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3일 과거 의혹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계획을 밝히는 기자회견이 열릴 당시
오충일 위원장.(사진 맨 오른쪽) [통일뉴스 - 자료사진]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절차와 시스템이 있고, 다 파기되어 없어졌다고 보지 않는다."

오충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상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발전위) 위원장은 "서류 태우느라 세곡동 하늘이 새카맣게 연기에 뒤덮였다"던 천용택 전 국정원장의 증언에 대해 "국정원이 자료를 마음대로 다 태워서 없앨 수 있는 곳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판단의 근거로 오 위원장은 과거 구명운동에 관계했던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 조사 자료가 제대로 보존된 것을 직접 확인한 사실, 옛날 자료 대부분이 마이크로필름으로 보존된 점 등을 들었다.

특히 'KAL858기폭파사건'을 적시해 "(이 건) 하나만 가지고도 캐비넷 서너개가 꽉 찰 만큼의 방대한 자료가 있다"며, "게다가 옛날 자료들은 마이크로 필름에 보관돼 있다"고 전했다.  

다만 "문제는 핵심자료"라며 '김대중납치사건' 자료의 경우 하부지휘체계는 있으나 최초 지시자가 없는 점을 들어 '비선조직'을 통한 사건의 경우 자료가 없을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오충일 위원장은 "가령 김대중 납치사건의 경우, 서울 안가에 옮겨진 김대중씨를 자택에까지 데려간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다른 건 모르고 자기가 했던 부분에 대해서만 안다. 그런 것은 문서보다는 대면 접촉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그 사람들의 당시 지휘체계는 문서로 남아 있다"며 남아있는 문서의 가치를 재확인했다.

아울러 "당시 DJ를 데려간 비행기에 대해 DJ는 CIA 소속이라 하나 다른 사람들은 그럴 리 없다고 한다"며, "우리는 그 배의 선장이 누구였는지 알고 있고 그 사람의 증언을 들을 수 있다"며 증언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국정원내 사건 관련자들과 관련해서는 "진실을 무덤에까지 가져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다, 그 경우에 방법이 없다"며, 고백하는 경우 '사면' 등의 "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정원발전위는 '수지김사건'으로 봇물처럼 쏟아진 국정원 관련 의혹사건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자는 취지로 지난해 11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민관공동조사기구로서, 지난달 3일에는 'KAL858기폭파사건' 등 7건을 우선 조사대상으로 선정한 바 있다.

이날 모임은 인터넷언론인포럼의 월례정기초청간담회의 일환으로, 16일 저녁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렸다. 포럼에는 뉴스앤조이, 뉴스툰, 대자보, 미디어몹, 민중의 소리, 시민의 신문, 오마이뉴스, 통일뉴스의 편집국장들이 참여하고 있다.

오충일 국정원발전위 위원장 간담회 발언 (요지)

국정원, 과거와는 많이 달라져

□ 질문 : 우선 안기부에 들어가서 일해 보신 소감은

■ 오충일 : 그동안 안기부 지하실 방문도 몇 차례 해 보고, 안기부에서 밥도 얻어먹고 잠도 자 본 사람으로서, 이제는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빨갱이 조사하고 만들어내던 과거와 달리 앞으로는 산업스파이 문제나 해외 경제 정보 등에 주력해야 하는데, 이런 것은 옛날처럼 프락치 동원해서는 할 수가 없다. 국민이 신뢰를 가지고 적극 협력과 제보를 해 줘야 한다. 국정원이 과거와 달라져야 할 필요성이 있고 실제로 많이 달라졌다.

□ 그 변화라는 게 일시적인 변화는 아닌가?

■ 영화 실미도는 천만명 이상이 보았는데, 영화 끝부분에 중앙정보부가 은폐 지시를 내리는 대목이 있다. 이것은 국가기관으로서는 공신력에 엄청난 문제가 있는 것이다. 관련자 한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사람은 펄펄 뛰더라. 국가기관을 이렇게 모독할 수 있느냐, 아무리 영화라도 그렇지 이건 너무하다.... 어쨌거나 지금은 그런 영화들이 만들어지는 상황이고, 국정원 차원에서도 그냥 과거처럼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다.

그리고 고영구 원장에 대한 개인적인 신뢰도 가지고 있다. 전민련 활동 당시 고영구 현 국정원장이 보궐선거에 출마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처음 알게 되었다. 이번에 진실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임명장 수여를 하는데, 원장이 서 있고 한 명씩 앞에 나가서 받는 것이 아니라 둥그렇게 둘러앉아 밥 먹는 자리에서 원장이 테이블을 돌며 임명장을 주더라. 과거 안기부와 분위기도 다르고, 고 원장의 소신을 믿고 있다.

