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원(한국민권연구소 연구위원)


북한 외무성은 3월 31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6자회담이 ‘군축회담’이 되어야 한다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하였다. ‘군축회담’이 되어야 하는 근거로는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었음을 들었으며 참가국들이 ‘평등한 자세’에서 문제를 푸는 군축회담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북한의 이같은 ‘군축회담’ 제안은 2월 10일 핵보유 및 6자회담 무기한 연기 선언, ‘조건과 명분’을 만들면 6자회담에 참가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외무성 비망록 발표(3월2일) 등으로 이어졌던 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미 공세의 연장선상에 있다. 즉, 핵보유 선언 이후의 추가적 조치가 바로 군축회담 제안인 것이다. 군축회담 제안의 의의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기본적인 대결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미대결의 기본 구조 : 군사적 대결과 정치외교적 대결

2월 10일 선언 이후 미국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한 적대 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하지는 않은 채, 그렇다고 북핵문제를 해결하기위한 뾰족한 대안을 마련하지도 못한 채 ‘6자회담의 무조건 복귀’를 외쳐왔다. 물론 이와 함께 일본과의 동맹 강화를 위한 행보 및 한국에서의 대북 전쟁훈련인 RSOI훈련 등을 전개하며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한 역시 이에 대해 ‘미국이 긴장된 정세에서 또 다시 이처럼 전쟁훈련을 벌이고 있는 조건에서 핵무기고를 늘이는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며 맞서왔다.

이처럼 한반도에서 그 어떤 법적, 제도적 장치에 의한 평화유지가 아니라, 북한과 미국 사이의 ‘힘의 균형’에 의한 아슬아슬한 긴장상태의 유지, 이것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반도에서 북한과 미국사이의 대결의 기본 축 가운데 하나인 군사적 대치 상황의 핵심이다. 이런 대결 과정에서 전쟁위기 특히 1990년대 이후 전쟁위기는, 언제나 미국이 먼저 북한에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고 이것을 대화로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또한 미국이 먼저 대화 테이블을 뒤집으면서 만들어졌다. 94년의 경험이 그러하고, 또한 2004년까지 세 차례 지속되었던 6자회담 과정, 특히 3차 6자회담이 그러했다.

한편, 미국은 대화가 이루어지는 뒤편에서 북한에 대한 전쟁준비를 다그치다 못해 노골적으로 핵선제공격 독트린까지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에 북한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핵공격 위협에 맞설 수 있는 자위적 무장력, 특히 핵무장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고 그 선언을 올 2월 10일 발표하였다. 이제 북한은 미국과의 군사적 대치 상황을 ‘핵 대 핵’ 대결 상황으로 만든 것이다.

또 다른 하나의 대결축은 정치외교적 대결이다. 2002년 이후 미국과 북한의 정치외교적 대결은 주되게 6자회담 공간에서 이루어져 왔다. 북한은 지난 4년간 세 차례나 6자회담에 참가하는 ‘인내성’을 발휘했으나 미국은 끝내 대등한 입장에서 동시행동으로 문제를 풀 성의를 보이기는커녕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선핵포기’요구를 했으며 북한이 요구하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인 ‘적대관계 청산’에는 귀를 닫아버렸다.

물론 3차 6자회담에서는 ‘대담한 접근’ 운운하며 북한이 ‘핵포기’를 할 경우 경제지원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그나마도 미국 스스로 가능성을 차단해버렸다. 이처럼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적대적 입장을 고수한 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의지가 없음을 드러내자 북한은 부시 2기 행정부 출범과정에서 또다시 드러난 대북 적대정책 고수 의사를 확인한 후 핵무기 보유 선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북한은 군사적 대치상황을 대등한 상황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대북 적대적 입장 및 일방적인 핵 포기 요구 등 미국이 정치외교적 대화에 임하는 불공정하고 적대적인 자세를 교정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핵무장을 선택한 것이다.

