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김치관 기자(ckkim@tongilnews.com)


▶통일학연구소 10주년을 맞은 한호석 소장.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이론가로서의 면모
보다는 균형점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통일운동가로서의 고뇌가 더 절박하게 느껴진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한호석(50) 소장의 안내로 뉴욕 퀸즈 플러싱에 위치한 ‘통일학연구소’로 들어서자 가지런히 정리된 서가가 한눈에 들어왔다. 남과 북, 해외의 다양한 서적과 신문, 자료들이 한데 어울려 통일의 진로를 모색하는 재료로 재가공되는 곳이다.

통일학연구소는 3월 11일 설립 10주년을 맞았지만 한 소장이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공동행사 준비위원회’(6.15공동행사준비위) 결성식을 위해 금강산을 다녀오느라 미처 기념식도 갖지 못하고 오는 4월 2일에야 뉴욕 퀸즈 플러싱에 있는 쉐라톤호텔에서 기념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3월 20일 오후 뉴욕 맨하탄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한 호텔로 기자를 찾아온 한 소장을 만나 통일학연구소 10주년과 6.15해외측준비위 등을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 소장은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외무성의 2.10성명과 3.2비망록 발표를 “올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미 대응정책에서 강경한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정치적 의사의 표현”으로 해석하고 “이북이 미국에게 요구하는 것이 주한미군을 철군하라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주한미군 철군을 이북이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북이 밝힌 것은 적대정책을 철회하라는 것”이라며 “적대정책을 철회하라는 말은 미국 정책결정자들이 말하듯이 다자간 안전보장 문서를 써주는 것이 아니라 이북의 요구는 적대정책을 집행하는 물리적 실체를 제거하라는 것이다. 그 물리적 실체가 주한미군이다”고 해석했다.

한 소장은 “주한미군을 철군하는 문제는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뒤집어놓는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정세변화를 봐가면서 미국과 비공개협상으로 풀어가자는 것이 이북의 의도”라며 “부시 행정부 내에서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상당한 시간이 걸려야 해결될 문제라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공동행사 재미준비위원회’(6.15재미준비위) 구성과 관련해서는 너무 일정이 촉박했고 “첫째 미주 각 지역 한인회를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미주한인회총연합회(미주총련), 둘째 재미동포사회에서 상당히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한인교회협의회, 이 두 단체들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6.15재미준비위를 결성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가능하다면 올해 미국에서의 6.15행사는 그런 두 단체들 대표자들과 함께 하는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그는 논란을 빚었던 지난 3월 4일 금강산에서 열린 6.15공동행사준비위원회 결성식에 대해서는 “6.15남측준비위 일부 성원들이 6.15해외측준비위 결성문제에 대해서 간섭하지 말라”는 해외측준비위의 문제의식과 “해외측준비위 구성이 운동권 일색으로 돼 있다”는 남측준비위 일부 성원들이 내놓은 쟁점이 충돌한 것이라고 보았다.

한 소장은 “해외측준비위의 인적 구성이 운동권 일색으로 된 것이라는 지적은 사실”이라며 “문제는 그것을 해외측준비위 내에서 제기하지 않고 남측준비위 일부 성원이 제기했다는 데서 복잡성이 생겨난 것”이라고 풀이하고 “해외측준비위에서 비운동권 사회단체들과 연대하는 길을 열어놓고 그들과 함께 손잡음으로써 남측준비위 일부 성원의 문제제기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해외측에서 알아서 해나가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이미 이러한 사례는 6.15재미준비위에서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이나 남측준비위가 준비위를 폭넓게 결성하고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모범적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136편의 논문 대부분을 직접 써서 발표했다는 한 소장은 “처음에는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연구하다가 이것이 조미관계의 대결구도로 옮겨지고 이것이 다시 ‘한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로 초점이 움직여온 이론구성을 해왔다”며 “미국의 한반도 정책만 이야기해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응하는 북측의 대응정책을 같이 봐야 한다. 대부분의 미국이나 한국 언론은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만 이야기하고 북의 대미정책은 논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시절인 1981년 미국으로 유학 와 청년운동을 시작으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숨가쁘게 뛰어온 중년의 그에게서 웹사이트를 통해 접해온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이론가로서의 면모보다는 균형점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통일운동가로서의 고뇌가 더 절박하게 느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은 한호석 소장과의 인터뷰 내용 전문이다.