□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에게 과연 국정원 내부 직원들이 협조할 것인지, 관련 자료를 순순히 내줄지가 의문이었다.

■ 처음에 조사관을 뽑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민변, 변협, 시민단체 등에서 추천받아서 뽑고, 신원조회를 하고, 등등에 한달 정도가 걸렸다. 그 이후엔 팀웍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지리산 종주도 하고 술도 많이 마시고... 나는 다른 무엇보다 팀웍이 우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위원은 국정원 내부 5명, 외부 10명으로 되어 있고, 조사관은 각 10명씩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 이질적인 사람들이라서 처음에는 경계심도 있었고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물론 모든 국정원 직원들, 특히 과거에 일했던 올드보이들이 다 똑같은 생각은 아닐 테지만, 위원회가 한 팀이 되어서 움직이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다.

□ 조사 진척이 더디다는 기사가 난 적도 있다. 옛 자료를 뒤져보는 데 내부 저항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는데....

■ 100개 가까운 사건들에 대해서 우선 예비조사를 한다. 국정원과 관계가 있는 사건인지 여부부터 먼저 가리고, 관계 있는 경우에 조사 우선 순위를 정한다. 그런데 KAL 사건 하나만 가지고도 캐비넷 서너개가 꽉 찰 만큼의 방대한 자료가 있다. 게다가 옛날 자료들은 마이크로 필름에 보관돼 있는데, 웬만한 사람은 두어시간만 필름 들여다보면 다 나가떨어질만큼 피곤하고 고된 일이다. 체력과 의욕,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 이미 자료가 다 파기되어 없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 자료가 전부 다 있다는 것도, 다 없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국정원이 국가기관인데 자료를 마음대로 다 태워서 없앨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사안별로 5년, 10년, 15년의 보존연한이 있고,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마이크로 필름으로 만들어서 보관한다. 방대한 양의 마이크로 필름이 보관되어 있고, 그 자료 소장고는 아무리 국정원장이라 하더라도 자기 마음대로 들락거리면서 뒤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절차와 시스템이 있고, 다 파기되어 없어졌다고 보지 않는다. 과거 개인적으로 구명운동을 벌이면서 잘 알게 된 미국 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경우 관련 조사 자료가 제대로 다 있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물론 문제는 그 중에서 핵심적인 자료들이 남아 있느냐 하는 대목인데... 김형욱 사건의 최초 지시자가 누구냐.. 김대중 납치사건의 지시자는 누구냐... 그래서 모든 자료가 다 남아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특히 비선조직을 통해서 이루어진 경우 문서를 남기지 않았을 수 있다. 열의와 시간을 가지고 추적하고 있다.

"자료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문서가 남아 있다 해도 그 신빙성 문제가 있다. 은밀한 행동을 과연 문서화를 시키는 것인지, 문서화를 시키더라도 그게 과연 진실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문서로 검증해야 하는 위원회의 활동에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닌가?

■ 가령 김대중 납치사건의 경우, 서울 안가에 옮겨진 김대중씨를 자택에까지 데려간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다른 건 모르고 자기가 했던 부분에 대해서만 안다. 또 다른 사람은 자기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만 안다. 그런 것은 문서보다는 대면 접촉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당시 지휘체계는 문서로 남아 있다.

또 DJ는 자신이 수장될 뻔한 상황에서 미국 CIA의 비행기가 떠서 살아났다고 얘기하는데, 다른 한 쪽에선 그 주장을 비웃는다. CIA는 비행기를 쓰지 않는다, CIA가 올 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배의 선장이 누구였는지 알고 있고 그 사람의 증언을 들을 수 있다. 따라서 조사는 다각도로 이루어진다. 문서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 진실위원회의 활동은 개별 사건 중심인가?

■ 위원회의 이름 자체가 과거 '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니만큼 사건 중심으로 접근한다. 그러나 개개의 사건별로 최종보고서가 나오면 진실의 한 면 밖에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민주주의와 통일이 사회적 열망이던 4.19 이후에 등장한 군부가 반공을 국시로 탄압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 정앙정보부였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회유 협박 고문 등등을 했었고 거기엔 여야도 없었다. 노래가사까지 금지했고, 이주일 머리 벗겨졌다고 못 나오게 하고... 다방에서 함부로 얘기도 못하고, 친구도 의심할 수 밖에 없도록 주눅이 들어서 살았다. 이것은 사회 전 부문과 관련된 것이지 특정 사안 몇 개만 밝힌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다.