추가적 조치로서 군축회담 제안의 배경

2004년까지의 6자회담의 공전 및 미국의 대북 전쟁준비의 완료 등의 상황에서 북한은 주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군사적 조치로서 2월 10일 핵무기 보유선언 및 6자회담 불참선언을 했다. 이에 미국은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무조건 6자회담 복귀’만을 주장하는 한편, 미일동맹의 강화, 중국을 통한 압박 시도를 하였으나 이 역시 별반 성과가 없었다. 다만 ‘무작정 기다리지 않겠다’, ‘국제기구를 통한 다른 해법을 시도할 수도 있다’는 등의 협박성 발언을 할 수 있었을 뿐이다.

이번 군축회담 제안은 별다른 해법을 마련하지 못한 채 적대적 입장만을 고수하며 전쟁훈련, 미일동맹 강화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압박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2.10 성명 이후 북한의 첫 ‘추가적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권연구소에서는 북한이 2.10성명에서 ‘앞으로 4년을 또 허비할 수 없다’고 언급한 부분에 주목하여 미국에 대해 더욱 주동적이고 공세적인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예상하며 그 수단 가운데 하나로 ‘미사일 발사 실험’ 등을 언급한 바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미사일 발사 실험과 같은 군사적 ‘추가 조치’가 아닌 정치외교적 ‘추가 조치’로서 ‘군축회담’을 제안한 것이다.

이처럼 북한이 군사적 조치가 아닌 정치외교적 조치를 취한 배경 다음과 같이 분석될 수 있다.

첫째, 기본적으로 북한은 한반도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즉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6자회담이건 그 어떤 다른 이름의 회담이건 참가국 숫자가 몇이건 간에 북미 적대 관계 청산 및 그 핵심인 미국의 핵위협 제거를 기본으로 한반도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는 협상, 즉 평화적 방법으로의 해결을 원한다는 것이다.

둘째, 앞서 언급했듯이 북한의 핵보유 선언 및 6자회담 불참 선언 이후 현재 미국은 처지가 매우 궁색해져 있는 상황이다. 이런 조건에서 이번 군축회담 제안은, 새로운 회담 의제를 제시함으로써 미국이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것을 미리 차단하고, 미국을 협상 자리로 불러내기 위한 주동적인 조치임과 동시에 다시금 북한의 최종 목표와 원칙적 입장 및 해결 방도를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만약 미국이 이마저도 거부하고 유엔 안보리 상정 및 일본과 결탁한 군사적 봉쇄, 또는 경제제재를 시도한다면 늘 언급해왔듯이 그것을 ‘선전포고’로 간주할 것이고 그 때가 되면 불가피하게 ‘군사적 추가조치’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왜 군축회담인가?

2003년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난무하던 때, 9월 9일 공화국 창건일을 기해 북한이 핵보유 선언을 할 가능성에 대한 ‘예언’들이 흉흉하게 나돈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 해 9월 9일 핵보유 선언은 없었다.

본 연구소에서는 2003년 9월 9일 이후로도 상당기간 북한이 핵보유 선언을 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았는데, (정세동향 2003년17호(9월16일) “반전평화공동연대투쟁체 건설에 적극 나서자”) 그 근거가 그 해 8월 말에 있었던 1차 6자회담에 북이 ‘북핵문제’의 해법으로 들고 나왔던 총적 목표로서의 ‘한반도 비핵화’ 그리고 ‘일괄타결도식과 동시행동순서’였다. 왜냐하면 북한이 핵보유 선언을 하게 된다면 누가 보아도 ‘핵문제’ 해결의 원칙적이고 공명정대한 방도인 ‘일괄타결, 동시행동 원칙’과는 다른 새로운 원칙과 방도가 제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핵보유 선언을 하게 되면 일괄타결 도식에 언급된 “핵무기를 만들지 않고 그에 대한 사찰을 허용하며”라는 표현, 동시행동순서에 언급되어 있는 “핵계획포기의사를 선포, 핵시설과 핵물질동결 및 감시사찰을 허용” 등이 의미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며 또 실제 그렇게 되었다. (물론 사태가 이렇게 된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한은 ‘일괄타결 동시행동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유연성을 발휘하여 미국이 ‘말 대 말’로라도 동시행동의 첫 단추를 풀게 된다면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설 의지가 있다고까지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상황을 악화시켰다. 그리고 북한은 핵보유 선언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

