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석(군사평론가, ‘반갑다 군대야’지은이, hiarmy3@hanmail.net)


“짜식들 식민지 군대에서 고생하는구나”

“총기난사 사건을 놓고 신세대의 군대문화 부적응을 주요한 원인으로 제기한다."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우리 군대문화 전반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50년 동안 이어온 병영문화를 개선할 때가 됐다는 강력한 경고라고 볼 수 있다."

최전방 경계초소 총기난사 사건을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참 말이 많다. 얼핏 보기에는 맞는 것 같다. 자세히 들여다 보자.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눈물나게 미안하지만 다음에 또 제2의 총기난사 사건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다음에 또 젊은 꽃들이 피다 만다.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우리는 2005년 1월 10일, 동양최대 신병훈련소내 똥물사건이 전시도 아닌 평시에 지휘관인 중대장에 의해 자행되었던 전력을 알고 있다. 이때도 여러 전문가들이 군대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저도 덩달아 핏대를 세웠다. 전시상태의 이라크 아부 그레이브 교도소에서 미군이 자행한 이라크 포로 학대행위에 버금간다고 핏대를 올렸다. 육군교도소 똥물사건도 마찬가지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뒤로 하고 일주일 뒤 흐지부지되었다. 숱한 대책을 쏟아내고 뒤로 물러났다. 2004년 하반기 군인사 파동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총기난사 사건도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뒤로하고, 일주일 뒤에 흐지부지될 것이기 때문에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보란 듯이 24일, 정부는 공공기관 176곳 지방 이전 계획을 확정해 발표했다. 이 기사가 신문과 방송에 도배를 했다. 매사가 이렇다. 6월 14일, 6.15 평양 방문단 출발로 통일 분위기가 고조될 때, 이날 정확하게 김우중이 국내공항으로 들어왔다. 김우중이 기사를 메웠다.

글을 쓰고 싶지 않은 더 큰 문제는 군을 바로세우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행동이 별로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번만은 진짜로 쓰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도 저의 글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기우다. 군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분단의 군대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필자는 일찌기 1991년, 한국군의 뼈대를 바꾸어 군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민주적인 시각으로, 철저하게 사병의 눈으로, 인권의 눈으로 한국군을 전면 해부한「청년과 군대」에서 지적한 바 있다. 당연히 불법간행물이어서 국내에서 출판이 되지 않고 일본어로 다음 해 출판되었다. 글을 쓸 때부터, 아니 군에 관심을 가질 때부터 군복 입은 사람이 그렇게 친근해 보일 수가 없었다. 전철에서 휴가 나온 사병은 전부 동생 같았다. 속으로 ‘짜식들 식민지 군대에서 고생하는구나’ 하면서.

2000년 6월,「청년과 군대」를 젊은이들의 수준에 맞게 그야 말로 보기 좋게「반갑다 군대야」로 내용이며, 제목이며 좀 바꿨다. 나도 미쳤지 ‘군대가 반갑다’니. 자식을 군에서 잃은 유가족들이 표지만 보면 이런 미친놈이 있나 할 법하다. 저는 미치도록 군인들을 사랑한 것 밖에 없는데... 글을 쓰면서 얼마나 울었는데... 21세기에 21살을 셀 수 없이 잃은 슬픔을 어떻게 책안에서 다 풀어 낼 수 있는가. 책을 쓰며 얼마나 눈물이 부족했는데...

책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한국군의 대안은, 즉 군복 입은 젊은이들을 살리기 위한 대안은 이 책안에 다 있다는 먹물다운 자만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 국방성과 국방부가 일찌감치 책을 좀 참고했으면 미선이 효순이 사건만큼은, 군 인사 파동만큼은, 국적포기 만큼은, 똥물 사건만큼은, 전방 총기난사 사건만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먹물같은 책이야기는 그만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총기난사 사건을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살펴보자. 근본적인 수술을 위해

어찌 이런 군대에 ‘적응’하란 말인가

‘신세대의 군대문화 부적응’ ‘군대문화 근본적으로 바꿔야’ ‘병영문화를 개선할 때’....

좋은 말이다. 맞는 것 같다. 하지만 한마디만 하자. 이건 우리군대를 너무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먼저 신세대의 군대문화 부적응은 너무나 당연하다. 해방후 민족반역자의 대피호로 출발한 한국군, 미국식 무기 체계와 일본식 내무반, 한국전쟁과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 학살의 ‘전통’을 가진 군대. 여기에다 한국군은 한 나라의 주권이자 군의 생명인 군작전지휘권을 일개 별 네 개 단 미국군 장군에게 휘둘리는 세계에서 유일한 군대다.

군 인권의 문제는 어떤가. 제5공화국 8년 동안 대한민국 군대에서 군기사고와 안전사고로 자그마치 6천 3백 93명이 죽었다. 3개 연대가 훨씬 넘는 병력을 전시가 아닌 평시에 군에서 각종 사고와 군의문사로 잃었다. 지금이 당시보다 나아진 게 얼마나 있는지 국방부 스스로 수치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어찌 이런 군대에 ‘적응’하란 말인가.

그것도 전방 155마일과 동, 서해안에서 100m 간격으로 경계근무 서며 밤낮으로 동족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이런 잡탕의 한국군에 적응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미친 짓이다. 감히 ‘적응’이란 이야기를 꺼내지도 마라. 군복무자 중 5%가 부적응 관심사병이라고. 이건 또 무슨 숫자의 장난인가. 잘 적응하고 있다는 95%가 오히려 염려가 된다. 제발 쓸데없는 숫자 놀음을 당장 그만두라.