최종보고서를 단순히 개별 사건 위주로만 기술하는 것을 넘어서서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 결국 중요한 것은 관련자들의 증언일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증언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 진실을 무덤에까지 가져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다. 그 경우에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문건은 진실이냐면 그것조차 확신할 수 없다.

명령을 받아서 실행했던 사람들도 어찌 보면 역사의 피해자이다. 고문한 사람인들 즐거워서 했겠는가.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인데 그들인들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과거 안기부 같은 조직은 사표를 쓰는 것조차 어려운, 그런 조직이다. 그런 상황에서 본의아니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  이 사람들은 친구는 물론이고 자기 가족에게까지 과거를 숨겨온 사람들이다. 그걸 진실을 밝혀버리면 집안이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되겠느냐...역사와 진실 앞에, 양심 앞에 털어놓으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도 명색이 종교인이고 목사인데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사람들이 용기를 내고, 고해성사를 통해서 종교적 죄를 벗는 것처럼, 그런 계기로 삼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종교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회개하는 사람들이다. 기독교에서는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 사회가 그런 용기있는 증언자를 보듬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참 어려운 지점이고, 하루빨리 우리가 그런 성숙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조사의 목적이 누구를 벌주자는 것이 아니고 정치적으로 이용하자는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 당대에 하지 못하면 나중엔 점점 더 어려워진다.

고해성사와 용서, 진혼의 계기 있어야

□ 그러니까 고백을 유도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할 것 같다. 가령 죄를 사면해 주는 법적 장치를 만든다거나...

■ 위원회는 법적 사면이나 피해 보상 등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그것은 정치권에서 할 일이고, 우리는 국정원이 관련된 의혹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임무다. 그런데 그런 법적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종교적으로 봐도 회개하고 용서하는 건데, 회개만 하고 용서를 안 하면 그 다음엔 과연 누가 회개를 하겠는가?

□ 조사의 목적이 정치적인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 정치적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없애지 않으면 그 질문은 끝낼 수 없다.

스페인에서 과거사를 묻지 않고 화해하자는 사회 협약을 맺은 적이 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나니까 피해자들이 다시 들고 일어나서 결국 조사를 다시 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진실이 나온 다음에야 그 다음에 용서도 있고 관용도 있는 거지, 단순한 화해는 되지가 않는다.

진실은 하나다. 김형욱 사건을 보라. 청와대 지하에서 죽였다, 파리에서 죽였다. 목을 베어서 가져왔다, 아직도 잘 살고 있다... 등등 수 많은 설이 난무한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니까 국민들의 마음이 불편하다.

또 반면에 의혹이 제기되는 사건들 가운데 국정원 발표가 올바른 발표였을 수도 있다. 어떠한 예단이나 편견 없이 접근해서 진실을 밝히려 한다. 그렇게 밝히고, 이것을 용서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않으면 늘 과거에 발목을 잡힐 수 밖에 없고 성숙한 사회로 갈 수 없다.

□ 용서라면 최근 김근태 장관이 했던 것과 같은 그런 용서를 말하는 것인지

■ 개인적인 용서로만 끝나서는 안 되고, 사회적 정치적 용서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정의를 훼손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건들은 개인의 문제가 별로 없고 전부 국가가 한 거다. 국가 기관이 회개를 해야 하고, 그 맥락에서 그 실질적 집행을 담당했던 담당자들의 용서가 있는 것이다.

법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백년간에 걸친 비극의 역사를 가진 곳이다. 일제 때 일본인들에게 당하고, 전쟁 때 죽고, 민간인 학살을 당하고, 독재에 저항하다 당하고...

나는 수많은 민주열사 장례식과 추모식을 치렀다. 자꾸만 그 아픔과 슬픔을 생각하게 된다. 박근혜 대표를 만났을 때도 그 개인사적 비극을 생각하면서 현대사의 아픔을 떠올렸다.

이제 와서 과거를 파서 뭐하느냐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친일과 독재 쪽에 있었던 사람들은 정치적 목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원혼이 너무나 많다. 진실이라도 말해줘야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야 굿이라도 해 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국가적인 진혼의 행사를 해야 한다. 희생당한 사람들을 국가가 기념해 줘야 한다.

□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부탁한다.

■ 국정원이 그냥 내부에서 조사해도 되는데 국민과 함께 하기 위해서 위원회를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 위원회는 취재의 대상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국민들, 그리고 언론과 함께 풀어가야 한다. 특히나 조금 전에 얘기한 것과 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 언론의 역할이 크다. 인터넷 신문은 광고나 권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지 않은가. 많은 노력과 도움 부탁드린다.

(정리 : 최내현 미디어몹 편집국장 asever@mediamo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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