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평화를만드는여성회 일상의평화센터 소장)


15일 개성공단과 역사의 현장인 선죽교에 다녀왔다.
지난 2000년 8월 남북경협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된 후 4년 만에 처음으로 주방기구공장인 '리빙아트'의 개성공장 첫 제품 생산을 축하하는 역사적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다. (개성공장에서 나오는 상품의 공식명칭은 SONOKOCOUSINEWARE이다)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기 위해 아침 7시 10분까지 경복궁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통일부 등 정부관계자, 국회의원, 중소기업인, 언론인, 그 밖의 초청인들 모두 합해 공식방문단 410명이 15대의 차량에 나누어 통일로를 지나 남과 북의 출입경사무소(CIQ)를 지나 북측 비무장지대 바로 위에 있는 시범단지에 도착한 것은 예정보다 약간 늦은 오전 11시 경이었다.

▶리빙아트 개성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평화여성회 간부들.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
[사진제공 - 김정수]
내가 탄 버스에는 중소기업관계자들이 대부분 탑승을 했고 내 옆에 앉은 분도 대구에서 동료들과 함께 올라온 중소기업(건축업)의 대표였다. 개성은 두 번째 방문이라고 하면서 현대아산에서 많은 배려와 좋은 조건을 제공하니 투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남측 출입구에 도착해 절차를 밟으며 보니 낯익은 국회의원들이 꽤 많이 보였다. 잠시 기다리는 사이 어떤 기업인은 동료에게 "국회에서 싸움하던 사람들이 왜 여기에 왔지?"하며 웃는다. 그러고 보니 이른바 야당의 저격수라고 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이들도 남북의 화해와 교류협력에 관심을 가지고 있나(?)'하고 생각하니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또 보수언론인들의 얼굴도 보여 '이들은 이번 방문을 어떻게 쓸까'하는 약간의 우려도 들었다.

출입경(국경이 아니라 출입국이 아닌 출입경이라 한다) 절차를 하는 장소로 가는데 어떤 사람이 많이 들어본 목소리로 "북한에 방문하십니까?"하기에 뒤돌아보니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나도 웃으며 "첫 방문이시지요? 축하합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잘 진행되기 바랍니다"하고 대답했다.
 
다행히 날씨는 춥지 않았고 행사시간에는 비도 내리지 않아, 또 현대아산 직원들이 이것저것 세심하게 준비해서 첫 제품생산 기념식이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리빙아트 개성공장 내부 작업모습. 북측 노동자 300여명이 일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정명수 통신원]
남북의 관계자들과 정동영 장관의 축사 등으로 마무리하고 공장을 견학했다. 2층으로 지어진 공장의 준공식도 함께 하는 자리였는데, 넓은 공장 안에서 약 350여명(여성은 약 50명 정도)의 북측 노동자들이 주방기구(냄비)를 만드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완전히 분업화되어 초기에서 완제품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생산라인이 배치되어 있었다.

주로 개성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은 오전 8시 30분까지 출근해서 오후 5시 30분까지 일하고 점심은 1시간이라고 한다. 한 방문객이 어떤 여성노동자에게 무언가 질문하니 "일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하여 열심히 일하는데 어수선 떠는 우리의 모습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사무직원이라는 19세의 앳된 얼굴을 한 여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였는데, 마치 큰 조카 같아서 아주 귀엽고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이어서 처음으로 생산된 제품의 출하식(트럭에 물건을 옮기는 일)을 마친 트럭이 남측으로 출발하는 것을 뒤로 하고 우리는 개성 시내의 선죽교가 있는 자남산 여관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옮겼다. (저녁 늦게 집에 들어와 뉴스를 보니 이때 출하된 트럭 한 대분의 새 제품이 롯데백화점에서 매진되었다고 한다)

비가 조금씩 내려서 차창이 흐려져서 계속해서 휴지로 닦아내며 밖을 보았다. 개성공단의 1차 부지는 100만 평으로 한창 땅을 고르고 여기저기에서 공장을 세우고 터를 닦고 기차역을 건설하는 기초작업을 하고 있었다.

