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옥(한성대 교수, 사회학)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는 무엇인가?

2005년 입춘이 지났건만 추위는 물러갈 줄을 모른다. 최근 지구 온난화 현상 때문에 추운 겨울이 사라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런 기대 때문인지 올 겨울 바람이 더 맵싸게만 느껴진다. 그런 맹추위 속에서 서울역에는 추위를 이기려고 술 취한 노숙자의 고통으로 차고 넘친다. 노숙자 문제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노숙자 문제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절감하게 하고, 그들을 둘러싼 인권 환경은 한겨울 체감온도를 더욱 떨어뜨린다.

차갑기만 한 메마른 겨울 교정 곳곳에는 노란 포스터가 걸려 있다. 멀리서 보아도 눈길을 끌만큼 화사한 보색대비로 작성된 광고문은 뜻밖에도 '제6회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 개최 광고였다. 광고 색깔과 문안의 불일치는 내용을 더 심산스럽게 만든다.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는 무엇인가? 제목만으로 여러 가지 의문을 낳게 하는데 미심쩍은 단체들이 적지 않다. 그 중 하나가 '국립민주주의기금'이다. "한국에 언제 이런 국립기관이 설립되었던가?" 궁금하여 단체를 찾아보니 'The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였고 우리가 흔히 NED(이글에서는 'NED'로 부른다)라고 불러왔으며, 직역하면 '민주주의를 위한 전국재단'이라고 불릴 수 있는 미국 단체이다.

'국립민주주의기금'이라니? 외무부가 없는 미국에서는 국무성(the State Department)은 세계 통치(?)의 사령탑이고 미국의 국무장관은 세계 통치의 사령탑의 대리인이라더니 급기야 미국의 국가기관이 한반도 문제에 후원하다니, 역시 미국이다. 미국의 기관을 아무런 표시도 없이 '국립민주주의기금'으로 소개하는 이 행사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서강대학교에서 개최되는 '제6회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다.

NED는 누구인가?

NED는 1983년 로널드 레이건 정부 하에서 설립되었다. 미국의 개발NGO들에서 20년간 일해온 미국동포 유정애 선생에 따르면 1970년대 후반 CIA에 관한 온갖 부정적인 사건들이 폭로된 직후로, CIA가 수십년 동안 은밀하게 해왔던 활동들을 '민간'단체의 틀을 빌어 공공연하게 하겠다는 것이 NED의 설립 구상이라고 한다. 이런 이유로 NED의 자금은 연방정부에서 직접 나옴에도 불구하고 미 의회는 NED를 민간, 비영리 법인으로 승인했다.
 
카토 연구소에 따르면 NED는 "AID(국제개발처)나 USIA(미국 공보처)의 영역 밖에 있는, 그리고 이 방법이 아니라면 CIA의 비밀 작전을 통해서만 가능한 활동인 외국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소위 민간 신분을 이용"해왔다. NED 설립 법령의 초안 작성을 도왔던 알렌 와인스타인은 "우리가 오늘날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은 CIA가 25년 전에 비밀리에 했던 일들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NED의 적극적인 지지세력인 헤리티지 재단에 따르면 "구 소비에트연방, 중국, 쿠바, 이란, 이라크, 니카라과, 베트남의 민주화 운동에 엄청난 공헌을 했던" NED는 "공산주의의 포로가 된 국가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미국이 엄청나게 위험하고 값비싼 군사 작전에 나설 필요 없이 이들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도록 할 수 있는 비용-효율적인 방식"이었다.
 
NED의 가장 최근의 활동은 2003년 실패로 끝난 쿠데타 시도 전 몇 주, 몇 달간에 베네수엘라 반대 그룹에 87만 7000달러 이상을 집중적으로 제공한 것이다. 특히 NED는 반대편 노동 사보타지를 이끌고 쿠데타를 선동했던 페드로 카르노마 에스타냐와 긴밀하게 일했던 베네수엘라 노동조합에 15만 4000달러를 주었다.

그러한 NED와 한국의 북한관련 단체들과의 인연도 깊어지고 있다. 한편, 북한인권문제를 다루고 있는 '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등 5개 단체는 NED자금을 지금까지 9억원 이상 지원받아 사용해왔고, 그 댓가로 미국에 북한의 인권상황을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지원금을 확대하기 위해 북한의 인권상황을 일부 증폭시켜 보고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북한인권시민연합 같은 단체는 외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NED 홈페이지의 관련단체 지원목록에 버젓이 실려 있다.

