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우(사진작가)

 

오는 19일부터 25일까지 1주일간에 걸쳐 한반도 전역에서 ‘한미 연합전시증원’(RSOI) 연습과 ‘독수리 연습’(Foal Eagle)의 병합훈련이 진행된다. 2002년부터 병합해 실시되고 있는 두 연습은 매년 개최되는 최대 규모의 한.미 동맹간 군사연습이다. 이번 군사연습에 대해 평화운동가로 더 알려진 사진작가 이시우 씨의 특별연재를 비정기적으로 게재한다. - 편집자 주



연습은 연습일 뿐인가?

독수리연습, RSOI, 림팩, KITP(한국통합훈련프로그램), 을지포커스렌즈 등의 한미군사연습이 때가 되면 정례적으로 개최된다. 보통 군사연습(Exercise)과 훈련(Training)은 구별된다. ‘연습’은 비무장지대와 같은 전선 전체에 걸쳐 이루어지는 작전차원의 종합적인 것인데 비해, ‘훈련’은 특정지역이나 군종에 해당하는 전술차원의 소규모적인 것이다.

시민단체에서 이들 연습이 북과의 대결을 조장하고 긴장을 유발시키는 전쟁연습이라고 하여 비난을 하면 유엔사나 한미연합사는 논평을 통해 단지 정기적인 연습일 뿐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연습은 단지 연습일 뿐일까? 미 해군의 오웬스 제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전전개활동 및 연습은 적성국가의 군사적 의도를 판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사전징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며 특히 중요한 목표는 예상되는 적성국가의 군사적 의도라는 것이다. (high sea p251)

수많은 비용이 소비되는 연습이 그저 연습일 뿐이란 말은 형이상학적 동어반복일 뿐이다. 연습은 정책-전략-교리-작전으로 이어지는 군사체계에서 실전과 나란히 존재하는 실현형식이다. 때문에 연습에는 상대의 군사적 의도가 집약되어 있으며, 그 의도가 정제를 거쳐 실제모습을 드러내는 최종단계가 군사연습인 것이다.

 

▶지난해 3월 포항 독석리 해안에서 '독수리 연습'의 일환인 한미연합상륙훈련이
실시되고 있는 모습 1. [자료사진 - 통일뉴스]

전쟁의 상상력으로부터 수십년간의 논쟁을 거친 개념들은 최종 도상연습을 통해 실제연습으로 태어난다. 연습은 전쟁사상과 전략과 교리를 몸으로 익히고 체화시키는 과정이며 관념이 아닌 리듬으로 정착시키는 최종단계이다.

영국의 근대 군사이론가인 리델하트는 연습이 바로 전쟁습관을 만드는 것임을 실토했다.

연습이란 것은 하나의 동작을 반복적으로 실시함으로써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사용하면서도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도록 본능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수행되는 일종의 습관이 되도록 하는 방법이다. 모든 종류의 실천적 숙련이란 주로 습관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현대육군의 개혁 p110 리델하트. 일조각)

아프간전쟁을 오합지졸인 반정부군을 중심으로 수행하려던 백악관에서 파월이 던진 질문은 연습과 훈련이 어떤 의지나 무기보다도 전쟁력의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임을 드러내고 있다.

파월은 반정부군의 능력은 어느 정도냐고 물었다. "우리가 그들을 훈련시켜야합니까?" 군에 몸담고 있던 35년 동안 그는 훈련을 잘 받아야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프랭크스 장군도 다른 누구도 파월의 질문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부시는 전쟁중 p396 밥우드워드. 따뜻한 손)

모델이론에 따르면 현실을 설명하는 하나의 모델은 그 자체가 이미 현실이다. 예를 들어 작전지도는 현실의 지형을 비유하는 모형이지만 지도자체가 이미 현실이 되며, 현실보다 더 중요한 현실이 되어 작전을 지배하는 경우도 있다. 실물보다 지도가 더 중요해지는 착시현상이 왕왕 발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연습은 실전의 모델이면서 연습자체가 이미 실전으로서도 기능한다. 실전처럼 연습하라는 말도 있지만, 연습은 가장 짧은 실전이란 말도 성립되는 것이다.

