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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수 정순택선생 시신 사상 첫 송환장남 태두씨, "시체로 오시다니 정말 유감스럽다"
이현정 기자  |  hj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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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5.10.02  20: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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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비전향장기수 정순택 선생의 유해가 육로를 통해 사상 처음으로 송환됐다.
[사진-통일뉴스 이현정기자]
"비록 몸은 한 줌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선생님의 고귀하신 조국사랑, 인간사랑 정신은 모든 이들의 가슴마다에 남아 선생님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2차 송환을 보지 못하고 9월 30일 숨을 거둔 비전향장기수 정순택 선생의 시신이 2일 오후 3시 판문점 통일의 관문을 통과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오후 6시 37분경 북으로 송환됐다. 장기수의 유해가 북송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정부는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와 군사정전위원회 사이 군사분계선에서 정순택 선생의 시신과 유품을 북측 장남인 정태두(김책공업종합대 교수)씨에게 인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공동취재단에 따르면 태두씨는 이 자리에서 "(아버지가) 돌아오시기를 어머니도 바랬고 우리 자식들도 바랬으나 이렇게 시체로 오시다니 정말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정순택 선생의 유해 송환이 결정된 것은 2일 오전 9시 30분 경. 통일부로부터 정순택 선생의 운명 소식을 전해들은 북측은 대남 전통문을 보내 시신을 송환해 줄 것을 요구했으며 이에 남측 정부가 시신 송환을 결정함으로서 정순택 선생은 47년 만에 꿈에 그리던 고향 땅에 몸을 뉘일 수 있게 됐다.

▶판문점 통일의 관문을 지나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운구차.
[사진-통일뉴스 이현정기자]
정순택 선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기 위해 비전향장기수들의 모임 '통일광장' 권낙기 공동대표 등 7명과 통일의 관문 앞에 나온 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원회 권오헌 상임대표는 "진작에 정부에서 서둘렀다면 서둘러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안타깝고 우리도 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죄책감이 든다"며 "자손을 만나 그리운 조국에서 편히 잠드시길 빈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순택 선생의 시신을 실은 대한적십자사의 영구차가 통일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잠시 정차하고 있는 동안 경찰 바리게이트에 올라가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표정으로 하염없이 손을 흔들었다.

고인의 친족들과 다른 추도객들은 정부의 당부에 따라 이미 보라매 병원에서 모든 배웅을 마쳤으며 영구차는 통일부 관계자들의 인도를 받으며 북녘 땅을 향해 힘차게 시동을 걸었다. 1차 송환 당시 송환을 저지하기 위해 판문점 앞에서 시위를 했던 보수단체 회원들도 이날은 눈에 띄지 않았다. 

▶통일의 관문을 통과하는 영구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송환추진위 권오헌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현정기자]
2차 송환대상자인 비전향장기수 박종린 선생은 "같이 송환되기로 약속했던 분이 먼저 돌아가셔 마음이 아팠으나 이제는 나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며 "2차 송환대상자들에게 우리도 살아서 갈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고 기뻐했다.

또, 현재 전립선암을 앓고 있는 비전향장기수 강담 선생은 "남북 간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획기적인 진전이 일어나고 있구나 믿어 의심치 않았다"며 "2차 송환 문제도 이미 기정 사실화 됐고 이제 과거처럼 송환대상자들을 붙잡아둘 수 있는 명분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통일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2차 송환문제를 "인도주의적. 인간적 차원에서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답변하는 등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유해송환 가족동의서에 서명하는 유족들.
[사진-통일뉴스 이현정기자]
통일부는 유해가 송환된 이날에도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는 장기수 북송문제를 검토하던 중이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갑자기 정순택의 병세가 악화되어 북측 가족의 임종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며 이번 유해 송환은 "전적으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의 조치로 이러한 조치가 남북관계의 화해와 인도적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인도주의 차원에서 결정된 이번 유해 송환은 남북 간 첫 사례일 뿐만 아니라, 약 28명의 2차 송환대상자들과 함께 정순택 선생처럼 2차 송환을 기다리다 운명한 다른 비전향장기수들의 유해 송환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환영받고 있다.

故 정순택 선생에 대하여
▶췌장암과 간암으로 투병중인 정순택 선생의 생전 모습.
[사진-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원회]
오늘 송환된 故 정순택 선생은 2000년 1차 송환 당시 북으로 가길 희망했으나 전향당했다는 이유로 대상자에서 제외됐으며 이후 언론에 전향취소선언을 하는 등 끊임없이 북송을 희망해 오다 지병인 췌장암과 간암이 악화되어 입원한지 한달 만에 숨을 거두었다.