<일괄타결도식>

미국북한
 의무사항·조미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며
·조미외교관계를 수립하며
·조일,북남 경제협력 실현을 담보하며
·경수로제공지연으로 인한 전력손실을 보상하고 경수로를 완공
·핵무기를 만들지 않고 그에 대한 사찰을 허용하며
·핵시설을 궁극적으로 해체하며
·미싸일시험 발사를 보류하고 수출을 중지

<동시행동순서>

미국북한
 1단계중유제공을 재개
인도주의식량지원을 대폭 확대
핵계획포기의사를 선포
 2단계불가침조약을 체결
전력손실을 보상하는 시점
핵시설과 핵물질동결 및 감시사찰을 허용
 3단계북-미,북-일외교관계가 수립미사일문제를 타결
 4단계경수로가 완공되는 시점핵시설을 해체하는 것

이처럼 핵보유 선언으로, 한반도 비핵화라는 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한의 총적 목표에는 변함이 없으나, 그 구체적인 해결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제 북한이 핵무기 개발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사찰 받고, 핵시설을 해체하는 문제와, 미국, 일본과의 정치, 경제적 관계 정상화를 한 단계씩 맞바꾸는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도 있듯이 이제 ‘6자회담에서 동결과 보상과 같은 주고받기식으로 문제를 논할 시기가 지났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핵무기로 위협하는 나라와 자위적 무장력으로서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라는 대등한 관계에 서서 ‘군축’ 특히 ‘핵군축’을 중심으로 한 포괄적 의제를 다루는 방식으로 한반도 핵문제,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해결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또한, 특기할만한 것은 2002년 10월 미국이 2차 핵문제를 만든 직후 북한이 미국에 제안했고, 2003년 1차 6자회담에서 제시된 일괄타결도식과 동시행동순서에도 명시되었던 불가침 조약과 같은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한성렬 유엔 주재 북한 차석 대사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해 미국의 위협을 청산하고 정전협정 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것만이 근원적인 해결책”이라고 언급하기는 했지만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는 평화협정 내지는 불가침 조약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는 미국의 핵공격 위협에 대해 핵무장을 함으로써 힘으로 위협을 막고 평화를 지키겠다는 기본입장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힘의 균형에 의한 한반도 평화유지를 지속하면서 미국에게 핵군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에 배치된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핵위협을 들어내고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체제가 확립될 때까지 핵보유를 하겠다는 북의 입장으로 봐야 한다. 실제로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조미가 기술적으로는 전쟁상태에 있고 남조선이 미국의 핵우산 밑에 있는 조건에서 그 전까지는 우리가 핵무기를 가지는 것이 오히려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기본 억제력으로 된다”고 밝히고 있다.

끝으로, 이번 담화에서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미국의 핵위협이 완전히 청산되면 조선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 지역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도 담보될 수 있다”고 밝힌 부분이다. 나아가 “그러므로 6자회담이 자기 사명을 다하자면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미국의 핵무기와 핵전쟁위협을 근원적으로 청산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는 장소로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이번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는 단지 한반도에서 핵위협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이 일본과 결탁 공모하여 목표로 삼고 있는 중국포위전략과 그 수단으로서 추구되어온 동북아 신냉전 구도를 반대하고 동북아에서 평화를 유지, 공고화기 위한 방도 역시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6자회담 및 북미관계의 전망

한국의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시작된 6자회담의 기본 취지를 흔드는 것’이라며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이들 ‘전문가’가 이야기하는 6자회담의 기본 취지란 무엇인가?

2002년 10월 ‘북핵문제’를 만든 미국이 근거 없는 농축우라늄 핵개발을 빌미로 북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기 위해 고안해냈던 것이 이른바 ‘다자회담’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이에 다자회담이건 양자회담이건 핵문제의 근원인 북미사이의 적대관계를 근본적으로 청산할 수 있다면 형식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6자회담이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북의 입장은 이러했지만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 핵위협’을 국제적으로 유포하며 일방적으로 선핵포기를 요구했던 공간이 6자회담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6자회담의 진정한 기본 취지란, 미국과 북한 양자가 공히 이야기하는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을 목표로 하는 것이며, 북한이 핵보유 선언을 하기 전까지에는 그 방도는 북에서 제안한 일괄타결, 동시행동이 가장 합리적인 방도였다. 그러나 미국이 이것을 거부하였고 북한은 핵보유선언을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당연히 기존의 6자회담은 이제 더 이상 운명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6자회담은, 일단 6개국이 마주앉는 회담이 될지가 의문이다.