미군은 매년 많은 경우에는 60-70번의 대규모연습의 수행한다. 이는 독자적으로 50만의 미군부대들을 연습에 동원할 수 있는 합참회의에 의해 직접 혹은 합동으로 이루어진다. 펜타곤은 전쟁연습을 “우리의 군사력을 테스트하고 증진시키는데 가장 최선의 수단이며 기간이 가장 짧은 실전” 이라고 한다. (팀스피리트 p30 재인용 ["War Games" The defence Monitor, VolⅩⅢ, No7, 1984])

연습을 위장한 작전사례

연습은 작전을 위한 연습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작전기능을 수행 할 수 있는 최고의 위장 수단이자 기만 공간이다. 현대 모델이론은 모델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 상황을 설명한다. 이런 사례중의 하나가 걸프전 이전에 있었던 아랍에미리트와 미군간 합동군사연습일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를 자극할 상황에서도 아랍에미리트에 공중급유기를 지원해주고 그 움직임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합동군사연습을 실시한 바 있다.

이라크로부터 원유의 과잉생산으로 인해 국제유가하락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던 아랍에미리트는 미국에 대형 KC-135공중급유기 2대를 비밀리에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공중급유기로써 아랍에미리트는 영공상의 사면팔방에 공중순찰항공기를 상시로 띄울 수가 있을 것이었다. 슈와츠코프, 파월, 정책담당차관인 월포위츠, 그리고 체니는 이 요청을 들어주자는 안을 상신했다. 국무부는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설득과정을 거쳐 7월21일 토요일 밤에 마침내 동의하는 쪽으로 돌아섰고, 백악관이 최종 승낙을 했다. 즉시 두 척의 미 해군 함정을 항구에서 발진시켜 페르시아만 해상의 4척과 합류케 하는 미 해군-아랍에미리트 합동군사연습이 발표되었다. 이 연습은 물론 KC-135기의 움직임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었다. (The Commaners사령관들 p228 보브우드워드 중앙출판사)

또한 연습은 군사력을 과시하여 상대방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쓰인다. 일종의 무력시위인 셈이다. 무력시위는 교전을 일으키지 않았을 뿐 상대방의 의지를 굴복시키기 위한 위협이란 점에서 분명한 전쟁수단이다.

군사연습은 적에 대해 시위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적의 행동방법을 탐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팀스피리트 p12재인용 [世界, 1984 8월호])

이러한 무력시위의 가장 극적인 사례중 하나는 걸프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포항 독석리에서 정례적인 독수리연습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공격적인 상륙훈련에 대해 북이 단 한번을 거르지 않고 비판성명을 발표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군 해병대는 이라크에 압박을 가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과 때맞춰 실시되는 한 달간의 걸프지역 군사연습에서 쿠웨이트 상륙작전을 실시할 것이라고 미군 관계자들이 17일 밝혔다.
이 관계자들은 '이거 메이스(Eager Mace) 02'로 명명된 이 연습에 헬기 수송선 '벨로우 우드'호가 이끄는 상륙공격부대 소속 해병대원 약 2천명이 투입된다고 말했다. 미 중부사령부의 닉 밸리스 대변인은 "이번 연습은 9월말로 예정된 상륙연습"으로 3?4주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의 한 관리는 이 연습에 상륙작전 및 육.해.공 부대가 모두 참여한다고 밝혔다. 걸프지역 군사연습은 연례행사지만 이라크와의 결전이 임박한 가운데 미 군사력을 과시하는 의미가 있다. (2002/09/18 연합뉴스)

 

▶지난해 3월 포항 독석리 해안에서 '독수리 연습'의 일환인 한미연합상륙훈련이
실시되고 있는 모습 2.[자료사진 - 통일뉴스]

군사연습은 평화시기에도 정치군사적 목적을 은폐하고자 할 때 너무나 유용한 수단이다. 더 극적인 군사훈련과 연습의 활용 사례는 쿠데타나 상대국을 침공할 때인데, 파나마의 쿠데타를 지원하는데 사용된 경우를 보자. 노리에가를 전복하려는 쿠데타세력과 공모한 미국이 이들이 요청한 봉쇄를 지원하기 위해, 노리에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된 것이 바로 ‘통상적인 군사훈련’이었다. 군사행동에 신중을 기하자던 파월도 이 제안에는 설득되었다.

"노리에가를 제거하는 것은 미국의 계획상 상당히 중요한 일이므로, 설익은 지도자에 의한 설익은 쿠데타는 곤란합니다"하고 파월은 말했다. 그는 최소한의 행동만을 원했고 미국측에서 어떤 어리석은 조처를 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들어주기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수백명의 병사를 동원해서 쿠데타 모의자들이 미국측이 봉쇄해주기를 원하는 도로에서 통상적인 군사훈련을 시행할 수도 있었다. 이같은 의견이 제시되었고, 이는 체니의 승인을 받았다. (The Commaners사령관들 p123 보브우드워드 중앙출판사)

전쟁에 대한 거부정서가 많은 상황에서도 ‘연습’은 전쟁을 침투시키기 위한 훌륭한 위장이 된다. 반미정서가 강한 사우디에 걸프전을 위해 미군을 파병할 때도 '통상훈련'이란 이름의 연습이 실시되었다.