“가장 큰 성과는 통일문제를 ‘한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로 잡은 것”

▶통일학연구소 서가 앞에 선 한호석 소장.  이곳에서 남과 북, 해외의 다양한 서적과
신문, 자료들이 한데 어울려 통일의 진로를 모색하는 재료로 재가공된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통일학연구소가 창립 10주년을 맞은 것으로 안다.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나?

■ 한호석 : 1995년 3월 11일 뉴욕시 퀸스 프로싱에서 시작됐다. 창립보다는 설립이라고 표현한다.

□ 통일학연구소를 설립하면서 ‘통일학’에 대해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것으로 아는데.

■ 원래는 ‘미주평화통일연구소’로 10년 전에 시작했다가 1998년에 ‘통일학연구소’로 개칭을 했다. 개칭은 통일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심화시킨다는 의도였다.

□ 시작은 누구와 함께 했나?

■ 10년 동안 같이 해오신 분이 이사장 이행우 선생, 안장호 사무국장, 한익수 연구원, 최미경 총무가 한결같이 저와 같이 일해오신 분들이고 이사회가 따로 구성돼 있고 이사회 성원들도 같이하고 있다.

□ 그간의 연구 성과나 경험을 들려 달라.

■ 어제 다시 들여다보니깐 10년 동안 136편의 논문을 우리가 발표했다. 거의 다 제가 쓴 것이고 한익수 연구원이 몇 편 썼다. 그런데 사실 자료를 수집하거나 초고를 검토하는 일은 안장호 사무국장이나 한익수 연구원이 10년 동안 해왔다. 그분들의 노고가 크다.

가장 큰 성과를 말한다면 통일문제에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어떻게 수립되고 작동하고 있는가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결국 그 문제는 핵문제라고 하는 외피를 쓰고 있는 조미관계의 대결구도와 직결된 것이다.

처음에는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을 연구하다가 이것이 조미관계의 대결구도로 옮겨지고 이것이 다시 ‘한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로 초점이 움직여온 이론구성을 해왔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만 이야기해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응하는 북측의 대응정책을 같이 봐야 한다. 대부분의 미국이나 한국 언론은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만 이야기하고 북의 대미정책은 논하지 않는다.

이것을 가장 큰 연구성과라고 본다.

□ 남쪽에서 통일학연구소는 웹사이트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 우리가 연구소로서는 일찍 웹사이트를 시작했다. 원래는 팜플렛 형식으로 논문을 써서 우편으로 전달하던 초창기가 있었는데 웹사이트로 빨리 전환해서 현대문명의 덕을 본 셈이다.

□ 작년부터 남쪽 정부가 이른바 ‘친북 사이트’라며 통일학연구소 웹사이트 접근을 차단한 것으로 안다.

■ 차단한 것이 오히려 더 알려진 홍보효과를 줬고 기술적으로 사실 웬만한 인터넷 기술이 있는 사람은 차단조치를 무시할 수 있으니까 차단조치가 별 의미는 없다고 본다. 새로운 URL(웹사이트 주소) 두 개를 신설했다.

“글 쓸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이 자료적 증거를 제시하는 것”

▶연구소 입구에 선 한 소장.
[사진-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 남쪽 일부에서는 글이나 기조가 친북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 친북적이란 말에 대해서 거부감이 없다. 통일이라고 하는 것은 통일의 대상과 교류하고 소통하고 협력하고 연대해야 가능한 일이다.

통일학연구소에서 당연히 이북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얘기해야 하고 또 그것을 제 표현으로 하면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다시 구성해서 글을 집필해야 한다. 따라서 민족주체라고 하는 개념속에는 남과 북의 분단선이 없어지는 것이다. 주체로서의 민족은 분단을 초월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주체적 관점에서는 친북이나 친남이냐의 개념설정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 다만 민족주체적 관점의 반대편에 서 있는, 예속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세력들의 눈에서 보면 당연히 친북적이라고 보일 수 있을 것이다.

□ 일부에서는 발표된 글들이 구체적인 사실 근거가 부족하고 다소 이론적이고 사변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 제가 글을 집필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이 자료적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런 지적은 좋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마치 근거 없이 소설 쓰듯이 글을 쓰지는 않는다. 그것은 나의 분명한 원칙이다.

자료적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물론 생각대로 잘 안 되는 부분도 있지만 원칙은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면서 이론을 구성해 나간다.

