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위원)


북은 지난 7월 9일 6자회담을 재개한다고 전격 발표하였다. 북은 중국 베이징에서 북미 6자회담 단장 접촉이 진행된 것을 언급하며, “미국측은 조선이 주권국가라는 것을 인정하고 침공의사가 없으며 6자회담 틀거리 안에서 쌍무회담을 할 입장을 공식 표명했다”며 “조선측은 미국측의 입장 표시를 자기에 대한 미국측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철회로 이해하고 6자회담에 나가기로 했다”며 구체적으로 밝혔다.

북은 6월 6일 두 번째 뉴욕접촉에서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으며, 6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동영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 “7월 중에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비친 바 있다. 연이어 북은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을 1달 동안 중단해 달라”며 미국측에 요청하기도 하였다. 6자회담을 재개하고자 하는 북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2.10 성명은 대미 총진군의 본격화 의미

북은 2월 1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보유국임을 선포하고 핵무기보유고를 늘리겠다고 선언하였다. 핵증산을 선언한 것이다. 북은 이미 2003년 4월 북-중-미 간의 3자회담에서 “우리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나 폐기할 수는 없다. 그것들을 실험할 것인지, 수출할 것인지, 증산할 것인지 여부는 미국의 태도에 달렸다”고 한 바 있는데, 2월 10일 외무성 성명은 이러한 ‘핵실험’, ‘핵수출’, ‘핵증산’ 중에서 ‘핵증산’을 선언한 것이다.

또한 6자회담에 무기한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은 본질상 미국에 대한 6자회담 촉구 선언이었다. 미국으로 하여금 진실된 자세로 6자회담에 임하라는 뜻이다. 미국이 6자회담에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자세를 보이면 언제든지 6자회담에 응하겠다는 것이다.

북은 올해 2월 2일과 3일 양일 간 진행되었던 ‘선군혁명 총진군대회’에서 “우리는 자기 운명의 영원한 주인으로 되는가 아니면 제국주의 노예로 되는가 하는 시대의 물음 앞에 총진군으로 대답해 나서야 한다”는 ‘인민군 장병과 주민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한 바 있다. 이 호소문은 2.10 성명을 준비하면서 인민군 장병과 주민들의 ‘대미항전’ 준비태세를 촉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신보는 총진군대회를 “조미대결전에서 절대로 안일한 양보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대외에 선포”한 것으로 그 의미를 부여했다. 2월 5일자 노동신문 역시 “미국의 경제제재 책동이 우리 경제발전에 일정한 장애를 조성할 수 있겠지만 그 따위 비열한 수법으로 우리를 감히 어쩌지 못한다”며 “어떤 제재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뱃심이 든든하다”고 하여 2.10 성명 이후 예상되는 미국의 경제제재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2.10 성명은 대미총공세의 본격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실패만 거듭했던 미국의 대북 압박

3월 초 미국의 라이스 국무장관은 한, 중, 일 3개국 순방을 통해 대북 압박을 시도한다. 라이스는 “국제적으로 (북한의 고립만) 심화될 뿐”이라며 양자회담은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특히 미국은 대북 압박을 위해 중국을 회유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라이스는 중국 방문에 앞서 일본과 한국에서 “6자회담의 시한이 무한정한 것이 아니며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으름장을 놓으며 중국의 대북 압박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4월 초 중국을 방문한 북의 박봉주 내각 총리와의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견지하고 북한의 합리적 우려를 해결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공동 이익에 부합한다”, “중-조 친선 관계를 중시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중국 당과 정부의 일관된 방침”이라며 핵문제에 대한 북의 입장을 옹호하였다. 중국을 압박하여 대북 제재에 동참시키려 했던 미국의 구도가 실패하는 순간이었다.

이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2월 11일 방미중인 반기문 외통부 장관을 만나 자리에서 북과의 무역거래와 비료지원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2월 21일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비료지원은 인도적 차원”이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계속하고자 하는 것이 정부의 의지”라며 미국의 비료 지원중단 요구를 우회적으로 거부했다.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2월 중 남북 교역은 전월에 비해 64%가 증가했으며, 3월 16일엔 개성공단 전력공급을 시작함으로써 57년 만에 남북간 전기공급을 재개하였다. 또한 3월 23일 통일부는 남북간 교역 및 통행절차 개선방안을 발표하여 남북 교류와 교역을 원활히 하기 위한 제도개선을 마련하기도 했다.