걸프전 직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하고 병력을 사우디의 국경쪽으로 배치하는 것이 감지되자 미국은 체니를 파견하여 사우디 국왕에게 사우디로의 미군배치를 설득하게 한다. 반미정서가 강해 미군의 주둔을 어떤 식으로든 거부하던 사우디는 체니의 설득으로 미군의 주둔을 받아들인다. 이때 회담을 주선했던 미국 외교가의 수완가인 반다르 왕자는 미군의 파병을 중동국가들이 좀더 뒤늦게 알려지게 하도록 통상훈련으로 위장할 것을 제안한다. 미국식을 잘 알고 있는 반다르다운 제안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떠나기 전에 체니는 반다르와 그의 부친이자 사우디국방장관인 술탄왕자를 만나 명령이 하달됐음을 알려주었다...."자 이제 결정은 번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 국왕이 말했다고 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합의된 사항인 것입니다" 하고 반다르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는 자신들이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자 한다고 알려주면서, 두 나라는 단지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고 발표할 것을 제안했다. (사령관들 304~305쪽 보브우드워드 중앙출판사)

외국군의 주둔이나 전투행위 참가를 헌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필리핀에서의 미군과 필리핀군과의 합동군사훈련인 ‘발리카탄’도 훈련이란 이름을 사용할 뿐 실제군사작전이었다.

특수부대원 160명 등 660여명의 미군과 필리핀군 1200여명이 참가하고 있는 합동군사훈련 '발리카탄'은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 조직과 연관된 이슬람 무장세력의 하나로 보고 있는 필리핀내 반군 아부사야프를 소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필리핀 헌법은 외국군의 연습 참가 및 이동을 위한 일시체류는 허용하지만 주둔이나 필리핀내 전투행위 참가를 금지하고 있어 ‘훈련’형식으로 했을 뿐 실제로는 군사작전이다. 민다나오. 바실란 섬을 중심으로 한 이 작전은 지난달부터 시작됐다. (한겨레 2002/03/14 04면 02판)

50년간 단 하루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한반도 상황에서 남이나 북이 ‘연례적인 군사연습’이란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연습이나 훈련은 일상화된 전쟁이자 전쟁을 일상에서 유지시키고 강화하기 위한 최선의 장치이다. 1976년 8월 판문점 미루나무 벌채사건을 둘러싼 백악관 긴급대책회의의 회의록은 한반도에서의 ‘훈련’이 어디까지 진행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핵 폭격기인 B-52의 일상적인 훈련을 이용하여 실제 폭탄을 투하하는 방안까지 논의된 이 회의의 초점중의 하나가 바로 ‘일상적인 훈련’을 이용하는 선제공격이었다.

1976년 8월18일 WSAG(Washington Special Actions Group) 회의록(판문점 미루나무 벌채사건에 대한 대책)
키신저: 오늘 대통령을 만나 이 문제를 얘기해야 한다. 뭔가 강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은 대통령도 느끼고 있지만, 그게 뭐가 될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내가 생각한 것은 두 가지다. 몇 주 전에 우리는 중국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에 B-52 훈련을 취소했다. 그 훈련을 재개할 수 있다. 둘째는 한국의 모든 군대에 비상을 발동하는 것이다.
할러웨이: 데프콘 4에서 데프콘 3으로 갈 수도 있다.
키신저: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할러웨이: 우리가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북한이 느끼기에 우리가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 한, 북한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키신저: 그런 조건에서라면 위협은 없는 것이다.
(중략)
CIA: 올해는 선거가 있는 해다. 3단계로 올라가면 언론과 미 국민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키신저: 아무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두 명의 미국인을 죽였고,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CIA: 북한은 지금 미국 내에서 또 하나의 베트남 식 심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조짐을 찾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그런 망상을 깨게 하려면 언론과 여론 형성층으로부터 적절한 지지 의사를 받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키신저: B-52 훈련을 재개하는 것은 어떤가? 국무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연습반대를 철회하겠다. 지금이 연습을 재개할 가장 좋은 기회다.
하비브: 그건 훈련 연습이다.
아브라모위츠: 미국이나 한국 국민이 겁에 질리지 않을까?
글라이스틴: 다른 연습도 계획되어 있다.
키신저: 하지만 그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클레멘츠: 그 연습에서 B-52기들이 한국으로 날아갔다가 돌아온다는 것이 사실인가?
할러웨이: 그렇다.
키신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스미스: 72시간이면 된다. 그보다 덜 걸릴 수도 있다.
키신저: 빠를수록 좋다.
클레멘츠: 실제 폭탄을 투하할 것인가?
키신저: 프로그램의 일환이라면 그렇게 하고, 아니면 하지 않는다.
클레멘츠: 내가 악역이 돼 묻겠다. 왜 실폭탄을 투하하지 않는가?
키신저: 계획에 실폭탄 투하가 들어 있으면 그렇게 한다.
클레멘츠: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아브라모위츠: 악몽 수준보다는 낮은 것이고, 실제 폭탄 세례는 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하비브: 비행기는 북한을 가까운 사정권 안에 둘 것이다. 거리는 가깝다.
(신동아 2000.4월호 이흥환, 정광호 미국 KISON 연구위원)

