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호(남북공동실천연대 민족경제연구모임 연구원)


지난 7월 12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다음 주 개최 예정인 제4차 6자회담에서 북한이 핵을 폐기하는 조건으로 남측에서 200만kW급의 전력을 북한으로 공급하겠다는 '중대제안'을 발표하였다.

북한으로 공급할 전력은 남한의 예비전력 중 일부를 사용하는 것으로 가능하고 전력 공급시 필요한 변전소, 송전선로 등 기간시설들은 남측에서 건설해주며 이 비용은 지난 KEDO 자금 35억 달러 중 미 결제분 22억 달러(약 2조원)로 가능하기 때문에 '중대제안'은 충분히 현실적이라는 것이 정 장관의 발표내용이었다. 아울러 정 장관은 전쟁과 같은 상황이 아닌 이상 중단 없이 지속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것을 천명하면서 이례적으로 남북관계의 신의를 보고 믿어줄 것을 당부하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10여 일이 경과한 지금, 대북송전에 대한 논의는 그야말로 뜨겁다. 정 장관의 발표는 6자회담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위한 것이었지만 여론의 초점은 '대북송전' 자체에 맞추어지고 있다. 송전 발표 즉시 사회 곳곳에서는 북핵과의 연계성을 떠나 송전제안 자체를 환영한다는 성명과 보도가 줄을 이었고 여론의 초점은 '송전'자체에 대한 현실성과 구체적인 자금 조달방법 등으로 맞추어지면서 애초에 거론되었던 '북핵폐기의 조건'이라는 전제는 이미 여론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이것은 대북송전이 가져올 남북협력의 획기적인 발전에 대한 온 국민의 크나큰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대규모 전력을 북한으로 보내주겠다는 것 자체만 살펴본다면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의 남북화해를 더욱 앞당기는 제안이며 남북의 상호협력에 기반한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제안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논의에서는 우리가 고려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입장이다. 그중에서도 미국정부의 송전 반대와 방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부재한 상황이다.

물론 7월 13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부 장관은 동아시아 3개국 순방길에서 정 장관의 제안에 대해 '창의적'이고 '유익한' 방안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에 앞서 라이스 장관을 수행중인 미 고위 관리도 10일 "한국의 중대제안은 지난해 6월 3차 6자회담 때 제시한 미국안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 이 발언들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에 불과할 개연성이 높다.

라이스 장관은 제4차 6자회담의 의제를 조율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따라서 '창의적'이고 '유익한' 방안이라는 언급은 '북핵 폐기용으로 유익한 제안'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합당하다. 미국은 현재 발등에 불이 떨어진 6자회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이지 '송전' 자체를 두고 북한을 위한 '창의적'이고 '유익한' 방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아직까지도 북한을 테러지원국, 핵선제공격 대상국으로 지명해 놓고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계속하고 있는 바 '대북송전' 자체를 유익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은 대북송전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전례를 가지고 있다. 지난 2000년 12월 제4차 남북장관급회담과 제1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북한은 200만kW 규모의 전력을 송전 방식으로 제공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남쪽의 양주변전소와 황해북도 남천변전소를 잇는 송전선로 90㎞를 건설해 1단계로 50만kW를 공급해달라는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제안은 전력의 군사용 전용을 우려한 미국과 국내 반대여론에 의해 실현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실질적으로 남한의 대북송전을 방해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이미 마련해 놓고 있다. 그중에 하나는 군사분계선의 통제권이 미국에 있다는 점이다. 남북한의 경제협력은 그 지리적 특성상 군사분계선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경우 군사분계선의 남쪽이 유엔사령부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유엔사령부가 반대하면 군사분계선으로의 송전선로 통과는 이루어질 수 없다. 실제로 미국은 유엔사령부를 이용하여 금강산의 육로관광을 방해한 전력이 있으며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사업도 군사분계선 문제로 인해 갈등을 빚은 바 있다.