북의 역(逆) 대미 압박 : ‘당근과 채찍 병행전략’

미국의 대미 압박 외교에 대해 북은 ‘당근과 채찍 병행전략’을 추진한다. 즉 평화공세와 정치군사압박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다. 3월 2일 북은 외무성 비망록을 통해 “조건과 명분이 조성된다면 6자회담에 참가하겠다”고 밝힌다. 여기서 조건과 명분이란 미국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사과 및 철회’이다. 이는 평화 공세 즉 ‘당근 전략’이다. ‘미국이 우리에게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을 사과하고 철회함으로써 조건과 명분만 준다면 언제든지 6자회담은 재개될 수 있다’는 입장의 표명인 것이다.

또한 북은 정치군사압박 즉 채찍 전략을 동시에 추진한다. 이 역시 3월 2일 외무성 비망록에서 확인된다. 북은 외무성 비망록에서 “미사일 문제에서도 우리는 국제조약이나 그 어떤 국제법적 구속을 받고 있는 것이 없다”며 “미사일 발사보류에서도 현재 그 어떤 구속력도 받는 것이 없다”고 천명하였다. “이전 미 행정부시기인 1999년 9월 ‘대화가 진행되는 기간 미사일발사 임시중단’조치를 발표했으나 2001년 부시 행정부가 집권하면서 조미사이의 대화는 전면 차단”됨으로써 구속력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미사일 실험 발사도 할 수 있다는 입장의 천명이었다.

미국 CIA가 1999년 정보보고서를 통해 2차 미사일 실험 발사는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이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현재 핵보유국인 북이 핵탄두 장착 미사일을 실험 발사한다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끔찍한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북의 대미 압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3월 31일 북의 외무성 대변인은 “앞으로 6자회담은 비핵군축회담이 되어야 한다”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6자회담이 자기 사명을 다하자면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미국의 핵무기와 핵전쟁위협을 근원적으로 청산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는 장소로 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핵무기와 핵위협이라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원천적으로” 제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또 하나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미국의 핵위협이 완전히 청산되면 조선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지역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도 담보될 수 있다”고 언급한 대목이다. “6자회담의 성격 변화는 동북아 지역의 정치, 군사적 구도에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점으로 될 수 있다”는 4월 5일 조선신보의 보도가 이어졌다. 6자회담이 단순히 핵문제를 해결하는 장소가 아니라 동북아시아에서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리고 4월 13일 노동신문은 “지역안보문제에서 미일을 배제해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이 게재되었다. “미국이 지역정세를 긴장시키고 있”으며, “미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적 본성을 똑바로 꿰뚫어보고 지역안보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내용이다. 북은 위 논평을 통해 “여기(지역안보문제-필자주)에 이해관계가 있고 땅이 붙어있는 나라들끼리 모여앉아 지역안보문제를 토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2.10 성명이 군사적 공세였다면, 3.2 비망록과 3.31일 대변인 담화는 외교적 공세였다. 그리고 북은 외교적 공세를 통해 새롭게 변화된 조건 속에서 한반도 비핵화 실현의 구체적 경로를 제시하며 미국을 압박한 것이다.

미국발 ‘핵실험설’과 북의 폐연료봉 인출 시작

미국은 북을 압박하기 위한 자기의 구도를 완성하기 위해 ‘핵실험설’을 유포하였다. 4월 20일 미 행정부는 “몇 달 내 (북에 대한) 경제제재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단순한 협박이 아닌 실제 조치”라고 언급하였다.

‘북한 핵실험설’은 4월 22일 미국 보수신문으로 알려진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를 시작으로 유포되었다. 이 신문은 “미 행정부가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중국에 북한 설득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사흘 후인 25일에는 <로이터 통신>이 데이비스 케이 전 이라크서베이 단장의 말을 인용하여 “북한이 6월 15일 안에 핵실험을 할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4월 30일에는 했으며,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5월 6일 북의 함경북도 길주를 촬영한 인공위성 사진을 설명하며 “북한이 핵실험 관측용 관람대를 설치했다”는 미국 관리의 말을 인용하여 보도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북한 핵실험설’의 실체는 무엇일까?