연습의 일상화가 초래하는 효과는 전쟁에 대한 관성화이다. 군사연습에 익숙해지고 무관심해 진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전쟁에 무방비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모든 연습이 곧 전쟁으로 발전되진 않는다. 그러나 그 중 하나만 전쟁으로 발전되어도 우리의 전쟁에 대한 무방비와 관성을 변명할 길은 없다.

‘군사연습이나 훈련’에 대한 무방비, 무대책을 조장해 온 가장 오래된 관념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대비하라’는 희랍시대 이래 지금까지 암송되고 있는 고전적 명제이다. 이에 대해 마이클 르네는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준비하라’라는 역설로 응수했다. 그러나 이 현명한 직관은 얼마나 어려운 노력과 시간을 요구할까?

전쟁의 구조를 대신할 평화의 전략과 전술과 일상적인 평화의 연습이 아직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진영에는 빈약한 것 같다. 때문에 너무 성급해도 너무 쉬어가도 안될 일이다. 전략의 우위는 처음부터 완성된 채로 출발하진 않는다. 상대방의 약한 고리를 공략하며 작은 승리를 얻어 나감으로서 생기는 것이다. 전쟁의 약한 고리를 공략하는 방법중의 하나로 평화감시가 있다.

평화감시

연습을 군에서 발표하는 것처럼 관성적으로만 보다가는 정작 중요한 흐름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치열한 평화감시만이 훈련과 작전의 미묘한 차이를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다. 걸프전 당시 이라크 군에 대한 폭격시점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체니와 파월이 기자들의 관심을 묶어놓고 작전의 기밀을 유지하는데 성공한다. 이 사례는 훈련과 실제 작전의 구별이 평화감시운동가들로 하여금 얼마나 고도의 집중을 요구하는지 알게 한다.

오후 4시 50분 F-15 이글기가 최초로 목표물을 향해 이륙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다시 소환될 수 있다. 공중급유기도 날아올랐다. 공중전의 돌입 시각이 점점 가까워 오고 있다. 체니는 언론매체에서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기자들은 규칙에 묶여 있었고, 지난 몇 달 동안 많은 항공기의 이동을 보아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의례적인 기동훈련으로 비쳤던 것이다. (사령관들 414쪽 보브우드워드 중앙출판사)

만일 공중전의 시작시점이 폭로되면 후세인은 전투기들이 이라크 영공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쿠웨이트에 사전 배치되어 있던 미군병력에 일제히 공격을 가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상군과 막대한 병참이 심각한 타격을 받은 상태에서 공중전만을 치러야 하므로 전쟁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될 상황이었다. 따라서 미군은 전쟁시작의 신호인 전투기들의 이륙시점을 위장하기 위해 의례적인 기동훈련을 계속해왔던 것이다.

 

▶상륙한 오키나와 31해병원정부대원이 '정조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만일 기지를 감시하던 기자나 평화운동가들이 이륙한 전투기들이 공중급유기로부터 재급유를 받지 않고 비행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기지로 돌아오지 않고 착륙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면, 그래서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전세계에 알려졌다면 애초의 전쟁계획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베드남전 당시에는 수십만 군중의 시위가 백악관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라크전 당시 백악관은 미국과 전세계에서 일어난 거대한 반미시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전쟁이란 구조는 때에 따라 단 한 명의 평화감시운동가의 집요한 노력과 인터넷과 방송같은 세계적인 네트워크에 의해 수정될게 할 수 있다. 대규모 화력만으로 고착된 전선에서 끝없는 살육만을 자행하던 1차 대전이후 전쟁의 역사는 ‘기동’을 발명해 낸 독일군에게 깃발을 넘겨주었다. 압도적 대중의 평화운동과 더불어 평화감시와 같은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기동’성의 결합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자문해 본다.

