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1시 30분, 민족통일학회 등은 '인내천 평화통일을 위하여' 토론회를 열어
단군사상이 통일이념으로 정립될 가능성을 모색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우리 민족의 '원시조'가 단군이라는데 남과 북은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여기서 단군사상이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문제를 풀어가는 정치사상이 될 수 있는가, 특히 통일이념이 될 수 있는가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27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민족통일학회(회장 노태구)등이 주최하고 동학민족통일회(대표의장 박남수)등이 주관하는 '인내천 평화통일을 위하여' 토론회가 열렸다.

"'우리'를 만들어주는 생명력은 단군"

▶임형진 경기대 교수.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동학민족통일회 사무총장이기도 한 경기대 임형진 교수는 '현대 정치사상으로서 단군학의 가능성'에 대해, 한국의 근대정치사상에 단군사상이 어떻게 계승됐는가를 살펴보는 방식으로 답변을 시도했다.

임 교수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단군이 가지는 상징성, 유용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고 전제했다. "민족통일이라는 한국적 상황에서 단군이라는 상징성보다 더 절박하고 절실하게 남북한을 연결해주는 고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남북 교차로 진행된 6.15통일대축전과 8.15민족대축전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사용한 구호는 '우리민족끼리'였다"며, "여기서 '우리'를 만들어주는 생명력이 단군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현실이 이러함에도 "단군에 대한 정치학적 연구는 거의 없다"고 개탄하고 "오늘 우리 정치학계의 현실에 비하면 근대 이래로 많은 정치학자들이 단군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며 동학과 안재홍의 신민족주의,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내세웠다.

동학의 핵심사상인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에 대해, 그는 "단군사상의 큰 특징인 천지인 삼위일체와 신인미분화(神人未分化) 현상의 근대기적 표현"으로 해석했다. "인내천을 통해서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은 하나가 되는 것이고 비로소 천지만물의 주인공으로서 인간의 가치가 구체화되는 것이다."

나아가 "인내천사상은 단군사상의 기본 이념인 '홍익인간'을 '물물천사사천'(物物天事事天)으로 확대해석한다"면서, "동학사상에 와서 단군사상이 추구한 인간적 공동체가 만물적 공동체로 질적 변환을 일으킨 것으로 평가"했다.

해방정국의 좌우파간 이념대결을 지양해 안으로는 '대중공생', 밖으로는 '자주독립'을 내세우며 통일민족국가를 완성하려던 신민족주의도 "실로 단군건국의 성업에서부터 그 중대한 전통이 출발 성장된 것(주-민세 안재홍의 말)"이라고 임 교수는 전했다.

'단군기록없이 한민족으로 성립할 수 없었다'

▶이날 토론회에는 천도교 등 민족진영 인사들이 폭넓게 참여해 활발하게 토론에
참여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신민족주의를 제창한 안재홍은 민족 고유어인 '다사리'에서 근대적 정치이념을 찾아냈다. '다사리'는 '다 사리어'(다 말하게 하여)와 '다 살리어'(다 고루 잘살게 하여)로, "만민이 모두 말하여 국가 구성원 모두가 잘 살게 된 사회를 건설한다"는 한국정치사상의 기본개념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좌우를 막론하고 우리민족의 근대 정치사상으로 공인받은" 삼균주의에 대해, 임 교수는 조소앙 선생의 말을 인용해 "가장 한국적인 수 3"과 "단군시대 사관으로 전해지는 신지(神誌)의 비사(秘詞)의 한구절인 '수미균평위 흥방보태평'(首尾均平位 興邦報太平, 지위를 머리부터 꼬리까지 고르게 하면 나라를 일으키고 태평을 보지함)에 근거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균은 현실적으로 철저한 평등의 추구"라고 풀이하고 특히 삼균주의가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과 맞닿았다는 근거를 균지(均智), 즉 교육균등론에서 찾고 이를 "단군 이념중 홍익인간의 현실적 실천"이라고 풀이했다.

임 교수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 이념적 고향이자 출발점은 단군"이라며 "한국적 정치학을 그리고자 하면서 단군학을 피해갈 수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신규식 선생의 말을 인용해 "단군 건국의 기록이 전해지지 않았다면 한국인은 한민족으로 성립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단군사상, 통일철학 가능성 있다"

▶김광린 국제평화대학원 교수.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김광린 국제평화대학원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단군사상, 홍익인간사상이 남북 통일의 이념이 될 수 있는지 살폈다. 그는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인 수단으로 평화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면서 그 전단계로 평화정착 과정이 필요하다고 전제했다.

그는 평화정착의 관점에서 김대중 정부 시절 일관되게 추진된 대북화해정책을 높이 평가하고, 특히 "6.15공동선언은 남북간 합의에서 최고의 규범력을 갖는 문서"로서 "남북이 서로를 통일협상의 주체로 공식 인정하면서 통일의 방향 및 방식에 대해 최초로 합의하였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한 6.15공동선언이 "명시적인 용어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정치이념 면에서 자유민주주의 또는 사회주의 이념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겠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라면서 "백지상태로 남아있는 통일철학이나 이념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통일철학으로서 자유민주주의는 자체의 결점 외에도 합의에 의한 통일을 지향하는 한 북이 거부감을 가진 이념을 강제할 수 없으며, 압록강까지 확장된 자유민주주의 통일국가를 중국이 용인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통일철학으로서 난점이 있다고 봤다.