핵실험과 관련한 북의 입장은 방북했던 셀리그 해리슨에게 했던 “핵실험 시기를 검토하고 있다”라는 발언과 일본 NGO 관계자들에게 했던 “핵실험은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여기서 “핵실험을 하게 될 것”이 아니라 “알게 될 것”이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두 발언 모두 북이 핵실험 시기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지 핵실험을 조만간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북은 모든 행동을 공개적으로 진행해왔다. 2002년 12월 핵시설을 동결한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한 후 행동에 돌입했으며, 2003년 3월 봉인된 폐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그것을 용도변경하여 핵무기를 만드는 것도 북은 미국에게 통보하고 진행하였다. 이와 같은 북의 행동 양식을 보면 핵실험 역시 미국에 통보하고 진행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발 ‘북한핵실험설’은 북이 실제 그것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그와 같은 ‘설’을 유포시킨 것이었다.

‘핵실험설’을 유포하는 미국의 의도는 첫째, 북의 국제적 고립을 시도하고 대북 제재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즉 유엔안보리 회부 혹은 군사적 행동을 취하기 위한 명분 축적용이었다. 둘째, 한국과 중국에 대한 압박?회유용이라 할 수 있다. 3월과 4월 한국과 중국을 설득하기 위한 모든 외교적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자, 한국과 중국으로 하여금 위기감을 느끼도록 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핵실험설’을 유포했던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가 미국 관리들을 인용하여 “북한이 길주 인근에 핵실험 관람대를 건설 중이라는 정보는 신빙성이 없다”고 보도하고, 로버트 허칭스 전 국가정보위원회 위원장 역시 “정보왜곡은 일부 개인들의 행동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그들 정치 아젠다에 맞게끔 정보를 왜곡하도록 하는 문화가 문제”라고 비꼬는 등 미국발 ‘북한 핵실험설 유포’는 미국내에서조차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한성렬 북 유엔대표부 대사가 의미있는 발언을 한다. 4월 20일 “핵탄을 만들기 위해 영변 원자로 가동을 중단시켰다”는 발언이 그것이다. 즉 2002년 12월부터 재가동된 핵시설에서 나온 폐연료봉 인출을 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이는 추가적인 ‘핵무기 증산’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 북은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비를 다그친다. 북은 4월 24일 인민군 창건 경축보고대회에서 “만단의 전투동원태세를 견지”할 것을 강조하였고, 4월 27일에는 “미국의 첨단무기를 격퇴할 능력이 있다”고 하였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5월 1일 동해상에서 북이 지대함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 유도탄은 사정거리 100-120km 안팎이라고 한다. 남쪽을 ‘위협’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북의 자주포와 방사포는 사정거리가 각각 50km, 43-60km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발사한 유도탄의 사정거리는 기존 무기의 두 배에 해당한다. 100-120km는 주한미군이 새롭게 재배치되는 평택기지를 사정거리에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북의 미사일 실험에 대해 “우리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북한은 전에도 미사일 실험을 했었고, 그 중에 일부는 실패했었다”며 즉각 ‘평가절하’하고,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모든 종류의 ‘실질적’ 억지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발언이 나왔다는 것은 북의 미사일 발사에 ‘긴장’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폐연료봉 인출과 6.17 발언 : 가장 강력한 6자회담 촉구 메시지

5월 11일은 2.10 이후 북미간 핵공방에서 1차 종지부를 찍은 날로 기록될 것이다. 5월 11일 북은 폐연료봉 인출이 완료되었음을 발표하였다. 이제 냉각 기간을 거친 후 핵무기 제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단계로 진입할 것이다. ‘본격적 핵증산’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북은 ‘강경노선’만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당근과 채찍 병행 전략’은 미국을 상대하는 북의 일관된 노선이었다.

5월 8일 북 외무성은 “미국이 우리를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6자회담 안에서 쌍무회담을 할 준비가 돼 있다는 보도들이 전해지기에 그것이 사실인가를 미국측과 직접 만나 확인해보고 최종 결심을 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여기서 최종 결심이란 ‘핵실험’, ‘미사일발사 실험’, ‘핵이전’과 같은 추가적 조치이거나 아니면 6자회담 재개를 의미한다. 즉 5월 8일 외무성의 발언은 미국의 행동에 따라 6자회담에 복귀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5월 8일 외무성 발언과 5월 11일 폐연료봉 인출 완료 소식을 접한 미국은 다급히 뉴욕에서 북미 접촉을 시도하게 되고, 북이 이를 받아들여 5월 13일 2.10 성명 이후 최초로 북미접촉이 이루어졌다.

