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KAL858기 사건 17주기를 맞아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통한의 1987년 11월 29일의 KAL858 실종사건은 국내외에서 촉망받는 건설기술자인 남편의 죽음과 함께 행복한 한 가정을 송두리째 파괴해버렸습니다."

29일 KAL858기 사건 17주기를 맞아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대책위'(대책위)는 오전에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추모제를 가진데 이어 오후 3시부터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2'에서 토론회를 개최했다.

'감추어진 진실, 인권 그리고 교회'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마당에서 'KAL858기 가족회'(가족회) 임옥순씨는 '증언'을 통해 당시 현대건설 전무였던 남편 김덕봉씨가 "사체나 유품 하나 없이 동승한 115명과 함께 비행기가 아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며 당시의 참담한 심경을 그대로 전하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임옥순씨가 체험한 6가지 의문점

▶임옥순씨가 눈물을 흘리며 증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기조발언를 한 김병상 신부.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임옥순씨는 눈물바람 속에서도 실종자의 가족으로서 자신이 직접 느낀 이 사건에 대한 의문점들을 조목조목 제기했다.

첫째, 1시간이면 충분히 KAL858기의 실종을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이 공항에 마중나올 때까지 6시간 30분동안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점.

둘째, 올림픽 방해 목적이었다는 발표와 달리 대통령 선거를 18일 앞두고 이 사건이 발생해 결과적으로 노태우 대통령 당선에 도움이 된 점.

셋째, 실종 비행기 수색은 건성이고 실종 3일만에 북한 범행으로 몰아간 점.

넷째, 정부가 조기에 비행기 수색을 중단하고 유가족들을 상복을 입힌 채 북한 규탄대회에 동원하는 등 노골적으로 정치에 이용했고 언론은 이들의 대변자 역할에만 충실한 점

다섯째, 가족조차 모르게 사건발생 50일만에 사망신고를 한 인권유린.

여섯째, 중간 기착지 아부다비에 내린 사람들 13명의 신원을 밝히지 않은 점.

임옥순씨는 "그동안 의로운 각계각층의 도움으로 17년이나 외면당했던 이 사건의 진상규명은 이제 본격화되기에 이르렀다"며 "정부와 국정원은 또 이 사건을 뒤에서 음모한 자들에게 더 이상 역사를 왜곡하지 말아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임씨는 "이를 계기로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새로운 남북관계 개선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수지김 사건과 너무나 비슷"

이에 앞서 대책위 공동대표인 김병상 신부는 기조발언을 통해 "그리스도의 근본정신이 인간의 존엄성"이라며 "인간의 기본권이 훼손되었을 때,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힐 때 기독인들은 정말 분연히 일어나서 구해주어야 하고 또 바로잡아야 하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어야 하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어야 하는 절대절명의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상 신부는 "일이 우리 혼자만의 일이 아니고 전 국민의 일인데, 그 중에도 종교인들이 좀더 연합해서 힘을 모아 일을 추진하고 여론도 확장시키고 관심도 불러일으키고 꼭 밝혀 질 수 있도록 더 앞장을 서야한다"며 "그런 점에서 종교의 연대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당부했다.

▶수지김 사건의 사례에 대해 발표하고 있는 이덕우 변호사(맨 왼쪽).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수지김 사건'에 대해 사례발표를 한 이덕우 변호사는 이 사건의 전말에 대해 소개하고 "수지김 사건을 담당하면서 혼자 힘으로는 절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며 언론인, 법조인, 유족들, 담당검사 등 "각자의 역할이 다 그런대로 맞아 떨어져서 된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심재환 변호사는 "수지김 사건과 KAL858기 사건은 구조나 진상규명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이나 경과가 너무나 비슷하다"며 "또한 이 사건이 조작되었던 동기, 진상규명 작업에 대해서 저항하고 계속 은폐하려고 노력해왔던 국가권력의 불의함, 파렴치함이 너무도 비슷하다"고 지적하고 "KAL사건에 대한 전형적인 사례와 교훈을 얻게된다"고 평했다.

"이경우는 조작됐다"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 첫 토론자로 나선 신동진 KAL858기 가족회 사무국장은 'KAL기 사건은 왜 의혹사건인가?'라는 제목으로 그간 종합한 이 사건에 대한 의혹점을 간략히 제시했다.

▶기조발언과 사례발표, 증언에 이어 토론자들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왼쪽부터 사회자 심재환 변호사, 신동진 국장, 박영대 소장.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신동진 사무국장은 먼저 안기부측이 KAL858기가 폭파되었다는 물증으로 들고 있는 구명보트와 인양된 동체조각이 모두 비행기의 폭파를 증명하기보다는 폭파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반박했다.

또한 초동수사시 사고 현장에 대한 수색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미얀마정부가 국제민간항공기구에 공식보고한 보고서에 추락지점에 대한 제보가 상세히 명시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점을 수색하지 않은 사례 등을 들었다.