대신 김 교수는 단군은 남북이 공히 인정하는 건국조이고 단군사상이 한민족의 정신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사상이며, 내용적으로도 현재 남북 체제가 각각 강조점을 두고 있는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단군사상이 통일철학으로서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단군사상은 아직 정치사상에 걸맞는 학문적 연구 성과가 빈약하고 남한에서조차 다수의 가치를 지배하는 이념으로서 위상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남과 북에 통일이념으로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홍익인간 사상을 보다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남과 북이 홍익인간하는 세상과 삶을 추구해온 민족적 정체성을 공유하게 될 때 평화롭고 참다운 의미의 통일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후 1시 30분에 열린 제1회의 '민족통일과 단군사상'에서는 이대우 교수의 사회로 임형진.김광린.복기대 교수의 발표와 김영재.오수열.노재호 교수의 지정토론이 이어졌다. 오후 4시 30부터 속개된 제2회의 '세계한민족공동체의 건설' 에서는 김용욱 교수의 사회로 정영훈.이진영 교수의 발표와 임채완.이학수 교수의 지정토론이 있었다.

이날 토론회는 민족통일학회와 단군학회, 전국대학통일문제연구소협의회가 공동주최하고 민족사상연구소와 동학민족통일회가 공동주관했으며 천도교 중앙총부와 녹산학술장학재단이 후원했다.

"단군릉 발굴, 북한 고대사 연구틀 바꿨다"

▶복기대 단국대 교수.
[사진-통일뉴스 김규종기자]
단국대 복기대 교수는 1993년 10월 2일 노동신문에 발표됐던 단군릉발굴보고는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에도 충격 그자체였다"고 회고했다. 충격의 원인은 신화속에만 있던 단군이 "실재하는 인물"이며, 단군유골 연대가 "5011년으로 나왔다"는 발표에 있었다.

1993년 8월 중국 요녕대에 유학중이던 복교수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왔다갔다 하던 박시영 선생(주-북 원로역사학자)을 만났다"고 전했다. 기회다싶어 가르침을 청하자 박 선생은 건강이 좋지않다며 강인숙 선생을 소개했다.

강 선생은 복 교수에게 "금년 가을이면 평양에서 큰 일이 있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얘기없이 "때가 되면 먼저 알려줄 것"이라 했다. 잊고 지내던 어느날 요녕대 지도교수로부터 빨리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고 들어가니 발굴보고가 실린 노동신문이 와 있더라는 것이다.

그는 단군릉 발굴이후 북한 학계의 연구는 "일사불란함 자체였다"며, "발굴자체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북한의 상고사 연구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복 교수는 북한의 단군연구 변화는 1980년대 후반 김정일 당시 비서가 '우리민족제일주의'를 주창하고 "신화와 전설들은 력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로 된다"고 지적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북은 사회주의 특성상 신화 일반에는 거부감을 보이면서도 단군만은 한결같이 '단군조선', '단군왕검(처음으로 나라를 창건했다는 뜻)' 등으로 존엄있게 대하고 서술했다는 것이다.

단군릉 발굴을 진두지휘하면서 고조선연구 지침을 준 것은 작고한 김일성 주석이었다. 당시 김 주석은 발굴정황을 수시로 보고받으면서 특히 "연대 측정에 대해 계속해서 과학적인 방법을 주문했다"고 복 교수는 전했다.

이에 화답해 북한 역사학계의 태두였던 김석형은 1993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6차회의 대의원 토론에서 "반만년 유구한 민족사를 주체적인 입장에서 전면적으로 정립체계화하겠다"고 연구 방향을 설정했다.

단군연구는 조선왕조실록에 무수히 흩어져 있는 문헌학적 근거와 함께 고조선이 존속한 3천년간에 걸친 유적유물을 문화발전과정에 따라 6단계로 편년한 고고학적 근거에 바탕을 두고 전개됐다.

특히 석광준은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적인 고인돌이 평양 및 그 일대에 가장 많이 집중돼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평양지역의 고인돌이 단군조선시대의 중요한 유적"이라고 주장했다. 즉, 평양이 고대문화의 중심지로 위치지워진 것이다.

단군릉 발굴이후 북한 상고사 연구에 있어 단군의 위치에 대해, 복 교수는 "1995년 북의 원로역사학자인 손영종은 '단군이 우리민족의 원시조'라고 딱 못을 박았다"고 말했다. "어리벙벙했던 단군은 발굴이후 '원시조'라는 타이틀을 넣고 들어가는 위치가 됐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의 단군.고조선 연구는 "중국 역사의 전설적 인물인 요임금을 기준으로 한 건국연대 기점 자체가 잘못됐으며 '규원사화', '단기고사' 등 비사들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해도 안되지만 덮어놓고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복 교수는 전했다.

이는 결국 "한국 상고사의 모든 것을 바꾸자는 것"이라며, 지금껏 중요시 여기지 않았던 사서를 이용해 단군조선의 기원문제를 새롭게 조명하고 지역적으로 평양을 중시하며 영역확장 과정을 정확히 밝혀 단군조선 발전과정을 밝히자는 것이라고 복 교수는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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