                    북한문제 관련단체에 대한 NED의 지원 현황

단체명(설립연도순)1999년2000년2001년2002년2003년총계
 북한인권시민연합 -93,000 151,865 105,000 349,865 
북한민주화네트워크 - 40,00040,000  60,000 60,000 200,000
 북한내정치범돕기시민연합  78,000    78,000
 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     75,000 75,000
북한인권정보센터      40,000 40,000

<단위 :달러 / 출처 : www.ned.org>

그런데 2003년 한국의 4개 단체는 NED로부터 28만 달러에 상당하는 금액을 지원받았는데, 이는 중국 관련 단체들이 받은 약 2백24만여 달라의 1/10 수준이다. 한국의 북한 관련 단체들은 NED 외에도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단체나 일본의 보수적인 단체나 기관들과도 연계가 되어 있어서 그 지원규모를 제대로 알기란 쉽지 않다. 특히 NED의 사실상의 성격이 미 CIA의 외곽기관이고 국립기관이므로 이 기관의 지원을 받고 있는 4개 단체는 한국내 NGO로서의 위상은 이미 흔들리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급기야 2004년 10월 미국에서는 '북한인권법'이 발효되어 NED의 위상은 더욱 높아져 탈북자나 북한인권관련 단체들의 맏형(Big Brother)로서의 지위와 역할은 더욱 제고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인권법의 모순성: 미국의 북한인권법에는 북한인권이 없다

현재 한반도에는 인권 전쟁 발발 전야가 아닌가 한다. 그 신호탄은 2002년 3월 14일, 중국 베이찡에서 올랐다. 재중 스페인대사관에 25명의 탈북자가 진입하면서 세계적 이목을 끌었을 때 그들을 진두지휘했던 주역들은 독일의사 폴러첸 씨를 비롯한 10개 정도의 국내외 탈북자 관련 NGO들이었다.

또한 제2의 신호탄은 2004년 10월 미국에서 선포된 '북한인권법'이다. 이 인권법에 의해 미국 NED 및 한국이나 미국의 보수기독교세력이나 북한 전복을 책동하는 국내외 단체들은 가물에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인권'의 깃발 아래 북한 인권 문제와 북한 민주화 문제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북한인권법은 남한 북한문제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이상, 남북관계에 연동된 북미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과연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말해 그 북한인권법에는 북한인권이 없다. 북한이 북한인권법을 만든 것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인권과 자유를 신장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 목적에 따라 북한주민의 인권향상, 궁핍상태의 북한주민의 지원, 탈북자의 보호 등과 같은 내용을 가진 3개의 본문을 가지고 있다.

구성만 보면 북한주민의 인권이 날로 향상될 좋은 내용이다. 그런데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 북한주민의 인권 향상을 위하여 단파라디오를 북한에 반입하고, △ 북한에 전해지고 있는 인도적 지원을 모니터링하며, △ 북한의 난민이나 고아, 인신매매 피해자를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주민의 인권을 향상시킨다는 것이 단파라디오 보급과 대북 라디오 방송시간을 하루 12시간으로 늘린다는 게 전부라니…… 오히려 핵심은 북한주민이 아니라 탈북자에 대한 보호조치에 더 강조를 두고 있다.

그러면 미국은 왜 이러한 본질적 인권의 내용 없는 북한인권법안을 만들었을까? 북한인권 향상이 진실한 이유는 아닌 것 같다. 2003년의 북한자유화법안의 주요 목표였던 북한 붕괴의 내용은 인권법안에 담겨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의 인권상황이 바뀌지 않을 때 북한에 대해 국제적인 압력을 가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압력의 최종적 의지는 북한의 붕괴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이러한 인권법을 만들었듯이 다른 불량국가들, 특히 소위 '악의축'국가들로 찍힌 이란, 이라크를 비롯한 쿠바에 대해서도 자유화 또는 민주화법들이 이미 만들어져 있다. 설령 미국이 그러한 법을 만들었다고 하여 곧바로 전쟁상황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미국은 그러한 법의 성립을 계기로 국제 사회에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인권 전쟁을 계기하는 토대로 삼곤 했다. 북한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로 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 인권 실태의 증거로 삼고 있는 탈북자 문제에서 짚어내야 하는 것은 첫째, 북한이 인권 상의 문제가 있다고 하여 인권 상황 때문에 1990년대 탈북이 발생한 사례는 지극히 소수라는 점이다. 즉 북한 인권과 탈북 문제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둘째, 북한 인권이 1990년대 악화된 데에는 북한 자체의 책임과 함께 미국 역시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은 반드시 지적되어야 한다. 경제난에 처해있는 사람에게 인권은 사치이다. 1990년대 경제난을 악화시킨 데에는 미국의 1994년 북미제네바합의서 불이행이 주범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셋째, 탈북자 문제를 해소하고 북한 인권이 향상되려면 일자리가 생기고, 생산이 돌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경제가 살아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도적 지원이 확대되고, 남북경제협력이 활성화되는 것이 필수조건이다.