□ 그간 발표한 글의 분량이나 다루는 영역이 커서 경이롭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 그렇지는 못하다. 한 가지 말씀은 자료를 체계적으로 꾸준히 수집하고 분류해놓았다는 점이 내 글쓰기에서의 최대의 강점이다.

지난 10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온 일이고 이를테면 미국에서 나오는 주요 일간지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즈, LA타임스 같은 일간지들을 계속해서 검토한다.

그 다음에 이남에서 나오는 보도내용을 역시 매일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있는데 이는 인터넷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초창기에는 굉장히 힘들었다. 활자매체를 보고 잘라서 분류하는데 엄청난 시간이 들고 거의 불가능했다. 구독료도 한 달에 천 달러 이상이 들어간 때도 있었다. 인터넷으로 인해 엄청나게 속도가 빨라졌고 구독료 절감효과도 있어 유리한 조건이 되었다.

나는 노동신문도 역시 마찬가지로 본다. 노동신문은 인터넷에 안 나오기 때문에 북경을 통해 받아본다. 북쪽에서 나오는 사회과학 전문도서들은 북경을 통해서 계속 받아보면서 자료를 분류하고 있다.

□ 연구소의 재정은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

■ 후원금과 10여명의 이사들의 회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지만 너무 부족한 실정이다. 연구소 월임대료 1,500불도 부담이 된다. 일하는 사람들이 월급도 받지 않고 오히려 돈을 써가며 헌신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10주년 기념행사에서 어쩔 수 없이 내가 기념강연을 맡았고, 이 기회를 빌어서도 후원금을 받으려 한다.

“6.15준비위는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응하는 기본구도”

▶통일학연구소의 제자리에 앉은 한호석 소장. 한 소장은 이 자리에서 10년 동안 136편
의 논문을 발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요즘 관심을 기울이는 사안과 앞으로 다루어보고 싶은 사안은?

■ 원래 통일학연구소 이름을 내걸 때는 체계적으로 이론작업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사실상 그게 힘들다. 급변하는 정세를 따라가면서 분석하다 보니까 체계적인 구성이 상당히 힘들어진다. 우리 연구소의 글이 범위가 넓고 다양하게 보이는 것은 그때 그때 변화된 정세 국면의 요구에 따라 글을 쓰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온다.

아무래도 최근에는 이북의 2월 10일 외무성 성명 이후의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가 나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이다. 특히 콘돌리자 라이스가 서울과 도쿄, 베이징을 방문중인데 그 사람이 첫 번 외국방문지를 동북아 3국으로 선택한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미국의 한반도 정책의 변화조짐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두 번째로서는 지난번 금강산에서 결성된 6.15준비위원회의 의의와 활동이다.

나는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과 6.15준비위원회를 별개의 사안으로 분리시켜서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한반도 정세의 기본구도를 ‘한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조로 보기 때문에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거기에 대응하는 한민족의 대응책을 함께 봐야 한다.

한민족의 대응책이라는 것은 민족주체적 관점에서는 남북해외의 민족주체역량이 하나의 공통목적을 갖고 연대하는 것이다. 연대의 기본 방향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응하는데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왜냐면 여태껏 한반도의 문제를 핵문제로만 좁혀보면서 핵문제의 당사자인 이북의 대응력, 대응책만을 생각해왔는데 나는 우리의 시야를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민족 전체의 대응력, 대미 대응책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흩어져 있는 남북해외의 사회정치역량들이 공통의 목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그래야 대응책이 거기서 나오는 것이다. 분산된 상태에서는 대응력도 형성될 수 없고 대응책도 나올 수 없다.

금강산회의에서 결성된 6.15준비위원회의 정치적 의의는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응할 수 있는 기본구도를 잡았다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 6.15준비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미주지역 준비위 결성과정부터 소개해 달라.

■ 우리는 6.15재미준비위원회로 약칭해 부른다. 결성과정에서 제가 경험한 것은, 첫째 시간적 여유가 너무 없었다. 작년 11월말에 금강산 실무협의에서 준비위의 결성을 결정했고 그 내용을 접한 것이 12월 초였다.