또한 미국은 '바세나르 체제' 등 전략물자 반출제한 규정을 근거로 한국의 대북송전 사업을 방해할 수도 있다. 정동영 장관의 제안에 의한다면 전력제공을 위한 송전선로와 변압기 시설 등을 북한지역에 건설해야 하는데 이 경우 북한으로 반입할 각종 물자들이 '전략물자'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전략물자 반출 제한규정은 1996년 출범한 '바세나르 체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국도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는 이 체제는 특정 국가의 행위가 바세나르 협정 회원국들의 우려를 야기할 경우 수출을 통제한다는 다소 모호한 조항에 기반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북한, 이란, 이라크, 리비아 등과 같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한 국가들을 그 주된 대상으로 하고 있다.

'바세나르 협정'에서는 반출 제한품목을 해당국가가 직접 판단하게끔 되어 있고 특별한 제한규정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 미국이 규정하는 품목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으며 여기서는 한국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바세나르 협정'에 의해 제재를 받을 경우 반출이 가능한 품목은 농산물, 식품관련 설비, 직물, 봉제품 등의 기초 경공업 제품 정도로 국한되고 대부분의 기계, 계측장비들과 금속, 전자장비들은 그 반출이 통제되게 된다. 실제로 개성공단의 경우 이 '바세나르 협정'이 미국의 '수출관리규정'(EAR)과 함께 공단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주범인 것이다. 이 협정에 의하여 북한에서 자체 제작하고 있는 펜티엄급 컴퓨터가 인천항에서 출항을 못하였으며 신발 밑창으로 사용되는 고무마저도 미사일 부품으로 쓰일 수 있다는 이유로 반출이 무산된 바 있다고 한다.

송전사업이 본격화될 때 북측에 건설하여야 할 송전선로와 변전소들이 이 '바세나르 협정'에 저촉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송전선로는 그 특성상 수많은 금속제품들이 제공되어야 하고 변전소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계측기기들이 설치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버리지 않고 있는 미국으로써는 '바세나르 협정'을 더욱 강하게 적용하여 송전시설 건설 자체를 중단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북 송전에 대한 논의를 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먼저 미국의 동의를 설득하고 송전설비의 건설을 보장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미국의 입장이 확실하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나아가 미국이 송전설비의 반입을 허가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건설비용이나 건설기간에 대한 논의는 송전사업의 1단계 관문을 비껴가는 것으로써 별다른 실효성이 없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고강도의 적대정책을 계속 유지하는 한 남북의 경제협력에서 제1관문은 예나 지금이나 미국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은 국제사회에서 갈수록 고립되고 있다. 6자회담 참여국 가운데 대북적대정책을 언급하는 국가는 미국과 일본이 유일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북 송전"제안을 내놓은 참여정부는 자신의 제안에 대한 매듭을 지어야 한다.

정부는 우선 '대북 송전' 추진의 변함없는 의지를 내외에 천명함으로써 남북한 간의 경제협력을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확고한 것으로, 지속적인 것으로 정립하여야 한다. 그래서 남북한 간의 경제협력 사업을 미국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여론을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외교적 차원에서의 직접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먼저 대북적대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도록 미국을 꾸준히 설득하고 남북한 간의 경제협력이 한반도 안정과 동북아 평화에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고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미국의 동의와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노력을 병행하여야 한다. 가능하다면 정부는 바세나르 규제품목 해지 또는 대북적대정책 전환 등을 미국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6자회담은 한국 정부로서도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민족공조의 입장에서 북한당국과 마음을 터놓고 해법을 모색하고 광범위한 시민사회계의 제안을 폭넓게 경청하면서 현명한 해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물론 모든 사업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얼굴을 붉힐 일이 있으면 붉히는 한이 있더라도 국가적 차원의 중대사업인 남북한 경제협력을 양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양보는 진정한 우방관계를 정립하는 데도 도움이 안 된다. 정부는 책임적인 자세로 미국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참여정부의 진지한 노력을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