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길(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평화군축팀 국장)


1. ‘주적’과 ‘직접적 군사위협’의 차이는?

▶2004 국방백서 표지.
국방백서에서는 남과 북의 화해와 통일에 역행하는 북한에 대한 ‘주적’ 개념을 사실상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국방부는 북한에 대해 그간의 ‘주적’ 표현 대신 ‘직접적 군사위협’으로 표현한 ‘2004 국방백서’를 발간하였다. 국방부는 2004 국방백서를 발간하면서 “세계적으로 ‘주적’을 명시한 나라가 없고, 북한도 남북정상회담 이후 대남 적대적 용어 사용을 자제하고 있는 점, 또 북한과 화해협력을 적극 추진하기 위해 ‘주적’ 표현을 삭제하였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는 ‘주적’ 표현과 ‘직접적 군사위협’이라는 표현이 실제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국방부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직접적 군사위협’이라면 우리 군과 국가의 군사적 대상은 바로 북한이기 때문에 이는 표현만 다를 뿐 실질적으로 ‘주적’과 하등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이는 국방부 스스로가 “주적 표현이 삭제된다고 실제 주적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해 만든 작전계획 등의 각종 대북 방어전략이나 무기 구매 등의 중기 전력투자계획 등에선 변화가 없다”, 또 “장병 교육이나 군 내부 문서에서도 '북한은 주적' 표현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강조하고 있는 데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더욱이 국방부는 “장병들에게 북한의 실체적 군사위협에 대한 정신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혀 북에 대한 적대적 대결의식을 강화해 나가고 있기까지 하고 있다.

따라서 국방백서에서 주적 표현을 삭제했다고 하는 국방부의 주장은 말장난에 불과하며 국방부는 이번에 발간한 국방백서에서도 북한에 대한 주적개념을 사실상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화해와 평화통일의 대상인 북한에 대해 여전히 냉전적인 적대적 대결의식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국방부에 대하여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이미 남한의 군사력은 주한미군의 전력을 제외하고서도 북한의 군사력을 압도하고 있으므로 더 이상 북한은 남한에게 직접적인 군사위협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국방부가 밝힌 바와 같이 북한과 화해협력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적대의식을 먼저 버려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자의적인 판단에 근거하여 북한의 직접적인 위협을 들먹이며 북에 대한 시대역행적인 적대의식을 고집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과 주한미군의 대대적인 전력증강으로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마당에 국방부가 구시대적인 대북 적대의식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반민족적, 반평화적인 행태이자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의 실현에 아무런 능동적인 역할을 할 수 없음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2. ‘협력적 자주국방’의 허구성

국방백서는 군사적 대미추종주의와 이에 입각한 첨단 전력증강계획을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2004 국방백서에 따르면 참여정부의 국가안보정책과 국방정책의 핵심기조와 중점방향으로 ‘협력적 자주국방’을 들고 있다. 백서에서는 “‘협력적 자주국방’은 우리의 ‘자위적 방위역량’을 기반으로 상호보완적인 한미동맹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백서에서는 북한 위협을 억제할 수 있는 군사적 능력을 조기에 구비하며 동시에 미래 불특정 위협에 대비한 핵심전력을 점진적으로 확보한다는 목표로 한반도 전지역을 통제할 수 있는 ‘독자적 감시?정찰능력 확보’, 전제대에 걸친 ‘실시간 지휘통제?통신체계(C4I) 구축’, ‘종심표적에 대한 전략타격능력’ 확충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향후 4년간(05-08년) 약 99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국방비를 전년 대비 11%씩 연차적으로 증원하여 GDP 대비 3.2%를 국방비로 확보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국방백서가 밝히고 있는 ‘협력적 자주국방’이란 미국의 군사전략 추종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면서 이를 합리화하고, 또한 미국의 요구에 따른 국방비 대폭 증액과 대규모 전력증강을 정당화하려는 기만적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북한의 군사력을 압도하고 있어 ‘자위적 방위역량’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그런데도 협력적 자주국방에 따라 한반도 전역에 대한 독자적 감시?정찰능력과 종심타격능력을 확보하고 실시간 탐지?타격능력을 구축하겠다는 것은 대북 선제공격계획인 미국의 한반도 작전계획 ‘5027’에 따라 대북 타격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미래 불특정 위협’이라는 것도 중국을 포위 봉쇄하려는 미국의 동북아패권전략에 따라 대중국 대비 전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듯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이름 아래 추진되는 대규모 전력증강계획은 미국의 한반도 및 동북아패권전략을 철저히 추종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국방에서 ‘자주국방’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북한에 비해 우리의 군사력이 취약해서가 아니다. 자주국방 문제는 바로 군통수권의 핵심인 우리 군의 작전통제권을 미국이 행사하고 있고 우리 군이 수직적인 한미연합지휘체계에 편입되어 독자적인 작전능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한 점, 우리 군의 무기체계 등이 철저히 미국에 의존되어 있는 현실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주국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종속적인 한미관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전면 개폐하고 작전통제권을 전면적으로 환수하며 수직적인 한미연합지휘체계를 해체해야 한다.

그러나 국방백서의 협력적 자주국방 추진계획을 보면 그 어디에서도 이에 대해서는 직접적 언급이 없다. 이는 백서에서 주장하는 자주국방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기만적인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협력적 자주국방 추진 계획에 따라 앞으로 남한이 미국산 첨단무기로 대대적인 군비증강에 나선다면 대미 군사적 종속이 심화되는 것은 물론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가를 자극할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이치이다. 한반도와 동북아는 무한 군비경쟁과 항상적인 전쟁위기 상황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또 국방부가 미국의 요구에 편승하여 이미 세계 10위권의 국방비를 대폭 늘리겠다는 것은 제한된 정부재정에서 민생?복지분야 예산을 위축시킴으로써 서민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일이다. 이는 또한 친미사대적이고 반북적인 국방관계자들과 군수산업체의 배를 불리고 이들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일이다.

