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 (pbpm@wonkwang.ac.kr,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교수,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 대표)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글 한 편으로 온 사회가 참 시끄럽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를 욕하는 것을 직접 듣기도 한다. 그들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 강 교수의 글을 직접 읽어보았느냐고 물어보면 아니란다. 대학교수들을 비롯해 이른바 여론을 주도한다는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별로 길지도 않은 그의 글을 읽어보지도 않은 채, 극우 정치인들과 수구 신문들의 억지와 선동에 놀아나는 꼴을 자주 보게 되는 것이다.

강 교수의 글에는 적어도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그의 글은 너무 쉽다. 대학교수들의 글은 대체로 영어와 한자가 많이 뒤섞여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 쉬운 내용도 어렵게 써야 권위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도 미국에서 오랜 동안 공부한 사람이어서 심오한 이론을 끌어다가 어려운 영어를 섞어 글을 쓰면 웬만한 전문가들만 이해할 수 있을 텐데, 글을 너무 쉽게 쓰는 탓에 극우 정치인들이든 수구 언론인들이든 무식하거나 바쁜 사람들조차 그의 글을 대충 읽으면 시비를 걸 수 있게 된다.

둘째, 주장이나 결론이 너무 명확하다. 글을 쉽게 쓰더라도 주장이나 결론은 에둘러 표현하거나 다소 애매모호하게 처리하면 될 텐데, 민감한 부분까지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쓰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쉽게 공격을 받게 되는 듯하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처럼 과정만 제대로 설명하고 결론은 독자들에게 맡기는 식으로 글을 쓰면 탈이 덜 생길 것 같은데, 그는 '비겁한 글쓰기'를 굳이 거부하는 것이다.

셋째, 글투가 점잖지 못하다. 나이 60의 대학교수라면 화가 나더라도 감정을 어느 정도 숨긴 채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을 텐데 거친 말들을 그냥 쏟아낸다. 예를 들어, 학술 논문에 부쉬 대통령을 '황야의 무법자'라고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하면, 북한이나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서는 학술 논문에서든 신문 기사에서든 '깡패 국가'나 '폭군' 등의 거친 말을 주저없이 쓰면서 왜 미국에 대해서는 거친 말을 쓸 수 없느냐는 식이다.

강 교수는 이처럼 '고지식하게' 글을 쓴다는 것을 참고하면서, 그가 지금까지 연구하고 발표해온 한국 전쟁의 성격에 관해 얘기해본다.

(1) 전쟁의 명칭 : '한국 전쟁'과 '6.25 사변'

우리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이름짓는데 날짜를 포함하기 좋아한다. '3.1절' '4.3항쟁' '4.19' '5.16' '5.18' '8.15' 등으로 말이다. 나는 이게 좀 불만스럽다. '3.1절' '5.16' '8.15' 등과 같이 어떠한 일이 일어나 그 동작이 지속되지 않고 하루에 끝났다면 이런 명칭에 이의를 달기 어렵겠지만, '4.3항쟁' '4.19' '5.18'에서처럼 운동이 지속되었다면 어느 특정한 하루를 잡는 게 애매하기 때문이다.

'6.25'는 더구나 몇 달도 아니고 몇 년 동안 계속된 것이다. 게다가 전쟁이 6월 25일 갑자기 시작된 것도 아니다. 미군이 이 땅에 발을 디딘 1945년 9월부터 1950년 6월 이전에 남북 사이의 이념 갈등과 투쟁 과정에서 약 10만명이나 희생되었는데, 전쟁이 6월 25일 갑자기 시작되었다고 얘기하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남쪽 안에서 일어난 이념 갈등은 빼더라도, 1949년부터 38선 일대에서 남북의 군대가 격렬하게 충돌한 적이 적지 않았다. 남침도 있었고 북침도 있었다. 또한 1953년 7월 정전 협정이 맺어질 때까지 수백만 명이 죽었는데도 이 과정을 모두 '6.25 사변'이라고 부르는 게 바람직한가.

나는 '6.25'라는 이름에 어떠한 의도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공산 괴뢰군이 쳐들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주입시키기 위한 의도 말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한국 전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한편, 한국 전쟁의 국제적 성격과 관련하여, 유럽평화대학의 요한 갈퉁 교수는 '한국 전쟁 (The Korean War)'이란 이름도 전쟁의 성격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며, '한국에서의 전쟁 (War in Korea)'이라고 이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전쟁이라고 부르면 남북한 사이에서만 일어난 전쟁이라는 인상을 주기 쉬운데, 전쟁이 일어난 곳은 한반도지만 전쟁의 주체는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진영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전쟁'이라고 불러야 더 정확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에서 '이라크 전쟁 (The Iraq War)'이란 명칭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쟁에서 침략자 또는 핵심 당사자인 미국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요 언론조차 '이라크에서의 전쟁 (War in Iraq)'이라고 쓰지 않았던가.