북한은 일본이 ‘납치문제’, ‘유골 문제’ 등을 만들며 비열하게 나오자 미국의 하수인으로서 일본을 참가시킬 수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 또한 북한이 이번 외무성 담화를 통해 앞으로 6자 회담이 열리게 된다면 의제로, 한국에 배치한 미국의 핵무기를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 문제, 나아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핵전쟁 위협을 근원적으로 청산하는 문제를 제기한 이상 기존 6자회담에서 의제로 ‘북한의 핵문제’를, 기껏해야 ‘동결 대 보상’ 차원에서 다루던 상황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전문가들’이 말하는 ‘기본 취지’의 6자회담은 이미 막을 내린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에 의해 진정한 의미의 ‘6자회담’이 새롭게 제안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이 상황은 그들이 우려하듯이 비관적인 것이 아니라 근본문제 해결에 한걸음 다가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미국은 지금도 뾰족한 대안이 없는 조건에서 더욱 더 북한이 제안한 의제로 협상에 나서느냐, 제재를 선택하느냐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소시기 사태를 전망하는데서 나설 수 있는 변수는 기본적으로 미국과 북한에 하나씩 있다. 라이스가 일본, 한국, 중국을 순방한 후 별 성과를 못 거두고 기자회견에서 ‘다른 선택도 있다’며 신경질적인 발언을 하고 돌아간 뒤 미 국무부에서 순방 결과를 두고 공식입장이 나온 바가 아직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이 다시 ‘비핵화, 군축회담’ 제안을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2002년 10월 당시 국무부 차관보 켈리가 평양을 방문한 후 두 주가 지나서야 ‘북한이 농축우라늄 핵개발 시인’했다고 국제사회에 거짓여론을 퍼뜨린 것과 같은 모략극이다.

한편, 북한은 지난 3월 9일 예정되었던 최고인민회의를 4월 11일 열기로 하였다. 2003년 11월의 최고인민회의에서 핵억제력 강화를 천명한 외무성의 조치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것과 동등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지금, 연속적인 공격으로 올해 안에 무언가 끝장을 볼 기세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남북관계 변수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독일 방문 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과 유사한 급의 발표를 할 가능성이 이야기되고 있다. 한나라당 안팎에는 ‘노 대통령이 베를린에서 대북문제에 관한 독트린을 발표할 예정인데, 그것은 이후 대북정책에서 한나라당이 뭔가를 선점하는 것은 생각도 못할 정도로 획기적인 내용이 담길 것’이라는 얘기들이 나돌아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전략통으로 통하는 한나라당 출신의 한 관계자는 “한미일 배타적 동맹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등의 민족주의 완결판이 나오지 않겠냐”고 전망하기도 했다.

물론 2000년에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관계가 일단락 되어가는 조건에서 미국의 용인 아래 베를린 선언이 가능했었지만 이른바 북핵문제와 6자회담이 여전히 대치상태에 있는 조건에서 대북정책에서 의미있는 선언이 나오더라도 북미대치상황에 큰 영향을 줄 선언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무리일 수 있다. 북한의 입장 역시 미국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라서 더욱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배타적 한미일 동맹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정도의 발언이라도 그 파장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관계 개선에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내용은 아닐지라도 북에서 제안한 비핵화 군축회담 자체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미일 동맹을 흔드는 발언은 의도야 어쨌건 북과 보조를 맞추는 셈이 되기 때문이고 또 이 시점에서 정부당국이 민족의 이익에 복무하는 최소한의 길이기도 하다.

북한이 성큼성큼 북미 적대관계의 근본적인 해결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이 시점, 미국이 선택의 궁지로 몰려가고 있는 지금은, 더욱 고조될 가능성도 있는 전쟁위기를 미연에 막기 위한 반전평화운동과 미국의 적대정책 철회 및 주한미군철수 운동을 남과 북이 힘을 합쳐 벌여나가는 것이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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