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nikorea@cvnet.co.kr)


올해는 해방 60년이면서 분단 60년이다. 또한 외국군대인 미군이 이 땅에 주둔하지 무려 60년이 되는 해이고, ‘신성시’ 해 온 한미동맹이 실질적으로 맺어진지 60년이다. 동시에 민족사의 금자탑인 6ㆍ15공동선언 다섯 돌이다.

인생에서 60은 환갑을 뜻한다. 환갑은 이제까지의 60평생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삶의 출발원년을 의미한다. 그래서 남과 북을 통틀어 이 땅의 자주와 평화통일의 실천에 몸담고 있는 우리들은 분단 60년인 올해를 ‘통일원년’과 ‘주한미군 철군 원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원년의 출발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할 목표 지점에 관한 윤곽이 있어야 하고 또 이에 다다를 방도나 방안이 있어야 한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전제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예민하고 폭발적인 문제라서 남북정부나 운동진영에서도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주제이다. 그렇다고 이를 지속해서 외면할 수 없다. 더구나 민족 대장전인 6ㆍ15공동선언은 그 2항에서 남쪽의 ‘연합제’와 북쪽의 ‘낮은 단계 연방제’를 결합시키는 통일방안의 기조에 이미 합의한 상태이다.

이에 이 기조를 살리면서 민족의 하나 됨을 위한 방도와 방안을 나름대로 제시해 보겠다. 곧 통일방안에 대한 조감도의 초벌을 구성해 많은 평화통일 일꾼들이 고뇌를 모아 새롭거나 진전된 조감도를 일구는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외적 통일정세와 부분통일의 긴요성

우리는 과거 미ㆍ소 냉전과 우리 민족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또다시 지구촌이나 동북아에서 신냉전이 발생하게 되면, 우리 민족이 아무리 남북공조를 취하여 통일을 이룩하려 하더라도 이 신냉전에서 오는 강제력 때문에 민족통일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통일에만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잘못하면 다시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전쟁까지 강요당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2030년경이면 중국의 국민총생산액(GNP)이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때면 중국은 더 이상 미국의 일방적인 동북아 패권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곧, 중국의 전통적인 중화민족주의와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가 충돌하게 되고 그 결과 동북아에서 중국과 미국 간에 ‘동북아신냉전’이 도래하게 된다. 만약 그 시점까지 우리가 통일을 이룩하지 못한다면 남과 북은 또 다시 과거 미소냉전시대와 같이 북은 중국에, 남은 미국에 종속되어, 민족의 재통일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고, 민족분단은 장기간 지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남과 북은 동북아신냉전 도래 이전에 부분통일이라도 이루어 이 지구촌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기정사실화하여 우리의 통일을 굳히는 작업을 시급히 추진하여야 한다.

이 같이 통일을 서두를 것을 요구하는 통일외적 조건과는 대조적으로 통일의 대내적 조건은 이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남과 북의 사회경제적 역량이 2003년 남북 국민총소득(GNI)이 각기 6천61억 달러와 184억 달러가 보여주듯이 33:1의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또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나 3ㆍ1절 및 광복절이면 극우냉전사대주의 세력이 서울 시청 앞 등에서 ‘반핵반김’ 시위가 그칠 줄 모른다. 이처럼 대북 적대가 높고, 북한을 동등한 주체와 통일동반자로 수용하지 않고 있어 통일성숙도가 미약한 상황이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적대관계가 상당히 완화되었지만 아직까지 국가보안법 철폐와 같은 제도와 구조적 차원으로 발전되지 못하고 있다.