넷째, 북한의 운명은 한반도 전체의 문제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그저 눈의 가시 같은 존재, 즉 '불량국가'이겠지만, 한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붕괴는 한반도 공멸로 이어진다. 또한 미국에게는 북한주민이나 탈북자들, 특히 반인권, 반평화적 상황에 처해있는 재외 탈북여성들이 정치적 이용 대상일지 몰라도 그들은 분단의 피해자이자, 우리에게는 동포이고 한반도의 소중한 구성원이다.

과연 누가 북한 주민의 인권을 어렵게 만드는가

2005년 연초부터 중국과 인접한 북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반체제 조직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판하는 격문을 붙이고 반체제 성명서를 낭독하는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을 처음 입수되었다고 하여 잠시 소동이 인 적이 있다. 이 사건의 진위는 밝혀지지 않은 채, 다만 동영상 촬영에 국내외 북한탈북자 관련 단체나 일본 극우 방송사가 깊이 개입되어 있다는 소문만 무성하다.

모든 시대 모든 체제에는 반체제세력이 있어왔다. 설령 60년간 한 몸 한 마음의 '사회주의적 대가정'을 이루었다고 자처해온 북한 사회도 경제난.에너지난이 10년째 지속되자 새어나가는 민심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해외를 통하여 이미 북한 사회에도 자본주의의 다양한 정보가 유입되는 현상은 과거의 '모기장 요법'만으로 막을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소동은 더 빈번히 일어날 수 있다. 그 결과는 한반도 불행의 자초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2002년 중국 북경 스페인대사관 사건 당시 예견한대로 그러한 기획망명 사건은 더욱 빈발해졌다. 현재는 탈북관련 단체들이나 북한민주화관련 단체, 상업적 브로커들에 의해 명실상부하게 탈북도 기획하는 소위 '기획탈북'에 따른 탈북자가 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일들이 북한 주민의 인권이나 해외 체류 탈북자의 인권을 향상에 도움이 되고 있는가? 중국의 기본 입장에 인권은 국가주권 아래에 있다. 또한 경제난에서 아직 헤어나가지 못한 채 미국과의 대결적 상황을 해소하고 못한 채 경제봉쇄마저 당하고 있는 북한이 '선 인권.후 주권'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야말로 인간에게서 인권은 가장 중요한 권리이지만, 인권의 핵심은 먹고 사는 문제와 일하는 권리이며 나아가 정치적 자유이다.

한국의 진보진영이 북한의 인권이나 민주화를 얘기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소위 일부 진보론자들이 있다. 그런데 현재 북한의 인권이나 민주화논의가 어느 좌표에 서있는가? 체제가 붕괴되고 난 다음 인권이나 민주화 논의는 존재할 수 없다. 굶어 죽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민주화를 얘기하는 격이 아닐 수 없다. 진정한 인간이라면 먼저 살려놓고 봐야 하고, 그리기 위해 우리는 '햇볕정책'의 진정성은 흡수통일의 연장이지만, 평화공존의 길을 열어놓을 수 있다고 믿기에 햇볕정책을 지지해왔다.

한편 중국에서 탈북자들의 기획망명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일반 탈북자들의 생존 조건은 더욱 절박해졌다. 탈북자들은 임금을 떼 먹이는 일뿐만 아니라, 일자리마저 찾을 수 없다. 탈북아동들은 학교조차 다닐 수 없다. 심지어 중국마적단이나 인신매매단에 여성들이 팔려다녀도 호소할 데도 없다. 탈북 경제유민이 다시 고향에 돌아가더라도 납치되어 나오는 일마저 벌어지고 있다.

또한 현재 탈북자 관련 사회단체나 브로커 등은 북한지역을 넘나들면서 소위 '구출'작전, 기획탈북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과연 그런 사람들과 접촉한 북한 주민들이 당국에 발각된다면, 그러한 방식의 기획탈북을 반체제, 전복활동으로 규정하고 있는 북한 사회에서 온전할 리가 있는가? 따라서 그들의 맹동적인 활동은 북한 사회를 민주화로 이끈다거나 인권 사회로 만들기보다는 더욱 닫힌 사회로 만들게 될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햇볕정책'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등의 역사를 교훈 삼아야 한다. 외세에 의한 체제 전복은 민중의 더한 인권 침해를 가져왔을 분이다. 반대로 민주화는 해당 민중들이 선택할 때 가장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1970, 80년대 경험을 돌아봐도 그렇다. 아무리 한국이 군부독재에 처절한 시대를 거쳤다고 하더라도 외부에서는 도움을 줄 수 있으나, 결국 한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한국 민중 자신이었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이번 서울에서 개최되고 있는 제6회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를 속 편하게 바라볼 수 없다. 진정 북한의 인권과 탈북자들의 인권을 걱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우선 사람을 살려놓고 볼 일이다. 사람의 목숨이 없고 난 다음에는 인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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