환수 등의 한미군사관계의 형식적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110억 달러를 들여 주한미군의 전력을 강화하고 그에 맞추어 한국군의 전력 강화를 주문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소극적 접근’은 국방력의 강화를 전제로 한다. ‘대북 군사 능력의 강화’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의 ‘소극적 접근’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구상과 일치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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