군 당국에 묻고 싶다. 현대전에서 적을 막는다며 전방 155마일과 동서해안에서 100m 간격으로 경계근무 서는 무식한 국방전략, 한 줄로 ‘주~욱’ 늘어세우는 전근대적인 ‘선(線)’ 방어전략에 적응하라는 게 진정한 ‘안보와 국방’인지 묻고 싶다. 전방 상공의 군 정찰위성과 최첨단 정찰기, 대북 도청기, 대북 레이다, 무인카메라, 값비싼 야간 장비 등은 무슨 호구인가. 21세기에도 21살의 청년을 동네 지키라며 전방에 ‘주~욱’ 늘어 뜨려 세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혹자는 원칙적인 대안만 늘어놓지 말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라고 한다. 그러면 언제부터 구조적으로 접근해 근본적인 수술을 할 것인가. 제2의 군 인사 파동, 제2의 국적포기, 제2의 똥물 사건, 제2의 총기난사 사건을 또 다시 겪어야 구조적으로 접근할 것인가. 그때가 되어서야 근본적인 수술을 할 것인가. 정신 똑바로 차리자. 전방에서 ‘적응, 부적응’을 따지기 전에 전방의 방어 전략을 ‘선’ 방어전략에서 대폭적인 병력감축을 통해 ‘점(點)’ 방어전략으로 바꾸는 게 남북교류시대에도 일맥상통하다.

국방부의 ‘부적응’이 더욱 큰 병

둘째, ‘군대문화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지만 군대문화는 당분간 바뀔 조짐이 없기 때문에 더 근본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라고 요구하고 싶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냥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은 아예 그만두라는 거다. ‘병영문화를 개선할 때’라고 하지만 고작 나온다는 대안이 전방의 내무반을 어떻게 좀 고쳐보자, 전방근무를 좀 개선한다는 정도에서 맴돈다. 참 한심하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후예, ‘현역’ ‘예비역’들이 여전히 군의 지휘부와 장성, 우리 사회 곳곳을 차지하고 있는 위계질서 속에서 군대문화, 병영문화가 사병들 사이에서 바뀌면 얼마나 바뀌겠는가. 어떻게 이번 총기사건이 군대문화 탓인가. 일제 식민지 시절에 식민지 문화통치 좀 바꿔서 나아진 게 있냐 말이다. 식민지 문화는 민족이 일제에서 제대로 벗어나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55년 전 빼앗긴 군작전지휘권을 찾을 생각도 않는 군이 오히려 정상이 아닌 것이다. 55년은 너무나 길었다. 더 이상 몇 년을 기다릴 건가. 55년간의 불감증, 이건 시급히 치료해야 할 큰 병이다.

국방부가 각국이 치열하게 군사주권을 지키고, 국방이익을 찾는 세계적인 추세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부적응’ 상태가 더욱 큰 병이다. 국방부에만 맡겨두어선 안된다. 군사주권을 찾는 데는 국민들의 인내가 필요하지 않다. 시간은 군사문제, 군대문제, 병영문제, 군 개혁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데 있다. 인적, 제도적으로 군내 과거청산을 서두를 때이다.

여전히 국방부 마크와 육군훈련소 마크에는 별만 있다. 65만 사병은 없다. 국방부, 육군 본부 어디에도 전.후방의 사병들에 대한 인권 보호를 책임있게 맡고 있는 담당자 한 사람 없다. 국방부는 한 해 수십조 원을 먹어치우는 돈먹는 ‘공룡’하마다. 현대 군사전략상 사병의 생명을 지키는 인권보장이 없는 공룡은 낭비다. 동족을 적으로 규정한 채 65만 사병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라는 훈련을 강요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65만 사병은 너무 많다. 남북교류시대, 6.15시대에 10분의 1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이제 진짜배기 군축을 시작할 때다. 당장 군 밥그릇을 줄여라. 천문학적인 예산과 무기, 병력을 줄이면 중병걸린 공룡을 살릴 수 있다. 전방의 젊은이들을 살릴 수 있다. 21세기에 21살의 청년들을 살릴 수 있다.

이제 진짜배기 군축을 시작할 때다

국방부는 올해를 국방개혁의 원년으로 삼고 최근 다양한 개혁방안을 내놓고 있다. 이번 총기사건에도 동맥경화 걸린 공룡인 국방부, 합참, 육군 본부, 기무사는 기무 수사 보고체계에서 허점투성이임을 보여주었다. ‘역시나’가 맞다. 하지만 공룡이 자기 머리를 깎을 수 있는가. 총기사건이 우리들의 뇌리 속에서 희미해지기 전에 군 문제, 군 개혁에 대한 총체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 군 문제, 군 개혁의 주체는 자식을 군에 둔 부모와 사병, 군의문사 유가족, 평화통일.시민단체, 군 인권 향상에 관심있는 예비역들인 평화통일 재향군인들이다.

비무장지대 분단의 희생양 총기사건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고개숙여 조의를 표하며 부상당한 사병들의 조속한 쾌유를 바란다.

* 군사평론가 김삼석은 현재 수원지역 최초의 시민주 신문인 ‘수원시민신문’(www.urisuwon.com)대표로 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