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한국민권연구소 연구위원)


지난 11월 1일부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 임무를 한국군이 맡고 있다. 미군이 50년 넘게 수행해온 공동경비구역의 임무를 한국군이 전적으로 맡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40여명의 주한미군 공동경비구역 경비 대대는 앞으로 3~4년 간 국군과 주한미군 간 연락 업무 등을 담당하게 된다는 보도가 이어졌으며, 국방부 관계자는 “JSA 경비 임무의 이양은 ‘자주국방’의 시작이라는 상징적인 사례”라며 평가하기도 하였다.

한편 주한미군은 그동안 서울에 있던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를 비무장지대로 옮기는 행사를 11월 9일 가진 바 있다. 유엔사 부참모장, 군정위 비서장을 비롯해 군사정전위에 참여중인 15개국의 일부 장교들이 참석하고 언론기자들까지 동원하였다.

유엔사 군정위, 비무장지대로 이전

유엔사 군정위 비서장인 케빈 매딘 주한미 육군대령은 “(공동경비구역과 캠프 보니파스) 두 곳에 앞으로는 20여명의 군정위 요원이 상주하게 된다”며 “이와 함께 경의선, 동해선 연결 지점에 각각 다섯 명씩의 요원과 중부선 연결 예상 지점에 네 명, 서울에 네 명 등 각각의 지역에서 근무하는 요원들이 배치될 것”이라고 밝혔으며, 유엔사 부참모장인 토머스 케인 주한미 공군소장은 “남북 교류협력을 유엔사 차원에서 지원하려는 취지에서 이전 사업이 추진되었다”고 이전 취지를 설명하였다.

그러나 ‘통일뉴스’의 이시우 전문기자에 의하면 “유엔사 군정위의 판문점 지역으로의 이전은 한국정부와 전혀 사전논의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통일부 교류협력국, 통일부 공보과, 도라산역, CIQ, 국방부 군비통제과, 국방부 대북과 등에 직접 확인해본 결과 신문을 통해서 유엔사 이전을 알았을 뿐 지금까지 유엔사로부터 어떤 보고나 사전협의 요청도 들은 바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군으로의 공동경비구역 임무 이전을 두고 ‘자주국방의 시작’이라는 국방부 관계자의 평가가 무색해 지는 순간이다. 주목되는 것은 주한미군이 한국정부와는 한마디 상의없이 ‘일방적’으로 군사정전위원회를 판문점으로 이전시킨 이유이다.

이같은 이유는 유엔사 군정위의 임무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유엔사는 군정위 이전 취지를 ‘남북 교류협력 지원’으로 두었다. 토머스 케인 유엔사 부참모장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2002년 시작된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공사가 마무리돼 남북 간 왕래가 잦아지고 있다”는 발언까지 하며 군정위 임무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지나친 긍정은 부정을 의미한다고 했던가. 토머스 케인 부참모장의 지나친 강조는 잦은 남북간 왕래의 ‘거부’ 의사로 비쳐지는 것은 지금까지 유엔사가 남북 관계에서 보여주었던 행태 때문이다.

남.북.미 간 협의 과정과 유엔사의 딴지걸기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남과 북은 군사회담을 열어 경의선이 통과되는 비무장지대 일부의 관할권을 남과 북이 갖는다는 합의를 보았다. 이같은 합의는 2002년 동해선이 통과하는 비무장지대 일부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이와 관련한 당시 논의 사항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2000년 9월 남북국방장관회담이 개최되었다. 비무장지대 개방과 관련하여 공동보도문 4항은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남과 북을 연결하는 철도와 도로 주변의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를 개방하여 남북관할지역을 설정하는 문제는 정전협정에 기초하여 처리해 나가기로 하였다.”

한편 북한은 10월 11일 군사정전위를 통해 “비무장지대 개방을 남한에 위임하는 유엔군쪽의 편지나 담보 각서를 보내줄 것”을 요구했고, 유엔사는 10월 14일 “국방부가 유엔사를 대리해 비무장지대에서의 지뢰 제거와 공사에 필요한 안전보장 대책을 협의할 권한을 가진다”는 내용의 편지를 북한에 보냈다.

그러나 북한은 10월 18일 미국과 접촉하면서 비무장지대 공사와 관련한 유엔사의 협상권 위임을 북한과 유엔사가 별도로 협의 작성해야 한다“는 뜻을 전달했고, 마침내 11월 2일 조성태 당시 국방장관과 토머스 슈워츠 당시 유엔사령관이 만나 경의선 철도와 도로가 지날 비무장지대의 관할권을 유엔사에서 한국으로 이양시키기로 합의(한겨레 2000.11.13)하였다.

그리고 11월 17일 ‘비무장지대 남북 관리구역 개방에 대한 국제연합군과 조선인민군 간 합의서’에 북한과 유엔사가 서명하게 되는데, 합의서 2항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쌍방은 비무장지대 안의 일부구역 개방과 관련된 기술 및 실무적인 문제들과 남과 북의 관리구역에서 제기되는 군사적인 문제들을 정전협정에 따라 남과 북의 군대들 사이에서 협의 처리하도록 한다.”