이에 따라 12월 초에 재미동포운동을 대표하는 3개의 단체에서 제안서를 냈다. 3개 단체는 ‘재미동포 전국연합회’, ‘미주동포 전국협회’, ‘자주민주통일 미주연합’이고 이들은 ‘재미민족운동단체협의회’(민협)로 묶여져 있다. 3단체가 6.15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한 새로운 틀을 재미동포사회에서도 만들어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내부적 논란이 많이 있었다.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상황이 상당히 복잡해졌다.

두 번째 아쉬웠던 것은 운동권과 비운동권이 손을 잡고 6.15재미준비위원회를 결성하지 못했다. 이유는 재미동포운동권 내부의 갈등요인을 해소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작 비운동권 사회단체들과의 대화는 시작도 못한 채 결국 운동권단체들끼리 결성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손잡아야 될 대상으로서는, 첫째 미주 각 지역 한인회를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미주한인회총연합회(미주총련), 둘째 재미동포사회에서 상당히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한인교회협의회, 이 두 단체들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6.15재미준비위를 결성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것은 앞으로 결성된 6.15재미준비위가 해결해야 될 매우 중요한 과제로 남겨져있다.

세 번째, 6.15재미준비위를 대표하는 인사를 누구로 할 것이냐는 문제로 고심을 했다. 지금까지 통일운동을 해 오셨던 원로들이 계셨지만 그분들이 과감하게 양보하셔서 통일운동권에는 속하지 않으셨던 또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지지해줄 수 있는 그런 분을 6.15재미준비위의 대표로 추대하자고 결정했다. 그래서 문동환 목사님을 추대하게 된 것이다.

“해외측준비위의 인적 구성이 운동권 일색인 것은 사실”

▶"이북이 미국에게 요구하는 것은 주한미군을 철군하라는 것이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금강산에서 6.15공동행사준비위 결성을 둘러싸고 많은 갈등을 빚었는데 해외측준비위 대표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보나?

■ 예민한 문제이다. 쟁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6.15남측준비위 일부 성원들이 6.15해외측준비위 결성문제에 대해서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쟁점은 해외측준비위가 내놓은 문제의식이다.

다른 하나의 쟁점은 해외측준비위 구성이 운동권 일색으로 돼 있다는 쟁점이다. 이것은 남측준비위 일부 성원들이 내놓은 의견이다. 이 두 가지 쟁점이 충돌한 것이라고 본다.

우선 해외측준비위의 인적 구성이 운동권 일색으로 된 것이라는 지적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것을 해외측준비위 내에서 제기하지 않고 남측준비위 일부 성원이 제기했다는 데서 복잡성이 생겨난 것이다.

만일 해외측준비위 성원이 왜 해외측준비위가 운동권 일색으로 됐느냐, 비운동권과 손을 잡고 가야한다고 지적했다면 문제제기 절차에서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해외측준비위 내부에서가 아니라 외부라고 볼 수 남측준비위의 일부 성원이 제기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내가 보기에 해외측준비위에서 비운동권 사회단체들과 연대하는 길을 열어놓고 그들과 함께 손잡음으로써 남측준비위 일부 성원의 문제제기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해외측에서 알아서 해나가야 한다.

사실은 해외측준비위를 결성한 심양회의에서 내가 이렇게 발언했다. “해외측준비위 인적 구성 명단에는 해외 운동권인사들만 전부 포함돼 있고 비운동권인사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극복해야할 문제다”고 공식석상에서 발언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준비위를 결성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간도 없었고 그럴만한 조건도 되지 못했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번 6.15남측준비위 결성과정에서 통일운동 세력과 다양한 시민운동세력, 종교단체들이 같이 했다. 그리고 대표도 그동안 통일운동의 일선에 있던 분이 아닌 원로급을 추대했는데 이것은 참 모범적인 결과라고 평가한다. 해외에서도 모범적인 결과를 본받아서 폭을 더 넓히고 더 많은 사회단체들과 손잡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

□ 금강산 결성식 이후 해외측준비위와 미주지역준비위의 폭을 넓히기 위한 노력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 아직 금강산 결성식 이후로 한번도 공식적인 토론을 갖지 못했다. 다만 미주총련, 교회협의회 쪽하고의 대화를 시작하겠고, 가능하다면 올해 미국에서의 6.15행사는 그런 두 단체들 대표자들과 함께 하는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10성명의 요구는 주한미군 철군”

▶연구소 벽에 걸린 '총 매고 아이에게 젖 물리는 여전사' 사진을 보며 한 소장은 그간
해외에서 무슨 생각을 해 왔을까.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북한 외무성의 2.10성명과 3.2비망록에 대해 남측에서는 의외라는 반응과 당연하다는 반응이 엇갈렸다. 북측 문제를 연구해온 입장에서 어떻게 평가하나?

