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 (pbpm@chol.com / 원광대학교 정치학.평화학 교수)


지난 1월 17일 1960년대 한일협상과 관련된 외교 문서들이 공개되면서 일본이 독도 폭파를 제안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62년 9월 일본의 협상 대표인 이세키 국장이 "사실상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다. 크기는 '히비야' 공원 정도인데 폭발이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협상 대표인 최영택 참사관은 두 달 뒤인 1962년 11월 "(한일간에) 모처럼 조성된 좋은 분위기가 깨질 염려가 있으므로 제 3국에 의한 조정에 맡기자는 제의를 김종필 정보부장이 하게 된 것이며, 이는 김 부장의 최종적인 생각이다"고 대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96년 공개된 미국의 외교 문서에 따르면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일본의 오히라 외상에게 독도 폭파를 먼저 제안했다. 김종필이 1962년 10월 일본에 건너가 한일 협정의 기초를 마련했던 이른바 '김-오히라 메모'에 합의하고 바로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의 러스크 국무부장관에게 밝힌 내용이다.

당시 '비밀'로 분류된 1962년 10월 29일의 김종필-러스크 대화록을 보면, 두 사람이 한일 협정에 관해 얘기하는 가운데 쟁점이 되고 있던 독도에 대해 러스크가 그 섬이 무슨 용도가 있느냐고 묻자, 김종필은 "갈매기가 들르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김종필이 오히라에게 독도를 폭파해버리자고 제안했다고 말하자, 러스크는 자신도 그 해결책을 생각해냈다고 대꾸했다. 나아가 김종필은 오히라가 그 제안에 만족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61-1963, Volume XXII, Northeast Asia, 610-612쪽).

독도 폭파를 한국측이 제안하고 일본측이 거절했던 셈인데,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진 내용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며칠 전 어느 라디오 평론가는 한 아이를 둘러싼 두 어머니의 다툼을 해결했던 '솔로몬의 지혜'를 소개하면서, 가짜 어머니는 아이를 둘로 나누는 것을 찬성했듯이,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이 독도를 폭파해버리자는 주장을 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1962년엔 김종필 중앙정보장이 그리고 1965년엔 박정희 대통령도 한일 협정을 위해 독도를 폭파해버리고 싶다는 망언을 했으니 일본이나 미국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참고로 그 때 김종필과 대화를 나누며 독도 폭파를 생각하고, 박정희와 대화를 나눌 때는 한국과 일본이 독도에 공동으로 등대를 세워 두 나라가 함께 이용하기를 제안했던 러스크 국무부장관은 1945년 8월 당시 육군 대령으로 3.8선에 의한 한반도 분할을 소련에 제안했던 사람이었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억지를 비난하고, 일본 편을 드는 듯한 미국의 자세를 비판하기에 앞서, 일본의 앞잡이 역할을 해온 한국의 군인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지식인들이 어떠한 언행을 저질러왔는지 밝히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해방 직후 친일과 부일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업보이지만, 이제라도 과거사를 제대로 밝혀야 할 필요가 이런 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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