내적 통일정세와 통일의 시기상조성

이러한 내적 통일기반이 저급한 조건에서 급박한 독일식의 흡수통일은 북한을 내부 식민지화하는 민족 분열적 통일이나 또 다시 6ㆍ25전쟁과 같은 내전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곧, 남북 간의 역량차이가 너무 심대하고, 남한의 통일역량이 북한을 민족공동체로 수용하기보다는 흡수의 대상으로 삼고 있고, 적대의식이 아직 만연해 있어 통일성숙도가 낮은 상태에서 ‘1국가1정부1경제체제’의 급박한 완전 통합 식 통일은 필연적으로 민족의 재앙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이에 우리는 북한이 어느 정도 자생력을 갖추도록 하고, 남북 간의 적대관계를 완화하고, 북한을 통일동반자와 상호주체자로서 인식하는 통일성숙도를 높여서 내적 통일기반 조성을 서둘러야 한다. 이래야만 지배와 예속의 민족 분열적 통일을 막는 역사행로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완전한 통합적 통일은 가급적 지연해야 한다.

그러나 동북아신냉전의 도래라는 외적 통일정세는 통일을 서두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통일외적 조건의 통일긴박성을 통일 내적 조건이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불균형 상태, 이 현상이 바로 통일딜레마이다.

이 통일딜레마를 해소할 수 있는 방책을 바로 6ㆍ15공동선언 2항이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6ㆍ15공동선언의 민족사적 의의는 지대하다. 선언 2항은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결합한 통일방안에 합의함으로써 북한을 내부 식민지화할 민족 분열적인 통일을 막고 부분통일을 가능하게 하여 이 통일딜레마에 대한 돌파구를 연 셈이다. 공동선언 2항은 남측 ‘공식적’ 통일방안인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기본적 문제점인 흡수통일을 배제하고, 북측 통일방안의 기본적 문제점인 단기간의 군사 및 외교권의 통합이라는 비현실성을 극복했다. 특히 연방제를 합의함으로써 통일이야기만 나오면 남과 북이 서로 경계하는 흡수통일과 적화통일의 우려도 극복된 셈이다.

이제 동북아신냉전의 도래라는 통일 외적조건에 대처할 수 있는 부분통일의 방도가 열린 셈이다. 우리의 과제는 동북아신냉전 도래 이전에 한반도에 부분통일이라도 완료시켜 한반도의 통일을 지구촌에 기정사실화시켜 설사 동북아신냉전이 도래하더라도 민족통일을 진척시킬 수 있는 발판을 굳건히 마련하는 것이다.

6ㆍ15공동선언 2항과 통일조감도

이러한 통일의 내외적 조건에서 우리의 통일기획은 기본적으로 6ㆍ15공동선언 2항에 근거해야 하고 그 경로는 아래와 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사회통합과 통일과의 관계 설정이다. 흔히들 독일통일의 유용한 역사적 교훈을 통일 이전에 사회통합을 추진하여 통일이 되었을 때 사회적 균열이 첨예화 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민족 분열적 통일을 막기 위해 이는 긴요하다. 그러나 어느 사회든지 완벽한 사회통합을 이룬 사회는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계급, 지역, 종교, 인종, 학력 등 여러 종류의 차이와 차별에 따른 갈등과 균열은 유토피아 사회가 아니면 완벽히 해소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족통일이나 민족통합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회통합은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하지만 이는 정도의 문제이지 완벽한 사회통합이 선행되어야만 민족통일이나 민족통합이 가능하고 그래야만 된다는 주장은 실현 불가능한 것을 주장하는 무책임한 주장이고 결과적으로 반통일적인 발상이 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1) 내외적 통일기반 조성
내적 기반: 남북적대 해소, 북한역량 증진, 남북통일성숙도 고양, 한반도냉전구조 해체, 평화보장체제 구축
외적 기반: 주한미군 철수, 한반도 비동맹 중립화, 동북아경제평화협력체 진전

2) 민족연합과 민족연합성연방 단계로 이행하여 부분통일 추진
(민족통일과 사회통합 병행 추진)

3) 부분통일(민족연합성연방과 높은 단계의 민족연방) =민족통일
(민족ㆍ사회통합 진전)
(체계통합)

4) 민족통합(1통일주권국가 2단순지역정부 1통합복합경제체제)
(사회통합의 지속적 추진)

