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재 (평통사 미군문제팀장)


유엔사령부가 지난 10-13일, ‘유엔사 특수전 분야 컨퍼런스(United Nations Command Special Operation Force Component Conference)'라는 제목의 회의를 열어 최근 한.미간 이견으로 불거진 북한 급변사태 대비 ’작전계획 5029‘의 시행조건과 시행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등을 검토했다고 한다.

이 회의에서는 ‘북한의 내부사태로 인해 대량살상무기가 북한의 다른 세력에 의해 장악될 경우 한.미 특수전부대를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북한 난민을 북한군이 무력으로 통제할 경우 인도적 차원에서 유엔사가 특전부대를 투입해 보호하는 방법’도 논의했다고 한다. 이는 이 회의가 ‘작전계획 5029’에 포함된 내용 즉, △쿠데타 등에 의한 북한 내전 상황 시 국경 봉쇄, △북한 내 한국인 인질 사태 시 구출작전, △대규모 주민탈북사태 시 군부대 임시 수용 후 정부 인계, △ 핵.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반란군 탈취 시 특수부대 투입, △ 대규모 자연재해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군사작전 등에 대한 구체적 실현방안을 논의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부안팎의 논란과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한미양국 군관계자와 미국의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4일간이나 집중적인 논의를 벌였다는 것은 작전계획 5029가 의연히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한미양국이 그 내용을 실현가능한 방향으로 더욱 구체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작전계획 5029, 한미상호방위조약 위반

이 계획은 국가안정보장회의(NSC) 등이 지적한 한반도 평화에 대한 위협과 우리 주권 침해의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이 침략하지 않는 조건에서 북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행 한미상호방위조약에도 명백히 위배되는 것이다. 즉,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이 있을 때만 발동되도록 되어 있는 발동요건(제2조)과 대한민국에 대한 방어에 한정되어있는 지리적 적용범위(제3조) 등을 위반하는 것이다.

이 계획은 또한, 북한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의 내부 사태를 빌미로 한 명백한 내정간섭이요, 침략으로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미 합참 용어사전, ‘개념계획은 축약된 작전계획’

NSC는 자신들이 ‘작전계획 5029’의 문제점을 파악하여 이를 중단시키고 ‘개념계획’으로 바꾸기로 미국에 제안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설명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미 합참의 군사용어사전에 따르면 개념계획도 ‘축약된 작전계획’일 뿐만 아니라, 미 군사전략의 변화에 따라 개념계획과 작전계획의 차이가 없어지는 추세라는 점에서 애초 작전계획을 개념계획으로 변경시킨다고 해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만난 미 국방부 관리는 작전계획과 개념계획의 “유일한 차이는 계획의 구체화 수준”이라고 밝힘으로써 마치 두 개념 사이에 본질적 차이가 있는 것처럼 설명해온 NSC의 주장이 사실과 다름을 확인해 주고 있다. 또한 이 관리는 4월 말 워싱턴을 방문한 이종석 NSC사무차장에게도 이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NSC 관계자는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뒤늦게 이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한 것도 문제지만, 그 이후의 대응에서도 작전계획과 개념계획에 본질상 차이가 없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개념계획 유지’를 대안으로 주장했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면서도 이런 주장을 했다면 대통령과 국민을 기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엔사 끌어들이는 것은 북 침략 합법화 저의

유엔사령부가 이 회의를 개최한 것도 주목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미국이 이 문제에 유엔사를 끌어들인 것은 한미연합사령부가 북한의 내부사태에 개입할 경우 발생하게 될 법적인 문제를 회피하여 이 계획을 현실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전협정 유지’ 기능조차 자체 힘으로 수행할 수 없어 유명무실할 뿐만 아니라 유엔 총회에서 해체가 결의되기도 했던 유엔사를 부활시키려는 것은 북한에 대한 불법적인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합법화하기 위해 미군 얼굴에 유엔사 가면을 뒤집어씌우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더욱이 유엔사의 이름으로 북한에 대한 무력개입을 하는 것은 ‘정전협정 이행.준수’라는 유엔사의 의무와 권한 범위를 뛰어넘는 불법적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부에서 ‘국제법상으로 유엔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임무를 수행중인 것으로 되어 있어 유사시 '다국적군'이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추가적인 유엔안보리 결의나 권고, 결정 등이 필요 없고, 유엔사가 유엔군의 이름으로 북한 영역에 진입하여 이른바 '개입통치'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미국의 불법적 기도를 정당화해주는 위험천만한 주장이다.

이 계획은 앞으로 어떻게 작동하게 될까?
미국은 먼저 북한인권법, 북한자유법안 등을 통하여 북한 내부의 동요와 대규모 탈북을 유도하고 조장할 것이다. 또한 ‘작전계획 8022’ 등 공격성이 한층 강화된 작전계획의 작성 및 그에 따른 전쟁연습과 대량살상무기방지구상(PSI) 등을 통하여 북을 더욱 옥죌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북에 대한 구체적인 핵공격 위협을 가하거나 요인 암살 또는 외과수술식 공격을 가함으로써 내부의 극심한 혼란을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나라당 박진의원도 북한에 대한 초정밀 공격을 목표로 한 ‘작전계획 5026’이 ‘작전계획 5029’와 연계될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북한 급변사태를 유도하고 조장하여 작전계획 5029를 발동할 수 있는 조건과 빌미를 만들어 북한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하려 할 것이다.

전면전 계획보다 실행가능성 훨씬 높아

이 계획의 위험성은 이번 회의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전면전 계획보다 실행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데 있다. ‘대규모 자연재해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군사작전’ 등이 이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나 작전의 합법성을 보장받기 위해 한미연합사 대신 유엔사를 동원하는 것도 이 계획이 실제 발동될 위험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한미양국은 마치 우리 국민은 관여할 필요 없다는 듯이 이 계획의 구체화를 위해 자신들의 일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토록 위험천만하고 부당한 일이 이렇듯 일방적으로 처리되어도 되는 것인가?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때다.
우리 민족의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주권을 침해하는 이런 계획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명백히 위반하는 이런 계획을 강요하는 주한미군의 존재를 언제까지 받들어야 하는지, 이런 위험천만한 계획을 미 당국자들과 태연히 논의하는 우리의 외교안보 관계자들을 그대로 두고 보아야 하는지를.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에 따라 행동해야 할 때다. 우리 운명은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 결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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