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효원 한총련 의장이 지난 6월14일부터 17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6.15민족통일대축전 참관기를 보내왔다. 행사가 끝난지 3주가 지났지만 역사적인 대회와 생생한 현장을 다시 새겨보는 의미에서 게재한다. - 편집자 주


송효원(제13기 한총련 의장 / 홍익대학교 총학생회장)


외세에 의해 허리가 잘려 60년간 분단의 아픔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던 우리.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할 진데, 부르고 싶어도 마음껏 부르지 못하고, 그리워도 보고 싶어도 마음대로 보지 못하던 우리 “반쪽” 만나러 가는 길...

누구든 가슴이 뛰지 않는 이가 있었을까.
누두든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있었을까.
지금도 온 민족이 함께 외치던 조국통일의 함성이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게 울리고, “다시 만납시다!” “조국통일 합시다!” 손을 흔들며 반기던 그 모습들이 눈앞에 선한데...

▶6월 17일 동명왕릉 앞에서. [사진 - 송효원]
사진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기억을 더듬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 감격의 순간들을 짧은 글로 다 전할 수 있을까 만은, 평생을 잊을 수 없을, <6.15 공동선언 5돌맞이 민족통일 대축전> 회상하며 이 글을 씁니다.

“한총련과 조선학생위원회가 평양에서 만나다니”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 안.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평양의 모습은 어떨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한꺼번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남측 대표단 중에는 유일한 대학생이며, 한총련의 얼굴, 남측 대학생의 얼굴로 간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밀려와 저도 모르게 어느새 입술을 꽉 깨물었습니다.

평양은 채 1시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비행기에서 내리는데 순간 평양 이라는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순간 숨을 크게 쉬었다 내 뱉으며 두 눈으로 “평양”이라는 두 글자를 뚫어져라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

▶남측 대표단은 6월 14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도착해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 6.15남측준비위]
그제서야 평양에 온 것이 실감이 났습니다. 기념촬영을 마치고 공항을 나가니 우리를 환영 나온 북측의 대표단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 곳에서 지난 번 대학생 상봉모임 때 만났던 조선학생위원회 부부장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지난번 “6.15때 다시 뵙겠습니다”하고 약속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그렇게 다시 만나 굳게 손을 잡으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버스에서 6.15북측위원회 청년분과위원회에서 일하는 김용실 언니가 인사를 건네 왔습니다. 버스를 타고 평양 시내로 들어가는 길 평양에 온 기분이 어떠한가라고 묻는 언니에게 “정말 왔네요...정말 왔네요...”라는 말을 하면서 그만 눈물을 줄줄 흘리고 말았습니다.

평양에 와서 마음이 진정이 안 되어 어쩔 줄 모르는 저에게 언니는 웃어 보이며 진정하라며 손을 꼭 잡아 주었습니다. 지난 번 상봉모임 때 주석단에 앉아있는 저를 보았다며 왠지 자신과 비슷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는 언니는, 있는 내내 친언니처럼 따듯하게 배려를 많이 해 주셨습니다.

운동 중에서 배구를 좋아하는 것이며, 안경을 쓰고, 키가 크고 언니 표현에 의하면 둘 다 몸이 좋은 것까지(^^) 정말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평양에 있는 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때엔 늘 언니와 손을 꼭 잡고 있었던 순간이 많았습니다. 처음 만난 사이라 어색할 법도 한데 손을 잡는 일도 함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전혀 어색하거나 어렵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한 핏줄임을 새삼스레 다시 느꼈습니다.

평양 고려호텔에 짐을 풀고 바로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을 참관하였습니다. 함께 돌아보던 조선학생위원회 주성일 부부장님이 “한총련과 조선학생위원회가 평양에서 이렇게 만나다니...” 하면서 웃어 보이셨습니다.