▶<그림> 통일조감도
연합제와 연방제의 접목인 부분통일을 통일경로의 핵으로

앞에서 살펴 본대로 동북아신냉전이 도래하기 이전에 부분통일이라도 이루어 지구촌에서 우리의 민족통일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은 현시점에서 우리에게 직면한 긴요한 과제다. 아니면 우리 민족은 분단고착화로 나아가 통일의 기회를 또다시 50년이나 1백 년 동안 놓치게 될 민족위기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절박한 조건 하에서 지나친 이상주의는 현실이 뒷받침되지 않아 공허할 뿐 아니라 쉽게 좌절하기 쉽다. 또 지나친 현실주의는 장기적 전망을 상실하여 중도하차하기 마련이다. 이상주의적 전망과 현실주의적 구체성이 접목되는 가운데 외세에 의해 강제된 분단은 서서히 극복되고, 통일행로는 비가역적인 속도를 갖게 된다. 이래야만 지속가능한 통일역정이 전개될 것이다. 통일방안도 이러한 접목의 접지를 찾는 고뇌와 실천의 과정이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6ㆍ15공동선언 2항은 이상과 현실을 잘 조화시킨 것이다. 현실론에 입각하여 남측의 연합제가 수용되었다. 곧, 두 지역정부가 각기 군사권과 외교권 및 사회경제체제권을 보유하여 지금 현재와 같이 별개의 주권국가로서의 위치를 실질적으로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제 하의 남과 북은 마치 현재의 유럽연합이 통일국가가 아니듯이 결코 통일된 국가는 아니다. 그러나 연방제 안은, 비록 낮은 단계라 할지라도 이상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어떠하든 간에 형식적으로는 연방정부가 구성되어 ‘1국가2정부2체제’의 통일국가에 진입하게 되어 한반도를 통틀어 단일 통일주권국가가 상징적 수준에서 창설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연합제와 연방제가 결합한 이 ‘연합성연방국가’가 지극히 상징적 수준에 머문다 하더라도 외부적으로는 통일국가라는 이미지를 제시하고, 장기적으로는 통일을 이끄는 상징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한반도에는 때로는 한 개의 통일주권국가, 때로는 두 개의 별개의 주권국가, 또 때로는 세 개의 주권국가가 존재하게 되는 과도기적 현상이 조성되기도 한다. 통일을 위해서는 이러한 과도기적 과정이 필연적이다.

‘연합성연방국가’로 통일의 상징성과 형식성을 갖춰야

이 연합성연방국가는 처음에는 실질적인 역량행사에 한계가 있다 할지라도 부분통일을 이루었다는 상징성을 갖게 되어 지구촌에서 우리의 통일을 기정사실화 할 수 있는 형식성을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지만 통일성숙도가 높아짐에 따라 연합성연방국가의 역할과 권한을 증가시켜 남북사이의 통합성을 추진시켜 나가도록 해야 한다.

연합성연방국가의 구성은 여러 가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연방정부, 연방의회, 연방내각, 연방지방의회 등 행정부와 의회 수준의 민족통일기구를 두어야 한다. 사법부는 연방의 실질적인 권한이 약하므로 시기상조이나 법 통합에 따라 조정되어야 한다. 통일중앙국가의 수반은 남과 북이 함께 추앙하는 원로급을 옹립하거나 남과 북의 현직 수반이 2년 정도씩 순번제로 맡을 수도 있다. 각 의회나 내각의 구성원은 남과 북이 함께 합의하는 적정인물을 모색한다.

이 연합성연방 단계에서 군사, 외교, 경제체제 영역은 통합의 정도가 느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지역정부가 그 관할권을 대부분 행사하게 되어 두 개 독자정부로서의 위상이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체육 문화, 관광 등의 영역은 현 시점에서도 수준 높은 통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중앙정부가 관할하여 ‘2탈정부’와 ‘1준통일국가’로서의 위상을 가지게 된다. 또 민족경제의 진전으로 남북공동사업인 경의선, 경원선, 개성공단, 금강산개발 등의 경제영역도 상당부문 통일중앙정부가 관할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점차적으로 통일중앙정부의 영역을 확대하게 되면 부분통일에서 완전통일로 나아가는 엄연한 물적 토대가 형상되게 된다.