(2) 내전인가 국제전인가?

1945년부터 시작된 한국 전쟁은 분명히 국지전이었고 내전이었다. 그러나 '6.25 사변'은 국제전으로 보고 싶다. 1948년에 남쪽과 북쪽에 각각 독립 국가가 세워져서 1950년 6월부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1950년 6월 북한이 유엔으로부터 주권 국가로 인정받지 않았기 때문에 6.25가 내전이라고 주장한다. "유엔의 승인이라는 국제적 기준에 의하면 북한이 별개의 주권 국가로 승인되지 않았으므로" 내전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유엔은 1950년 6월 25일과 27일 결의안에서 6.25를 침략 전쟁으로 규정하지 않고 '평화 파괴'라고 규정했고, 10월 7일 통일 결의안 역시 통일을 전쟁 목적으로 삼아 한 나라 안의 문제 곧 내전으로 성격 규정했다. 6.25 이전에 유엔은 남한만을 38선 이남 합법 정부로 승인했지 북을 별개의 주권 국가로 승인하지 않아 침략 전쟁의 성격 규정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는 "소련이나 중국 등 사회주의권의 외교적 승인을 기준으로 하면 북한은 별개의 주권 국가로 승인되었으므로 국제법적 기준으로 침략 전쟁도 될 수 있다"고 덧붙이고 있기는 하지만, 6.25가 침략 전쟁보다는 통일 전쟁의 성격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유엔의 승인을 가장 중시하는 듯하다. 당시 북한이 '유엔의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북한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이 주장은 오랜 동안 치열하게 국가의 정통성을 경쟁해온 남북 사이에서 남한에 결정적 힘을 실어주는 셈이다. 극우 수구파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남한에게는 충신이요 북한에게는 역적 아닌가.

나는 그의 이러한 주장에 반대한다. 국가의 정통성을 따지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강 교수가 내세우는 유엔이나 국제 사회의 승인뿐만 아니라 이전 정부와의 연계성 여부, 나라를 세운 지도자들의 경력, 당시 인민의 지지도 등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에 국가의 정통성을 지도자들의 경력이나 인민의 지지도에 초점을 맞춘다면 1948-1950년 북한의 정통성은 남한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크지 않았을까.

당시 북한 정부는 일제 식민 통치에 맞서 항일 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반면, 남한 정부는 일제에 빌붙어 지내던 친일 또는 부일 세력이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 또한 해방 직후에는, 자본주의를 강요한 미군정 아래의 남쪽에서조차, 80% 이상의 인민이 사회주의ㆍ공산주의 체제를 원했던 반면, 10% 남짓의 인민만이 자본주의 체제를 원했다. 따라서 유엔의 승인을 국가의 정통성에 대한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 북한이 주권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6.25가 내전이라는 강 교수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3) 6.25는 통일 전쟁인가 침략 전쟁인가?

이 질문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비교 대상의 성격이 서로 다르거나 어긋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945년 남쪽에 들어온 미군이 "점령군인가 해방군인가" 하는 불순하고도 무식한 질문과 마찬가지다. 결론부터 말하면 통일 전쟁이면서 침략 전쟁이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 침략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1945년 남쪽에 들어온 미군에 대해 미국과 미군 자신은 '점령군'이라 부르며 남한을 '점령'했지만, 남한의 위정자들은 그들이 우리를 '해방'시켰다며 '해방군'으로 불렀다. 점령군도 되고 해방군도 되는 것이다. 점령군이기 때문에 해방군이 아니라는 주장도 잘못이고, 해방군이기 때문에 점령군이 아니라는 주장도 잘못이다.

그런데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6.25를 '통일 전쟁'이라고 쓴 부분에 대해 온갖 비난과 위협이 난무한다. 2001년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6.25를 "무력에 의한 통일 시도"라며 앞으로는 결코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반드시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데 대해 국회에서는 북한의 입장만을 대변했다며 대통령직을 사퇴하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었다. 6.25가 통일 전쟁이 아니라면 분단 전쟁이었다는 말인가.