이처럼 국방부가 미국의 군사전략을 추종하여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성격을 침략적으로 바꾸고 첨단 전력을 대폭 증강하게 되면 국방백서에서 참여정부의 국가안보의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동북아의 공동번영’은 한낱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진정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동북아의 공동번영을 원한다면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국방정책의 핵심기조와 중심방향을 철회하여야 하며 그에 입각하여 추진하고 있는 무모한 군비증강 계획 역시 즉각 중단하여야 한다.

3.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이 갖는 퇴행성

국방백서의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이란 주한미군 역할확대와 침략동맹으로의 한미동맹 전환을 허용하는 퇴행적 전환일 뿐이다.

국방부는 백서의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이라는 항목에서 한?미동맹 발전 토대 구축을 위하여 용산기지 이전, 미2사단 재배치, 주한미군 감축, 군사임무 전환과 연합군사능력 발전, 연합지휘체제 연구 등을 추진하고,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여건 보장을 위해 방위비 분담, 민원해소 및 훈련여건 개선, 한미 유대강화 활동을 지속하며, 미래 한?미동맹 발전을 위하여 2005년부터 ‘한미안보정책구상(SPI)'회의를 가동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미간 협의 내용과 그 추세는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이 호혜평등한 한?미관계 수립의 핵심적 요소인 군사적 자주권 확보와 한반도 평화 증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첫째,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FOTA) 등에서 미국의 요구가 일방적으로 관철됨으로써 군사적 종속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FOTA회의 의제인 용산기지 이전, 미2사단 재배치, 10대 군사임무의 한국군으로의 전환, 주한미군 감축, 연합군사능력 발전, 연합지휘체제 연구 등은 대부분 미국의 전략변화, 즉 ‘군사전략의 변화, 군사변환을 통한 전력의 첨단화?기동화?경량화,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에 따른 것이며, 회의 결과도 미국의 요구가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방향으로 귀결되고 있다.

일례로, 한국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는 용산기지 이전도 실상은 미국의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의 일환이며, 협정의 내용도 90년 협정보다도 개악되었을 정도로 굴욕적이기 짝이 없으며, 그 절차에서도 위헌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군사적 자주권 확보의 선결과제라고 할 수 있는 한미연합사?유엔사의 해체나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는 연구과제로 돌려졌을 뿐이다.

이처럼 FOTA회의 등에서 미국의 요구가 일방적으로 관철됨으로써 우리의 군사주권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군사적 종속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최근의 한미간 협의는 주한미군의 영구주둔 명분과 기반을 확보해 주는 과정으로 되고 있다.

국방부는 FOTA회의와 이를 대체하는 한미동맹 안보정책구상회의(SPI)를 통하여 “주한미군의 안정적?장기적 주둔여건을 조성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용산기지 이전협정 전문에는 적시 이전이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체제에 기여(contributing to an enduring structure of USFK)”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용산 등 미군기지 재배치가 주한미군 영구주둔의 물리적 기초를 마련하는 의미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미양국은 또한 SPI회의 등을 통하여 주한미군의 아시아?태평양 신속기동군으로의 역할확대를 의미하는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조기에 매듭지으려 하고 있다. 대북 억지력으로서 주한미군 주둔 명분이 이미 상실된 조건에서, 한미안보공동선언과 주한미군 해외출동 사전협의제 등을 통해 주한미군 역할확대가 용인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주한미군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평화와 안전’으로 포장된 새로운 주둔 근거, 즉 영구주둔의 명분을 확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방부가 “미국과의 동맹관계 유지?발전은 앞으로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통일과정, 그리고 통일 이후 우리나라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핵심적 안보요소가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은 한미간 논의의 결과가 어떻게 귀결될 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셋째, 주한미군 재배치와 역할확대, 한미동맹의 지역동맹으로의 전환은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것이다.

공군기지와 해군항을 갖추고 있어 기동성이 보장되는 평택으로의 주한미군 재배치는 대북 선제공격과 대중국 봉쇄를 쉽게 하려는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에 따른 것이다. SPI회의 등을 통한 주한미군 역할확대와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의 제도화 역시 대한민국을 주한미군 해외출동의 상시적 전초기지 또는 병참기지로 삼으려는 미국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이는 50여 년간 유지되어 왔던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대북 방어적 성격이 아시아?태평양을 포괄하는 침략적 성격으로 근본적으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주변국의 반발로 인한 한반도 및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과 갈등은 불가피하며, 최악의 경우에는 한반도가 원치 않는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생존과 안위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런 사안을 정부가 ‘안보’라는 핑계로 밀실에서 일방적으로 처리하려 하고 있다. 정부가 SPI 1차회의 직후 이른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문제 협의 과정에 대한 언론 브리핑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 그 근거다.

정부가 ‘전략적 유연성’을 이미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조건에서, 이를 밀실에서 다룬다고 하는 것은 용산미군기지 협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문제에서도 미국의 요구가 일방적으로 관철될 것이라는 점을 예고해 준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를 능동적으로 활용’하여 한미동맹을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킨다는 정부의 방침은 미국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끌려감으로써 군사적 종속을 심화?고착화시키고 한반도 및 동북아를 항상적인 전쟁위기 상황으로 빠트리는 한미동맹의 퇴행적 전환을 호도하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것이다.

이에 우리는 정부가 미국의 주한미군 역할확대와 한미동맹의 퇴행적 전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고 군사적 자주권 확보에 즉각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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