지난 시드니와 아테네 올림픽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바로 남과 북이 한반도 기를 앞세우고 동시 입장하여 우리가 하나임을 세계만방에 보여 준 것이었다. 차차기 런던올림픽에 ‘아리랑연합성연방국가’의 중앙통일국가 명의로 단일팀을 구성하게 되면 우리의 상징적 통일기반은 이 연합성연방을 계기로 굳건히 다져질 수 있다. 이 같이 연합성연방 단계의 통일정부가 체육, 문화, 관광 등 쉽게 남과 북이 통합될 수 있는 부분에 관해서는 남북 지역자치정부의 권한을 대폭 이양 받아 실질적인 중앙정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면 민족경제부문에서는 통합이나 통일이 90% 가까이 될 수 있고, 체육부문은 이미 40-50% 가까이는 통합이 된 것이 되고, 관광부분 등도 역시 통합 내지 통일이 상당히 진척되게 된다. 동시에 경의선, 서해공단, 임진강수해대책본부와 같이 남과 북의 협력 및 공동사업의 경우 그 관할권을 중앙정부가 행사하도록 하여 실질적인 통합분야를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접목이 가능한 구도를 문익환 목사가 1989년 4ㆍ2공동선언에서 북측과 합의한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4ㆍ2공동성명 4항이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가 누구에게 먹히지 않고 일방이 타방을 압도하거나 타방에게 압도당하지 않는 공존의 원칙에서 연방제 방식으로 통일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 선택해야할 필연적이고 합리적인 통일방도가 되며 그 구체적인 실현방도로서는 한꺼번에 할 수도 있고 점차적으로 할 수도 있다”고 함으로써 6ㆍ15공동선언에서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남의 연합제의 접목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를 이미 닦아 놓았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바로 4ㆍ2공동성명과 6ㆍ15공동선언이 일구어 놓은 훌륭한 방도의 지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바로 이 맥락에서 필자는 ‘아리랑통일민주공화국’ 4단계 통일방안을 아래와 같이 제안해 왔다.

‘아리랑통일민주공화국’의 4단계 통일방안

우리의 통일방안은 남쪽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흡수통일 지향성과 북쪽의 고려민주연방제통일방안의 비현실성을 극복하면서 우리 민족의 한결 같은 과제인 자주, 평화, 민족화합과 민족대단결을 통한 민족공동체 구현을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의 통일과정은 한반도평화체제 구축과 함께 동북아 및 세계평화체제에 기여 및 접목하고, 남북의 민중이 함께 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요구를 담은 통일방안으로 ‘아리랑통일민주공화국의 4단계 통일방안’을 나름대로 제시했다. 아리랑통일민주공화국에서의 ‘아리랑’은 남과 북의 민족성원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일체감과 공속의식을 자아내게 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으며, 남과 북의 적대관계를 넘어서서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상징어다. 동시에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 한과 얼이 무형적으로 녹아 담겨진 상징어로서 각고 속에서 ‘우리 됨’을 확인할 수 있어 소아적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진정한 일체감과 화해와 협력을 자아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4단계 통일방안은 통일준비단계인 민족연합(2주권국가 2정부 2경제체제), 부분통일단계인 민족연합성연방(1준주권연방국가 2탈국가지향 지역정부 2경제체제), 국가통일단계인 민족연방(1연방주권국가 2지역정부 1준통합복합경제체제), 민족통합 단계인 민족통일국가로(1연방주권국가 2단순지역정부 1통합복합경제체제) 구성된다.