북녘에 부인과 아들 태두, 태삼, 태성, 태건 형제가 있으며 58년 남으로 내려오기 전에는 내각 기술자격 심사위원회 책임심사원으로 일했다. 89년 출소한 이후에도 동해안 고성에서 서해안 강화까지 국토횡단 대행진에 참여하고 홀로 전국의 철도와 섬을 돌아다니며 반미.미군철수 시위를 하는 등 통일운동진영에서 조국통일을 위해 열정적으로 살았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1922년 충북진천 출생
1942년 경성고등상업학교(현 서울상대)입학
1944년 학병으로 끌려가 45년 동경사단에 배치
1946년 상업학교 졸업 후 신한공사 재무부기장 계장으로 입사
1947년 상공부 재무부 감사관리 감사관
1949년 월북 후 강동 정치학원 수학. 북 상업성 관리부 영업관리처 부장
이후 외국인 접대 관리소 소장
1952년 상업성. 전쟁 끝난 뒤 북 기술자격 심사위원회 책임 심사원
1958년 남으로 내려옴. 체포됨
이후 31년 5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한 뒤 석방.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기거하며 활동.

2005년 9월 30일 오후 6시 50분 동작구 보라매 병원에서 운명
2005년 10월 2일 오후 5시 30분 유해 송환


"단 열흘이라도 계시지..." 슬픔과 기쁨이 교차한 영결식

▶2일 오전 11시 정순택 선생 영결실장에서 전립선 암을 앓고 있는 비전향장기수 강담
선생이 고인의 영전에 헌화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현정기자]
"오늘 북측의 요청에 따라 정순택 선생님의 유해를 송환하기로 남측 정부가 결정했습니다. 따라서 벽제화장터에서 시신을 화장한 뒤 장지인 파주 보광사 연화공원에 안장하기로 한 본래 일정을 변경해 판문점에서 시신을 송환하기로 했습니다'

2일 오전 11시 동작구에 소재한 보라매 병원에서 열린 故 정순택 선생의 영결식장에서 장례위원회 노진민 집행위원장이 한마디 한마디 힘을 주어 가며 정순택 선생 유해 송환을 발표하자 슬픔에 젖었던 장내에 기쁨의 탄성이 터졌다.

영결식에 참여한 이들은 화색을 띠며 "그럼 그렇게 돼야지", "그렇게 가시고 싶어하셨는데, 너무 잘됐네"라고 기뻐했다. 고인과 함께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생활한 다른 비전향장기수들도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근심을 덜었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임기란 고문은 "선생님의 가심은 미온적인 정부 관계자를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를 주셨다"고 말했다.

▶'동지'를 떠나보내는 슬픔에 눈물바다가 된 영결식
[사진-통일뉴스 이현정기자]
그러나 이 기쁨도 살아서 가족들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은 뒤에야 '신념의 조국'을 밟은 정순택 선생의 안타까운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동안 정순택 선생과 함께 생활해온 이들은 '동지'를 떠나보내는 비통한 마음에 눈시울을 붉혔다. 
 
비전향장기수들의 모임 '통일광장' 임방규 공동대표는 추도사에서  "왜 하필이면 지금 가셨습니까? 이제 곧 조국에, 가족의 품에 가실 수도 있는 것을 어찌하여 그 새를 못 기다리고 가셨습니까"라고 슬퍼하고 "열흘만이라도 계시지 생각하면 할수록 절통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유족들도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사진-통일뉴스 이현정기자]
비전향장기수 송환추진위원회 권오헌 상임대표는 "곡괭이자루, 가죽혁대로 때리고 밧줄로 손발을 동그랗게 묶어놓고 몽둥이로 구타하고 물고문 하는, 선생님은 말 그대로 '인간 이하의 매질과 고독한 독방과 모욕적인 대우'로 환각, 환청 등 병마와 싸우기로 했다"고 회상하고 "32년의 그 모짐 세월 이겨내신 투혼으로 반드시 병마를 이겨내고 신념의 고향, 사무치게 그리운 가족을 만나실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 희망이 이렇게 물거품이 되다니 너무나 안타깝습니다"고 고인에게 바치는 글을 올렸다.

이기형 시인은 추모시에서 "백두산 높이 통일기를 꽂을 날도 그리 멀지 않았는데 이런 중대한 시기에 정순택 선생은 아깝게도 원통하게 가셨다"며 "좀 더 우리와 함께 이 세상에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늘은 너무나 무심하군요"라고 슬퍼했다.

통일광장 권낙기 공동대표는 "선생님 가시는 길에 동지들 마지막 미소를 보여주십시요"라며 추도객들과 함께 '민족자주 만세, 반전평화 만세, 통일애국 만세'라고 만세 삼창을 했다.

▶시신을 운구하기에 앞서 비전향장기수인 '통일광장' 임방규 공동대표가 마지막 잔을
올리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현정기자]
고인을 보내는 슬픔과 유해라도 북으로 돌려보내는 기쁨이 교차된 이날 영결식장에서 50여명의 만세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호상인 비전향장기수 고성화 선생은 "숭고하다는 말은 바로 '동지(정순택)'의 영전에 바치는 말"이라며 "7만 3천km를 기차를 타고 미군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동지의 따뜻한 숨소리와 투지는 조국의 역사에 길이 빛날 것"이라고 축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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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1)
이기영 () 2005-10-04 12:25:00
살아 못가니 죽어서라도 가야제...
분단시대의 희생이 더 이상 계속되서는 안됩니다. 2차송환도 조속한 시일내에 이뤄져야 합니다. 늦출수록 정부당국만 부담이 커집니다. 인도주의적 행동에 우익수구들을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순택 선생이시여. 정신적 고향에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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