■ 외무성 성명과 비망록은 올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미 대응정책에서 강경한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정치적 의사의 표현이라고 해석한다.

사실 미국의 국가정보기관은 이북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또 비공식적으로 발언했다. 핵무기를 보유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핵무기 보유를 국제사회에 선언하는가 안 하는가 이게 핵심문제다. 그런데 이북에서는 미국의 예상을 깨고 선언했다. 그것도 부시 행정부 2기가 출범한 직후에 선언했다. 이것은 부시 행정부 2기에 초반부터 이북이 미국에 대한 대응책을 강경기조에서 밀고나갈 것이라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올해 조미관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부시 행정부 2기의 정책결정권자들이 이북의 강경한 대응을 어떻게 파악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느냐에 있다. 내가 보기에는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들이 이북의 강경한 대응에 대해서 해결책을 내놓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까닭은 이북이 미국에게 요구하는 것이 주한미군을 철군하라는 것인데 이 문제를 미국이 들어주는 것은 상당히 정치적 부담이 가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 내에서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상당한 시간이 걸려야 해결될 문제라고 본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고 싶은데 주한미군을 미군이 빼낸다고 해서 한반도에서 적화통일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또 한반도에서 정치적 혼란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주한미군을 철거하라는 요구는 한반도를 통일하겠다고 하는 통일의지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친중노선을 걸으면서 미국과 적대관계를 계속 유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미군이 빠져나간 뒤에 한반도가 통일이 되면 그 통일국가는 영세중립국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확실한 것이고 또 이북에서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이고 현재 정세의 요구로 봐서 가장 합리적이고 정당한 방침이다.

□ 2.10성명이나 3.2비망록을 주한미군 철수 요구로 해석한 근거는?

■ 주한미군 철군을 이북이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이북이 밝힌 것은 적대정책을 철회하라는 것이다.

적대정책을 철회하라는 말은 미국 정책결정자들이 말하듯이 다자간 안전보장 문서를 써주는 것이 아니다. 이북의 요구는 적대정책을 집행하는 물리적 실체를 제거하라는 것이다. 그 물리적 실체가 주한미군이다.

미국의 뛰어난 군사분석가 중의 한 사람인 윌리엄 아킨이 얼마 전에 쓴 책에 나왔던 대로 주한미군은 명백히 한반도에 핵전쟁정책을 위해서 준비되고 훈련되고 주둔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적대정책을 철회한다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주한미군을 빼내가야 하는 거다. 이것이 이북의 정치적 요구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주한미군을 철군하는 문제는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뒤집어놓는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정세변화를 봐가면서 미국과 비공개협상으로 풀어가자는 것이 이북의 의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 미국이 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 그것은 미국사람들이 결정한 문제인데, 한 가지 실낱같은 가능성을 본다면 미국의 새로운 군사정책이 해외주둔 병력 가운데 지상군을 대폭 감축하고 신속기동군으로 재편성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주한미군에도 적용되는 군사전략이다.

따라서 미국과 일본의 동맹적 군사력을 강화하고 거기에 더 비중을 두는 만큼 주한미군과 한미군사동맹에 두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바로 이 줄어드는 문제, 비중감소와 완전철군 사이에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나를 미국에서 20년 넘게 살게 한 근본원인은 전두환 정권”

▶"우스운 얘기지만 나를 미국에서 20년 넘게 살게 한
근본원인은 전두환 정권"[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미국에는 언제 왔나?

■ 1981년 7월 유학생으로 뉴욕에 왔다. 그때는 박사과정을 마치고 5,6년 있다가 귀국하려고 생각했는데 당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는 해외운동권에 휩쓸리다 보니까 여기서 20년 넘게 살게 됐다.

우스운 얘기지만 나를 미국에서 20년 넘게 살게 한 근본원인은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에 있다.

□ 통일학연구소 설립 이전에는 무엇을 했나?

■ 미국에서 청년운동부터 시작해서 운동에 전념했다. 지금은 자주민주통일미주연합 부의장을 맡고 있다.

□ 가족관계는?

■ 뉴욕근교 집에 처와 딸이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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