이 접촉에서 미국은 박길연 대사와 한성렬 차석대사를 만나 “미국은 북한이 주권국가이며 6자회담 내에서 양자회담이 가능하다”는 발언을 하였다. 그러나 5월 13일 북미 접촉 이후에도 미국은 강경파와 온건파간의 갈등이 지속되면서 북에 대한 적대적 발언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미 정치?군사?외교력이 소진된 미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특히 6.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7월 중 6자회담 복귀 발언’ 등 북의 ‘당근 전략’ 앞에 미국은 마침내 7월 9일 베이징에서 6자회담 북측 단장을 만나 북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정식으로 전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5월 11일 폐연료봉 인출에 이은 6.17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은 미국에 대한 가장 강력한 ‘6자회담 촉구’ 메시지였다.

6자회담 재개는 미국의 ‘백기 투항’을 북이 수용한 것

앞에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듯이 2.10 성명 이후 7월 10일 북이 6자회담 재개를 발표하기까지 5개월 동안을 주도했던 것은 북이었다. 북은 ‘당근과 채찍 병행 전략’을 통해 미국의 압박하고 유혹하는 정치?군사?외교 전술을 구사해왔다. 미국의 대북 고립외교에 맞서 북중 관계, 남북 관계를 강화하면서 미국을 역으로 포위해 왔으며,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의사를 지속적으로 보임과 동시에 핵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들을 취해 오면서 미국으로 하여금 북의 요구 즉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조건과 명분’을 제공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2.10 성명 이후 북이 요구했던 것은 단 하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철회 및 사과였다. 북은 3.2 외무성 비망록에서 “미국은 응당 ‘폭정의 종식’ 발언에 대해 사죄하고 이 발언을 취소하여야 하며 우리의 제도전복을 노린 적대시정책을 포기하고 평화공존에로 나올 정치적 의지를 명백히 밝히며 그를 실천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7월 9일 미국은 “조선이 주권국가라는 것을 인정”했으며 “침공의사가 없으며 6자회담 틀거리 안에서 쌍무회담을 할 입장을 공식 표명”하였다. 이는 2.10 성명 이후 북이 6자회담 복귀를 위한 조건과 명분을 달라며 요구했던 내용 그대로이다. 미국은 북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여 북으로 하여금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는 조건과 명분을 제공한 것이다.

즉 7월 9일 베이징에서의 북미 접촉은 미국의 ‘백기 투항’을 의미하며 북이 6자회담 복귀를 결정한 것은 “미국의 입장 표시를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철회로 이해”하고 미국의 ‘백기 투항’을 수용한 것이다. 북이 전격적으로 회담 재개를 발표하자 미국이 “첫 단계일 뿐 진전이 중요하다”며 애써 그 의미를 축소시킨 것은 ‘백기 투항’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궁색한 처지의 발로일 뿐이다.

물론 3.2 외무성 비망록에서 북이 요구하였던 “우리의 제도전복을 노린 적대시정책을 포기하고 평화공존에로 나올 정치적 의지를 명백히 밝히며 그를 실천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내용은 여전히 북미 간에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특히 ‘실천행동’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허나 이것은 앞으로의 과제라 할 수 있다. 북은 6자회담이라는 회담틀 안에서 미국의 “실천행동”을 강제해 내려 할 것이다.

따라서 4차 6자회담의 재개는 분명 북의 대미 총공세가 승리한 것을 의미하지만, 이는 1차전에 불과하다. 어쩌면 6자회담이라는 공간에서 진행되는 2차전이야말로 대미총공세의 본격전이 될 것이다.

4차 6자회담의 의제와 전망

의제를 논하기에 앞서 전제해야 할 것은 미국이 ‘백기 투항’을 한 것은 북의 핵 증산을 막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하고 북과의 평화공존으로 나서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난관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6자회담 재개 자체가 북미간 핵대결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북 역시 6자회담이 재개되었다고 해서 기존의 ‘핵증산’ 활동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1차 6자회담에서 북이 제시한 일괄타결 도식과 동시행동 순서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즉 미국의 발언과 행동에 따라 북의 행동 역시 달라지게 될 것이다.

이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앞으로 6자회담에서 다루어질 의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농축우라늄문제이다.