극우 수구파들은 6.25를 북한이 남한을 적화하기 위해 기습 침략을 감행한 전쟁이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공부해왔고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주의자들 가운데는 6.25를 북침 전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겠지만, 강 교수나 김 대통령도 6.25를 북침 전쟁이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한국 전쟁을 6.25 사변으로 한정하지 않고 범위를 넓혀 본다면 미국이 전쟁의 원흉일 수도 있고, 남침이 먼저냐 북침이 먼저냐 따지기가 애매하거나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6.25 사변만 떼어놓고 본다면 북한이 남한을 공산화하기 위해 먼저 침략을 저지른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적화 통일은 통일이 아니고, 침략 전쟁은 통일 전쟁이 아니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통일은 여러 가지로 추구할 수 있다. 평화적 수단에 의한 통일도 있고, 전쟁에 의한 통일도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확장하기 위한 녹화 통일도 있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퍼뜨리기 위한 적화 통일도 있다. 서로 다른 두 체제가 공존하며 수렴될 수 있는 통일도 있고, 한 체제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통일도 있다. 이 가운데는 바람직한 통일도 있고 꼭 피해야할 통일도 있다.

6.25는 전쟁에 의한 통일 시도였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퍼뜨리기 위한 적화 통일 시도였다. 수단과 방법이 나빴어도 통일을 위한 전쟁이었고,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가 달랐어도 통일을 위한 전쟁이었다. 강 교수나 김 대통령이 이러한 통일 시도의 방법과 목표를 바람직하다거나 다시 한 번 추구해보자고 했다면, 나를 비롯해 전쟁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아 마땅하고 사회주의ㆍ공산주의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위협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 6.25가 통일 전쟁 또는 통일 시도라는 너무나도 뻔한 말이 도대체 왜 시빗거리가 되는지 기가 막힐 뿐이다.

(4) 미국의 전쟁 개입에 관하여

미국이 6.25에 개입한 것을 미화하기 어렵다는 주장은 오래 전에 이미 미국의 유명한 정치학자에 의해 제기되었다. 1950년부터 1952년까지 한국 전쟁에 미군 포병 연락 장교로 참여했던 하와이 대학교의 글렌 페이지 교수다. 그는 1968년 펴낸 The Korean Decision (한글 번역본 <미국의 한국 참전 결정>)이라는 책을 통해 미국의 참전 결정을 정당하다고 주장했다가, 1977년 자신의 책을 스스로 비판하며 하나의 폭력에 대해 또 다른 폭력으로 대응한 것을 반드시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반성했던 것이다. 미국의 개입 때문에 중국까지 참전하여 전쟁의 규모가 커지고 남북 양쪽에서 수백만이 죽게 된 것을 바람직하다고만 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이는 우리의 가치관과 관련된 매우 민감한 문제다. 강 교수가 요즘 비난당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6.25가 통일 전쟁이라는 주장보다는 미국의 개입이 없었으면 전쟁이 빨리 끝났을 테고 사람들이 덜 죽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부른 것 같다. 물론 강 교수는 그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앞 뒤 문맥으로 보아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지금은 남한이 북한보다 정치적으로 훨씬 민주적이고 경제적으로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풍요롭다. 쉽게 말해 체제 우월 경쟁은 끝났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에는 그 때 수백만명이 죽었을지라도 사회주의ㆍ공산주의 체제에 흡수되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강 교수 자신도 지금의 남북 체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남한 체제를 선호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1950년 무렵에는 그렇지 않았다. 북쪽이 남쪽보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더 안정되어 있었고 훨씬 개혁적이었으며, 압도적으로 많은 인민이 사회주의ㆍ공산주의 체제를 원했었다. 따라서 지금의 기준이 아닌 당시의 상황을 바탕으로 한다면 엄청난 인명의 희생을 막고 사회주의ㆍ공산주의 체제를 바랐을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까.

한국 전쟁에 관해 오랜 동안 연구해온 학자가 많은 사람들의 정서에 어긋나는 주장을 편다는 이유로 그에게 온갖 위협을 가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다. 그리고 자유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적인 자유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다. 서로 다른 사상과 이념을 인정하며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남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게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란 말이다.

자유민주주의를 가장 악랄하게 훼손했던 박정희 유신 독재와 전두환 군사 독재 정권들을 떠받쳤던 이른바 '국가 원로'들이 국가 정체성을 들먹거리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자는 시국 선언을 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자유는 무슨 자유이며 그들이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어떤 민주주의인지 궁금하다. 반공군사독재를 자유민주주의로 착각하는 게 아닐까. 반공군사독재의 망령이 하루 빨리 완전히 사라지고 어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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