통일진입 준비 단계인 민족연합 단계

첫째 단계인 민족연합 단계는 통일진입을 위한 준비 단계이자 남북기본합의서 및 6ㆍ15공동선언을 이행하는 단계로, 2개의 완벽한 주권국가, 2경제체제, 2주권국가적 정부로서 5년 정도로 설정한다. 민족연합은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에 있는 남북 양 사회가 민족연합성연방인 부분통일에 진입하기 위한 최소한의 여건, 즉 냉전적 법ㆍ제도의 청산, 남ㆍ북ㆍ미 3자의 평화협정이나 선언 등 체결, 남북화해와 협력의 증진, 민족경제의 기초 형성 등을 이루는 단계이다. 이 민족연합단계는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서 '국가연합'이 장기간의 분단질서 관리기 또는 흡수통합 여건 조성기로 설정된 것과는 달리 부분통일기인 연합성연방 단계로 이행하기 위한 준비 단계이다.

이 과정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조직은 당국자회의와 전 민족회의이다. 당국자회의는 남북기본합의서에 제시되어 있는 남북합의서와 6ㆍ15공동선언 이행기구로서 정례적인 남북 정상회의, 각료회의, 의원회의, 남북 상주대표부, 화해공동위원회, 군사공동위원회, 핵 통제위원회 등이 포함된다. 전 민족회의는 남북정당사회단체공동회의로서 통일과정이 당국 간의 주도만 아니라 민중과 시민 등이 동시에 주도하는 과정으로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양자 간의 관계는 원칙적으로 당국자회의의 안건을 모두 전 민족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동의, 개정, 폐기 등을 결의하고 이를 당국자 회의와 공동으로 다루도록 하여 실질적인 주체로서 역할을 하게 한다. 물론 당국자회의에서 다루지 않는 독자적 안건을 결의하고 이를 당국자회의에서 수용하도록 하는 자율성을 가진다.

민족연합은 통일 준비단계임에도 불구하고 통일국가로서의 위상을 제대로 가질 수 없어 통일단계는 아니다. 그러므로 단 기간에 국한되어야 하고, 이 기간 남북의 최우선 정책은 상징적 및 실질적 통일기반 조성에 주어져야 한다.

부분통일 단계인 민족연합성연방 단계

둘째 단계인 민족연합성연방 단계는 부분통일 단계로 역내 국경이 존재하는 1준주권 연방국가 2탈국가지향 지역정부 2경제체제이고 15년 정도를 상정한다. 이 단계는 연합제의 요체인 외교, 군사, 사회경제체제의 독자권을 각기 남북정부가 갖는 것과, ‘낮은 단계 연방제’의 요체인 상징적 수준의 민족통일기구인 연방통일중앙정부 구성을 접목시킨 단계이다. 심화되어 있는 남북 간 이질성 및 이해차이 등의 요인 때문에 군사ㆍ외교권을 지닌 강력한 통일중앙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실질적인 정치통합이 이루어지는 높은 단계의 연방제는 남북의 각각의 경제체제와 사회체제의 상호 적대성이 완화 및 소멸되어 상호접목의 토대가 마련되고, 민족경제 등을 발판으로 상호의존성이 강화되어야 가능하다.

이 연합성연방 단계의 초기에는 국방, 외교, 경제체제 영역은 통합의 정도가 느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지역정부가 그 관할권을 대부분 행사하게 되어 두 개의 독자적 주권정부로서의 위상이 아직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 체육, 문화, 관광, 민족경제 등의 영역은 강력한 연방통일정부로의 통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통합가능성의 정도에 따라 연방통일중앙정부가 관할하여 2탈국가적 지역정부와 1준주권 연방통일국가로서의 위상을 가지게 된다. 또 민족경제의 진전으로 남북공동사업인 경의선, 경원선, 개성공단, 금강산개발 등의 경제영역도 상당부문 통일중앙정부가 관할하게 된다. 이렇게 점차적으로 연방통일중앙정부의 영역을 확대하게 되면 2탈국가 지역정부와 1준주권 연방통일국가의 형성이 강화되어 부분통일의 엄연한 물적 토대가 된다.