미국은 지속적으로 농축우라늄 문제를 제기할 것이며, 북은 지금까지의 입장과 동일하게, 즉 농축우라늄 계획을 부인할 것이다. 만약 미국이 어떤 증거나 근거도 내세우지 않고 이 문제를 제기할 경우 4차 6자회담 역시 표류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미국이 비록 농축우라늄 문제를 제기한다고 하더라도 상징적 수준 이상의 제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둘째, 북은 앞으로의 6자회담을 ‘비핵군축’ 회담으로 진행하려 할 것이다.

북은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으로서 ‘당당하게’ 핵무기의 동시 감축을 제기할 것이다. 7월 15일 북의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가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고 자주통일을 앞당기자면 남조선 강점 미군과 핵무기를 하루 빨리 철거시켜야 한다”고 언급했으며, 작년 11월에도 “주한미군이 1천여개의 핵무기를 남측에 저장해 놓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북은 비핵군축 논의를 위해 미국의 한반도 배치 핵무기를 집중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

북의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쉽게 ‘비핵군축’이라는 안건 상정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이 북의 요구를 수용하여 6자회담이 재개되는 것인 만큼 비록 이번 4차 회담에서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북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게 될 것이며 ‘비핵군축’을 논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 ‘동결 대 보상’은 여전히 유효한 회담 의제이다.

북의 핵무기 개발 활동을 염려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의 핵활동을 동결시키려 할 것이며, 북한은 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중유 공급 재개 그리고 경수로 원자로 공사 재개 등이 보상의 내용이 될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2003년까지 완공하기로 했던 경수로 제공이 지연된 것에 대한 보상 문제가 추가될 것이다.

최근 남측 정부가 ‘중대제안’을 통해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파기하고 200만 킬로와트 전력을 남측에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는데, 북이 이 제안을 수용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동결 대 보상’의 구체적 내용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동결 대 보상에 대한 원칙적 문제에 대해 합의가 된다면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의 충돌 가능성은 동결 범위와 동결 기간의 문제이다. 2004년 7월 열렸던 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은 평화적 목적의 핵활동도 동결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으며 북은 그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천명한 바 있다.

동결 기간과 관련해서 미국은 동결 기간은 최소한으로 하고 곧장 핵시설에 대한 폐기단계로 진입할 것을 주장했다. 지난 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은 동결 후 3개월이 지난 후 폐기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북은 동결 기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북은 ‘조건이 충족된다면’ 동결 이후의 과정 즉 핵시설의 폐기에 착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핵시설의 폐기와 관련해서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서에서는 “북한의 흑연감속로 및 관련시설의 해체는 경수로 사업이 완료될 때 완료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동결 기간에 대한 북미 간의 이견은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서에 준용하여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넷째, 북에 대한 ‘안전담보’ 문제이다.

1차 6자회담에서 북은 일괄타격 도식으로 북미간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북미 외교관계를 수립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에 대한 상응조치로서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지 않으며 사찰을 허용하고, 핵시설을 궁극적으로 해체하며, 미사일 발사실험을 보류하고 수출을 중지한다는 것을 내세웠다.

미국의 북에 대한 ‘안전담보’ 문제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를 의미한다. 미국의 대북 적대의사가 없다면 불가침조약을 체결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북의 인식이다. 따라서 북에 대한 ‘안전담보’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북미 관계 정상화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말로는 ‘안전 담보’를 운운하고 있지만 지난 5월 스텔스 전투폭격기를 배치하는 등 여전히 대북 적대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이 의제는 6자회담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 될 것이며, 동결 대 보상이라는 문제가 일정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북미 관계가 정상화될 때까지 가장 민감한 사안으로 존재할 것이다.

비핵군축을 실현하기 내기 위한 북의 전략

북은 3.31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6자회담은 비핵군축회담으로 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미 총공세를 벌이고 있는 북이 비핵군축을 위한 전략 없이 6자회담에 복귀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3차까지의 지지부진한 6자회담의 과정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북의 핵보유조차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조건에서 6자회담을 비핵군축회담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북의 전략은 무엇일까.

물론 6자회담이 재개된다면 북의 전략이 확인되겠지만 3.31 외무성 대변인 담화 직후 강석주 외무성 부상의 극비 중국 방문에서 그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

지난 3월 박봉주 총리는 중국을 방문하여 추진타오 주석을 초청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후 주속으로부터 적당한 시기에 북을 방문하겠다는 답을 받았다. 그리고 양국은 향후 방북 시기를 포함한 구체적인 일정을 협의하기로 하였다.

