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발해와 당시 중국 국가가 어떤 관계였냐 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발해를 속말말갈인이 세운 나라로서 당나라에 조공을 바치던 예속국이었으며, 소수 민족의 자치 정권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속말말갈인이란 고대 중국 동북 지방 일대에 살고 있던 소수 민족으로서 방목 생활을 하던 민족이라고 합니다.

이 주장은 발해가 대흥, 건흥 같은 자기만의 연호를 썼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습니다. 자기만의 연호를 썼다는 것은 발해가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대등한 관계를 가지려 했음을 보여 줍니다. 또 발해의 3대 왕인 문왕의 넷째 딸인 정효공주의 묘비문에는 아버지 문왕을 `황상(皇上)`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발해가 황제국임을 내세우는 것으로서 당나라의 한 지방 정권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터무니없음을 보여 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마지막으로 발해의 구성원인 말갈족에 대한 이해입니다. 말할 나위 없이 중국쪽은 말갈족을 고구려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주장합니다. 그런데 발해의 구성원인 말갈족이 옛 고구려 주민의 한 부분임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이 지금의 우리 민족과 어떠한 관계에 있느냐 하는 것은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최근에 와서는 그들이 발해가 멸망한 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우리 민족으로 흡수된 사람들이라고 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옳으냐 그르냐 결론을 내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물론 발해인과 말갈족이 엄격히 구분되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앞으로의 연구 성과에 따라 밝혀질 문제입니다.

이와 같은 논쟁들을 살펴본다면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이고, 우리 민족사의 한 부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명백한 사실을 두고도 고려는 발해사를 펴내지 않은 것일까요? 그것은 고려의 지배층이 민족 자주의 역사관을 확고하게 지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후 조선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재야의 실학자들에 의해 겨우 발해사가 부분적으로나마 복구되었습니다.

이에 반해서 주변 나라들의 발해에 대한 집착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중국이 발해를 자기 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지금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 자기네 영토에 대해서는 어떤 민족이 과거에 살았든지 상관하지 않고 아주 먼 옛날부터 자기 나라에 예속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고조선이나 고구려도 중국에 예속된 일부라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명백한 역사의 사실 때문에 주장하기 어려우므로 얼마간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발해가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보았듯이 우리 민족의 국가였던 고려의 지배층이 그 빌미를 제공한 것입니다.

중국의 이러한 주장은 뿌리깊은 그들의 `대국주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중국은 이 점에 대해서는 매우 완강합니다. 발해 문물관리소 소장이던 중국 학자가 발해를 고구려 후예가 세운 나라라고 했다가 비판을 받고 좌천된 일까지 있었습니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발해의 유적지가 현재 중국의 영토 안에 있다는 점을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데 최대한 활용합니다. 남북한의 학자들이 발해의 유적을 연구하려고 방문하면 여러 가지로 간섭을 합니다. 또 앞에서 본 `신당서`의 기록을 확실한 사실인 듯이 팜플렛으로 만들어 자기 나라나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만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와 일본도 발해의 역사를 자기 중심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발해가 중국의 일부였다는 주장을 부정하고 발해의 독립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러시아는 발해가 독자적인 국가였다가 러시아제국으로 합류한 하나의 흐름이라고 주장합니다.

일본은 발해가 독자적인 국가로서 일본과 빈번하게 교섭했고, 일본이 황제 국가라면 발해는 이보다 한 단계 낮은 국가로서 일본과 교섭했다고 주장합니다. 일본은 만주 침략과 함께 발해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했는데, 만주 지방의 국가들이 일본에 조공을 바친 나라라는 것을 증명해 일본의 만주 침략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역사는 현대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고려와 조선의 지배층은 발해의 역사를 밝히는 것이 자신들의 정권 유지에 부담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소홀히 하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것입니다. 그에 반해서 민족 자주의 관점에 섰던 실학자들은 그것이 민족 자주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발해의 역사를 복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현대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내년에 고등학교에 들어갈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7차 교육 과정에서 근대사가 선택 과목으로 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하자면 일본과 관계되는 부담스러운 대목을 고등학교 교육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담스럽다는 것은 물론 정권에 부담스럽다는 것이지요. 민중들이야 부담스러울 것이 무엇 있겠습니까?

일본은 역사를 왜곡까지 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있는 역사까지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정말로 한심한 일입니다. 우리가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의 학생들은 무엇이 왜곡되었는지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너무나 명확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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