신 국장은 미리 김현희와 김승일을 범인으로 단정하고 나중에서야 사건 시나리오가 미리 언론에 보도된 점등을 들어 "언론보도는 사전공작의 유력한 증거"라고 주장하고 안기부가 김현희와 김승일에 대해 사전에 포착하고 있었거나 그들이 안기부 공작원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최근 대책위가 영상물로 폭로한 바 있는 김승일이 사용한 하치야 신이치 여권을 위조했다고 발표된 '이경우=미야모토 아키라'에 대해서 "당시 안기부 발표로는 제주 4.3사건의 핵심인물이자 북한의 거물급 간첩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일본과 제주도를 취재한 결과 조작됐음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경우는 제주 4.3사건 이전에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거물급 간첩이 아닐뿐 아니라 재일민단 계열의 반공주의자와 7년간 동거했으며, 북한이나 조총련 측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신 국장은 여러 의혹들을 제기하며 "언론들이 이 사건과 관련해서 너무나도 많은 의혹들에 치이다보니 이제는 웬만한 의혹들에 대해서는 눈에도 차지 않아하고 새로운 의혹만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이제 언론계, 학계, 법조계, 정계에서 본격적으로 이 의혹을 푸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김현희 이미지 조작과정에 기독교 역할 커"

'감추어진 진실, 인권 그리고 교회'라는 주제로 두 번째 토론에 나선 박영대 (사)우리신학연구소 소장은 "감추인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하며 "17주기를 맞아 이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공정하게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영대 소장은 한국 천주교회가 2000년 12월 3일 발표한 과거사에 대한 반성 문서인 '쇄신과 화해'중 "우리 교회는 광복 이후 전개된 세계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빚어진 분단 상황의 극복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소홀히 한 점을 반성하고 이 과정에서 생겨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마음 아파합니다"라는 부분을 적시하며 KAL 858기 사건이 이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 교회는 주저말고 적극적으로 예언직을 수행해야 한다"며 만일 이 사건이 공작이라면 가족들 뿐만 아니라 김승일, 김현희 역시 희생자이며,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하고 국제 경제 무대에서 봉쇄함에 따라 최악의 상태가 된 북한 경제 상황 때문에 굶주리고 병들어 죽어간 많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특별히 김현희에 대한 이미지 조작과정에서 그리스도교가 했던 역할이 무시할 수 없이 컸다"고 반성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회 안에서도 진실이 밝혀지길 두려워하는 세력이 있다"며 최근 보수교단의 국가보안법 사수집회 등의 행태를 비판하고 "개신교와 천주교의 진보적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더 연대해 진실 밝히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들의 분발 다짐하자"

토론자들의 발표를 마치고 일반 참가자들 중 윤영전 평화통일연대 공동대표는 "87년 당시 김대중, 김영삼 양김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데 안기부가 이 사건을 조작했을 것"이라며 "KAL 음모사건은 박철언의 작품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50여명의 참가자들은 발표에 귀를 기울였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향린교회 교우라고 자신을 소개한 심병호씨는 "진실이 밝혀지기 위해서는 홍보작업을 좀더 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당사자인 가족들이 열성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의문사위원회 조사관으로 활동한 바 있는 조영민씨는 "당장 입법화가 문제"라며 "어려울수록 국가기관에서 법적 권한을 가지고 조사해야 파급력이 크다"고 말하고 "국정원 발전위의 진정성이 의심되더라도 일단 들어가야 하며 입법화가 늦춰질 경우에도 대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 피해가족은 "오늘 가족들이 몇 사람 나오지 않았다"며 "가족들의 분발을 다짐하자"고 말하고 "많은 사람이 올 수 있도록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며 집행부의 신중한 일처리를 당부했다.

이미 당시의 안기부의 수사결과 발표의 상당부분이 허위임이 명백히 밝혀졌고, 숱한 의혹들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KAL858기 사건이 17년이 지나도록 전면 재조사에 착수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듯 이날 토론회는 정부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높았다.

신동진 가족회 사무국장은 오는 12월 10일 오후 11시 35분에 방영되는 KBS1 TV 열린채널에 대책위에서 제작한 'KAL858 조작된 배후'라는 시청자 참여프로그램이 상영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차옥정 가족회 회장은 "오늘은 추모행사니까 가슴이 아프고 새삼스럽지만 그래도 우리가 거부한 위령탑에서가 아니라 시청앞에서 행사를 하니 좋았다"며 토론회에 대해 "가톨릭 쪽에서 박영대 소장이 나와서 이야기해주니까 앞으로 힘이 더 실어지는 것을 느꼈고, 이덕우 변호사가 실제 있었던 수지김 사건에서 경험한 걸 이야기 해주니까 도움이 됐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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