강석주 부상의 방중은 ‘향후 후진타오 주석의 방북 시기를 포함한 구체적인 일정을 협의’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공개된 외교 일정 논의를 위해 ‘극비 방중’을 했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극비 방중’의 배경은 비핵군축 회담을 언급했던 3.31 담화에서 발견된다.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해 깊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북의 핵보유는 동북아시아의 핵확산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곧 대만의 핵보유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중국은 대북 제재를 강요하는 미국의 입장을 지지할 수 없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패권정책이 동북아시아에서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패권정책의 강화는 대만 문제를 통한 중국으로의 압박이 될 것이라고 중국 지도부는 인식하고 있다. 중-러 역사상 최초로 합동 군사훈련을 올해 실시하겠다는 것도 미국의 일방주의적 패권정책에 대한 견제 차원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중국은 3.31 외무성 대변인 담화의 내용 중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미국의 핵위협이 완전히 청산되면 조선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지역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도 담보될 수 있다”는 내용에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강석주 부상의 극비 중국 방문은 북-중 정상회담에서 다루어질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과 관련된 ‘예비 논의’ 차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더 논의를 진척시키기 위해서 조선신보의 보도를 보자. 조선신보는 강석주 부상이 평양으로 귀환하던 4월 5일 인터넷판에서 “6자회담의 성격 변화는 동북아 지역의 정치, 군사적 구도에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점으로 될 수 있다”면서 “군축회담 개최 제안은 조선측에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안정을 담보하는 구상과 결단이 이미 준비되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보도하였다.

조선신보의 보도에 근거해 강석주 부상의 극비 중국 방문을 돌이켜본다면, 강석주 부상은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안정을 담보하는 구상과 결단’을 중국 측에 설명하고 중국 측의 지지를 이끌어 내려 했을 것이다.

강석주 부상의 극비 중국 방문에 대해 이북이나 중국은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의 4월 6일 “쌍방은 조-중 친선관계와 핵문제를 비롯한 호상 관심사인 국제문제들에 대해 심도있는 의견교환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을 뿐이다.

최근 탕자쉬엔 중국 국무위원이 후진타오 주석 특사 자격으로 북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접견하였다. 후진타오 주석의 방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후진타오 주석의 방북과 북-중 정상회담은 4차 6자회담 전에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북-중 정상회담에서 ‘동북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안정을 담보하는 북-중 정상 간의 합의’가 채택된다거나 혹은 후진타오 주석이 북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6자회담을 비핵군축회담으로 할 것에 대해 합의를 본다면 미국 역시 이같은 대세를 거스를 수 없게 되고 미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핵군축 논의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같은 구상이 4월 5일 조선신보에서 언급한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안정을 담보하는 구상과 결단”의 한 단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 전망

2000년 10월 12일 북미 공동코뮤니케에서는 북미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고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명기한 바 있다. 공동코뮤니케 일정에 따른다면 6자회담을 통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미국 대통령의 방북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것이며 그것은 곧 북미 수교를 양 정상이 합의하는 회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북미 정상회담은 아직은 앞서가는 전망이라 할 것이다. 북의 일차적 관심 역시 6자회담을 통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될 것이다. 물론 6자회담이 순조롭게 그리고 속도감있게 진행된다면 북미 정상회담과 북미 수교는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빠른 시일 안에 성사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한편 북미관계의 질적 변화는 남북관계의 질적 변화를 초래해 왔던 것이 한반도 역학 구조였다. 1991년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북의 요구를 받아들여 ‘한반도 전술핵무기 철수 선언’을 하고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하자 남북 기본합의서가 채택되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 채택 역시 1999년 북미 미사일 회담 타결 등 북미 관계의 변화가 하나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같은 역사적 과정과 한반도 역학관계 상 6자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남북 관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며, 그것은 곧 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질 것이다. 6자회담 재개 뿐 이외에도 남북관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최근 정세를 고려한다면 2차 남북정상회담 역시 그리 먼 미래의 일로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6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 특사였던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8.15 때는 “보다 비중있는 인사를 내려보내겠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보다 비중있는 인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8.15 통일 대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6자회담에서 일정한 성과를 내게 된다면 가을경에 2차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것도 생각해 봄직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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