이 단계의 초기에는 체육부문은 40-50%의 통합을, 문화부문에는 30%정도의 통합을, 관광부문에는 20%정도의 부분통합을 일구어 낼 수 있지만 중간이나 말기에는 체육부문은 100% 통합으로 완전통합을 일구고, 문화부문에는 80%정도 등으로 진척 및 확대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이 기간 상호협력과 화해와 교류 및 통일 지향적 정책의 수행으로 군사, 외교, 경제 등 초기에 통합을 일구기가 힘든 영역에서도 통합정도를 높여 나가 부분통합을 30-40% 등으로 증진시켜 나가 완전통합의 물적 토대와 공동기반을 계속 확충시켜 나가 민족연방으로 이행할 채비를 갖춘다.

국가통일 단계인 민족연방 단계

셋째 단계인 민족연방 단계로의 진입은 민족연합성연방 단계에서 남북 적대가 거의 해소되고, 북한의 역량이 현저히 증가되어 북한주민의 경제수준이 남한의 60%정도가 되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실질적으로 구현되고, 민족경제공동체의 진전으로 사회경제체제간 상호 통합성이 증가되고, 여타 사회통합 부문의 진전이 상당정도 이행되는 시점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민족연방 단계는 국가통일 단계로 역내 국경이 폐지된 1연방주권국가 2탈국가적 지역자치정부 1준통합복합경제체제로 1국가 1준체제 2탈정부 단계이다. 민족연방 단계는 정치통합이 이뤄진 단계로서, 입법ㆍ사법ㆍ행정ㆍ군사ㆍ외교 등이 대부분 민족연방국가에 의해 행사된다. 따라서 남북의 각 지역자치정부는 독자적 주권이 약화되어 기존의 주권 국가적 성격이 현저히 퇴색하여 강한 탈 국가적 지역정부의 수준에 머물게 된다.

민족연방 단계의 사회경제체제는 민족경제의 진전으로 남북의 상호의존성과 통합성이 증가되어 기존의 고정된 개념인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의 이분법적인 구분이 무색하게 된다. 경제의 기본적 작동기제는 시장경제가 주축이 되겠지만 공적영역에 대한 중앙정부와 지역정부의 소유 및 통제의 폭은 현재 남한의 정도를 능가하여 북한이 지속해 왔던 사회주의적 요소 가운데 사회권에 해당되는 부문이 지속되는 사회경제체제가 되어야 한다. 또한 노동계급의 공동결정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탈(脫)자본주의를 지양해야 한다. 탈자본주의성이나 탈사회주의성의 정도는 상당부문 지역정부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방향에서, 또 남북주민들의 합의를 최대한 이끌어내는 방향에서 자율적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민족통합 단계로 통합을 이룬 통일로 마무리

넷째 단계인 민족통일(합) 단계는 국가통일 단계인 민족연방에서 사회ㆍ민족적 통합이 진척되어 독일과는 달리 북한지역이 내부 식민지화나 2등 지역 및 2등 시민으로 전락되는 불균형관계가 거의 사라지는 단계이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간의 민족연방 단계 동안 남과 북이 상호주체성을 바탕으로 통합의 기초를 쌓는 오랜 기간을 필요로 한다. 통일독일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치통합과 민족통일(합)에는 시간적 격차가 존재한다. 민족의 이질성을 극복하는 민족통합은 정치통합이 이뤄지고 나서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과제가 된다. 민족통합이 거의 이루어진 시점에서 민족연방국가는 민족통일국가로 이행하여 국가통일에서 민족통일(합)로 이행하게 된다. 이 단계의 정치체제는 지역의 이해관계를 잘 반영할 수 있는 지역자치권이 보장되고 다양한 사회세력이 연대나 연합을 통하여 정치권력을 구성하는 내각책임제를 채택한다.

분단 55년 동안 심화된 남북 간 이질성과 적대성으로 인하여 과도적 단계로서의 연방이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재분리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연방체계는 완성된 통일국가의 형태로는 부적합하다. 따라서 민족의 동질성이 회복되고 사회통합이 진척된 민족통일국가 단계에서는 1연방주권국가 2단순지역정부 1통합복합경제체제의 형태를 취하지만 지역정부는 단순한 지역자치 정부의 수준에 머물게 하여야 한다.

