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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모습이 뭘까?
연합뉴스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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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03.28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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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에 진주

일반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땅에서 화가라는 직업으로 살기는 무척 어렵다. 십 년 이상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먹고살기 어렵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아직도 나이든 어른들의 머릿속에는 배고픈 직업으로 남아있고, 친구들도 비싼 술은 사주지만 그 돈으로 그림을 사진 않는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미술학원 경영이나 학원강사, 혹은 그림과 관련된 다른 일로 전업을 하든지 아니면 라면을 먹으면서 작품활동을 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고 굶어죽진 않는다. 사회적으로 민망한 성병으로 죽은 화가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굶어죽었다는 화가의 전설은 들은 적이 없다. 사실 돈을 벌고 싶어도 벌 수가 없는 직업이다. 차라리 굶어죽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자위하는 게 마음 편하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일반인들이 화가에게 가지고 있는 이중잣대이다. 작가는 라면을 먹으면서 그림을 그려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속으로는 `멀쩡한 사람이 빈둥거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작가의 줏대 있고 자유로운 생활을 동경하면서도 가까운 사람이라면 태도가 돌변한다. 물론 작품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다시 말해 예술가는 우리 사회에서 있으나 없으나 한 존재라는 것이다. 물론 나는 화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다. 지금까지 미술은 특수한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미술가가 특별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이 특별나다는 말이다. 과거에는 왕이나 귀족, 제사장의 전유물이었고, 현재는 돈 많고 지식 있는 사람의 전유물이다. 예술이 가진 특성과 난해함이 주된 이유이다. 돈 많고 힘있는 사람이 괜히 쓸데없는 예술을 끌어안고 있다고 보는가. 누가 뭐래도 예술은 정신의 최고 가치이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사람들의 인식수준이 높아졌다. 인터넷이나 매스컴은 엄청난 지식과 정보를 쏟아내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동차며, 핸드폰, 옷, 장식품 따위는 과거의 귀족보다 더 좋다. 상대적인 빈곤이 문제라고 하지만, 그것은 물질의 빈곤이지 정신의 빈곤은 아니다. 미술작품을 꼭 사야 감상이 되나? 800억 짜리 고흐의 자화상을 꼭 사야만 향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자기 집에 걸린 수천만원짜리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지 못하는 주인이 훨씬 많다. 감상하는 사람 수준만큼 가치가 결정된다. 현대에서 미술작품은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와 같다.
 
어떤 시인은 `예술을 통해 낡은 자신을 새로운 자신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꼭 그런지 통계를 낸 적은 없지만 만약에 바꾸지 못한다면 그랜저를 타고 동네시장을 보러 가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우리 사람들이 고상하고 고급스러워지길 바란다. 민족의 통일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천박한 자본의 눈으로 통일을 보면 돈독이 오르고, 그 안에는 남북백성의 삶이란 없다. 유치한 이기심으로 통일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과 우리를 고귀하고 수준 높은 존재로 만들어야 통일은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 혼자만의 생각일까. 

목련꽃이 떨어지면...

▶리재수/우리가 사는 거리/조선화/1983

이번 그림은 북한화가 리재수가 그린 `우리가 사는 거리`라는 제목의 조선화 작품이다. 멀리 평양 시내가 보이고 건설 현장에 소년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장면을 그렸다. 조선화 특유의 화사한 색상과 필치가 돋보인다. 뒤에는 용접공과 안전요원으로 보이는 여성이 흐뭇한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보고 있다. 소년은 뒷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화구는 크레용과 화판 위에 도화지가 전부인 듯 하다.

이 작품에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요소, 즉, 건설현장과 미술이 겹쳐있다. 시끄럽고 위험한 건설현장, 거친 노동자들과 미술이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마찬가지로 한적한 공원이나 아름다운 자연풍경 속에 있어야 할 미술이 왜 건설현장에 있는 걸까? 단순히 그림 그리는 소년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고 생각하면 내용의 핵심을 놓친다.

아마도 작가는 자신과 당이 바라는 어떤 이상적인 모습을 표현한 것 같다. 그 이상적인 모습이 뭘까? 넘겨짚지 마라. 난 정말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을 좀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관점을 세울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을 보는 당신은 노동자인가, 아니면 화가나 예술가인가, 아니면 이 둘의 관계를 생각하는 사람인가.
눈꺼풀이 자꾸 내려오는 화창한 봄날, 북한 화가가 그린 조선화 한 폭을 놓고 무명화가의 처지를 한탄해 본다.

`목련이 떨어지고 나면 야외 스케치나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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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1)
애독자 () 2001-04-01 12:00:00
늘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이번 그림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화가와 그 뒷배경과의 관계 문제이군요.
이런게 그림을 보는 안목인가 봅니다.
사실 북한 그림이 너무 사실적이여서
연관관계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그 그림의 정치적 의도를 먼저 생각케 하는
그런 고정된 생각이 그림보기에도 그대로
나타나곤 하는데
간단한 해설이지만 띵~~한 느낌이 왔습니다.
그리고...
왠지 해설기사를 보다보니
화가의 처지가 막 동정이 가면서
그림 한점 살 엄두조차 내지 못하거나
그림을 집에 걸어둔다는 것조차 생소하게
느끼고 있는 이 답답함을 뒤돌아보게 합니다.
화가님!
그래도 좋습니다.
힘내십시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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