체육, 음악, 수예, 바둑, 컴퓨터 교육 등 다양한 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실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 실력도 뛰어나거니와,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의 시설도 놀라울 만큼 잘 갖추어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북이 얼마나 어린아이들의 교육에 많은 노력과 아낌없는 지원을 하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각각의 방들을 다 돌아본 뒤 만경대 학생 소조원들의 공연도 보았습니다. 공연을 보는 내내 탄성과 함성이 그치질 않았을 만큼 다양하고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는 아이들에게 마지막에는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아이들의 해 맑은 웃음을 보니,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분단의 아픔을 넘겨주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빗속 행진, 평양시민들 환영에 “이게 바로 통일이구나”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에 비가 참 많이 내렸습니다. ‘자주 평화 통일을 열어나가는 민족대행진’을 진행하기 위해 천리마 동상 앞에 남북해외 대표단들이 나란히 섰습니다. 앞이 안보일 정도로 쏟아지는 폭우를 보니 잘 진행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단일기를 앞세우고 행진이 시작되자 저의 걱정은 한순간에 날아갔습니다.

▶6월 14일 저녁 민족통일대행진을 벌인 남측대표단. [사진 - 6.15남측준비위]
개막식이 열리는 김일성종합경기장까지 가는 길에 평양 시민들 약 10만 명이 대표단을 환영하기 위해 나와 비가 오는 가운데에서도 어느 누구 하니 자리를 뜨지 않고 열렬히 대표단을 환영해주는 모습을 보며 정말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꽃술을 흔들기도 하고, 북을 치기도 하고 풍선을 흔들기도 하면서 행진거리에 나와 “반전평화, 민족자주, 통일애국”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습니다. 남측이 조국하면 북에서 통일을 화답하는가 하면, 남녀노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너무나 반가워하는 하며 대표단을 대대적으로 환영해주는 모습을 보며 가슴 속에 환희와 감격이 밀려왔습니다.

또한 비가 오니 남북해외가 모두 같은 비옷을 입고 서 걸으니 남과 북 해외가 따로 없었으며, 평양 시내가 떠나갈 듯 통일의 염원을 외치는 우리의 목소리는 “이게 바로 통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습니다.

팔이 아픈 줄도 모르고 행진 내내 손을 흔들며 평양시민들 한명 한명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기에 바빴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한사람도 빼놓지 않고 반가워 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준비와 기대 속에서 대표단들을 기다렸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평양시민들의 눈빛에서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대행진 내내 길가에 나와 환영한 평양시민들. [사진 - 6.15남측준비위]
걷는 내내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빗물과 눈물, 감동과 환희가 뒤 섞인 행진 길은 그야말로 우리 민족의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었습니다. 분단의 아픔을 씻어내는 길이었습니다. 외세와 반통일 세력의 방해 속에서도 또한 민족통일의 의지를 과시하는 길이었습니다.

김일성종합경기장에 들어가니 경기장을 꽉 메운 5만 여명의 평양시민들이 일제히 일어나 우리를 환영해 주었습니다. 남북해외 대표들의 개막연설이 시작되고 북에서 준비한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각종 춤과 노래가 어울리며 성대하게 행사가 진행되었고 경기장 가운데 공연단이 만들어낸 6.15라는 대형 글씨와 한반도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었으며, 밤하늘을 불들이는 축포가 하늘에서 터지는 것을 보며 모두가 환호했습니다. 혹시 하나라도 놓칠까 감격의 순간순간을 눈과 귀 가슴에 담기 위해보고 또 보았습니다.

개막식이 끝나고 경기장 가운데에서 평양시 청년 학생들의 ‘경축야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야회가 시작되자 조선학생위원회 부부장님이 남측대표단이 앉아있는 곳으로 와서 저를 데리고 운동장 가운데로 가셨습니다. 그 곳에서 평양의 청년 학생들과 남과 북 해외의 청년 학생들과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함께 춤을 추는 동안에 북의 방송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가슴이 벅차올라 저를 비추던 북의 카메라를 향해 “조국통일 합시다!”며 외치기도 했습니다.

▶6월 14일 저녁 6.15통일대축전 개막식이 끝나고 '경축야회'가 열렸다.
[사진 - 6.15남측준비위]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통일합시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비를 맞으면서도 우리를 그토록 반갑게 맞아준 평양 시민들, 김일성종합경기장을 떠나갈듯 함께 회치던 조국통일의 함성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상봉모임에서 “한총련 장하다! 한총련 장하다!” 연호

다음날 4.25 문화회관에서 ‘6.15 공동선언 발표5돌 기념 민족통일대회’가 열리고 민족통일선언이 채택되었습니다. 민족통일선언이 채택되자 회관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박수를 보내며 기뻐했습니다.