애초 주한미군은 10월 14일 서한을 통해 이남 군대에게 ‘협의할 권한’만을 부여하려 하였다.
2004년 7월 2일 연합뉴스는 군 소식통의 말을 빌려 2000년 당시 미국이 “철도, 도로가 통과하는 구역을 한반도 정전 협정에 의거해 주한 유엔군사령부가 직접 관리 통제하는 현재의 공동경비구역과 같은 지역으로 설정하길 원했다”고 보도했다.

제2의 공동경비구역으로 설정해 유엔군 사령관이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협의할 권한’만을 부여하고 실질적인 통제권 즉 관할권은 유엔군 사령관이 쥐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0월 18일 북측의 요구를 받고 유엔사는 마침내 11월 17일 ‘협의하고 처리할 수 있는 권리’ 즉 ‘관할권’을 남측에게 부여한 것이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하였지만 비무장지대 남북관리구역에 대한 관할권 문제에서부터 미국은 유엔사를 내세워 ‘딴지걸기’를 시작했던 것이다.

유엔사 군정위 이전의 속내

유엔사의 남북교류 딴지걸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과 북의 지뢰제거 작업을 방해하기도 하였으며, 평양에서 진행하는 정주영 체육관 개관식에 참가하기 위한 남측 민간진영의 육로 통과를 방해하여 개관식이 몇 달 연기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그동안 유엔사의 행태로 보았을 때 유엔사의 군정위를 서울에서 비무장지대로 옮기는 것은 ‘남북교류 협력을 지원’한다는 표면적인 목적보다는 ‘남북교류 협력을 방해’하려는 의도 아래 추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남측 정부와 협의하여 이전할 경우 남측 정부의 반발 그리고 여론의 비판에 직면할 것을 우려하여 남측 정부와도 한마디 상의 없이 추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엔사는 ‘남북 교류 지원’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비무장지대의 일부 구역에 대한 모든 협의권과 처리권을 남과 북으로 이양시킨 조건에서 유엔사가 군정위를 비무장지대로까지 옮기면서 ‘지원’할 특별한 일은 없다. 지금까지 진행해 왔던 ‘딴지걸기’를 중단하는 것이 ‘남북교류 지원’을 위해 유엔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렇다면 유엔사가 정전위를 비무장지대로 옮기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비무장지대 경비를 한국군에게 맡겨놓은 상태에서, 한국군에 대한 통제와 간섭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부시 행정부로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그 세력에 대한 불신이 아주 많다. 최근 네오콘 계열의 한 미국인이 ‘청와대에 부시의 낙선을 원했던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다’는 발언도 이같은 불신의 반영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군에게 역할을 ‘이전’시키더라도 비무장지대에서의 권한과 지배력만은 계속 유지하려 하는 것이다.

둘째, 남북 관계 ‘딴지걸기’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경의선, 동해선 연결 지점에 각 5명씩을 배치하고, 새롭게 연결된 중부선 지역에도 인원을 배치하겠다는 것은 그같은 의도를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셋째, 남측 여론의 반전을 꾀하고 있다. 최근 미국이 주목하는 것은 개성공단이다. 개성공단과 관련하여 미국은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전략물자 반출제한’에 대한 비판여론이 남쪽에서 고조되었던 것이다.

일부 단체들은 미 대사관을 방문하여 항의서한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전략물자 반출제한’이 한미 관계에 중요한 현안이 될 것이라는 언론 논조가 이어지기도 하였다. 노무현 정부 역시 개성공단 성공을 위한 의지가 대단하다.

물론 혹자들은 ‘전략물자 반출제한’의 개성공단 진출 여부는 비무장지대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으로서 중요한 것은 남측 당국의 의지를 꺾고 여론을 반전시키는 것이다.

즉 미국은 유엔사 군정위를 비무장지대로 옮겨 비무장지대를 통과하는 일체의 사람과 물자를 철저히 관리, 통제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이남 정부의 의지를 꺾고자 하는 것이며, ‘봐라, 미국이 저렇게 나가는데 어떻게 남북 관계가 잘 되겠는가’하는 패배주의를 심고자 함이다.

‘협력적 자주국방 정책’의 비현실성

또한 이번 사건은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소위 ‘자주국방 정책’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엔사(즉 주한미군)는 한국 정부와는 어떤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군정위 이전을 단행하였다. 국방부 군비통제과 관계자도 “유엔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볼멘 소리를 할 지경이다.

이번 사건에서 확인된 노무현 정부의 ‘협력적 자주국방 정책’의 비현실성은 미국측의 ‘일방주의’적 자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 아무리 노무현 정부가 ‘협력적 자주국방 정책’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실현 불가능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번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신들의 정책 추진에서 ‘일방주의’를 견지하고 있다. 한미 관계에서 ‘일방주의’를 고집하는 미국이 존재하는 한 ‘협력적 자주국방’은 결코 실현될 수 없다.

다음으로 남북 관계 ‘파탄내기’로 일관하고 있는 미국과 ‘협력’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과 협력하여 이룩할 수 있는 것은 ‘남북 관계 딴지걸기’, ‘대북모략’, ‘대북전쟁준비’ 외에는 없다.

노무현 정부는 이번 사건을 교훈으로 삼아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비현실적 논리에서 벗어나 ‘민족공조’, ‘남북공조’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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