공단터를 지나 '산업다리'를 지나니 점차 시내로 가까이 접근하고 개성주민들을 창밖으로 볼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상점들, 학교들을 지나면서 'OO 도서관'으로 팻말을 붙인 곳이 멀지 않은 곳에서 두 군데 보이고 안으로 책들이 꽂혀있는 것도 보였다. '어린이들이 책을 많이 빌려다 보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측 사람들도 창밖으로 남쪽에서 온 사람들을 호기심으로 바라보고 나도 버스 창밖으로 열심히 바라보며 2년 전 금강산(남북여성통일대회) 이후 처음으로 보는 북녘의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개성 선죽교를 둘러보는 참가자들. [사진 - 통일뉴스 정명수 통신원]
점심 연회장소인 자남산 여관으로 가는 길목에서 선죽교를 언뜻 보았는데, 한 눈에 그곳이 선죽교임을 알아보았다. 생각보다 작은 다리였지만, 사진에서 많이 보아서인지 무척 정답고 사랑스런 느낌이 들었다.

 커다란 연회장소에 도착하니 아주 화려한 식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식탁에는 기업인, 의사, 통일부 직원과 북쪽에서는 개성공단 관계자 3명이 동석하였다. 모두들 식탁에서 남북경협과 첫 제품을 축하하고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축배의 잔이 울렸다.

조금 늦게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이 도착해서 축배를 하며 너무 감격해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자신의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도 마음이 뭉클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때 도올 김용옥 교수의 축배의 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 김용옥 교수는 고려말 선죽교에서 살해당한 정몽주와 현대아산의 정몽헌 회장은 모두 역사의 변화를 위해 희생한 고귀한 분들이라며, 무릇 옛 문명지에서는 제일 먼저 토기가 발굴되는데 개성공단의 첫 제품이 그릇(냄비)인 것은 새로운 평화의 문명을 예고하는 상서로운 징조로 보인다고 한다. '역시 철학자는 달라'하면서 옆에 앉은 북측의 인사에게 김용옥 교수의 활동에 대해서 소개했다.

북측의 참사관은 정동영 장관의 축사가 북측의 인민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주기에는 한참 부족하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개성공산에 대해서 개성주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이주민들(100만평 지역 내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슬픔에 대해서 말해, 나는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사과하고 남쪽에서도 대규모 국책사업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이 있다고 알려줬다.

남북관계의 개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여성운동에서 말하는 서로에게 힘주기(empowerment) 차원에서 남북이 서로에게 따뜻한 힘과 애정을 주는 것을 통해 평화로운 미래를 열어나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오후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예정된 승양서원 참관은 취소되어 서원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무척 아쉬웠다. 비 내리는 가운데 고풍 깃들인 선죽교, 하마비, 표충비를 구경하고 사진 몇 장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돌아오는 길에도 휴지로 계속 창문을 닦으며 밖의 거리와 사람들을 바라보며 하루의 일정을 마감했다. 특히 길에서 우리에게 손을 흔들던 어린이들, 얼굴은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그들에게서 계속 어린 조카들의 모습이 교차되며 뭔가 애틋한 그런 마음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잘 알지는 못해도 이렇게 느끼는 친밀감이 같은 민족으로 가지는 깊은 정서적 공감이 아닌가 한다. 역시 한반도의 평화로운 통일을 열어가기 위해서는 오고가는 여러 절차와 기다림 속에서도 크고 작은 만남과 대화들이 계속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리빙아트에서 생산된 제품이 매진되었다는 소식에 기뻐하는 것도 정동영 장관이 축사에서 말한 대로 그것이 '남북의 평화와 화해를 듬뿍 담아내는 그릇'이 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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