행사장 밖에서 진행되고 있는 남북해외 공동 전시회를 돌아보고 나서 청년중앙회관으로 이동하는 길에 아침 내내 보이지 않던 용실 언니를 만났습니다. 연유를 물어보니 청년 학생 상봉행사 준비에 바쁘다면서 “준비 많이 했다. 기대해도 좋다”라며 웃으셨습니다. 언니 말을 들으니 기대도 되고 평양에서 청년 학생들을 만난다는 설레임에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청년중앙회관으로 들어섰습니다.

너무 놀랍게도 2천여 명의 평양시의 청년 학생들이 꽉 자리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규모에 놀라면서 평양시 청년 학생들에게 반가움에 손을 흔들었습니다. 대표단들을 한 명 한 명 소개할 때마다 우렁찬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남측대표단을 소개할 때에는 저를 제일 마지막으로 소개해주시면서, 벅찬 목소리로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는...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 의장 송효원 의장이 오셨습니다!!!”라고 하자 그곳에 있던 청년 학생들이 일제히 일어나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한 목소리로 “한총련 장하다! 한총련 장하다!”를 연호하였습니다.

성대한 환대와 한총련에 대한 사랑에 가슴 벅차올랐습니다. ‘이 자리에 우리 한총련 동지들이 함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한총련 동지들이 이 장면을 본다면 얼마나 기뻐하겠는가’는 생각이 들면서, 한총련 동지들의 반가움과 고마움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오랜 동안 자리에 앉지 못하고 계속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상봉모임에서는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 청년 학생들 연대운동의 평가’ ‘청년 학생 앞장에서 6.15공동선언 이행하자’라는 내용의 연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6월13일-11월17일까지를 ‘6.15공동선언 실천 반전평화 민족자주 공동행동기간’으로 결심하는 선포문 낭독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남측 대표로 나가 북측 청년분과 위원회 위원장님과 해외 미주지역 조선 청년연합회 의장님과 함께 선포문을 낭독했습니다. 한총련의 기세와 청년학생다운 기백을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선포문을 읽는 내내 배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6.15 공동선언 만세!”라고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내외의 방해책동 속에서도 우리민족이 조국통일로 힘차게 전진하고 있는 것도, 아직도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있는 한총련 의장이 이렇게 평양에 와 있는 것도 6.15공동선언의 힘이기에 그 자리에서 외치는 “6.15공동선언 만세”는 가슴에서, 심장에서 우러나와 외치는 함성이었습니다.

“다음에는 300만 대학생들과 함께 오겠습니다”

마지막에는 북측에서 준비한 공연이 있었습니다. 처음 어린이들이 나와 시를 한 목소리로 읊던 공연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탄압 받고 모질고 힘든 시련 속에서도 조국통일을 위해 힘써온 언니 오빠들 너무나 반갑습니다... (중략) ...우리는 묻고 싶습니다. 왜 효순이 미선이 언니가 외세에 의해 장갑차에 깔려 죽어야 하는지, 왜 60년 지난 지금도 우리가 만나지 못하고 통일되지 못하고 있는가 묻고 싶습니다... (중략) ...앞으로 통일된 조국을 위해 더욱 힘차게 싸워 주세요”라며 호소하는 것을 보며, 한총련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아, ‘통일조국을 안아오는 길에 한총련이 더 열심히 투쟁해야 한다. 이곳에서 느낀 지금 느낀 감동과 결심을 반드시 한총련 전체의 결심과 감동이 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 공연에 화답하듯 그 어느 때보다 힘찬 박수를 보냈습니다.

북측 공연 뒤에는 개막식에서 했던 것처럼 무대 앞에서 모두가 한데 어울려 춤을 추었습니다. 또한 지난번 금강산 상봉모임에서 만났던 김형직사범대학 학생위원장님과 김책공업대학 학생위원장님과 반가운 만남이 있기도 했습니다.