아울러 이 단계에서는 권력구조가 대통령중심제에서 내각책임제로 변화될 필요가 있다. 민족연방 단계까지는 강력하면서도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지도력과 정책결정의 효율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족통일국가 지향 등의 문제를 고려할 때, 대통령중심제가 상대적으로 통일과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사회ㆍ민족통합 단계인 민족통일국가 단계에서는 이해관계나 정견의 다양화를 고려할 때, 위계적인 지도력보다는 합의적 지도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의회의 구성체계도 양원제가 단원제보다 상대적으로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연방제와 주한미군 철수는 통일방안의 필수적 구성요소

통일방안의 구성에서 필연적으로 다뤄야 할 영역은 통일과정으로써의 복합국가 유형(연방이나 연합), 통일단계 설정(1단계-4단계), 통일기반 조성방안(남북협력과 교류, 냉전체제 해소, 주한미군 등), 통일국가상(사회경제형태), 평화보장방안(군축이나 평화협정) 등이다.

이 가운데 복합국가유형에서 연방제 문제와 평화보장방안에서 주한미군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는 금기의 영역과 냉전성역으로 자리 잡고 있어 제대로 된 통일방안을 고뇌하고 구상하는데 많은 제약이 있다. 연방제는 무조건 적화통일 방안이고 주한미군 철군 주장은 무조건 북한찬양고무로 규정하는 공안당국과 냉전 수구사대주의 세력의 극단적 맹목성과 냉전성이 지배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엄연한 사실은 현실성과 합리성을 제대로 갖춘 통일방안이 되기 위해서는 연방단계는 필연적이다. 상호 적대적 이념지향과 사회경제체제를 가져 왔던 남과 북이 체제통합과 동질성 회복을 위한 과정에서 완충역할을 위해 이 과도기적 연방단계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동시에 통일충격(통일비용, 통일에 따른 심리적 갈등, 통일적응력, 이해상충 등)의 분산과 점진적 이행을 위해서도 연방단계는 필요하다.

김대중의 통일방안 역시 이 연방단계를, 첫째 반세기 이상 이질화 과정을 걸어왔기 때문에 남북측 체제통합의 충격을 완화하고, 둘째 북측체제의 특수성과 북측주민의 자존을 존중하여 지역자치를 실시할 필요성이 있고, 셋째 연방정부가 북측지역을 상당 기간 ‘특별지원’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필수적이라 보고 있다.

실재 1980년대 후반 이후 제시된 제대로 된 통일방안인 문익환, 김낙중, 김대중 통일방안은 모두 연방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대조적으로 노태우 정권의 공식적 통일방안이었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3단계로 ‘민족공동체(2국가2체제)-- 남북연합(2국가2체제)-- 통일국가(1국가1체제)’를 설정하고 있어 남북연합 단계에서 통일국가 단계로 어떤 경로를 통해 진입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일체의 설명이 없다. 이는 바로 흡수통일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방단계라는 과도기가 없이 1국가1체제의 통일은 그야말로 전쟁통일이거나 흡수통일 외에는 길이 없다.

주한미군 철군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위의 통일경로 조감도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통일 외적 기반조성을 위해서는 냉전구조 해체, 한반도 평화보장체제 구축, 동북아경제평화협력체 진전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주한미군의 전면적 철수와 비동맹 중립화가 관건이다. 주한미군이야말로 한반도 냉전체제의 물적 토대였고, 또한 앞으로 도래할 중국과 미국 사이 동북아신냉전의 군사적 토대이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주범이고 동시에 민족 앞길 가로막기 주범이기 때문이다.

이들 냉전성역에 주눅 들지 말고 과감한 성역 허물기를 통해 보다 진전되고 다양하면서 정교한 통일방안들의 출현을 통일원년에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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