군사연습과 훈련의 감시

연습은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전쟁기획자들의 의도와 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잣대이다. 아무리 지면과 강단을 통해 새로운 전략전술개념이 논의되었다 해도 연습에 그것이 반영되지 않았다면 아직 그것은 관념일 뿐이다. 논쟁되다가 여러 요인에 의해 영원히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고 다시 되살아날 수도 있다. 때문에 현실로 존재하는 군사체계의 일부로서의 연습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연습은 그것이 어떤 연습인가에 따라 전쟁에서 혼란을 야기할 수도 승리의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잘못된 연습으로 형성된 습관은 패전이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영국군의 제식훈련은 시대에 따라 세부내용은 상당히 변화했지만 그 근본원리 면에서는 실질적으로 18세기의 것과 동일하다. 그 당시에는 우리가 아직도 연병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열과 오 그리고 밀집대형과 이동은 실제 전장에서의 전술대형이며 이동방식이었다... 그러나 현대화기의 발달은 이러한 대형과 이동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각국은 상당히 뒤늦게 그리고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야 결국 실전에서 이 훈련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각국은 평화시의 연병장에서는 여전히 대형과 이동방식 훈련을 계속했다. 프랑스 육군을 비롯한 몇몇 국가의 육군이 마침내 이를 그만둔 것은 지난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이다... 과학의 진보와 함께 무기가 점점 더 기술적으로 발달하면 훈련에 필요한 기용시간은 더욱 불충분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병사들은 불충분한 시간의 일부를 실제로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이동방법을 배우는데 낭비해야할 뿐만 아니라 이때 배운 그릇된 생각이 병사들의 정신과 육체에 너무나 뚜렷이 각인됨으로써 전투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할 위험마저 잇다. 지난 세계대전 기간중에도 전투수행중의 중압감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능력이 둔화되어 병사들이 연병장에서 학습한 위험한 습관에 본능적으로 의존하는 현상이 널리 나타났다. (현대육군의 개혁, p110~p114. 리델하트. 일조각)

독수리연습에서도 자신들이 추구하고 있는 목표와는 별개로 여전히 구태를 지속하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2004년 3월 26일 이루어진 포항 독석리 상륙훈련에서 해병대 소속 김태근 중령은 "이 상륙훈련의 지휘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해양에서 해안에 상륙하기까지의 상륙기동부대 사령관은 미해군 사령관이 맡고, 해안에 완전히 상륙이 끝나고 난 뒤의 상륙군 사령관은 한국해병대 사령관이 맡는다. 한국군의 경우에는 실제 참가부대인 해병대 1사단 7연대 상륙단에서 맡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보통 생각하는 실질적인 상륙작전은 미해군 사령관이 작전통제하는 셈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김 중령은 "그렇다고 봐야한다”라고 답했다. 상륙전 교리에서 해안선을 경계로 해군과 해병대의 지휘가 서로 나눠짐으로서 생기는 단절 현상은 오래전부터 제기된 문제이지만 군종간의 갈등은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걸프전시 체니 부통령의 보좌관을 지냈으며 미군 현대화계획의 주요 논쟁자중의 하나인 전 해군제독 윌리암 오웬스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지금까지, 해군이 해상에서 해안까지의 해군작전을 고집하고, 해병대가 해안지역 방어를 고려한 해병대작전을 고집하는 한, 지휘통제 및 고유 전투작전형태 차원에서의 해안은 해군-해병대간을 구별시킬 수 있는 '경계선'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러한 이원화는 때로는 중복현상을 나타내기도 하였으며 상륙돌격작전 효과에 대한 강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실제 해군 작전계획 담당자들은 상륙돌격작전을 불필요한 자원과 시간을 낭비하는 시대착오적인 작전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미군이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내재적 기준에 의해 본다면 이미 걸프전 직후 제기된 미해군내의 문제의식이 아직까지도 구태의연하게 반복되고 있음을 작년의 상륙훈련은 보여준다. 상륙훈련만을 분리해서 본다면 럼스펠트 국방장관을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미군현대화 계획이 아직까지 전술단위까지는 체계화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미군이 자신들의 의도를 은폐하기 위해 훈련을 위장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있으나 지금까지 그런 전례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 현재의 수준이 그들이 도달한 최선의 수준이며 만일 이와 다른 전쟁시나리오가 추진된다면 그것은 다른 징표로 나타날 것이다. 평화감시운동가들은 바로 그 점을 주시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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