북녘의 청년 학생들이 너도 나도 와서 한총련 의장인 저와 너도 나도 악수하고 싶어하던 모습, 한총련이 더욱 열심히 투쟁해 달라고 당부하던 모습, 저를 바라보던 반가움과 기대에 찬 북의 청년 학생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상봉모임을 마치는 길에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눈물이 참 많이도 쏟아졌습니다. 한 명 한 명 만난 악수하고 이야기 나누고, 너무나 보고 싶었다고 만나서 너무나 반갑다고, 우리 청년학생들이 조국통일에 더욱 앞장서자라는 결심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행사장을 나오는 마지막까지 저를 지켜보며 모두가 손을 흔들며 다시 만나자고 외쳤습니다.

“다시 오겠습니다. 다음에는 저 혼자가 아니라 300만 대학생들과 함께 오겠습니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상봉모임 후에는 춘향전 관람을 하였으며 저녁에는 인민문화 궁전에서 기념연회가 있었습니다. 연회 때 모두가 웃음을 짓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자리 배치에 작은 착오가 있었는지 북측 청년 대표 중에 조선학생위원회 위원장님만 다른 곳에 배치가 되어있었습니다.

▶6월 15일 상봉모임 후 기념연회. [사진 - 송효원]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으신 조선학생위원장님과 한자리에 모여 있는 저와 범청학련 북측본부 의장님이 어찌 하지는 못하고 서로 안타까운 표정으로 있다가 결국 후에는 저희 자리에 있던 분에게 양해를 구해서 자리를 바꿔 앉았습니다. 그리고 연회가 중반쯤 지나서는 원래 배치된 의자 수보다 더 많은 수의 남북해외 청년학생들이 모두 모여 앉아 화기애애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지난번 금강산 상봉모임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니 다시 그때의 감동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한총련에서 진행한 5월 한마당과 자주통일 총진군 대회를 다들 알고 계셨습니다. 한총련이 어떤 투쟁을 하는가를 비롯한 남측의 소식이 매일 신문에 나온다면서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힘이 많이 났습니다.

‘평양뿐 아니라 서울, 전국 어디서든 사진 찍을 수 있기를’

다음날 고 김일성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 고향집과 개선문, 만수대창작사 등의 시내를 참관했습니다. 시내를 걸어 다니며 평양시민들의 활기찬 모습도 가까이서 직접 보았습니다. 참 관을 하다 보니 문득 행사 기간 내내 나눌 이야기가 많아 얘기 하느라고, 평양시의 풍경을 눈에 담기 바빠 용실 언니와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언니에게 “언니 우리 사진 꼭 찍어요” 라고 이야기하자 이번에는 찍지 말고,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다음에 다시 만나면 찍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하셨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가슴이 찡했습니다. 그래도 평양에 와서 친언니처럼 챙겨주었던 언니의 모습을 한 장도 담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서 딱 한 장만 찍자고 했습니다.

덕분에 지금 저에게는 언니 사진이 한 장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음에 만날 때는 평양 뿐 아니라 서울, 아니 전국 어느 곳에서든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통일 조국이 멀지 않았음을 통일대축전 기간을 통해 직접 몸으로, 가슴으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차가 시내를 돌아다니는 동안 평양시민들은 길을 가다가도, 정류장에 서 있다가도 차를 보며, 너도 나도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었습니다. 때문에 저도 차 안에서 손을 흔들기에 바빴습니다. 길 곳곳에 있는 단일기와 민족통일대축전에 온 대표단을 환영하는 글귀와 포스터들이 보였습니다. 북이 6.15행사를 명실공히 민족통일의 축제로 빛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엿볼 수 있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점심 식사는 옥류관에서 유명한 평양냉면을 먹었습니다. 제가 먹는 냉면을 식초와 겨자를 뿌려먹는 방법을 봉사원(그곳에서는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봉사원이라고 부른답니다) 분이 직접 와서 해 주시는 행운도 있었습니다.

"한총련 의장이 옥류관 냉면 먹는 장면 꼭 찍어야 한다"

냉면을 다 비비고 먹으려고 하는데 조선학생위원회 주성일 부부장님이 "한총련 의장이 옥류관 냉면을 먹는 장면을 꼭 찍어야 한다"며 다른 사람의 아직 비비지 않은 냉면을 가져다가 놓으시고, 자신자리에 있던 아직 손대지 않은 김치까지 가져다가 제 앞에 놓으시며 사진 찍으라고 장난스럽게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6월 16일 평양 옥류관에서 냉면 두그릇을 먹었다. [사진 - 송효원]
덕분에 자리에 이던 사람들 모두가 연출된 냉면 먹는 장면을 사진 찍기도 하며 즐거운 식사시간을 가졌습니다. 냉면이 어찌나 맛이 있던지 그 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두 그릇이나 먹었습니다.

오후에는 체육유희 경기와 폐막식이 진행되는 류경정주영체육관으로 향했습니다. 역시 체육관을 꽉 메운 평양시민들과 응원단의 환호 속에 남과 북, 해외 대표단들이 섞여서 우리 팀과 하나 팀으로 나누어 배구경기를 비롯한 체육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저도 선수로 출전해 공들고 달리기와 줄다리기와 경기에 참가했습니다. 두 번 다 이겨 예쁜 필통과 옥돼지를 상품으로 받기도 했습니다.

함께 땀 흘리며 뛰는 속에서 이긴 팀도 진 팀도 너도 나도 즐거운 체육경기였습니다. 특히 경기 내 내 열띤 응원을 펼쳐준 응원단들은 참으로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폐막식을 갖고 봉화예술극장으로 이동해 남측에서 준비한 가극 ‘금강’ 공연 관람을 하였습니다.

저녁에는 마지막 날의 아쉬움을 달래는 연회가 있었습니다. 남측 대표단들 모두 민족통일 대축전 기간 내내 북측이 보여준 정성스러운 준비와 환대에 대한 감격을 나누며 상기된 얼굴들로 축배를 들었으며, 여기저기에서 “통일을 위하여!” “조국통일 만세!” 등의 건배사로 잔을 나누는 모습들이었습니다.

남북해외 공동 집회를 할 때 언제나 문서로 글귀로만 만나던 남북해외 청년학생들이 직접 한 자리에 앉아서 어떻게 조국통일 운동을 벌이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이야기 나누는 감회가 참 새로웠습니다.

남북해외 청년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팔뚝을 들며 “조국통일을 통일하자”고 외쳤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조국통일에 청년 학생들이 앞장에 서겠다는 의지도 함께 다졌습니다. 3일간 느낀 전 민족의 통일의 의지와 감격을 나누며 8.15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아쉬움 밤이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호텔로 돌아와 잠을 청하는데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3박 4일 간의 일정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는 아쉬움과 함께 돌아가서 이 감동을 사람들에게 온전히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지난 일정을 정리하고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는 하나입니다”

마지막 날, 고구려의 기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동명왕릉과 웅장한 주체사상탑을 돌아보고는 공항으로 가기 위해 평양 고려호텔을 나왔습니다. 호텔의 직원들이 환한 얼굴로 “다시 만납시다”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작별의 악수를 하며 잡았던 손이 참 따뜻하던 기억이 납니다.

공항에서 북측 대표단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비행기 시간이 임박할 때 쯤 조선학생위원회 부부장님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 한참을 아쉬움에 바라보았습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눈으로, 마음으로 아쉬움과 조국통일에 대한 결심을 그렇게 나누고 있었습니다.

“다시 오겠습니다!” 눈물을 참으며 굳은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후 더 힘차게 통일을 위해 힘차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했습니다.

6.15공동선언 5돌맞이 민족통일 대축전장에서 느낀 ‘우리민족끼리’의 힘과 평화, 통일, 민족대단합의 의지를 서울에 돌아온 지금, 통일의 열기로 뜨거운 한반도를 보며 저는 더욱더 가슴 뜨겁게 느끼고 있습니다.

자주통일의 길을 새로운 단계로 올려 세운 ‘민족통일선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만남, 연이은 남북장관급회담까지... 통일을 가로 막아나서는 외세의 방해 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오로지 ‘우리 민족 자체의 힘’으로 자주통일 원년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조국은 하나입니다.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는 하나입니다. 지금이라도 달려가면 볼 수 있을 것 같은,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 있는 우리 민족을 만나지 못한 채 지난 60년간 분단과 외세의 간섭으로 겪어야 했던 아픔과 치욕의 역사를 이제는 뒤로 합시다.

광복의 8.15를 통일의 8.15로! “자주통일조국”을 향해 전진, 또 전진합시다! 전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열기로 들끓을 그 날을 확신하면서, 이만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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